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거미,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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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부쩍 거미가 많이 보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나 풀밭 근처에 자리 잡으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고 학교 창문 앞이라던가, 차양 아래, 철제 울타리 사이같이 자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쪽들이 눈에 잘 띕니다. 이는 생각해보면 하나는 인공물과 거미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과 제가 이 인공물 사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거미들 이야기를 해보자면 흔하게 보이는 거미는 세 종류입니다. 무당거미, 호랑거미, 새똥거미가 그 셋이지요. 무당거미는 몸통이 굽은 손가락같이 살짝 휘어있고 형광색, 검은색, 붉은색의 무늬가 있습니다. 다리는 몸에 비교해 얇고 길며 큰놈은 다리 길이까지가 새끼손가락만 하게도 큽니다. 호랑거미는 무당거미와 색깔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몸통이 더 두껍고 둥글어서 콩알이나 무슨 나무의 열매 같은 모습입니다. 다리조차 여리여리한 무당거미와 다르게 호랑거미는 다리가 좀 더 두껍습니다. 또한, 크기도 대부분이 커서 대부분이 다리 길이까지 검지 만 합니다. 왕거미는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하는 거미에 가깝습니다. 몸통은 갈색 완두콩 두 개를 붙여놓은 것 같고 다리는 앞의 두 거미만큼 길지 않습니다. 크기도 보통 엄지손톱만 합니다.

셋 중에서 이번에 말해볼 거미는 무당거미입니다. 호랑거미는 시골이나 자연에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이 보이고, 왕거미는 생긴 것은 귀엽지만 아직 특이한 행동은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무당거미는 복도의 창밖이나 튀어나온 지붕 아래 자주 신기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할 것이고, 지금부터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제가 말하는 거미는 으레 무당거미라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거미집-

 

거미에게 집은 휴식처이자 사냥터입니다. 사실 사냥터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촘촘하게 엉켜진 거미줄은 거미의 유전자에 각인된 최고의 재산일 것입니다. 이 거미줄의 위치 선정은 아주 중요한데, 어디에 거미줄을 치느냐에 따라 자신의 배로 들어가는 먹이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면서 생각해본바, 가장 이상적인 곳은 바람이 통하는 곳입니다. 곤충들이 바람길을 따라 날다가 거미줄에 걸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 보통 그런 바람길은 무언가 튼튼한 물체의 사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짓기 좋은 장소이겠지요. 반면 안 좋은 곳은 외지고 막힌 곳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로 운이 좋지 않은 이상 곤충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곳들이지요. 창틀에 집을 거미도 있습니다. 이들은 요즘 곤충들이 사람의 불빛에 현혹되어 몰려드는 것을 아는 영리한 거미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거미들은 집을 짓고 삽니다.

그렇게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면 거미집의 전적을 알 수 있습니다. 꽤 오래 집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거미줄도 있고, 뭔가 이것저것 걸려있는 거미줄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붙어있는 거미줄의 거미는 허물도 벗어놓고 커다래져 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붙어있는 거미줄은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그럼 저는 으레 자리를 잘 잡은 거미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거미집이 저렇게 눈에 잘 띄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입니다. 거미줄은 얇고 튼튼하여 쉽게 알아챌 수 없기에 먹잇감들이 걸려듭니다. 하지만 벌레의 사체와 거대한 거미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곤충들로 하여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몸집이 커진 거미는 오히려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눈에 잘 띄는 거미줄에서 왜 인지 오지 않는 먹이를 기다리며 배를 주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흔한 사자성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거미는 가만히 굶어 죽지 않고 집을 버리고 새집을 지으러 떠납니다. 지난날의 영광에 기대어,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떠나가는 거미는 참으로 현명합니다.

 

– 한 거미줄 위에 –

 

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여러 한해살이 동물들이 삶을 끝내곤 합니다. 자연은 영생이란 있을 순 없다는 걸 알지만, 영생의 꿈을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곧장 자신과 꼭 닮은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생을 이어나가도록 했지요. ‘가시고기’에서, 또 여러 사람이 그러듯 자손을 남기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미도 물론 자손을 남깁니다. 수백, 수천 마리를 남기지만 무사히 살아나가는 건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이 가을은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은 그 전의 단계가 일어납니다. 인간 남녀 간의 이야기라면 가을날의 로맨스를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자연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거미로 돌아와서, 이맘때쯤 이면 한 거미줄 안에 큰 거미와 작은 거미가 함께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맘씨 좋은 거미가 세를 준 것인지 염치없게 남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인지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주인 거미의 입장에서 이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거미는 오직 암컷만이 집을 짓습니다. 수컷은 평소에는 길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암컷의 집을 찾아가 스리슬쩍 자리 잡습니다. 가끔은 한 거미줄 위에 작은 거미가 두 마리, 세 마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컷들의 영생을 향한 치열한 경쟁일 테지요.

그렇다면 다른 경쟁자 거미도 있는데 어서 달려가 암컷을 차지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생의 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집주인인 암컷에게 이 작은 신랑들은 한낮 점심거리로 보뿐입니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간 그대로 암컷의 독니에 찍혀 살이 녹아버리고 맙니다. 어떤 거미줄 위에서 본 모습은 동글동글한 검은색 공 한쪽으로 긴 다리 여럿이 빼쭉 나와 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마치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을 닮은 듯했습니다. 비록 그는 어떤 신호도 남기지 못한 채로 추락해 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거미는 치열한 눈싸움을 합니다. 암컷 거미가 정신이 언제쯤 빠질까…. 그 모습은 두 왕복선의 랑데부 같습니다. 그런 눈치싸움은 하루, 이틀, 수컷이 자신의 씨를 밀어 넣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서만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심이 가는 거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으레 암컷이 움직일 때만 따라 움직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컷 거미들의 전략 중 하나는 암컷이 딴생각을 할 때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이런 경우일듯싶습니다. 이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암컷이 둥글게 만 경단에 앞니를 꿈틀대는 동안, 수컷은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에 쫓겨서 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서 짝짓기에 성공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직후에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는 암컷에게는 방금의 신랑도 그저 먹이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씨를 남겼으므로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비극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희생정신으로 보아야 할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듯합니다.

수컷 거미가 그렇듯, 우리도 한 번쯤은 목표에 눈멀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만 그 후에 다른 시련을 맞으며 어떤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누구는 실패자이고 누구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누기보다는, 가끔은 그 열정을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들의 의도는 어떠했든, 그들의 행동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무언가 그렇게 원해보지 않았던 저에게는 그 거미들을 바라볼 때마다 언젠가 그런 열정을 찾을 때, 나도 내 모든 걸 바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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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 19 시 전
맛없는쵸코맛 님의 ‘거미, 거미, 거미’ 잘 읽었습니다.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 관찰을 통한 구체적인 묘사가 매력적인 글입니다. 화자가 본 것을 충실히 재현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마음을 줄줄 풀어내는 것보다 대상을 관찰해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하는 게 더 힘듭니다. 맛없는쵸코맛님의 글에는 남다른 관찰력이 들어 있어요. 앞쪽에서 세 종류의 거미에 관해 쓰고 있는데, 호랑거미와 새똥거미에 관한 설명은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무당거미에 관해서만 쓰면 글의 완결성이 더 커집니다. 거미를 통해 말하고 싶은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해주세요. 먹이 사냥을 위해 거미줄을 치는 암컷 거미 이야기와 종족보존을 위해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 거미의 이야기를 통해 화자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 깨달음 등을 더 풍부히 담아주면 좋겠습니다.…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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