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월장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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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월장원은 잇몸님의 <너와 나>와 윤별님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입니다.

잇몸님의 <너와나>는 '너'에 대한 섬세한 마음결이 아름다운 글입니다.

윤별님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는 생생함이 남다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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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7304님의 <21세기 붕괴>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글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언급하며 부모님 욕을 하며 싸우는 친구, 상대의 취미를 ‘잡지식’이라고 폄하하며 성적에 따라 깔보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현실을 거듭 생각하게 합니다. ‘경쟁’의 구도로 세상을 해석하고 아이들을 훈육해온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어느새 아이들의 내면에 뿌리내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명료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고민한 글, 잘 읽었습니다.

반드시 보강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은 깨끗이 정리되지 않았어요. 시작(서론)-중간(본론)-끝(결론)의 구성에 따라 글을 정리해주세요. 서론에서 문제를 분명히 제기하고, 본론에서 주장을 전개하고, 결론에서 본론의 내용을 정리하며 자신의 주장을 한 번 더 강조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글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고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공깃밥님의 <보고 싶은 사람>

 

공깃밥님, 볼 수 없는 엄마를 그리는 마음이 오롯이 담긴 글 잘 읽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수많은 감정으로 이어져 있어요. 사랑하면서 밉고, 미운데 애틋하고, 애틋하지만 지치고, 지치면서도 사랑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늘 후회가 찾아옵니다. 사랑한 만큼 후회도 깊어지죠. 그 단순하게 정리될 수 없는 마음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수수하고 진지하게 써 내려간 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공깃밥님의 개인적 경험을 조금 더 투영해 글에 구체성을 살린다면 글이 더 풍성해질 겁니다. 예로 ‘엄마는 너무 아파서 자꾸 기침을 하셨고 나는 괜히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는 문장은 일화로 풀어줘도 좋습니다. ‘엄마의 기침에 내가 가장 짜증이 났던 날’이 언제였는지, 그 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났는지 등을 쓰는 거죠. 육하원칙을 떠올리며 쓰면 글에 구체성이 생겨 독자를 더 끌어당길 수 있어요. ‘아빠도 너무 힘들어했다’ 같은 문장도 마찬가지예요. 아빠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힘들어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아빠가 신발장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의 슬리퍼를 치우며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거나 하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했던 모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담아주면 됩니다. 일화를 담을 때 육하원칙을 다 채울 필요는 없어요. 육하원칙은 당시의 일을 떠올려 보다 세밀하게 글로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틀일 뿐이니까요. ‘엄마 얼굴을 보고 만져 봤는데 깜짝 놀랐다’고 쓰기보다는 엄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엄마의 얼굴을 만지기 위해 어떻게 손을 뻗었는지, 엄마를 만졌을 때 손끝에 닿는 감촉이 어땠는지, 그 감촉이 ‘나’의 내면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을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담아 주면 좋겠습니다.

 

 

맛없는초코맛님의 <까마귀에 대하여>

 

어제 오산에 잠시 다녀왔는데요, 어느 삼거리에 까마귀 떼가 모여 있더군요. 전신주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이 오선지 음표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맛없는쵸코맛님의 글을 읽은 때라 춤추듯 전신주를 옮겨 다니는 까마귀 떼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내가 본 그 까마귀 떼는 떼까마귀 무리였을까요?

나는 도서관의 차분하게 정돈된 공기를 좋아합니다. 맛없는쵸코맛님의 글을 읽을 때는 도서관에 있는 듯 절로 차분해져요. 그 느낌이 좋아요. 즐겁게 읽었어요. 직접 보고 겪은 까치와 까마귀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준 부분이 매력적이었어요. 아쉬운 점은 글 속의 주장에 다소 비약이 있다는 겁니다.

이 글은 1980년 이후 까마귀 개체 수가 적어졌다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짐작으로 글을 끌어가고 있어요. 뿐먼 아니라, 자신의 짐작을 ‘사람들은’, ‘우리는’ 등의 말을 써 전체의 견해처럼 사용하고 있어 걸립니다. 예로 ‘우리는 이따금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모습도 꽤 자주 보이는 듯합니다’라는 문장을 보세요. ‘이따금 까마귀 소리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꽤 자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화자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까마귀를 보지 못하고 살거든요. ‘사람들은 까치가 이렇게 공격적인 걸 잘 모릅니다’라는 문장이나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만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의 주어도 조금 걸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요. 화자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가 되도록 ‘저(나)는 까치가 이렇게 공격적인 걸 잘 몰랐습니다’라고 바꿔줄 때 더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실제로 까마귀의 개체 수가 적어진 까닭이 있을 겁니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까마귀의 서식지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고, 까치와의 영역 다툼에서 밀려났기 때문일 수도, 까치와 달리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허나 인간의 잣대나 고정관념-생각이 까마귀의 개체 수에 다소나마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더해져 자연에서 까치와 비슷한 위치를 가지던 까마귀는 점점 수세에 몰려가고, 사라져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말은 문장은 논리적 비약으로 보입니다.

글의 주제를 조금만 틀어 ‘까마귀에 대한 선입견’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요? 까마귀가 어떤 새인지, 까마귀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이 어떠한지, 화자가 본 까마귀와 까치가 어떠했는지, 까마귀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등에 대해 ‘나’의 입장에서 풀어낸다면 걸리는 부분 없이 더 잘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잇몸님의 <너와 나>

 

빵 반죽을 부풀리려면 효모가 필요하듯, 좋은 글에는 좋은 묘사가 필요하죠. 효모가 풍부해 좋은 맛을 내는 글입니다. ‘너’와 있으며 흔들렸던 ‘나’의 마음, 어쩐지 ‘너’와 닮아있는 ‘나’의 모습을 정교하고 풍성하게 담고 있어요.

특히 이미지를 잘 빚었어요. 이미지 대비도 뛰어납니다. 글에서 ‘울타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 더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너에게 울타리였을 테니까’와 ‘나도 어쩌면 너의 또 다른 울타리였을지도 몰랐다’의 울타리는 ‘벽’과 비슷한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나는 너의 울타리를 막아주지 못했다’의 울타리는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요? 이 글에서 울타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 이미지가 지금보다 더 드러나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해요. ‘네가 지금껏 견뎌낸 선혈처럼 나의 손 위로 팥이 뚝뚝 떨어진다’는 시각 이미지는 감각적이지만 문맥상 ‘너’가 ‘선혈’을 견뎌냈다고 말하는 게 어울리지 않아요. 잘 읽었습니다.

 

 

윤별님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

 

윤별님, 지난 일 년 동안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왔을지 짐작되는 글이에요. 잘 하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잘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반가워요. 잘 읽었습니다. 생생하게 썼어요. 후배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쪼개 발 벗고 나선 선배들의 열정과 고민이 긴박한 삼 주 속에 올올이 들어있네요. 다만 글의 분량 조절이 필요합니다. 담고 있는 내용에 비해 분량이 너무 길어요. 밀도를 높여 주세요. 글의 전체 내용에 기여하지 않는 장면, 전개에 불필요한 대화와 인물 등을 덜어내면 좋겠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쓰더라도 글을 완성할 때는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집니다. 글의 밀도는 높이고, 표현은 섬세하게 바꿔주세요. 사건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글에 울림이 더해지길 바랍니다. 삼 주의 경험을 통해 윤별님이 찾은 것을 충분히 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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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5 일 전

언제나 제 글을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막 쓰다보니 오락가락 해진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글틴도 이번 해에 졸업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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