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껍질 속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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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껍질 속 가족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너는 돌다리 밑에서 주워 온 거야.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었지. 네가 강에서 떠다니는 걸 네 애비가 주워서 집 앞에 놓고 갔어. 그게 끝이야.

할머니가 술과 한 뭉텅이의 약을 왕창 먹고 식탁으로 올라가 손을 번쩍 들고는, 하나님 아버지! 하고 울부짖었다. 나는 엄마와 배를 잡고 웃었다. 킥킥, 움직이는, 움직이는 텔레비전이야. 엄마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엄마의 입김이 귀에 닿자 알코올과 약방의 냄새가 났다. 괜히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귀를 벅벅 긁었다. 빨간색의 무언가가 손가락 끝에서 묻어나왔다. 립스틱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봤다.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다. 크레파스로 덕지덕지 뭉쳐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짓말같이 예뻤다.

할머니가 그 상태로 고꾸라져 아빠가 누워있던 이불위에 쓰러져 누웠다. 먼지가 푸석하고 일어났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한참이 지났다. 이상적인 나날이었다.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어쩌면 눈치 챘겠지만 나는 네버랜드에 산다. 피터 팬에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른 영원한 네버랜드. 우리 집에서 늙어가는 것은 거북이와 나밖에 없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멈춰 있다. 아니 할머니는 오히려 젊어지고 있었다. 육십 먹은 노인네가 목청 좋게 소리를 지르다 빠글빠글한 머리를 지닌 아줌마가 되고 촌스러운 옷을 입은 시골 아가씨가 되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녀가, 해맑게 웃는 아기가 되었다.

네버랜드는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위에 있는 섬.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우리 집 가훈이다. 가훈 바로 아래에 걸려있는 조잡한 대자보에는 네버랜드에 살기 위한 규칙이 나열되어 있다.

 

네버랜드에 살기 위한 규칙

 

첫 번째, 네버랜드는 물과 전기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직접 생필품을 구하러간다.

두 번째, 등껍질 아래에는 해적이 도사리고 있다. 네버랜드는 움직이는 거북 섬이므로 한번 떨어지면 절대 다시 올라올 수 없다.

세 번째, 항상 웃어야 한다. 그래야지 거북이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네 번째, 거북이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늙지 않는다.

 

규칙을 보면 어려운 것이라고는 딱히 없다. 이곳은 말 그대로 네버랜드. 웃음이 끊이질 않는 곳. 단지 매일같이 생필품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점이 귀찮을 뿐이다. 규칙을 보니 문득 주름이 생각났다. 나는 땅에 떨어진 손거울을 들어 얼굴 앞에 가져가댔다. 내가 조각처럼 웃는 게 보였다. 손을 뻗어 실룩 올라간 광대 위 눈가를 매만졌다. 자글자글한 주름선이 몇 개나 되는지 세었다. 광대 아랫부분에서 미세한 경련이 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얼굴에 주름이 진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매일같이 거울로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지 않아도 주름은 진다. 얼굴에 박힌 주름이 내 나이와 비슷하다는 걸 매일같이 느꼈다. 거울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 내가 눈을 찡그리고 있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헷갈려 크게 웃었다.

 

매일 아침 나는 누구보다 앞서 뛰어나갔다. 그 뒤를 엄마가 쫓아오고 할머니는 핵핵 거리다 같이 가! 하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너무 어려진 나머지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작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소리쳤다.

이건 경쟁이야. 어서 뛰어!

나는 더욱 빨리 뛰었다. 더 이상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엄마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면 됐다.

숨이 가슴언저리까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저 너머에서 작게나마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팔을 맥없이 축 늘어뜨리며 서서히 걸음을 멈췄다. 엄마도 그런 나를 따라했다. 우리는 천천히 달리며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어디에 있어?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부르는 순간 앞서가던 발에 무언가가 걸려 쭉 미끄러졌다. 앞으로 쓰러지면서 눈이 발아래로 향했다. 신발 코에 초록색 이끼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절벽으로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규칙에 적혀있던, 떨어지면 다시는 못 올라온다는 거북이의 등껍질 끄트머리였다.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발이 반쯤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등껍질 아래의 무시무시해 보이는 바다로 빠질 것만 같았다. 피터팬은 이럴 때 하늘로 날아올랐을 탠데. 나는 묘한 충동심이 들어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고 왼손은 가슴팍에 붙였다. 그때, 엄마가 내 복사뼈의 움푹 파인 부분을 억세게 잡았다. 나는 엄마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 양팔을 쭉 뻗어 마치 봐달라는 아이의 반성의 표시처럼 귓가에 붙였다. 엄마는 천천히 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여기는 네버랜드. 뭐든지 될 수 있는 곳. 그런데 왜 나는 피터팬이 될 수 없는 걸까. 네버랜드에는 피터팬이 존재해야만 하는데. 내가 피터팬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절벽 아래의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애꾸눈의 아빠가 커다란 파도와 그 위를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무시무시한 배위에 탄 채 씩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엄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한창 나를 끌어올리고 있던 엄마는 내 손아귀의 힘이 억셌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도 아빠를 봤을까. 여기는 네버랜드. 아빠는 해적이었다. 아빠는 우리 뒤를 뒤쫓고 있었다. 다시 이 섬에 오르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웃는 이유도 아빠가 우리를 못 쫓게 하기 위해서였다. 문득 내가 피터팬이 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적의 딸이기 때문에. 후크선장의 딸이 피터팬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쓸린 무릎에서 빨간 뱀이 복숭아뼈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가 저 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할머니가 나를 흉내 내듯 넘어졌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가 무릎을 부여잡고는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무릎이 너무 아파.

나는 할머니의 어깨를 흔들며 외쳤다.

여기는 네버랜드. 무릎 따윈 아프지 않아!

할머니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웃었다. 아빠가 집을 떠났을 때처럼. 해님의 색깔이 주황색으로 변해가더니 엄마의 얼굴에 들어왔다. 엄마는 누렇게 뜬 얼굴로 할머니의 팔뚝을 꼬집으며 일으켜 세웠다. 할머니의 은밀한 속살에 서슬 퍼런 멍이 들었다.

엄마의 왼편에는 내가, 오른편에는 할머니가 손을 올려놓았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거북이의 등껍질, 갈라진 부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물이 있었다.

 

할머니와 내 무게가 엄마의 어깨를 짓눌렀다. 엄마는 가는 동안 땀을 많이 흘려 머리카락이 살에 달라붙어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났는지 입을 옹 다문 채 나를 째려봤다. 어쩌면 얼굴이 녹아 말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괘념치 않았다. 얼굴이야 다시 그려 넣으면 되니까.

어느새 물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는 네버랜드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장소였다. 나와 할머니는 거북이의 등껍질이 갈라진 부분에 무릎을 갖다 댔다. 물이 상처를 감싸기 시작하더니 피는 사라지고 상처는 얼룩도 없이 가라앉았다. 엄마는 얼굴을 강가에 대고 씻었다.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표정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하얀 도화지로 변했다. 엄마는 작은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빨간 립스틱을 칠했다. 도대체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눈인 줄 알고 저렇게 칠하는 걸까? 마침내 아이브로우로 눈까지 그려낸 엄마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눈은 양 볼에 있고 입은 이마에 있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코가 없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이상하다는 듯 킁킁 거려보더니 다시 거울을 보며 코를 그려 넣었다. 거북의 등껍질 뒤로 해가 걸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입가에서 미소가 흘러내려와 땅에 떨어졌다.

세 번째 규칙, 항상 웃어야 한다.

거북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쿵쿵, 요즘 거북이는 늙었는지 움직임이 둔해졌다.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어둠속에서 웃음을 떨어뜨리는 엄마가 보였다. 누구랑 통화 하는 걸까. 비스듬하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엄마가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바라봤다. 요즘 엄마는 거울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엄마는 계속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나처럼 나이를 세는 건지 눈가의 주름을 만지고는 한숨지었다.

혹시 엄마가 절벽 아래에 있던 아빠를 본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아빠는 해적이어서 움직이는 거북이 위로 올라올 수 없을 탠데. 엄마는 내 고민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지 거울을 보며 더욱 짙게 립스틱을 칠했다. 엄마는 입을 오므렸다가 피기를 반복했다. 뻐끔뻐끔, 공기방울이 공중을 하늘거리다가 터졌다. 엄마의 입술이 점점 하나의 꽃봉오리가 되어갔다.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나는 엄마의 입에 유리컵을 얹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 시선을 느낀 엄마는 자신의 입에 유리컵을 얹으며 말했다. 여기는 네버랜드. 불가능한 것은 없어. 킬킬 웃는 엄마의 목소리가 컵에 울려 내 귀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화장대 오른편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는 입에 놓았던 유리컵을 때고 전화기를 들었다. 한번 내 눈치를 쓱 보고는 또 다시 웃음을 떨어뜨렸다. 이상하게도 엄마는 웃고 있는데 거북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엄마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이 불길했다. 나는 눈을 감아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자꾸 감기는 눈을 크게 뜬 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자꾸 화장을 해? 여기는 우리 밖에 없잖아.

엄마는 내 말에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게 이 새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릴 나이가 온다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엄마의 소리가 이물감 가득한 공간에서 유영하는 듯 들렸다. 새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릴 나이가 온다면… 눈이 감기고 하얀 도화지가 보였다. 도화지에 그려진 입이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나는 사실 스파이였어. 그렇기에 이제 떠나야해, 안녕.

무언가가 내 귀에 속삭이고 가는 걸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닫히지 않은 귀를 빠져나와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떠나야해, 안녕. 나는 이불을 걷어차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돌아오는 소리는 엄마의 대답이 아닌 누군가가 흘린 웃음소리로 인해 걷고 있는 거북이의 발소리였다. 나는 집을 샅샅이 뒤졌다. 변기통도 열어보고 화장대 서랍도 열어봤다. 어디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떠나갔다. 엄마는 다시는 네버랜드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스파이다. 단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내 곁에 있었던 가짜 엄마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일까?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엄마가 수라도 쓰고 간 걸까? 엄마가 자신이 스파이였다는 걸 밝히고 사라진 날, 할머니는 호두까기인형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늘어지게 침을 흘리며 웃는 것과 고개를 끄덕이는 것 뿐. 나는 이제 엄마대신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앉아 할머니에게 인상을 쓴다.

시끄러워!

나는 화장대 속 거울을 들여다봤다. 억지로 웃는 것 같은 광대가 눈앞에 서있었다. 나는 광대인 건가. 다시 엄마처럼 웃어도 보고, 눈을 게슴츠레하게도 떠보고, 가슴도 모아봤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엄마가 한 화장처럼.

거북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집은 흔들리지 않았고 먼지도 떨어지지 않았다. 저 멀리서 우리를 쫓아오던 해적선이 거북이의 발아래 배를 댔다. 아빠가 힘겹게 등껍질로 올라와 내 앞에 섰다. 인형이 아빠를 반긴다는 듯이 딱딱거렸다.

오랜만의 집이로군. 반가운 우리가족 한번 안아나 보자.

아빠의 흔적이라고는 할머니가 오줌을 지려놓은 이불이 다였다. 나는 몰래 발을 한 발짝 뺐다. 아빠는 허공을 껴안았다. 아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짜고짜 스파이부터 찾았다.

네 엄마 어디 있어.

엄마는 스파이에요.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어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아빠가 거북이의 등껍질을 세게 차고는 이빨 사이로 거짓말을 늘여놓았다.

네 엄마는 화냥년이야.

나는 아빠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빠의 눈에서 엄마가 보였다.

아빠는 네버랜드가 지긋지긋해서 떠난 거잖아요.

넌 갈수록 네 엄마를 닮아 가구나.

할머니는 호두까기인형인 만큼 고개를 잘 끄덕였다.

그년이 나 밥도 안줬어!

나는 할머니를 보며 눈을 흘겼다. 할머니를 꼬집으며 벽에 걸린 대자보를 가리켰다. 첫 번째 규칙, 우리는 직접 생필품을 구하러간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울상이 되었다.

엄마, 아파!

아빠는 해적질을 하면서 얻은 보석들을 자랑스럽게 꺼내어 올렸다. 거북이의 등껍질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너 꺼. 이건 할머니 꺼. 물건을 세던 아빠는 무언가 중요한 게 남았다는 듯이 배로 내려갔다. 저 멀리서 아빠가 무언가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아빠가 나를 보고 품 뒤로 무언가를 숨겼다. 그러고는 뜸을 들이더니 짜잔, 하며 나보다도 작은 아이 두 명을 꺼내놓았다. 아빠는 누런 금니를 보이며 웃었다.

얘들은 황새가 물고 왔어.

피터팬이 없는 네버랜드는 그렇게 해적의 것이 되어버렸다. 밤마다 아버지는 술통을 쌓아올렸고 거북의 등껍질 위에서는 불길이 일었다. 더는 앞을 나가지 못해서인지 거북이는 아버지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살이 뒤룩뒤룩 쪘다. 거북이와 집,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는 아빠를 보며 상상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웃기 시작한다면 아빠는 이 섬에서 떠나갈 것이다. 거북이는 다시 움직이고 활력을 되찾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엄마는 다시는 거북 섬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나는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민하다 끝내 웃기로 결심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신 다음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났다. 속을 가득 채운 바람이 다시 코로, 입으로 나가고 남은 바람은 속을 더부룩하게 했다. 나는 속에 남은 바람을 게워내듯 크게 기침을 하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었다. 손가락이 목젖을 쳐 헛구역질과 함께 바람이 튀어나왔다. 벌게진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잊고 살아오던 눈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웃는 법을 까먹었다.

아빠는 엄마를 약탈해오겠다며 다시 집을 떠났다.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며 내게 밥을 달라고 지저귀었다. 나는 대자보에 적힌 글씨를 보여주려다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시끄러워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새 같았다. 어미에게 입을 벌리며 음식을 넣어달라고 조목조목을 따지는 새.

어렸을 적 엄마는 내게도 이랬을까. 나도 이제 엄마가 되는 걸까. 립스틱이 어울리는 엄마. 그때, 할머니가 첫째를 밀쳤다. 엄마 나도 밥 먹여줘. 나는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종종 엄마가 했던 자세였다. 새들은 지적이고 호두까기인형은 딱딱거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완전히 인형이 됐다. 더는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음식을 줘도 고개를 젓거나 입을 벌리지 않았다. 동생들은 이제 밥을 혼자 먹기 시작했고 말도 듣지 않았다. 벽에 붙어있던 대자보는 동생들이 찢어놓은 탓에 종이 쪼가리가 되어있었다. 종이쪼가리가 된 대자보에는 번호와 점, 숫자와 명령만이 남았다. 동생들이 온 후부터 한동안 앉지 않은 엄마의 화장대는 할머니가 오줌을 적신 아빠의 이불처럼 점점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잊혀갔다. 해적이 찾아오지 않은지 한참이 지났다. 이 섬은 해적한테도 버려진 섬이다.

거북이가 멈추기 시작한 날부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네버랜드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등껍질 위에서 유일한 집인 우리 집을 두드렸다. 나는 항상 숨을 죽이며 아이들의 입을 막고 있거나, 아이들이 내 손을 깨물며 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최대한 어른인 흉내를 냈다.

왜 그러세요?

부모님은 안계시니?

부모님은 왜요?

네 아버지가 선장이라지? 그 사람한테 맞아서 반불구가 된 사람이 여럿이란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혹시 언제쯤 다녀갔니?

아저씨, 피터팬이에요?

내 말을 들은 그는 미심쩍게 나를 훑었다. 아버지의 눈 속에서 보였던 어머니의 눈빛이었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문밖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버랜드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나는 너보다도 훨씬 많은 나이였어. 이 녀석들아! 썩 꺼져!

그들은 낮게 욕 짓거리를 내뱉고 반짝이는 빛과 함께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닫힌 문을 보며 생각했다. 네버랜드에 정상적인 시간이 흘렀다면, 할머니가 아줌마가 되고 아가씨가 되고 소녀가 되고 아이가 됐다가 결국 인형이 된 것처럼 나도 아가씨가 되고 아줌마가 됐다가 할머니가 되고… 그 다음에는… 음, 나는 무엇이 될까?

동생들은 그들이 찾아온 이후로 떠나온 고향이, 그러니까 저 무시무시한 바다가 그리워진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해도 잘 듣지 않고 무심히 바다를 쳐다봤다. 나는 동생들의 눈에서 엄마를 봤다. 아빠의 타오르던 눈을 봤다. 동생들은 나와 다르게 무언가가 눈 안에 박혀있었다.

동생들이 바다 너머의 이야기를 했다.

언니, 저 바다 너머에는 커다란 대륙이라는 게 있는데, 그 곳에는 없는 게 없어. 이렇게 불편하게 우리가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돼. 물도 집에서 나와.

나는 동생들의 대화를 무시한 채 빨래를 접었다. 아빠를 닮은 둘째 동생이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누나! 아빠도 바다에 있다고! 어쩌면 누나의 엄마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엄마에 대해서 떠올렸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 스파이. 립스틱.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자 호두까기인형은 턱을 흔들며 부스러기 같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걸 얼른 쓸어 모아 장롱에 쏟아버렸다. 혹시라도 거북이가 움직이면 큰일이었다. 나는 동생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동생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언제부터 동생들의 엄마가 아니게 된 걸까. 나는 동생들을 안아주려고 팔을 벌렸다. 동생들은 어깨를 빼버렸다. 그날 저녁, 새가 둥지를 떠났다.

동생들은 깃털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별의 별것을 다 들고 집을 떠났다. 밤새 시끄러운 소리로 집이 흔들렸지만 나는 눈을 꼭,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가긴 어딜 가. 이 늦은 밤에 배가 어디 있다고. 나는 동생들이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큰 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

이 늦은 밤에 니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동생들의 코웃음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네버랜드. 우리는 날아갈 거야.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들을 쳐다봤다. 동생들은 이미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나는 열려있는 창문으로 달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 멀리 날개를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한 쌍의 새가 보였다.

매일같이 찾아오던 바다의 사람들이 거북이의 등껍질을 부수겠다고 내게 번호와 점을 주며 말했다. 바다를 항해하는데 거북이가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어느 날부터 거북이는 다리도 목도 꺼내지 않은 채 등껍질 안에만 들어가 있었다. 나는 웃지 않았고 거북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거북이가 죽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겨우 내게 남은 건 호두까기인형 뿐인데. 그마저도 고장 나기 일보직전인데. 갑자기 엄마가 떠올라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눈을 떴다. 붉은색의 꽃 원단이 보였다. 치마폭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잠이 들었나보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땅바닥에 웅크렸다. 넓으니까 좋네, 뭐. 호두까기인형이 동의한다는 듯이 딱딱거렸다. 바닥에 귀를 대고 누웠다. 바닥이 돌아가는, 거북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북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거북아 자?

거북이는 대답이 없이 내 뺨에 볼을 비볐다. 거북이의 볼이 차가웠다.

거북아 그때가 생각나. 철골들 사이에서 내가 뛰어다니던 것이 말이야. 그때가 처음으로 해적이 엄마를 때렸던 날이었잖아. 아빠가 해적이 되기로 결심한 날이었나. 아무튼 그날 아마 엄마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했을 거야. 네가 한창 몸을 키워가고 있었을 때. 나처럼.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목에서 비린 피 맛이, 녹슬어가는 철골의 냄새가 났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녹조가 뱀처럼 내 다리에 옭아들어 내가 넘어졌던 날, 그때 우리는 처음 만났지. 내가 한동안 꼼짝없이 방에 누워있었을 때 말이야. 나는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 바닥에 귀를 기대었을 때 들린 너의 그 작은 숨소리가 윙윙거리며 마치 우는 듯해 보였던 그날. 나는 네가 내 대신 울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어. 내 몸의 아픔보다는 사라진 아빠와 치마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엄마를 보며 말이야.

나는 너의 등껍질 위에 기대어 많은 걸 했었지. 집에 날아오는 고지서들을 접어서 비행기를 날리고 누가 더 멀리 나가나 시합을 했었잖아.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내가 너의 등에 기대어 엄마의 립스틱으로 네버랜드에 살기위한 규칙을 만들었던 날. 너와 나는 그때 더 이상 커지지 말자고 약속했지. 그런데 거북이야, 그랬던 우리인데, 다 떠나가고 너만 남았는데 사람들이 널 죽이겠데.

목이 메여 헛기침을 했다. 양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고 침을 삼켰다. 손이 축축해졌다. 코가 먹먹하게 찡한 느낌이었다.

거북아,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나도 저런 어른이 되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어. 나도 엄마가 될까? 거북아, 네게 보이는 나는 어디에 있니?

거북이의 볼에 서서히 온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거북이는 말이 없었다.

너는 여전히 말이 없구나.

거북이의 등을 서서히 문질렀다. 딱딱한 철골이 만져졌다. 마디마디의 갈라진 숨구멍이 느껴졌다. 그 모든 게, 내가 뺨을 맞대었던 부분 말고는 차가웠다.

거북이의 등껍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악어들이 거북이의 등껍질을 깨부수고 있었다. 악어들의 거센 턱이 거북이의 등껍질에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악어들의 눈은 바다사람들이 사라졌을 때의 빛을 뿜고 있었다. 집이 흔들리며 모든 것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화장대며, 웃음을 숨겨놓았던 장롱이며, 할머니의 오줌에 변색된 아버지의 이불이며, 그 모든 것이 부서지고 무너져갔다. 나는 서둘러 벽에 붙은 대자보조각을 때어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립스틱이 주워들었다. 나는 호두까기인형을 들고 집 밖으로 뛰었다.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

호두까기인형이 점점 돌처럼 굳어갔다. 나는 할머니를 질질 끌어가며 다 부서져가는 벽면에 기대어 서서 몸을 숨겼다. 앙상하게 뼈를 내밀고 있는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맥주병을 주워들었다. 맥주병 안에서 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나는 대자보의 뒷면에 엄마의 립스틱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여기는 거북이의 등껍질 위에 있는 섬. 네버랜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장소. 여기에 엄마라는 아리따운 스파이가 살았고 할머니는 고장 난 호두까기 인형이 되었다. 아빠는 무시무시한 해적이어서 엄마와 동생들을 바다에서 잡아왔다. 잡혀온 동생들은 시끄럽기만 아기 새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떠나서 나밖에 없다.

나는 대자보를 맥주병 안에 넣고는 저 멀리 던졌다. 병이 바다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할머니 괜찮아? 할머니는 완벽한 돌이 되어버렸는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질질 끌었다. 할머니는 자꾸 툭툭 걸렸다. 할머니는 잠깐 정신이 들었는지 돌 부스러기를 흘리며 말했다.

이건 경쟁이야. 어서 뛰어!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붙들린 듯 그때처럼, 엄마와 같이 뛰었던 그 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나를 붙잡는 나뭇가지들을 손으로 뿌리치며 뛰었다. 옷에 묻어있던 할머니의 돌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더욱 빨리 뛰었다. 자꾸만 무언가가 내 눈 옆길로 스쳐지나갔다. 악어의 거대한 입이며 아빠의 해적선이며 물이 고여 있는 틈이며 거북이와 처음 만난 장소며 계속 거북이를 덮고 있었던 안개까지. 모든 것이 내 뒤로 뛰었다. 할머니의 부스러기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자 그제야 나는 멈춰서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지금까지 뛰어온 길이 안개에 묻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처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 까. 나는 이미 거북이의 등껍질에서 내려와 버린 걸까.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어딘가로 분주히 뛰어가는 공사장 인부들이 보였다. 엄마를 닮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걷고 있었고 아빠를 닮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댔다. 방금까지 밟고 있었던 거북이의 등껍질은 딱딱하고 거친 콘크리트 바닥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손을 가져다댔다. 바닥에 놓인 내 손은 길고 가느다랬으며 마디마디가 갈라져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단발이었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산발하게 풀어헤쳐진 채로 내 어깨를 쳤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딱딱한 광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쳐보았다. 젊어진 엄마가 보였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었나. 가슴 언저리에서 무언가가 툭툭 튀었다. 꾹 참고 있었던 것이기에 토하듯 내뱉었다. 하, 하하. 흐흐흐. 어디선가 거북이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겨우 자라 어른이 되었다*.

 

 

*김애란 ‘비행운’ 중 ‘서른’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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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9 일 전
*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멈춰 있다." – "엄마나 아빠, 할머니의 시간은 모두 멈춰 있다." * "앞서가던 발에 무언가가 걸려 쭉 미끄러졌다." : 내가 앞서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에 의하면 내 발이 나를 "앞서가고" 있는 셈이지요. – "앞서 달리던 내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나는 미끄러졌다." * "피터팬은 이럴 때 하늘로 날아올랐을 탠데." – "피터팬은 이럴 때 하늘로 날아올랐을 텐데." : 탠데-텐데 :터인데의 준말입니다. * "아빠가 거북이의 등껍질을 세게 차고는 이빨 사이로 거짓말을 늘여놓았다." – "아빠가 거북이의 등껍질을 세게 차고는 이빨 사이로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 " 새들은 지적이고 호두까기인형은 딱딱거렸다." – "새들은 지저귀고 호두까기 인형은 이빨을 딱딱거렸다." * "산발하게 풀어헤쳐진…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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