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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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깜박였다. 형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늘 진득한 침을 달고 있는 턱, 흘러내린 침을 닦아주는 엄마, 둘을 지켜보는 나를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짓는 엄마. 창문 너머에서 아빠의 차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형은 이내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형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에서 잘려나갔다. 형의 목소리 위로 엄마가 손가락이라며 소리치는 게 들렸다.

손가락은 무슨… 그러다 안 맞으면 다행이지.

언젠가 얼굴에 크게 멍이든 엄마가 생각났다. 손을 올려 귀를 막았다. 곧 형의 웃음소리가 들릴 터였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던 형의 신음이 들리지 않았다. 귀를 막던 손이 점점 축축해져갔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형이 손가락을 집으며 숫자를 새고 있었다.

*

 

“왜 형이 온다고 말 안 했어요?”

아빠를 보며 소리쳤다. 엄마는 형이 깬다며 윗니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나는 그 자리에 붙박여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가 이기든지 내가 이기든지. 둘 중 하나였다. 아빠는 몇 분 후 입을 열었다. 아빠의 입에서는 텔레비전처럼 실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형이 온 게 싫으니? 형이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나는 말문이 막혀 아빠를 노려보았다. 목구멍까지, 나는 고삼이고 중요한 시기고 하니 형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다시 들어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 치고 올라왔지만 그 말을 삼켰다. 사레가 들린 듯 두 눈이 뜨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부터 내가 어떤 말을 하던지 간에 아빠는 텔레비전, 저 바보상자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 분명했다.

너는 형이 온 게 싫으니?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네, 너무 싫어요!

아빠는 끝끝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빼들고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휴먼다큐멘터리였다. 아빠는 그제야 나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었다.

“네 형, 아니 우리가족. 여기 나가보는 게 어떠냐?”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발을 쾅쾅 구르며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나지막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정말요? 정말이에요? 텔레비전의 소리가 커지고 더는 엄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애오애오애.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웃는 형의 웃음소리가 내 방 문을 두드려댔다. 나만 혼자 외따로 떨어진 섬이었다.

 

*

 

형이 집을 떠나 살게 된 것은 1년이 채 안 된 일이었다. 어느 날 아빠는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강 너머 시골마을에 꽤나 재활성이 높은 센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형을 그 재활센터에 보내고 싶어 했다. 그때쯤 우리 가족은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는데, 형은 발악적으로 밤새 소리를 질렀고 이웃사람들은 밤마다 집의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들겼다. 언젠가 집 앞에 누가 쓰레기를 던지고 오줌을 싸고 간 적이 있었다. 항상 만사가 태평하던 아빠는 정원이 오줌으로 물든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지 재활센터를 알아온 것이었다. 엄마는 묵묵히 들으면서 계속 흐느꼈고 그것은 암묵의 동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엄마와 아빠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한 건 형이 가는 재활치료 센터가 폐쇄병동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다. 엄마가 아빠에게 화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정원 가운데에 서서 잔디 깎기를 들고 주변 풀들을 전부 밀어버렸고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나도 몰랐다며 그러지마, 라고 애원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이웃들이 볼까 해서였다. 형만으로도 벅찬데 엄마와 아빠까지 갈등이 생기면 나는 더는 집에서 살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집을 나가는 것을 꿈꿨다. 대학교에 합격하면 바로 집을 나가자. 멀리멀리, 날 찾을 수 없게. 형의 웃음소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형은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달싹거렸으나 이내 눈알을 굴렸다. 엄마는 그런 형을 껴안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가서 이 잘 닦고, 누가 괴롭히면 의사선생님께 말하고. 종종 연락하고 알겠지?”

엄마는 형이 연락을 할 줄 안다고 믿는지 형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넸다. 형은 그걸 살짝 구겨 잡더니 자신이 집을 떠나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제발 울지 마…….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형이 울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엄마의 마음이 바뀌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렸을 때처럼 형 한 번 안아줘라. 아빠가 말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자 얼른 가”

나는 형의 손에 덜덜거리는 캐리어를 쥐어주었다. 거기 가면 집에서 생활했던 것보다 더 좋을 거야. 씩씩거리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형은 한동안 엄마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형은 가끔씩 뭔가를 다 아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가 있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서 애오애오애. 바보같이 딴소리를 하는 형의 눈을 외면하고 싶었으나 오늘이 아니면 언제 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의 눈동자가 옅은 갈색을 띄는구나.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대충 안아주었다.

형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골목 너머 형을 부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다. 드르륵, 캐리어가 골목을 치며 돌았다. 엄마는 형의 뒤통수를 보며 연신 휴지로 눈을 찍어댔다. 나도 형의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걸음걸이를 보며 살짝 눈물이 도는 듯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나는 이내 마음이 놓였다. 당분간 이웃들과 우리들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고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으니까. 나는 형이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형은 벽 뒤로 사라졌다. 마치 마법처럼 정말로 허무하게. 내 바람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 혹시 형이 집을 떠나지 않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 모든 게 장난이어서 내가 고개를 돌리고 문을 닫으면 형이 문을 두들기며 해맑게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손가락을 접었다. 엄마는 눈을 닦고 코를 팽 풀다 방으로 들어갔다. 골목너머로 형이 탄 차가 동네를 벗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형은 없었다. 고요가 어색해서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소리는 서서히 방안에 퍼지더니 모습을 감췄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소리였다. 나는 그날 예상과는 다르게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아침부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대문 앞에 서서 물었다.

“누구세요.”

“네, 휴먼다큐멘터리 팀입니다. 어제 연락드린 대로 취재 나왔습니다.”

나는 문구멍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방송국 로고가 찍힌 큼지막한 가방이 보였다. 나는 문에다 대고 크게 외쳤다.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이 근처에 휴먼다큐멘터리를 찍을 곳이 우리 집 말고 또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빠가 신청을 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무슨 자랑이라고 취재팀을 부른다는 것인가. 나는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또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댔다. 아까와 같은 사람이었다.

“이 집이 맞는데요?”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이 웅성거리며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괜히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자리를 피해 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내 옆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밖으로 나가는 아빠가 보였다.

“네, 삼강주택. 저희 집 맞아요. 밖으로 나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창문에 서서 그들을 쳐다봤다. 정말로 우리 집이, 심지어 정규방송에 나온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내 얼굴이 텔레비전에 동네방네 팔릴 것을 생각했다.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오기 바랐던 것은 어릴 적에 동요를 부르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방문을 잠갔다. 촬영에 협조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엄마가 문을 두드렸다. 꼭 내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촬영의 의미가 없다고 잇대어 말했다. 나는 문에 대고 소리쳤다.

“난 끼고 싶지 않으니까, 형만 찍고 가라고 해요!”

촬영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모습도 찍고 있을 터였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전부 내 신경을 긁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도 채우지 않고 형을 도로 데려온 엄마 아빠며, 심지어 촬영을 하는 사람들까지. 나는 항상 뭐든지 받아들어야만 했다. 그게 동생이었고 장애를 가진 형을 둔 동생의 의무였으니까. 머리털이 삐죽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이러다가는 나까지 돌아버리고 말겠어. 애꿎은 머리칼만 쥐어뜯다가 모든 상황을 빨리 종료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건 방송이고 나는 설정 중 일부다. 찰칵,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돌이 던져지는 소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사진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끝내 문을 열었다. 싸가지 없는 아들보다는 융통성 있는 아들이 나았다.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는 총 4대였다. 거실에 하나, 형 방에 하나, 들고 다니는 거 두 개. 시작점은 정원이었다. 그들은 정원을 기점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정원에서는 형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PD로 보이는 남자가 아빠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원래부터 이런 아이였나요?”

아빠는 질문을 듣고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사람들이 사연을 알아야 이해하죠. 촬영 팀, 다시 갈게요.”

PD는 손바닥을 보이며 아빠를 재촉했다. 아빠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네. 태어났을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답니다.”

“개선의 여지가 있나요?”

아빠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살짝 화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건 아무도 모르죠.”

아빠의 말이 격양된 채로 튀어나왔다. PD는 힐끔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다 머리를 긁적이고는 질문을 바꾸었다.

“정원이 참 예쁘네요. 만들게 된 이유가 어떻게 되시죠?”

“그냥 제가 좋아서 만들었어요.”

PD는 어이없다는 듯 아빠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스토리를 만들라고 했다. 예를 들어 형에게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 던지.

“아들만을 위한 정원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PD는 손을 들더니 아빠의 말이 끝나자 내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VJ가 녹화를 중지했다. 이로써 아빠는 할 일을 다 한 듯했다.

카메라가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가 방송을 나가게 되면 학교에서든 길거리에서든 날 알아보는 애들이 생길 것이었다. 그러면 장애인 형을 가진, 불쌍한 아이로 낙인찍히겠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카메라가 마치 없는 것 마냥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런 문제없는 아이로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형이랑 친한가요?”

“형제끼리 친하고 말고가 있나요. 싸우기도 하고 그렇죠, 뭐.”

“그렇담 형이 싫을 때가 있나요?”

질문이 가슴 속을 헤쳐 놓았다. 머리를 긁적인 채 웃으며 카메라를 봤다.

“원래 모든 동생들은 형을 싫어한답니다.”

PD가 웃더니 다음 질문을 했다. 꽤나 괜찮은 답변이었나 보았다.

“형이 만약 평범했더라면 가족은 어떤 느낌일 것 같으세요?”

형이 만약 평범했더라면 이따위 방송에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매일같이 집을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릴 필요도, 벌써 울음으로 강을 만든 엄마의 벌건 눈도, 아빠가 형만 바라보는 것도, 내게 오지 않는 시선도 전부 사라지고 막내로서 가져야 할 가족의 사랑이 내게로 돌아왔을 것이다. 목구멍까지 이 말이 차올랐다가 카메라를 보고 가라앉았다. 카메라의 렌즈는 진짜 사람 눈처럼 보였다. 그것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으려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하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렌즈 겉면에 작게 응축된 내가 보였다. 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똑같았을 거예요. 형은 어떤 모습이로든 형이고, 우리 가족이니까요.”

PD가 신호를 보내왔다. 촬영이 종료된다는 의미였다. PD의 표정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꽤나 괜찮은 그림이 나온 것 같았다.

항상 스스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남에게 민폐만 끼칠 줄 아는 형을 방송에서는 다르게 보이고 싶었는지 엄마는 형이 스스로 하는 무언가를 보여줬다. 나는 형을 노려보았다.

빨리, 빨리 끝내자? 응?

형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형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비닐장갑을 낀 형의 손은 이미 엉망이 돼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촬영이 끝났다. 하지만 집안에 놓인 카메라는 그대로였다. 그들이 말하길 일상을 찍어야 좀 더 리얼리티 있는 방송이 된다고 했다. 그들은 그렇게 집안에 카메라 4대를 내버려둔 채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대략 일주일 있다가 온다고 했다. VJ가 내게 다가와 카메라를 켜는 법과 끄는 법, 충전하는 법, 테이프를 갈아 끼우는 법 같은 것들을 설명했지만 나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아빠를 가리켰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 우리는 저 카메라 앞에서 무슨 쇼를 하게 될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창가에 기댔다. 창가 너머로 촬영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진짜 불쌍하다. 22년 동안 저렇게 산 거 아니야. 나을지도 모르는 애 붙잡고.”

“난 그 동생이 더 놀랍다.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거짓말을 해.”

“원래 관심 받지 못한 애들이 약게 큰다잖아. 불쌍하지 걔도.”

그들이 탄 차가 골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먼지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그 먼지가 마치 형처럼 보였다. 또 형이었다.

또 형이다. 다 형 탓이다. 저들이 저렇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형이 아파서이고, 우리가 동정을 받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나는 불쌍하지 않은데 왜 불쌍해야 하고, 힘들지 않은 척을 해야 할까. 형이 그렇게 태어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벌은 내가 다 받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일까. 침대에 모로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루 동안의 피곤과 졸음이 쏟아졌다.

차가웠다. 손으로 다가가 만져보았다. 부드러웠다. 부스러기가 손끝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무언가 축축한 것이 내 뺨을 타고 흘렀다. 귓가에 누군가가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낮게 으으 거리며 이불로 몸을 감싸고 고개를 벽면으로 돌렸다. 무언가가 얼굴에 뭉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갓난아기가 옹알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 얼굴 위로 차가운 것이 떨어져 광대를 타고 흘렀다. 끈적끈적한 액체였다. 액체, 갓난아기, 흘리는 것, 침…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이 내 얼굴에 침을 질질 흘리며 샌드위치를 들이밀고 있었다. 눈을 돌려 이불 시트를 바라봤다. 이미 샌드위치로 얼룩져 냄새가 났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항상 내가 참아야 하냐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형을 밀치며 소리쳤다.

“하지 말라고! 대체 왜 돌아온 거야, 제발 꺼져! 다시 가 버려!”

형은 속수무책으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저 멀리서 아빠가 무슨 소리냐며 방으로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형은 계속 웃고 있었다.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나는 형을 때릴 듯이 손을 크게 올렸다. 형은 흠칫 놀라더니 몸을 공처럼 말기 시작했다. 윗도리를 얼굴까지 올려 가리더니 발악적인 비명을 질렀다. 그건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처절한 비명이었다. 나는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형을 쳐다봤다. 올라간 형의 등 위로 시퍼런 멍이 보였다. 아빠는 방에 들어와 형을 안고 일어섰다. 아빠의 품속에서 잠깐 보인 형의 짙은 갈색 눈도 멍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 모습도 전부 카메라에 찍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꾸 눈에 형의 멍이 밟혔다.

아빠가 나를 불렀다. 안방에 들어서자 아빠는 내게 형이 왜 돌아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이마까지 올리더니 머리를 계속해서 뒤로 넘겼다.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아빠는 말을 이어갔다.

“형이…… 거기서 맞았다고 하더라구나. 엄마가, 면회시간에 형을 봤는데 팔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더라고. 그래서 한번 보자고 해서 몸을 살펴봤는데 온몸이 멍이더라. 가슴이 너무 아팠다. 네 형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서.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잤어. 내가 너보고 형을 이해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냥, 형 앞에서 주먹을 쥐거나 손을 높이 들지 마렴. 그러면 형이 놀란다.”

형이 놀라면 엄마가 울고 아빠는 가슴이 철렁거린다. 형은 단지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처럼 아픈 친구들에게 맞았다고 했다. 형이 말을 못하니까 꽤나 오랫동안 맞은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다. 심장이 꽉꽉 죄어오는 것처럼 화가 났지만 이상하게 목소리는 끝도 없이 잠겨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아빠의 뒤에서 손가락을 세고 있었다. 아빠는 내 시선을 느끼고 형을 앞으로 끌어왔다.

“이으애아으어으 이으애아으어으”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 아니? 숫자를 세고 있는 거야. 1부터 4까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숫자를 세면 떨렸던 마음이 진정된다는구나. 막 화가 났던 감정도 숫자를 세면서 사라진다는 거야. 참 아이러니하지 않니? 우리는 계속 생각하고 사는데 형은 그렇지 않는다는 게.”

아빠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아빠는 이내 눈을 비비더니 돌아누워 텔레비전을 틀었다. 한참 숫자를 세던 형은 이제 모든 것을 까먹었는지 나를 보며 빵긋,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힐끔 형을 보더니 귓속말로 내게 손가락 세는 법을 알려주라고 했다. 형이 다가왔다. 내 손을 부여잡고는 하나 씩 접으면서 말했다.

엄지를 접을 때,

검지를 접을 때,

으애

중지를 접을 때,

아으

약지를 접을 때,

어으

희한하게도 새끼는 없었다. 왜 5는 안 세? 내가 겨우 목소리를 내어 말하자 형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눈살을 찌푸리다 어렵게 몇 글자를 내뱉었다.

아요, 하오 카…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을 입안에 머금어 보았다. 아요, 하오, 카요. 형의 입 모양을 생각하며 따라가 봤다. 문득 그 단어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족도 4명이고 형이 내뱉는 단어도 4개이기 때문에. 형은 항상 힘들 때마다 우리를 생각한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

 

오늘은 첫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다들 텔레비전 앞에 오순도순 모여 앉았다. 엄마는 형의 손을 꽉 쥐었고 아빠는 형 뒤에서 서서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은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을 잡고는 끌어당겼다. 아빠 품에, 엄마의 그늘 아래에 나도 들어섰다.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카요, 카요”

영상에서 가족이라고 말하는 형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다음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내 모습과 정원의 모습, 형이 정원을 뛰어다니는 모습, 아빠의 정원을 만든 포부와, 내가 형을 생각하는 마음, 엄마의 다양한 시도와, 우리 가족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마지막 장면으로 우리가족이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흑백장면으로 바뀌어 지나갔다. 엔딩 크레딧에서 형은 잠들어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침을 뚝뚝 흘리며 애오애오애라는 말만 반복하는 형의 시선 끝에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우리가족.

형이 가진 마법의 주문을 나는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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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13 일 전
* "서둘러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형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에서 잘려나갔다. 형의 목소리 위로 엄마가 손가락이라며 소리치는 게 들렸다." – "서둘러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형의 비명소리와 엄마의 목소리가 함께 희미해졌다." * "형의 목소리 위로 엄마가 손가락이라며 소리치는 게 들렸다"는 표현은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쓴 것인지 잘 알기 어렵습니다. 엄마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왜 손가락이라고 하는 것인지 좀 더 분명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 "텔레비전처럼 실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형이 온 게 싫으니? 형이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 이 대목은 재활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형에 대해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내는 나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실없는 소리가 아니라 쓸쓸하거나…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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