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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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에 다닐 때 집사님이 가장 자주 하던 말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렵다’였다. 거대한 짐승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몸통을 줄여서? 몸속의 물통을 비우면 배가 홀쭉해져 바늘귀보다 작아지는 것일까? 집사님의 말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니? 부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단다. 평생 욕심만 채우다 지옥으로 떨어지기 십상이지. 그러니 여러분도 꼭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해요. 알았죠? 부자가 되는 건 좋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예, 하고 대답했다. 어린 나도 그렇구나, 역시 성경의 비유는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교회 전통만 맹신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퀴즈대회가 열리면 참석하고 유치부 공연을 기획하면 또 열심히 참여하고, 비록 성경공부는 소홀히 했지만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다녔다. 물론 투철한 신앙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교류, 즉 사회생활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유치부를 졸업했고, 나이에 비해 늦은 편이었지만 중등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중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내 성격이 몹시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중등부 안에서 가장 조용한 청소년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과 중등부 학생들이 모여 스케이트장에 놀러갈 때도, 나는 하릴없이 침묵에 잠겨있었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대화하고 있을 때 나는 자꾸 서먹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웃음도 나오지 않고,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농담할 때만 어색하게 미소 짓고, 먼저 얘깃거리를 꺼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얘기하면 선생님 따라 친구가 얘기하면 친구 따라 갈 뿐이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그런지 소변만 차올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물이 든 자신의 컵에다 콜라를 들이 부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세상에 물과 콜라를 섞어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 친구의 행위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친구는 깜짝 놀라 웃으며 “왜 그래? 네가 그러는 거 처음 봤어.”하고 말했다. 평소에 아무 말 없던 내가 감정을 드러내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어이없지만 재밌어하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물은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던 것이다. 사이다와 콜라를 섞어 마시는 건 청소년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괜히 착각해 친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던 것이다.

 

큰일이 아니어서 ‘물 콜라’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나는 차마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구나.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할 기회가 지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내 실수를 털어놓을 만큼 자존심이 조절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자존심인지도 몰랐다.

 

 

나는 스케이트를 잘 못 탄다. 스케이트장에 갈 때마다 내게 맞는 신발을 찾지 못해 뒤뚱거리기 십상이다. 오래전 가족들과 스케이트장에 갔을 때 실수로 작은 신을 골라 애먹은 적이 있었다. 아주 꽉 끼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조여서 불편했는데, 그 때문인지 스케이트를 타다 앞으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얼굴은 다치지 않았지만 팔꿈치와 손바닥이 긁혀 한동안 붕대를 감고 다녔었다. 중등부 모임에서도 나는 신발을 잘못 골라버렸다. 내 발 크기는 255 정도였는데 그만 265를 받아버린 것이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265를 신자 나도 얼떨결에 265가 맞는 건가 보다 싶어 그렇게 신은 것이었다. 선생님이 크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 발 치수를 몰랐기 때문에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어기적거리며 스케이트를 끌고 가는 나와 선생님은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맞는 신발을 신었어도 제대로 못 탔을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선생님이 둔했기 때문이었다. 싱싱 잘 타고 다니는 애들을 보며 약간 울적해진 나는 나와 같이 스케이트 못 타는 선생님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내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짝사랑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안경은 쓰지 않았고 쾌활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자애를 나는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내 눈에 그녀는 참 잘생긴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못생긴 얼굴도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그토록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분반활동을 하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슬며시 뒤에 앉곤 했다. 남들처럼 멋있게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에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가득 들어있었나 보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넘어지는 추태를 보이다니. 잠자리에 들었을 때 속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케이트를 잘 타지도 못하고, 선생님과 뒤엉켜 고통스럽게 엉덩방아를 찧다니. 그래도 내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사진기 속 그녀의 사진이었다. ‘물 콜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나는 사진기를 꺼내 막상 가져왔으나 쓸 데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사진 찍을 사람 없냐고 묻자 그녀가 불쑥 찍어 달라 한 것이다.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펼쳐 보이는 그녀를 나는 놓치면 사라질세라 서둘러 찍어댔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했지만 그 사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모른다. 내가 별 의미 없는 추억 쪼가리로 여겨 삭제했는지 문서를 정리하면서 의도치 않게 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사진을 자꾸 봐서 그런지 아직도 그녀의 얼굴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빨간 옷을 입고 행복하게 미소 지었던 여학생. 그녀를 향한 애정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새해를 맞은 우리 식구는 이사를 해야 했다. 부모님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사를 가야만 했다. 내 고향은 창원이었지만 두 살이 채 되기 전 포항으로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고향이 포항이었다. 포항에서 오랫동안 살아 정이 들었는데 갑자기 충북으로 떠나고 대전에 왔다 부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막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려 했는데…….

어차피 이런 감정은 한번 겪어봐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나는 교회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교회에 간 나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얘들아, 기쁜 일이 있어. 우리 반 미은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네? 선생님 정말요? 미은이 너 대단한걸!”

“뭐 그런 걸 가지고…….”

 

남들은 대개 이런 말을 들으면 속상해 죽겠다거나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징징대지만,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그녀의 상냥함으로는 얼마든지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시들어져 버린 마음을 감춘 채 교회를 나왔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나는 그 일 때문에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교회에서 싫증을 느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교회의 관습인 율동과 유치찬란한 예배 활동이 때때로 지루했을 뿐 절대 큰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부천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몇몇 제도가 달랐지 나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친구들과의 어색한 만남, 어른들과의 부자연스런 인사. 단발머리 여자애를 향한 짝사랑.

새 교회는 표면적으로 달라보였지 전 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내가 간 교회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나는 또다시 이사를 갈 것이고 그립지도 않은 곳을 떠날 것이고 서먹했던 사람들과 작별할 것이다. 한마디로 감흥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나는 교회를 무슨 마음으로 다니는 것일까. 신앙심 깊은 부모님에 비해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가는 곳이라면 무념무상 따라갈 뿐이었다. 허무했다. 어느 곳이든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박한 꿈을 따라주지 않는 운명이 원망스러웠지만, 그것이 정말로 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그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상은 예상대로 한결같았다. 변한 것이라곤 커진 내 몸뿐이었으니까.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부모님과 성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내가 아닌 부모님이 꺼낸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를 꺼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빌 게이츠가 열심히 기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꾸준히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 바늘이 점점 커져 낙타가 바늘귀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부자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비유라고 설명했다.

“바늘귀는 우리가 쓰는 바늘의 바늘귀를 말하는 게 아냐. 옛날 중동 지방에 바늘귀라는 문이 있었는데 낙타 주인이 낙타를 데리고 통과해야할 때가 있었지. 그 바늘귀라는 문이 엄청 작았다 하더라고. 낙타 같은 큰 짐승이 지나가기엔 너무 작았던 거야.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는데 바늘귀가 그 바늘귀가 아니란 말이지. 바늘귀는 문 이름이라고.”

 

나는 그제야 그 빌어먹을 교회에서 오랫동안 속아왔다는 사실을, 미치도록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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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 21 시 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없는 경험이어서 뭔가 더 집중하게 된 기분이네요(보통은 반대지요). 아마 소설 속 화자는 교회에서 속은게 낙타와 바늘구멍 마저도 속은것이라서 분노한것인것 같아요. 제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요즘 문해력이 떨어져서요. 어찌되었든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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