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한 뼘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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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많았다. 주로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신도 내세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생각했다. 숨이 일순간 막히곤 했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었다. 암울한 생각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원히 살면 그것대로 끔찍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며칠을 내내 이런 상태였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생각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다.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은 해결해도 또 다른 형태로 생겨나므로 가장 좋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란 친구의 말. 들어맞았다.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멍하니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대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녀석이 어떤 샛길로 빠졌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빠듯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샛길로 빠졌다는 건 지름길로 간다는 신호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샛길 초입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에 둔덕 오른쪽에 오래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는 적당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학교가 파하고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리며 걸었다. 다시 그 둔덕과 빌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둔덕이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그건 내 지난 상념들이 뭉쳐진 것과도 같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었다. 무슨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더 쓸쓸했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무덤들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조차 없었다. 줄 맞추기나 기단석 따위도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만 돋우었다. 무덤들은 어느 하나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비석 하나 세운 것이 있었다.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ㅇㅇㅇ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ㅇ씨ㅇㅇ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쓰여 있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게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가족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무덤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터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무덤을 밟고,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까. 아무렇게나 두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언덕 맨 왼쪽 꼭대기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은 아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평평한 땅이었다. 다른 부분들과는 구분되었다. 그 땅에 놓인 것은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나는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 죽음을 먹고 다시 삶이 자란다. 지독한 순환이다. 동시에 내 상념도 스치듯 해결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누구도 확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생각해보자면, 죽음이 꼭 끝만은 아니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다고, 모두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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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5 일 전

글 되게 좋다~~ 저도 그런 생각 많이하는데. 전 주로 죽음 관련된 책 읽었던 것 같네요. 딱히 답을 찾은건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음. 죽음이 있으니까 삶이 있는거겠죠ㅎ
(근데 도대체 어디사시길래 학교 주변에 무덤이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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