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예쁜 타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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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쁜 타조야

 

여름이 유난히 길었다. 학교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닥치는 끔찍한 무더위에 숨이 턱 막혔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다고 덥지 않은 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바깥보다, 더웠다. 계단을 오를수록, 2학년 층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짧아졌다. 계단이 끝나자 도망치듯 반으로 뛰어 들어갔다. 의자를 빼 앉고 숨을 몰아쉬는데 문득 팔이 따가웠다. 아니, 따갑다는 걸 알아챘다.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불긋한 팔을 손으로 매만졌다. 뜨끈뜨끈했다. 그 짧은 등굣길에 데었나 보다. 이상하게 데는 순간은 몰랐다. 난 항상 그 순간이 지나고서야 벌겋게 화상을 입은 걸 발견했다. 팔이 익은 걸 보니 케이크가 걱정됐다. 녹지는 않았을까, 상자를 열고 케이크를 살폈다. 다행히 케이크는 집에서 내올 때 그대로였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의 더위는 내게만 해당되는 모양이다.

여름. 그 발음을 좋아했고 그 계절을 좋아했다. 딱 일 년 전까지는 그랬다. 여름에 허덕이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태껏 못 느끼던 더위를 작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추위에나 약하지, 더위에 약하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체질이 옮은 것 같다. 이게 다 내 예쁜 타조 탓이다. 내 예쁜 타조는 더위에 약했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타조를 보고 있자면 나까지 열이 차올랐다.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은 곧잘 우울로 번졌다. 여름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데 나는 너무 무방비하기만 했다.

 

예쁜 타조가 있다. 내 눈에는 더 예쁠 수가 없는데 남들 눈엔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내가 예쁘다고 말만 하면 다들 혀를 내둘렀다. 나도 처음부터 마냥 예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점잖게 그런 사람들을 속으로만 비웃어주었다. 타조의 예쁨을 논하기 이전에, 나는 타조를 만나면서 사람 한 명과 사람 한 명이 만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애당초 살던 곳도 달랐는데 어쩌다가 같은 학교를 지원했으며, 또 같이 붙은 것은 어떻고, 또 어쩌다가 같은 반, 그것도 짝이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같은 해에 태어난 것, 같은 나라에 태어난 것,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같은 세기, 어쩌면 태어난 것 그 자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필연이라고 착각할 만한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타조와 내가 만났다. 조금만 삐끗했어도 타조와 나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을 알기에, 이런 생각을 하면 현기증과 애틋함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첫인상은 밍밍했다. 타조는 딱 열일곱 살 여자애였다. 외모도, 체구도 그럭저럭 평균에 속하는 타조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입학하고 채 한 달이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 전까지 타조도 나도 짝이라는 의무감으로 말을 섞곤 했지만 영양가 없는 내용에서 정말 의무적인 티가 났다. 짝을 바꾸기까지 며칠 안 남은 그때, 타조가 새삼스레 눈에 찼다. 타조는 바뀐 게 없었다. 그날 아침도 입학 첫날이나 다를 바 없는 어색한 분위기로 몇 마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고 여전히 타조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제와 같은 타조를 두고 갑작스레 오늘 묘한 떨림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난 그래서 당연히 스쳐지나가 으스러질 알량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우습게 타조는 몇 개월이 지나도 내 시야에서 나오질 않았다. 난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타조가 내 타조가 된 게, 딱 그 무렵, 여름이었다. 자리는 달마다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타조와 나는 유독 짝이 자주 걸렸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게 당연했다. 반에서 매일 보다보니 대화도 제법 매끄러워졌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타조와 내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타조와 나는 완전히 반대였다. 표면적으로는 우선 어울리는 친구들부터가 달랐다. 처음에 난 그 이유를 학기 초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사실 난 타조의 친구들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타조도 내 친구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밖에도 속속들이 파고들수록 반대되는 것들만 나왔다. 좋아하는 색깔, 영화 장르, 과목에서부터 노래 취향, 모자 종류, 심지어 좋아하는 이불 감촉까지. 사소한 것들로만 그치지 않았다. 종교에 대한 생각은 아예 달랐고 기본적인 가치관과 신념엔 공통점이 없었다. 윤리적 딜레마를 놓고는 며칠이나 으르렁대기도 했다. 하루는 국가를 읽고 왔는지 철인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오기에 손을 내저었다. 국가관까지 다르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신기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달랐다. 타조와 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마주 앉아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타조와 엇갈리면 엇갈릴수록, 우연이 아니고서야 만날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서 타조는 점점 예뻐졌다. 나도 모르는 새였다. 내가 눈치 챘을 땐, 이미 타조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정도로 예뻐진 후였다. 평상시와 같이 대화를 하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당혹스러울 정도의 더위가 훅 끼쳐왔다. 무더위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덥고, 더웠다. 타조의 여름은 끝난 지 오래인데, 내 여름은 늘어지기만 했다. 그게 조금 억울했지만 감정 자체가 일방적인 걸 알았기에 타조에게 어떻다 할 표현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냥, 더위를 견뎠다. 그렇게 잔잔하게 일 년이 갔다. 겨울방학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방학 전날, 타조와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울었다. 울면서도 왜 우는지 몰랐다. 답답했다. 방학의 설렘은 다 어디로 가고, 타조가 없을 세 달이 벌써부터 막막했다.

타조가 눈앞에 없으면 당장 눈앞이 깜깜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한 달은 괜찮았다. 타조의 유무와는 별개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충분히 신났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타조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다. 타조가 내 머릿속을 엉망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 건 두 달째부터였다. 타조가 계속 생각났다. 솔직히 방학을 계기로 타조에게 가는 감정이 좀 가라앉진 않을까, 기대를 했다.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이 나한텐 문제가 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비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묻히길 바랐는데, 난 내 생각보다 타조를 더 지고지순하게 예뻐했나 보다. 타조가 너무 보고 싶었다.

타조가 정신없이 쪼아오던 학기 중과는 달리 길고 긴 겨울방학은 혼자 차분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많았다. 현실을 직시해 식을 줄만 알았던 머리는 차분히 낳은 게 결국 더 깊은 감정이었다. 나도 그에 배신감을 느끼는데 타조는 오죽할까 싶었다. 타조는 내 마음을 알지도 못 할 테지만, 그냥 미안했다.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미안했다. 나는 타조가 내가 타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후에 느낄 감정을 상상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마음도 어지러운데 타조의 입장을 헤아리다니 말이 안 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난 타조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원래 잘 못 보긴 했지만, 정도가 달랐다. 얼굴을 보기 부끄럽다는 게 내 나름의 핑계였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타조의 얼굴이 시야에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쿡쿡 찔려왔다. 죄책감이나, 뭐 그런 감정들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도 난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꼭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을 것 같았다. 좁은 반 안이지만 난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내 타조를 피해 다녔다. 어쩌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타조의 발목께로 시선을 처박았다.

감정이 들쭉날쭉했다. 타조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웃음이 실실 새어나오나 싶으면 곧 같은 이유로 기분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감정의 가닥을 못 잡아 허덕이는 와중에도 가장 힘든 건 내가 노골적으로 피해 다니는데도 타조가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 따윈 없다는 거였다.

 

긴 방학이 끝이 나고, 새학기였다. 타조와 난 반이 갈렸다. 과가 다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마 앞으로 같은 반이 될 일도 없을 것이었다. 껄끄러운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해야 하는지, 타조를 만날 일이 없어 슬퍼해야 하는지 몰랐다.

반이 바뀌자 타조와 마주치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그도 그럴 게 하필 반도 끝에서 끝이었다. 누구 하나 작정하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보기는 힘들었다. 어쩌다 보게 되면 말을 걸었지만 시들한 반응에 말을 더 얹진 못 했다.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타조가 꼭 대화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알던 타조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변화를 외관적인 것에서 찾으려 했다. 타조는 긴 방학 동안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는데 그 탓에 분위기가 바뀐 건지, 아니면 그 잘린 머리카락에 내가 아는 타조의 모습까지 같이 흘러가버린 건지 정말 생판 남 같았다.

머릿속은 혼란했지만 눈으론 끊임없이 타조를 찾았다. 타조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자 작년에는 못 봤던 것들이 함께 잡혔다. 타조는 친구가 많았다. 내가 예뻐하는 것과는 별개로 타조가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타조 주위엔 언제나 친구들이 북적거렸다. 타조가 친구들과 얘기하며 웃는 것을 보자 속이 쓰렸다. 문득 타조가 내게만 안 좋은 성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작년까지는 ‘같은 반 친구’라는 범주에 간신히 숨어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그래도 나는 타조와 내가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타조의 태도를 보아하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타조는 겁이 많아졌다. 말을 걸면 불편해 하는 게 얼굴에 드러났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의식인 건지 무의식인 건지 꼭 그만큼 발을 뒤로 물렸다. 처음엔 타조가 무언가를 알아챘나 싶기도 했지만 자기가 기분 좋을 땐 먼저 말을 거는 걸 봐서는 그것도 아닌 듯했다. 난 매일같이 다른 타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타조의 행동은 짧은 하루 안에서도 수없이 달라졌다. 타조가 먼저 말을 건 그 다음 쉬는 시간에 내가 말을 붙여도 타조는 방어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아릿했지만 얼굴근육은 제멋대로 웃음을 지어 보냈다. 사실 타조의 발끝만 봐도 그랬다. 파블로프의 개, 어쨌거나 개만도 못한 조건반사였다.

 

예쁘고, 비었다. 그게 내 타조였다. 타조는 멍청하다. 타조계의 아인슈타인이 들으면 발칵 화를 내겠지만 일반적으론 그렇다. 내 예쁜 타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타조는 멀쩡해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하얗게 탈색된 뇌를 뽐냈다. 뇌 전시회도 한두 번이지 매일 가다보면 질릴 만도 한데 깃털을 다듬는 타조가 너무 예뻐 나는 군소리 한 번 못 했다.

타조는 내 세계에서 가장 멍청했다.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다 쓸어가면서 왜 저럴까 싶기도 했다. 무정한 내 타조는 내 세계에 일말의 관심도 안 보였다. 타조와 내 세계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난 꼭 벽에다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타조는 락에 관심이 없고, 배구에 관심이 없고, 공학에 관심이 없었다. 이것들로만 끝나면 취향의 문제라고 여겼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타조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숨길 줄 몰랐다. 난 타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오래였지만 갈수록 타조의 세계에서 머무르는 게 괴로워졌다. 일방적인 애정이었다.

“너 진짜 착하다.”

타조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타조의 뇌가 어렴풋이 눈에 밟혔다. 착하다. 그 말을 하며 환히 웃는 타조는 예뻤지만 동시에 못났고, 미웠다. 내가 타조에게 쏟아 부은 모든 관심과 애정이 착하다, 라는 말로써 부정되었다. 타조는 내가 제게 해주는 것들이 꼭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타조를 위해 하는 일들, 예컨대 타조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면 상담가 역을 자처하거나 감기라도 든 날엔 보건실에 다 떨어진 감기약을 사러 20분을 걸어 약국을 다녀온다거나 타조가 먹고 싶다고 흘린 달달한 간식들을 다음날 당연하게 건넨다거나 하는 일들을 모두에게 해주면……, 속된 말로 나는 호구였다.

“너 진짜 착하다.”

그런 말을 하는 타조가 더 멍청한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웃는 내가 더 멍청한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사람 하나 호구되기는 참 쉬웠다.

 

호구짓도 타조 얼굴을 봐야 하는 거지 타조 코빼기도 제대로 못 보는 상황에선 모든 게 부질없었다. 호구짓을 넘어서,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 부질없는 일인 건 맞았다.

작년 언젠가, 웬일로 쉬는 시간에 엎어져 자고 있지 않은 타조가 내게 물어왔다.

“야, 동성결혼 합법화되면 어떡하냐?”

월요일 1교시 쉬는 시간에 던지는 질문치곤 난데없었다. 아, 토론 주제가 나온 뒤긴 했다. 동성혼 법제화.

“한국에서 결혼하나, 나가서 결혼하나, 할 사람은 하겠지.”

타조와 무언가를 놓고 얘기하면 항상 대립된 의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주제를 놓고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불법도 아닌데 무슨 합법화야.”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쳐다본 타조의 얼굴이 영 혼란스러워서 한 마디만 퉁명스레 덧댔다.

“아니, 유전자가 부딪히잖아. 아기한테 안 좋은 거 아냐? 그러다가 나중엔 친남매끼리 결혼한다하면 어떡해?”

“농담이지?”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켜 타조를 쳐다봤다. 타조가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한번 농담을 던지면 사람을 참 당황스럽게 했다.

“어?”

불행히도 타조는 진지했다.

“거기서 동성은 남성 여성 그 성 아냐?”

“아…….”

타조의 목소리에서 머쓱함이 묻어나온다.

“그리고 동성동본 금혼 폐지된 지가 언젠데…….”

내 타조는 말이 없다. 나는 말을 골랐다. 그래도 정리가 안 돼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타조가 가만히 덧붙인다.

“무슨 동성이든 동성은 안 좋은 것 같아.”

그대로 반을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타조와 같이 있는데 숨이 막혔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타조의 말이 맴돌아 타조 쪽도 못 쳐다본 게. 저 깨끗한 뇌는 과연 교과서 지식만 담아도 벅찬 건가 향할 대상 없는 화가 가끔씩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융합과학 시간 생물 전공인 선생님의 ‘종족 보존을 위해’ 셋은 낳으라는 농에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타조를 보곤 알았다. 타조는 애초에 자기가 하는 멍청한 말들을 알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타조를 보는 게 갈수록 껄끄러워지고 또 그만큼 발목께로 시선을 박는 만큼 양말을 매일 갈아 신는구나 하는 멍청한 생각만 늘어갔다. 점점 타조화가 되고 있었다.

 

케이크를 톡톡 건드리다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봤다. 달력 곳곳엔 반 아이들의 생일이 적혀있다. 다른 반이라 여기엔 없지만, 사실 오늘은 내 예쁜 타조의 생일이다. 문득 내 생일 생각이 스쳤다. 성격 자체가 워낙 무심한 터라 타조에게 거는 기대는 없었다. 그냥, 작년에 타조의 생일을 챙겨줬으니 내 생일엔 축하한다는 말 정도 듣지 않을까 했다. 학교에 도착해 떨어지는 생일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열심히 타조만을 찾았다. 타조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날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실망까지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타조는 사흘 후 찾아와 “생일이었다며.”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한테 얻어들은 말투였다.

“선물이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타조가 내민 건 귀걸이였다. 귀걸이는 주인 마냥 예뻤다. 좋긴 좋은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애매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타조는 “한번 해봐.”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겨 귀를 가리고는 웃어보였다.

화장실로 곧장 향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귀를 살폈다. 타조의 무심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귀걸이 침 끝은 뭉툭했다. 한숨이 샜다. 명찰을 빼 날카로운 핀을 더듬었다. 손가락을 파고드는 핀 끝이 유독 아렸다. 손으로 귓불을 더듬어 대충 위치를 가늠하곤 핀을 찔러 넣었다. 사람의 살이 이렇게 약하나 싶을 정도로 핀은 쿡 들어갔다. 일부러 몇 번 휘젓다가 핀을 빼내곤 귀걸이를 끼워 넣었다. 말만 끼워 넣은 것이지 얇은 핀이 지나간 자리는 보이지도 않아서 새로 길을 뚫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는데, 거울 안 나는 귓불이나 눈이나 그 색이 같았다.

“오, 역시 잘 어울리네.”

타조의 감상평이었다. 타조의 긴팔이 새삼스럽게 다가왔고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그날 하루 종일 귀에서 심장이 뛰었다. 귀걸이는 예쁜 값을 했다. 귓불이 홧홧했다. 일과 땐 욱신거리기만 하더니 저녁을 먹고 나선 급기야 온몸에 피가 죄다 귀로 쏠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너무 가까웠다. 감싸 쥔 귀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타조로 인한, 또 새로운 형태의 더위. 하루가 끝났을 때 난 간만에 좋은 핑계를 쥐고 울 수 있었다.

 

귀걸이가 자리를 잡은 지는 몇 개월이 넘었지만 그 오만한 놈은 날 여태껏 앓게 했다. 뜨거운 귀 때문에 난 정신이 없었고 그 탓에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에 회의가 종종 일었다. 뜨거움 감정을 뱉어내려고 노력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제일 먼저 시도한 방법은 얼굴을 안 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올해로 들어오고 나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볼 일도 없는 타조였기에 쉬울 것이라 생각한 방법은 일주일을 못 갔다. 상사병으로 죽는 고전소설의 인물들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단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아무것도 못 하느니 차라리 옆에서 마음고생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자기합리화 끝에 난 타조를 피해 다니지는 않되 말도 섞지 않기로 했다. 타조의 반응이 싱거워진 이후로 하려던 말을 삼킨 적은 많은 터라 이번엔 어렵지 않겠다 싶었는데 또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타조는 자기 기분이 좋으면 내게 말을 건다.

 

케이크를 사놓고 기껏 한다는 고민이 줄까, 말까였다. 사오긴 사왔는데 줄 용기는 솔직히 없었다. 상자 손잡이를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다 했더니 손바닥에 그새 줄이 죽죽 그여 있었다. 손, 손바닥. 큰일이다. 무엇을 해도, 무엇을 봐도 거기엔 타조가 있다.

장난기가 많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지만 타조에겐 그 어떤 장난도 쉬이 칠 수가 없었다. 농담에도 진심이 섞여 있을까봐 말을 아꼈다. 타조 앞에만 서면 ‘친구로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감도 안 잡혀 그 어느 것도 못 했다. 다른 애들 엉덩이야 툭툭 치지만 타조는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무력해진 나는 가만히 손을 내미는 것밖에 못했는데 타조는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줬다. 타조는 아무 생각 없었을 거다. 그냥 내미니까, 잡아줬을 것이다. 괜히 의미부여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그 가볍게 스치는 손에서조차 타조와 나의 온도 차이를 실감했다. 타조의 손은 항상 건조했고, 내 손엔 항상 땀이 차 있었다. 그래, 고작 손에 그인 줄 몇 개에 타조와 관련된 기억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이 감정을 포기할까.

이제까지 한 다양한 포기 시도들이 몽땅 실패한 뒤로 불과 며칠 전 나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이 죄다 틀어질 수도 있는, 엄청난 결심이었다. 일단 타조의 기분을 살폈다. 평소엔 싸늘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인가 헷갈리게 다가오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그때를 노렸다. 순간을 잡고 나서도 자연스레 말을 꺼내느라 애를 먹었다.

우선, 겁 많은 타조에게 친구 타조가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해서 그 타조가 원래 알던 타조랑 다른 타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 다음 계획은 배를 좋아하는 것처럼 사과를 좋아하는 것도 성향이나 취향의 일부라는 것을 말하고 그 다음으론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가 아주 별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도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들을 할 예정이었지만, 깨끗하게 망했다. 경계 레벨을 최고치로 올린 타조는 우선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의 존재 자체를 이해 못 했다. 겨우겨우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선 사과가 무슨 선악과라도 되는 양 역겨움을 표했으며 친구였던 타조라도 사과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난 후의 그 타조는 내 타조에게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일 뿐이었다.

난 그날 전시회를 몇 바퀴고 돌았다. 나중엔 머리가 어지러워 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손을 내저으며 그만 하자는 의사를 보이자 타조는 그제야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뭐 그런 게 다 있어?”

장장 네 시간동안 귀에 욱여넣은 ‘친구를 이해하는 법’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 뒤로는 나는 내 세계에 관해 이렇다 할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했고 타조는 또 내킬 때마다 와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내 감정곡선은 타조의 행동을 따라 그려졌다. 더 이상 휘둘리기 싫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또 타조가 던져놓은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바다 자체로도 버거워서 허덕이는데 타조는 지워줄 생각도 안 하면서 색을 더하기만 했다. 나는 타조가 더한 짙은 남색을 따라서 밑으로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다.

 

타조를 예뻐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는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타조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타조가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가감 없이 말을 섞는 친구들, 심지어 매일 인사를 받는 조리사 아주머니들한테까지도 열등감을 느꼈다. 그들에게서 내 부족함을 찾았다. 나는 무엇이 없기에 그들과 같이 타조와 물 흐르듯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낄 수 없는가. 웃긴 건 그 와중에 타조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주위에 정확히 누가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상대에게 온갖 질투를 다 하고 있었다. 한심했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 자부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없었다.

 

내 뇌는 계속되는 더위에 익어버렸다. 덕분에 더 멍청해졌다. 아웃팅 염려도 않고 타조를 예뻐한다는 괴로움을 친구들에게 토했다. 다행히 다들 개의치 않아했지만 처음 보이는 반응은 참 다양했다. 뱃속에서부터 기독교라는 한 친구는 “양성애자면 그냥 남자를 좋아하지.”라고 말했다.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질문이라 나도 “걔가 여자여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애가 여자인 거야.”라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 뒤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내가 나름의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때 친구들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왔다. 어쩐지 네가 매달리는 것 같았다고. 머리를 후려 맞은 것 같았다. 멍했다. 친구들은 얼이 빠진 나를 보고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타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전에도 친구사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던 사실에 나는 헤어질 때까지 입을 못 열었다.

사실 그래, 내가 타조에게 했던 말, 행동 모두 일반적이진 않았다. 옆에서 보던 친구들도 무언가 이질적인 걸 눈치 챘는데 과연 당사자인 타조가 몰랐을까. 그냥, 모른 척 했던 걸까, 아니면, 모르겠다. 나도 타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타조가 알 리가 있을까. ‘웬만하면 남자를 좋아하지’란 말은 타조 입에서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었다. 동성(同姓)과 동성(同性)도 구분 안 하는 타조에겐 내가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안 될 일일 것이다. 타조를 본 순간부터 예쁘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내가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타조는 ‘타조를 예뻐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모른다. 타조에겐 타조를 좋아하는 내가 나의 전부다. 타조에게 난 헌신적인, 정말 ‘착한’ 친구의 표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껏 타조 앞에서 직설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난 내 감정을 토할 용기조차 없었다. 아웃팅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애매한 관계가 더 틀어질까봐 나는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괜히 감정 낭비하는 것도 싫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타조도 싫었고, 그런 타조를 원망하는 것도 싫었다. 제일 싫은 건 겁 많고 멍청한 나였다.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중간에서 옆구리를 푹 찌르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어쩌면 타조를 예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조에게 ‘어쩌면,’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주지 않고, 내 마음을 꽁꽁 숨긴 채 발만 애타게 굴렸다. 그래, 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가장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런 내가 가증스러웠다.

 

케이크를 주지 않으면, 뭐? 어떡하게, 졸업할 때까지 이러게? 졸업하고는 끝나겠어? 눈은 케이크에서 돌리지 않은 채 귓불을 만졌다. 정확히는 귀걸이를. 귀걸이가 자리 잡은 뒤 만지작거리는 게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손끝에서 열이 느껴진다.

볕만 피한다고 더위가 가시는 건 아니다. 귀는 첫날이나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홧홧했다. 뜨거운 게 너무 싫다. 타조가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가 섰다. 거울을 보니 온몸에 피는 다 귀로 모인 것 마냥 벌겠다. 귓불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귀걸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 게 귓불 안은 온통 염증일 것 같았다. 귀걸이를 한 지가 몇 개월짼데 아직도 귀는 아물지 않았다. 연골도 아니고 살인데 무식하게 뚫은 대가라도 치르라는 양 귀는 계속 말썽이었다. 귀만 욱신거리는 게 아니라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귀걸이를 빼면 다 해결될 문제인 게 뻔했지만 이제까지 그 방법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귀걸이를 빼면, 염증은 가라앉겠지만 애써 뚫어놓은 길이 다 막히지 않는가. 엉망진창이어도, 길은 길이었다. 거기에다 멀쩡하게 아무는 것도 아니고 몽글거리는 멍울까지 만들어 놓을 것이다. 뚫을 때부터 아플 각오는 했다. 일방적인 통행이고, 일반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버거웠다.

타조가 공부를 곧잘 하는 게 신기했다. 나로서는, 글쎄. 안 그래도 하루 종일 타조를 신경 쓰느라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 올해로 접어들면서 주위사람들까지 의식하게 됐으니 감정소모가 심했다.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제일 곤란한 건 교과서 그 자체였다. 타조는 자기 이름이 이렇게 교과서에 많이 나온다는 걸 알기나 할까. 타조로 인해 내 일상이 무너졌다. 타조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억지로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귀걸이를 뺐다.

나는 마침내 인정했다. 1년하고 조금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억지로 관계를 이어왔던 것이지 타조와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올해 들어와 타조가 변한 건 없다. 애당초 타조와 난 가까웠던 적이 없다.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낀 것도 착각일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귀걸이 침과 클러치에는 누런색의 고름이 덩어리 져 있었다.

 

거울 바로 위의 시계를 봤다. 타조의 날이 시작된 지 막 여덟 시간이 지나는 참이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물끄러미 앉아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시계를 볼 때마다 타조가 있었다. 하루에 꼭 두 번은 타조의 생일을 봤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을 터였다. 시계에서 항상 보던 숫자가 달력에 찍히고 나는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 시간이 늦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난 내 타조와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최대한 차가울 때 주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타조도 왔을 것이다. 타조의 반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텅 빈 복도가 울렁이며 나를 방해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도착하니 2분이나 흘러 있었다. 남의 반이지만 그냥 열고 들어갔다. 타조는 친구들과 선물들에 파묻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타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알고 있구나. 멍한 뇌가 비아냥거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케이크만 떠밀듯이 타조에게 안겼다. 타조는 놀랍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맙다 인사한다. 나는 그에도 아무 대답 않고 그대로 반을 나왔다. 타조를 방생하고 돌아가는 길의 복도는 더 이상 울렁이지 않았다.

이제 넌 나의 ‘무엇’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타조도 아닌데 왜 타조 깃털이 아직도 아른거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심장이 따가웠다. 감정도 데는 줄 몰랐다. 이 아픔을 느끼는 게 다행이었다. 내 여름이 비로소 끝난 모양이다.

 

 

글을 쓸 땐 타조를 일일이 '내 예쁜 타조'라고 지칭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뭔가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반복하는 느낌이라 그냥 '타조'라고 썼거든요. 혹시 '타조' 부분에 '내 예쁜 타조'라고 계속 지칭해도 글이 깔끔해 보일까요? 내 예쁜 타조는 제가 그 자체로 명사로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좀 지저분해 보일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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