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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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한 달 전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물을 좋아하거나 수영을 배웠던 것도 아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열차를 타고 창문 밖으로 출렁이는 물을 마주한 순간 충동적으로-충동적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열차는 더운 바람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열차 안이 너무도 갑갑해서. 그래서 뛰어들고 싶었던 것 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도 하지. 침대에 누운 그 순간까지도 물의 잔상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물결이 꼭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고 싶었다.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그 속에 안기고 싶어. 그리고 아마 그날 밤에는 물고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는 물고기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가방을 여는 순간 물고기가 튀어나와 교실 바닥에서 퍼덕거렸다.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요동치는 물고기를 앞에 두고도 선생님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것은 같은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있었다. 가엾은 물고기는 마침내 몸부림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에 나는 그 물고기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도 북어지, 너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급식으로는 모래가 나왔다. 바닷가 앞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한 움큼 퍼담아 온 것 마냥 사각거렸다. 다들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혀에서 느껴지는 까끌까끌 거림과 잇새에서 느껴지는 모래 특유의 사각거림. 이것이 모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모래인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것을 먹었다. 어떤 때에는 모래와 더불어 생선이 나왔다. 그럴 때면 급식을 모조리 버렸는데, 물고기들의 절규가 들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수산시장 한가운데 서있는 것만 같았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물로 돌아가고 싶어. 물고기들의 절규를 외면할 때면 으레 물을 마실 뿐이다. 한 컵 두 컵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 배 안에는 바다가 담기고 만다. 바다를 가득 품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퍽 좋아서 가끔은 일부러 내 안에 바다를 만들곤 했다. 그 바다는 오래 머물지 않아 곧 나는 다시 사막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어제 우리 반에 인어가 전학 왔다. 인어를 보았다. 인어를. 인어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은 물 밖으로 나온 탓이리라. 나는 자진해서 인어의 뒤에 섰다. 인어야, 인어는 말이 별로 없었다. 인어야, 인어야. 응. 물속은 어때. 조용해. 얼마나. 귀를 꼭 막아봐. 응.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그럼 그때 눈을 감는 거야. 그리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고 있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넌 깊은 바다에 왔어. 바다에는 빛이 없니. 너무 깊어서 빛이 들어올 수 없어. 그럼 넌 앞을 어떻게 보고. 인어잖아, 나는. 말갛게 웃는 그 웃음소리가 나를 감싸고돌았다. 물방울들이 웃음소리를 담아내어 수면으로 모두 떠올랐을 때 눈을 떴다. 인어는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바다는 어땠어. 예뻤어. 무척이나. 인어는 모래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종종 햇볕을 쬐고 싶어 했다. 바싹 말라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렇게 무모하게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햇살 아래에 있으면 인어의 피부는 하얗게도 빛났다. 아마 내가 보지 못하는 빛나는 비늘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는 탓이겠지. 인어야, 오늘 선생님이 그랬어. 너희들은 꼭 진주조개가 되라고. 진주를 품으라고 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모래를 삼킨 조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진주를 만드는데, 정작 고통의 산물을 가져가는 건 조개가 아니야. 조개에게 물어볼까. 진주 만들어서 좋냐고. 아마 아니라고 할걸. 이때에 인어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있잖아. 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 주는 것을 합리화하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진주조개가 되라고 하는 건 곧 상처를 주고 그 고통의 산물을 가져가겠다는 게 아닐까. 인어가 말했다. 선생님들은 북어라서 그래. 북어? 응. 북어. 막대기 같은 생각에 시선도 없어. 다만 우리에게 더 먼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뿐이야. '그곳'에는 본인도 가보지 못 했으면서.

나 자꾸 숨이 찬다. 인어가 떠나기 며칠 전 내게 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눈에 띄게 야위었더라. 바다로 돌아가려고, 내 물음에 인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인어가 돌아갈 것을 알았다. 내가 바다로 돌아가면 넌 나를 잊을래. 인어의 시선이 섧다. 이 세상에는 인어가 꼭 필요할까. 모두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전혀 기쁘지 않아. 나는 왜 인어일까. 왜 인어여야만 했을까. 인어는 울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왜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섣불리 이야기하면 인어가 더 아플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비겁하게도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 인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날 이후 인어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인어의 흔적은 잊혀 갔고 어렴풋이 남은 향기조차도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인어의 책상 위에는 하얀 꽃 두 어 송이가 자리했다. 어쩌면 인어가 보내는 눈물일 수도 있겠다. 하얀 눈물이 모여 꽃이 되었다. 인어의 마지막 숨이 닿았던 그 자리에 꽃이 핀 걸 보면 기뻐할까. 인어가 사라진 뒤부터 가방에서 물고기가 나오는 일은 줄어들었다. 물고기의 절규도 희미해졌다. 손이 뻣뻣해짐을 느끼면서, 눈에 먼지가 껴 흐려진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인어를 잊었다. 세상에는 인어가 꼭 필요할까. 인어는 세상에 꼭 필요할까. 인어가 세상을 원하는 걸까. 세상이 인어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세상은 인어를 원하지 않을까. 인어는 세상을 원하는데 세상이 인어를 거부하는 걸까.

달이 유난히도 밝던 날에 나는 잊고 살던 인어를 추억했다. 모래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저 멀리서 네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인어야. 나 세상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뿌연 세상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아. 달과 별이 있는 너 있는 그곳에 날 데려다줘. 인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인어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내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인어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나는 꼬리가 생기고 아가미가 생겼다. 한 마리의 북어가 되어 너를 추억하다, 이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난쟁이가 달을 향해 비행기를 날렸던 것처럼 나는 물 위에 뜬 달을 향해 나를 던졌다. 물이 달려들어 내 살갗을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혈관이 수축하고 귀가 먹먹하고, 손과 발이 뻣뻣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코로 입으로 물이 밀려들어 오고 폐 안에 찬물이 들어차는데.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사는 것 같았다.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나간 기분이었다. 아마 내가 가라앉으면, 인어가 날 데려가겠지. 더운 바람이 가득 찬 열차 밖으로 나와서, 북어들이 가득 찬 교실을 떠나서 차가운 물의 품에 안겼을 때. 그때에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이 되었다.

인어야,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북어가 되라고 하잖아.

사람으로 살고 싶어.

사람으로 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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