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그것은 불치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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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이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흔히들 마음의 감기라고 하죠. 나는 원래 우울증을 감기에 빗대는 것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의 일종이며, 이를 숨기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울증을 정말 감기와도 같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단순한 감기로 징징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울증은 그런 게 아닙니다.  우울함에 고통받는 그런 간단한 병이 아닙니다. 힘내라는 말은 오히려 독이 되는 병, 지나갈 거라는 말이 무기가 될 수 있는 병입니다.

 

여기 나의 우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나 스스로의 슬픔에 휩쓸려 쏟아내는 감정 덩어리, 뭐 그런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어떤 위로를 바라고 쓴 글은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써야만 합니다. 나는 스스로 잠겨 가고 있습니다.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검은 물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살기 위해 펜을 잡았고, 검은 물은 잉크가 되어 종이를 공격적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이 느낌이 너무 생생합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이제 이런 것밖에 없습니다.

 

 

유튜브에 우울증을 영어로 입력하면 한 동영상이 나옵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어떤 기분일까. 한글로 옮기면 대충 이런 의미의 제목입니다. 영상에는 한 여성이 출연합니다. 그녀는 욕조에 기분 좋게 따스한 물을 채우고, 향기로운 입욕제를 풀어 넣습니다. 욕실을 어둡게 한 후 머리맡에 촛불을 켜놓습니다.  자, 이제 천천히 옷을 벗고 욕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물결에 반사된 촛불처럼 일렁이는 낭만을 즐깁니다.

그러다 우울이 찾아옵니다. 촛불을 불어 끄고 욕조 바닥의 마개를 뽑으면 됩니다. 물이 천천히 하수구 속으로 빨려 내려갑니다. 수면이 낮아집니다. 목까지 차올랐던 따뜻한 목욕물의 수위가 어깨로, 가슴으로, 배로. 점점 내려갑니다. 등과 어깨에 엉긴 차가운 머리카락이 신경 쓰입니다. 몸 이곳저곳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은 입욕제 거품이 바스락거립니다. 콰르륵. 뭔가가 영원히 떠나가는 소리와 함께 물이 모두 사라집니다. 춥습니다. 어둡고 춥습니다. 빨리 움직여 몸에 달라붙은 추위와 말라버린 거품의 껍데기를 씻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욕조 안에 젖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울증이란 이런 것입니다. 욕조의 벽은 너무도 높고 미끄럽습니다. 이 희고 축축한 감옥 안에서 흐느끼고 소리치고 발버둥 쳐봐도 나갈 구멍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하수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쩌면, 어쩌면. 저 곳이 유일한 출구일지도 몰라. 녹아내려서 아까 그 목욕물과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의 가장 첫 번째 증상은 집중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원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두 시간이 넘도록 겨우 세 문제를 풀었습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씩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문제집을 덮고 나와 책을 읽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습니다. 숙제가 밀리고 쌓이고 혼나고 다시 해보려고 시도했다가 그 양에 질려서 포기하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내가 의지박약이라고,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자책했습니다.

자책이 심해지고 계속되면서 이는 만성적인 마음 상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던 그 일은 잘못된 듯이 느꼈으며 다른 사람들이 웃어넘길 문제를 붙들고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감정이 차츰 둔해져 갔습니다. 행복감이라던가 몰입감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더 이상 좋지 않고 내게 즐거움을 주던 것들이 더 이상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책을 참 좋아했지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전의 기억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으며 초등학교 중학년이 될 때 까지도 나의 여가생활은 오직 책, 책이었습니다. 판타지를 좋아했습니다. 해리 포터, 고양이 전사들, 타라 덩컨, 메이즈 러너. 비현실적인,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세계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나의 주인공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나는 스스로 풍부한 문화 생활을 한다고 자부할 수 있던 사람입니다. 책도, 영화도, 전시회나 뮤지컬도 두루두루 좋아하며 이곳저곳 자주 다녔지요. 이젠 아닙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거나 영화를 보길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열심히 그런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까 싶어서. 슬프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입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아니, 그것도 모자라서 글자들이 제각기 따로 놉니다. 분명히 문장을 읽고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같은 단락을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그 부분을 이해하려면 세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는 무너져 내리고 그 안에서 마법처럼 살아 움직이던 인물들은 점점 의미 없는 활자의 나열들로 변모해 갑니다.

글을 쓴다는 것 또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욕실이라던가 슬리퍼, 하는 단순한 명사들부터 흰색, 붉은색 하는 색의 이름들과 이런저런 형용사들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그것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부옇게 잔뜩 김이 낀 유리를 가운데에 놓고 그 너머에 적힌 단어들을 알아보려고 애쓰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단어들의 의미가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긴 잔상만을 좆으며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흐려지고 무뎌지다 마침내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립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끔찍함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게 글이란 언어 그 자체입니다. 현실에서 내가 친구들,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나누는 대화는 모두 의미 없는 한 순간의 공기의 떨림일 뿐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할 때,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언어를 쏟아낼 때는 성대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필요치 않습니다.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만 있으면 족합니다. 자판이 나의 혀이자 성대입니다. 자음과 모음을 두들기고 언어를 만들어내 정렬할 때만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언어를 잃었습니다.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우스운 것은 주변 사람 중 이런 나의 증상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철저히 연기해 왔으며 아직도 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나는 농담을 잘하는 웃긴 아이이며 집에서의 위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상담을 했습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울었습니다. 상담 선생님에게 내 모든 얘기를 쏟아내며 울었고,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양 입꼬리에 납덩이를 매단 듯 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끌어올려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고, 체육 수업을 끝낸 우리 반 아이들이 상담실로 몰려왔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본 순간 활짝 웃었습니다. 나 스스로도 당혹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내가 이렇게나 아픈데, 안은 썩어들어가고 있는데, 겉으로는 이렇게 멀쩡하고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나는 상담실 책상에서 내 눈물을 닦은 티슈를 손 안에 그러모았고, 눈에 띄지 않게 주머니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 휴지들은 나중에 화장실에 가는 척을 하면서 몰래 버렸습니다. 그 누구도 내가 상담 선생님과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겠죠.

나는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용 나, 그리고 그 뒤에 숨어버린 진짜 나. 그 둘 사이의 괴리는 전부터 차츰 커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나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우울한 나는 점점 질식해가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생각을 그만두고 싶어합니다. 스스로의 파멸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죽어버리게 된다면 남는 것은 오직 껍데기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좆아 울고 웃으며 가짜 표정을 뒤집어쓰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은 텅 빈 채로, 그저 입력된 대로 실행하는 감정 없는 로봇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흐려진 머릿속을 헤메며 억지로라도 글을 씁니다. 그리고 글에 나의 핏자국과 비명이 묻어 나온다고 느낄 때 아직 진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이제 모르겠습니다. 즐거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잊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도, 살아간다는 것의 당위성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이 두렵지만, 내일과 내일의 내일과 그 다음에 올 날들을 내 손으로 없애버리는 것은 또 그것대로 두려워 매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하지만 살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더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습니다. 내 뇌는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행복을 느낀다면, 그전까지 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의미한 허상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우울의 늪으로 빠트리는 길이지만 되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글을 뭐라고 마무리지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딱히 시작과 끝을 정해놓고 쓴 글은 아니라서요. 이렇게 감정을 토해내니 가슴이 조금 가벼워진 것도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글을 다시 읽고 쓸모없는 것들을 솎아내고 다듬는 과정을 도저히 나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내 글이 엉망인 점 이해해 주세요.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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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 12 시 전

아주 오랜만에 글틴에 들어와 좋은 글 읽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글이라 하셨지만 저에게는 아주 단정하고 잔잔한 이야기였습니다. 잘 읽었어요.. 감히 이런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깊이 위로받고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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