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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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결혼하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애도 낳아 알콩달콩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섯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만약 낳게 되면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하며 다소 유아적이고 섣부른 상념을 품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할 이유도 없고, 결혼하란 법도 없고, 결혼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결혼한다 해도 애를 낳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없을 일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내 가족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내가 첫째를 낳으면 내 형제의 첫째처럼 될지 모르고, 내가 둘째를 낳으면 내 형제의 둘째처럼 될지 모른다는 끔찍한 환상. 내 자식이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왜 사람들이 결혼하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해서 그 사람과 결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자식을 갖고 싶어서? 단지 그 사람과 동거하고 싶어서? 그 사람과 더 깊게 사귀고 싶어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부족하면 동거하면 되지 왜 '결혼'을 하려는 것일까?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사랑과 결혼한 상태의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 걸까. '동거'와 '결혼'은 무엇이 다른가? 단순히 법적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 번의 결혼식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서도 사랑은 할 수 있고 결혼하지 않고서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지금의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에 관한 책을 열독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사랑은 기술인지 나는 생각해봐야한다. 사랑은 기술이 아니다.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철학자가 주체니 지성이니 사고에 대해서 논쟁을 하지만, 어떻게 해서 사랑이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하나의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아는 우주보다 넓고, 우주 너머 세계보다 넓은 감정일 것이다.

 

 

 

2017. 9. 25

 

결혼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랑을 더욱 입증하기 위한 사랑 고백이자 가정으로 들어가는 입사식 아닐까?

 

 

 

2017. 12. 25

 

위의 두 글은 너무 두서없이 쓴 것 같다. 옆길로 샌 것 같기도 하고 궤변 같기도 하다. 이 단문에 새 글을 추가하며 재고한다. 결혼은, ‘결혼’이라는 말 자체로 사람들이 하는 것일지 모른다.(이런 추정형 문장을 자주 쓰는 이유는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절차/예식/입사식을 통해서, 비록 그것이 한순간의 장식이고 감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결혼을 함으로 서로의 사랑을 더 확인하고 또 가정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결혼은 참 기묘한 것이다. 결혼을 한다 해서 더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 알 수 없고 골치만 아파질 수 있는데, 남녀가 열렬히 사랑하면 대체로 결혼을 결심하니까. 물론 21세기 들어서 반강제적 결혼제도도 줄어들었고 법적으로 엉키기 싫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도 많아졌다.

사실 나는 아직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결혼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그저 하나의 짧은 감상에 불과하다. 앞으로 결혼할지 안 할지 모르는, 연애만 할지도 모르는 내 무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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