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입증과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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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입증과 분류
─On point 기사에 대한 반박을 바탕으로

 

Abstract
우리는 재능이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바로 옆을 둘러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보인다. 재능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의 영향은 크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재능을 믿는 것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이 소논문에서는 그러한 기사들 두 개를 선정하여 논리적 허점을 파헤치며, 그 후 이상적인 재능분류의 모델을 설정하고 나아가 그렇다면 재능을 인정하면서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소고한다.

 

I. 서론
1. 연구동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경쟁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가 기본 토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의 기준이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해도 사회의 시선에 따른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일종의 계급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군가는 훨씬 발전해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머물러 있다. 완벽히 같은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을 임의추출하여 연구해도 둘의 연습시간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다.
노력이 전부라고 주장한다면, 노력하고도 실패한 모든 사람들의 실패원인이 노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것을 안다. 소위 재능이 노력한 방향으로 발달해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재능은 있으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노력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어’ 따위의 허황된 이상을 제시함으로서 독자들-특히 독자들의 연령층이 청소년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객관적으로 성인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신의 주관보다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린다-의 판단력을 저하시키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원인이 전부 노력이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하한다. 이것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문제점이다.

 

2. 연구목적
이 소논문에서는 On point에 실린 재능에 관련된 기사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서 배척되었던 재능의 기준을 바로 세운다. 선정한 기사는 On point 3에 실린 Are Malcolm Gladwell's 10,000 hours of practice really all you need(by Dan Vergeno, 2014, National Geographic Creative)와 The truth about talent: Can genius be learned or is it preordained?(Matthew Syed, 2011, the independent)로, 모두 재능과 노력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기사들이다. 이로서 인정해야 할 재능에 관한 이야기는 인정하고, 우리가 그것을 발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II. On point 기사의 오류
1. Are Malcolm Gladwell's 10,000 hours of practice really all you need?
1) Hambrick과 Ericsson의 표본선정 문제
두 심리학자는 ‘노력이 성공의 전부인지’를 가리기 위해서(Through practice, people get better. The question is whether that is all there is to it.) 실험을 진행하였다. 둘은 서로를 문제삼을 때 표본이 광범위한 정도를 가지고 논박을 펼쳤는데(In response, psychologist K. Anders Ericsson of Florida State University in Tallahassee says that this kind of criticism inappropriately mixes data about less skilled folks into the analysis. Hambrick responds that Ericsson’s reliance on only a few elite performers for his studies of expertise turns the studies into anecdotes. “If we don’t have enough data points in the study to say anything statistically, then it isn’t science.), 사실 이것은 무의미한 논박이었다. 이들이 놓친 것은 그만큼의 노력을 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른 사람들이고, 노력은 애당초 전제조건 중 하나에 들어가 있기에 선천적 재능과 습득적 재능이(후술 III-1, III-2 참고) 월등히 높지 않다면 일정 수준 이상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에게서 찾은 노력의 분량에 주목할 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이 찾아야 했을 표본집단은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노력했지만 실패한 사람들이다. 비슷한 시간을 연습하였고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 둘 다 표본선정에 오류가 있었기에 표본의 정도로 논박하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다.

 

2) Ericsson의 유전자 관련 발언
Ericsson은 Hambrick이 한 말을 인용하자면, 'moving the goalpost'하는 과정에서 유전자는 거기에 있을 뿐, 우리가 그것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전까지는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짐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The genes might well be there; but until we definitely identify them, I think we can’t go beyond that,” Ericsson says.)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어떤 활동을 한다고 예측한 것들이 굉장히 많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입자인 원자의 경우를 보자. 과학자들은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들이 만든 모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전시킨다. 정확한 규명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명확한 사실에 ‘정의’를 붙인다. 정의로서 실체화되지 않았던 관념은 실체화된다. 어떤 대상을 지칭할 언어가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의 실재와 비실재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쳤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몰랐던 현상을, 어쩌면 두려울지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신들보다 월등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잠재력이 너무 커서 자신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한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천재, 영재 또는 신동이라고 부르고(prodigy)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재능이라고 부른다(talent). 이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능은 존재하며,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도 존재하고, 즉 유전적으로 접근하자면 유전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보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익히 들어 알 만한 개념이다. 이는 빈부격차의 심화를 의미하는데, 사실 이것도 유전자의 힘이 없잖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천에서 용 난다, 라는 말은 옛말이라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후천형질은 유전되지 않으므로 선천형질에 국한하여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왜 어떤 집안은 대대로 ‘사’자 직업(의사, 변호사, 검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직업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어떤 집안은 아무리 교육을 해도 그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는가. 한두 집안이 아니라, 가업(家業)을 이어가는 집안은 상당히 많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위치에 있는 직업이라 한다고 해도. 환경적 재능(III-3 참고)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유전자의 영향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3) Phillip Ackerman의 조기교육 주장
Phillip Ackerman은 어릴 때 받았던 교육의 질에 따라 추후에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발표했다.(The big difference between them was the amount of good coaching they received at a young age.) 이 논문에서 다루는 재능에는 이러한 환경의 영향도 재능으로 분류된다. 운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후술할 III-3 부분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4) Ericsson의 재능의 선천성 인정 시 발생할 혼란에 대한 우려
Ericsson은 재능이 선천적이고 결과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은 교육과 체육을 배울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One fear Ericsson expresses is that if talent is viewed as somehow innate and not the result of practice, disadvantaged kids will be cut off from opportunities in education and sports.) 그러나 이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그리고 국가적으로 이러한 방식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우수한 인재들을 초등학생 때부터 모아 여타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시킨다. 대한민국에서는 중학교부터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봐 합격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든다. 이것은 대학 교육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 또한 성적과 재능에 따라서 차별받으며, 혹은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다. 실상 현재 대한민국 실업계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유년기의 몇 단계에서 선택받지 못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들은 일찌감치 그들의 재능이 공부 쪽으로 발달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나아간 것이다. 재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선천적인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키우면 되는 것이고,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발견하여 발달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이 기사가 서양권에서 쓰였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과 맞물리는 부분을 발췌하여 이야기하자면, ‘공부/대학 위주의 재능의 신성화’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에 설립된 대학은 많다. 게다가 취업전선의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현 기성세대는 대학을 꼭 나와야만 인정하는 추세이고, 취업이나 여타 대외활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 획일화된 대학 입시 방법이-실기시험을 보는 예술계 대학, 그것도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고는-불완전하지만 당장 확인할 수 없는 무한한 잠재력보다는 현재 발현되는 한도 내에서의 완벽한 인간상을 원했고, 그것은 결국 어느 정도의 보장된 학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예술계열에서도 딱히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즉, 자신의 재능과는 무방하게 ‘수학능력시험에서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느냐’가 성공의 갈림길로 획일화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재능들을 쓸모없다고 여기게 만들고 오로지 공부에 대한 재능만이 유일한 재능인 것처럼 신봉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른 재능에 관련된 진로는 오로지 취미로 하라고 권유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이야기하면 이상한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지금 우리 사회는 공부에 대한 재능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학술적 재능을 찾기 위해 외국어고등학교/과학고등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영재고등학교 등을 설립하여 청소년기부터 그들을 뒷받침해주지만, 외려 다른 재능들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위권 고등학교에 가 보면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거나,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학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 분야에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길로 들어선 학생들이다. Ericsson이 우려하던 혼란은 이미 퍼져 있고, 재능을 인정한다고 해서 다른 위협이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미 각인되어 있는 공부/학술 중심의 사회 인프라를 조금씩이라도 뒤바꾸는 것이 그가 했던 고민들을 타파하는 데 훨씬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2. The truth about talent: Can genius be learned or is it preordained?
1) 영국의 상위 예술가들과 나머지 예술가들의 비교
한 연구는 영국의 상위 무용수들과 나머지 무용수들의 차이점이 그저 더 많은 시간 투자라고만 이야기했고, 그들이 배우는 속도가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found that the top performers had learned no faster than those who reached lower levels. Hour after hour, the various groups improved at almost identical rates. The difference was simply that top performers had practiced for more hours.)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TV 프로그램에서 손쉽게 반박할 수 있다.
프로듀스 101(Mnet)에서는 걸그룹/보이그룹을 지망하는 연습생들을 선별하여 테스트를 하고, 마치 고기처럼 A등급부터 F등급까지 낙인을 찍고, 같이 연습을 시키고, 무대를 서게 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F등급의 몇몇 연습생들은 춤 흡수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면 A등급의 연습생들은 상당히 빠른 춤 습득력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연습생들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개개인별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것이 초반에 그들의 등급을 최상과 최하로 가를 정도의 실력차를 벌렸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안에서 이러한 실험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 수학 신동 Rudiger Gamm의 예시
이 단락을 읽으면서(Math prodigy Rudiger Gamm, for instance, was once described as a “walking miracle” by one science magazine. But now consider that Gamm practices for at least four hours every day. His excellence is not hardwired—it emerged through practice.), 이 기사의 기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려고 하거나, 아니면 강제로 이 주제에 관해서 기사를 쓰게 되었기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함으로서 반어적으로 자신의 진짜 심정을 알리고 싶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며, 그게 아니라면 이 예시를 도대체 왜 들었는지 기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일단 Rudiger Gamn처럼 큰 수를 암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재능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것을 연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만큼의 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재능이다. 그런데 기자는 이것을 최소 네 시간 동안 매일매일 연습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사람도 선천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숫자 계산에 재미를 느껴 계속하게 된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더불어 한 가지 더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4시간이라는 적은 시간이다. 한국의 고등학생들 기준으로, 하루 한 시간은 수학 수업을 듣고, 대부분의 시간을 수학 공부에 쏟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학 중인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하여 가용시간의 3/4인 6시간을 수학 공부만 한다고 가정하자. 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해 오던 학생들이다. 가용시간이 줄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공부하고 있는 양 이상을 공부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Rudiger Gamm처럼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공부하면서도 자신이 현재 익혀야 할 것조차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학생들 또한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자. 이들의 노력이 부족했는가?

 

3) 관찰자들이 재능 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일부만 본다는 억측
이 기사는 타인이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의 일부만 볼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재능을 허상이라고 지칭했다.(The illusion of talent arises because outside observers only see a tiny proportion of the work that goes into the construction of virtuosity.)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보기도 해야 한다. 이 타인은 하루 종일 그 분야에 미쳐 연습하는데도 그만큼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기숙사제 학교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여기 평범한 A라는 학생이 있고 재능 있는 B라는 학생이 있다. A는 시험 전날까지 열심히 공부한다. 잠을 줄이고, 도서관에 가서 수도 없이 봤던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오답정리를 한다. 반면 B는 PC방에 간다. PC방에서 게임을 열 시간 이상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둘은 같은 시험을 본다. 결과는 B가 훨씬 시험을 잘 봤다.
위와 같은 경우가 고등학교에서는 왕왕 벌어진다. IQ와 시험점수는 관계가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 사람의 지능은 IQ라는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1차원적인 점수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관찰자들이 재능 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일부만 본다는 관점이 억측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저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4) 신동들과 마트 계산원의 계산 시합
Alfred Binet은 평범한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을 노력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평균 14년 경력이 있는 두 명의 마트 계산원들과 두 명의 어린 수학 천재들에게 같은 문제를 제시하는 실험을 했다.(Binet gave the prodigies and the cashiers identical problems and compared the time taken to solve them.) 실험 결과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마트 계산원이 두 명의 수학 신동들보다 좋은 결과를 냈다고 기사에는 적혀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사가 얼마나 교묘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전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첫째로, 앞서 서술했던 Ericsson과 Hambrick의 표본집단선정의 문제와 같이, 이 실험에서도 저지른 오류는 표본집단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마트 계산원들은 그 일을 십사년 간 했으므로, 더 많은 경력이 있고 더 많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수학 천재들은 어리고 상대적으로 숫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만일 정말 비교해보고 싶었다면 비슷한 연령대의 수학 천재를 데려다가 마트 계산원과 시합을 붙였을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십사 년 정도는 노력해야 신동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십사 년을 신동은 다른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기사에는 가장 성적이 좋은 마트 계산원이 신동 둘보다 더 빠르게 문제를 풀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The best cashier was faster than either prodigy.) 그러나 이것은 교묘하게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이다. 이 문장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두 계산원 중 한 계산원은 신동과의 계산 대결에서 졌다는 것을 뜻하고, 십사 년을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그 압도적인 재능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실험은 노력이 신동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력을 해도 타고난 사람들에게는 뒤질 수 있고, 그 분야에 일생을 바칠 노력을 해야 신동들이 갖고 태어난 재능을 겨우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5) growth mindset와 fixed mindset
이 소논문에서 growth mindset을 임의로 성장사고, fixed mindset을 임의로 고정사고라고 부르기로 하자. 기사에서는 성장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고정사고를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성장사고는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고 자신의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으며, 고정사고는 아예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는데, 이에 대한 반례가 있다.
청소년들 중 재능을 믿는 학생들이 많다. 획일화된 교육체계 속에서, 같은 노력을 해도 아웃풋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재능은 있다고 믿고 사실 성공은 재능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재능에 뒤처져 있는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fixed mindset) 그러나 그들이 모두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들일까?(Why would she bother to work hard? If she has the right genes, won’t she just cruise to the top? And if she lacks talent, well, why bother at all?)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더 인식하고, 슬프지만 그 재능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재능이 있는 축복받은 사람들(gifted)보다 더 많은 양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재능의 쓸모와 유용성을 배제하고 보자. 재능이 없는 아이들은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 쓰고, 그만큼 더 악착같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즐기며 공부한다면 이 경우에는 오기로 공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격언이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들은 오히려 성장사고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독하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후자는 내가 노력하면 괜찮을 거야, 라는 사고이고 전자는 나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해, 라는 사고이다. 전자는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면서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 노력한다. 뚜렷한 목표가─슬프게도 원래의 ‘꿈’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있는 것이다.

 

 

  III. 재능의 분류

이하는 재능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재능이 발현되는 시기와 도움이 되는 분야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0. 재능의 정의
사전적으로는 타고나는 능력과 훈련으로 획득한 능력을 아울러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사실상 타고나는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유전적, 환경적으로 타고나는 강점들을 재능으로 정의한다. 사실 재능이라는 정의가 생겨나기까지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경쟁사회가 큰 역할을 했는데, 상대적인 속도나 능력이 아니라면 잘하고 못하고의 구분이 무의미해질뿐더러 애당초 우위의 비교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대성에 의거하여 발생한 정의이므로, 굉장히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상대성을 차용한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재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하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1) 또래와 비교하여 특별한 두각을 나타낼 것.
2)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같은 시간을 투자한, 같은 반 내에서 성장 속도가 특별히 빠르거나 성적이 우수할 것.
3) 타인이 노력으로 쉽게 따라갈 수 없을 것.
4) 일부 재능에 한하여,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을 것.
3)번 조건은 애매하기 때문에 정확히 설명하자면, 타인이 노력을 해서 다다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그 길이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100m를 10초대에 뛰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도 전문 트레이닝을 받고 시간을 투자하면 그 정도의 스피드를 낼 수 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재능은 그 발현 시기와 발현되는 종류에 따라서 이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선천적 재능
모차르트나 파블로 피카소, 레오나드로 다 빈치. 이들은 세기에 길이 남을 사람들이고 어릴 때부터 천재나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인물들이다. 네 가지 재능 중에서 가장 드문 케이스고, 그야말로 선물 받은(gifted) 재능인, 어릴 때부터 특정 분야에 대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고 굉장한 능력을 보여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재능을 선천적 재능이라고 정의하자.
이 사람들은 대개 후술할 습득적 재능을 함께 타고나는데, 애당초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이룩한 것이 대단한 것인 줄 모른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에 도달하기가 간편하고 쉽다.(실상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밑 단계에 발 딛는 것조차 어렵다.)
매우 드물고, 환경적 재능(후술 III-3 참고)이 뒷받침되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영재발굴단(SBS, 수요일 오후 08:55 방영)이 바로 그 예인데, 이 프로그램은 대개 아동을 대상으로(청소년도 방영된 적이 있었지만 매우 드물다) 영재성이 발현된 아이들을 찾아가 취재하고, 각계의 권위자들과 연결시켜 재능을 확인시킨다. 이 재능은(학술적 재능을 포함하여) 우리 근처에서; 이를테면 주위의 친구에게서 발견하기가 어려운데, 왜냐하면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밟을 과정들을 먼저 빠르게 완성한 후 이미 각자의 분야의 상위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 재능의 예가 궁금하다면 2016년 6월 15일 영재발굴단 61회, 2017년 5월 17일 영재발굴단 108회에 출연한 백강현을 참고하자.
(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MainList.do?pgm_id=22000006827)

 

2. 습득적 재능
어떤 학문을 배울 때의 선천적 재능이 온전히 같은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습득하는 속도와 정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속도와 정도는 대개 함께하는데, 습득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input) 결과는 훨씬 좋게 나온다(output).
2)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짧다.
3) 일부는 학문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흥미가 있고, 습득적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그 학문을 배움으로서 얻는 스트레스가 월등히 낮다.
사실 선천적 재능을 쥐고 태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더불어 환경적 재능이 갖추어진 사람도, 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한되고 많지 않은 수로 관리되고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습득적 재능은 노력적 재능과 함께 재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물론 선천적 재능과 환경적 재능이 훨씬 유리하겠지만,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수가 가지고 있고 그 정도가 사람들마다 다르며, 그들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 소논문에서 다루는 습득적 재능은 이 습득력에 있어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재능으로 제한한다.
이 습득적 재능이야말로 굉장한 재능이다. 일단 흥미 면에서 그렇다. 습득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막힘이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쏟는 청소년기(절대적인 시간으로 따졌을 때)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아무리 해도 벽이 열리지 않는 느낌과 마주하고 좌절한다. 이 과정에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과 싸우면서 점점 흥미는 떨어지고 결국에는 좋아하던 것마저도 힘겹고 버거운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습득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이 한계를 무난하게 지나간다. 그다지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굳이 죽을 만큼 노력해서 무언가와 부딪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만큼 막히는 것도 아니다. 막히지 않으니 학문 안에서 재미를 붙이게 되고, 재미가 있으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그리고 특성상 인풋에 비례하여 혹은 더 많이 아웃풋이 나오게 된다. 이 선순환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이 이 습득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시간의 유한성 면에서 상당한 이익을 본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며, 불변하는 진리이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안에서 일정 목표치 이상을 채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거나 습득력이 부족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잠을 꼬박꼬박 자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밤을 새서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성적은 제자리걸음인 사람이 있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습득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유한한 시간에 있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점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세 시간 걸려 이룩할 수 있는 것을 재능 있는 사람들은 한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케이스를 나누어 이렇게 생각해 보자. A는 습득적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B는 습득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A가 3시간 만에 할 수 있는 일을 B는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 단, 각각 제시된 시간을 채웠을 때 둘이 성취하는 정도는 같다.
1) B가 1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경우
휴식은 일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정신상태가 피폐해져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학생들에게 몇 분이라도 자고 일어나 공부를 하라는 이유가 그것이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불편한 책상에서 잠을 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B는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함으로서 가동한 뇌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A가 3시간의 일을 끝냈을 때, 곧바로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면 B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시 임할 수 있지만 A는 가동시켜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한 뇌를 가지고 계속해서 일해야 한다. 즉, B보다 A의 효율이 훨씬 더 떨어진다.
2) B가 1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자기계발/자기관리를 하는 경우
평범한 사람들이 습득적 재능을 가진 사람과 비교될 때,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쟤랑 너랑 똑같은데 왜 너는 자기관리를 안 하니? 같은 수준인데 왜 쟤는 할 줄 아는 게 저렇게나 많니? A와 B가 같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 습득적 재능은 B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기회와 시간을 준다. 그러니까 온전히 시간을 다 바쳐 실력을 올린 A보다 B가 훨씬 유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A는 자신이 노력한 그 부분에 있어서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B는 나머지 2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악기부터 체력 관리를 위한 스포츠, 그리고 독서와 같은 인문학적 교양 지식을 쌓기까지.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나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B의 평판을 올리고, 궁극적으로는 기업과 회사에선 B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당연한 이치이다.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과 할 줄 아는 게 자신의 전공밖에 없는 사람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전자가 유리하다. 이것이 약육강식의 세계이자, 경쟁세계에서의 재능이다.

3) B가 1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나머지 2시간을 같은 일을 하는 경우
이 경우는 재능과 노력이 합쳐진 케이스이다. 가장 무서운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A가 3시간 분량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안 B는 그것의 3배를 할 수 있다. 즉 A가 3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양을 1이라고 했을 때, B는 3시간 안에 3을 할 수 있고, 이것은 나중에 굉장히 큰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A가 아무리 따라가고 싶어도 B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왜 굳이 A와 B를 비교하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단순하다. 우리 사회가 경쟁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이 일정 수준 이상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들이고, 자신을 위해 실력을 높인다는 자신의 의도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쟁 사회이고, 성공할 수 있는 자리는 각 분야마다 몇 자리 없다.
대학 입시를 생각해 보자. 내가 수능에서 하나를 틀렸다고 가정하자. 절대적으로는 굉장히 잘 본 점수이다. 그러나 그 해 수능에서 만점자가 10명이 나왔고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과가 10명 정원이며, 만점자들이 전부 그 과로 몰렸다면 나는 아무리 잘했더라도 그 과에 진학하지 못한다. 같은 이치이다. 성공은 제한되어 있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한 사람이 이긴다.
굉장히 불순하고, 부조리하고, 세속에 찌든 생각이라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 되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상을 좇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피터팬에서 벗어날 나이가 되면,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이것이 단조롭고 가혹한, 그러나 무시무시하게 단순한 원리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공간이다.

 

3. 환경적 재능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한때 대한민국에서 돌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암암리에 퍼져나가고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게 될지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나 보니 여기에 있었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금까지 생존해 온 것이다. 그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고 얼마간은, 아니 꽤 오랜 시간을, 영아기부터 청소년기를, 혹은 이른 성년기까지, 온전히 타인; 가족이라고 명명된 타인의 경제력에 기대어 살게 된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다. 생명을 출산하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그 생명을 경제적, 심리적, 그 생명이 자라 자신의 몫을 온전히 다할 수 있을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전히 기대야 한다는 불가항력 때문에, 때로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 우물은 선천적인 것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서울에 사는 또래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에 비해 부유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그들을 데리고 여러 문화행사에 다녔고, 피아노나 플루트 같은 악기부터 논술이나 웅변과 같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가르쳤고, 미술관이나 음악회에도 자주 가면서 그들의 예술적 소양을 높였으며, 아이들이 배우고자 원하는 것은(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최대한의 지원으로 도왔다. 이들은 풍족하게 자랐다. 대학에 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알바 한 번을 한 적이 없고, 깨끗하고 안락한, 부모님이 얻어 준 집에서 잠을 자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 상대평가로 학점이 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소위 흙수저들을 보자. 그들은 문화행사를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지방에 거주한다면 음악회나 미술관 전시회는 꿈도 꾸지 못한다. 돈이 없어 좋은 기회를 받지 못했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힘겹게 상위권에 올랐지만 입시에서는 정보격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부유한 아이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정보 탐색에 열성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흘러오는 정보를 받으며 그 길로 걸으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정보격차의 피해를 보는 아이들은 그 정보를 자신들이 발로 뛰며 찾아야 한다. 그들이 대학에 가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한다.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아무리 머리가 대등하고 선천적/습득적 재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지라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고 똑같이 제공되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도출된다면, 그 시간을 백 프로 활용할 수 있느냐, 아니면 오십 프로밖에 가용시간으로 넣을 수 없느냐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포인트인데, 이것은 환경적 요인, 다시 강조하자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유년기의 환경, 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4. 노력형 재능
놀랍겠지만, 노력도 재능의 일종이다. 오랜 시간 앉아서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재능 중 성공 확률이 조금 낮고 꽤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이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재능으로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열정과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노력은 사실 성공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특출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즉, 이것은 다른 재능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내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노력형 재능이 습득적 재능을 만난다면 그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고, 환경적 재능을 만난다면 무엇을 하든 든든하게 뒷받침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을 자신이 배우고 있는 무언가에 쏟을 수 있을 것이다.(물론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습득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 굉장히 높은 인지, 암기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특출난 노력이 없어도 손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노력을 모든 재능과 같은 연장선상에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재능은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선천적 재능은 아예 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습득적 재능은 그 능력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해 주며, 환경적 재능은 그것을 즐기고 최선의 방법으로 향상시킬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노력은 다르다. 노력의 효과는 미미해서 조금만 하면 금방 티가 나는 다른 재능들에 비해서 초라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무조건 아니라고, 노력을 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 노력이 다른 재능과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많은 노력가들이 자기 자신을 재능이 있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야기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IV. 결론 및 제언

1. 결론
우리가 배척해야 할 것은 재능이 아니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것의 분야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경쟁사회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도 공부로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자리를 좋은 직업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신분제에서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눈에 띄기 쉬운 인프라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이 인프라를 타파해야 한다. 공부가 전부라는 듯 여기고 대학 입시만 끝나면 모든 삶이 끝나는 것 같이 교육시키는 극단적인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모든 직업이 평등해진다면, 선호도와 상관없이 자신이 했을 때 즐거운 일을 선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고민 없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시간을 쏟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재능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 재능있는 분야는 어디인지를 찾고, 그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이상적인 발언임을 안다. 이상적이고 그래서 실현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재능이 있다면 그것이 공부 관련, 학술 관련 재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고 발전을 금지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 한계
이 소논문은 어떠한 연구결과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설문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써낸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술자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대부분이고 입증할 방법은 있으나 그것을 채 입증하지 못했다.
또한 재능의 분류가 위 예시처럼 일차원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을 한 뿌리에서 나눔으로서 간단하고 단순하게 분류했다.

 

3. 제언
이후 연구에서 주장을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더 구체적인 재능의 분류를 만든다. 또한 위에서 지적한 표본집단의 오류와 같은 경우에는 올바른 표본집단을 선정하여 다시 한 번 실험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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