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이의 슬픔
목록

A.

당신은 사랑을 아십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과연 사랑은 무엇일까요. 다만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확실한 것 같습니다, 로 보이는 문장을 삭제한 흔적이 있다.) 이 감정의 출처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도저히 이 사랑이라는 걸 실체화할 수가 없습니다. 다정하고 서러우며 추잡스럽기까지 하는 감정, 이처럼 복잡하고 불순한 문제가 제게 존재합니다. 펜을 들어도 머뭇거리게 됩니다. 종이를 백지로 남겨둔 적은 처음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펜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허비하고 나자 제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의 긴 시간 동안 사랑을 꾸미는 말이 수많이 생겨난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감히 사랑을 정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궁금증은 여전합니다. 복잡한 사랑의 방향과 시초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계속 떠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부끄러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기록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첫 문장이 당신을 향한 질문이었지만 맹세컨대 당신이 이 글을 보지는 못할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봐주길 원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양극을 오갑니다. 그래도 끝끝내 숨기려 합니다. 일종의 도박입니다. 여기에 토로하는 것으로, 제 황당한 사랑이 글자에 옮겨지길 바랍니다. 저를 가득 채운 사랑이 대신 종이를 적시길 바랍니다. 안정되게 건조하던 저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허니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고백이 조금이라도 당신의 피부에 스쳤다면, 그저 지나가던 바람으로 치부해주십시오.

 

 

B.

첫 글을 쓰고 꽤 오랜 며칠이 지났습니다. 뒷장을 채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전 장을 읽으며 새삼스레 사랑이 없는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세상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부쩍 말이 줄었습니다. 입을 열면 온갖 단어와 문장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터지면 안 될 말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렴증에 입술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저를 걱정합니다. 저는 당신의 눈으로부터 애정을 읽어냅니다. 저는 그 애정이 고마우면서도 무섭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죄가 들킬까 겁이 납니다. 애써 외면하지만 순간 훔쳐온 당신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의 눈이 저를 힐난하고 질책하는 듯 보입니다. 고개가 자꾸 아래로 꺾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저는 늘 작아져야 합니다. 저를 이 정도까지 재조립한 당신에게 경외를 표합니다.

 

밤마다 기도를 합니다. 두 눈을 감고,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 합니다. 제가 아무리 숨을 참아도 출렁거립니다. 어떻게 하면 잠잠해질 수 있을지 도통 길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헤매기만 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기억마저 흐릿합니다. 창을 넘어오는 별빛을 맞으며 섬세하게 빛나는 단어들을 몸속으로 집어넣습니다. 더부룩해진 배를 감싸 안습니다. 저는 밤마다 기도를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의 얼굴이 처절하게 그려집니다. 격정적인 기도는 조용히 흩어집니다.

 

 

C.

펜을 들고 머뭇거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써 내린 글은 모두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뚜렷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생산한 글이 생소한 그 감각을, 당신은 이해하십니까? 우스운 꼴입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헛된 물음을 했습니다. 저는 발버둥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벗어나려는 움직임에 비례하게 온몸이 조여든다는 걸 이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습니다. 제 부족함을 통감하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급속도로 무력해졌습니다. 울적한 하루가 계속 쌓여갔습니다. 사랑의 낭만성은 제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각오하고 있었으나 서러웠습니다. 기대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실망했습니다. 멋대로 실망하는 스스로가 미웠고, 당신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더는 상처 받기 싫다고, 당신의 잘못을 찾는 저를 저조차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나락까지 치닫게 하는 유일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저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그 외로운 단어를 주식으로 삼은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겠습니다. 점점 수척해졌고 피부가 거칠어졌습니다. 멍하니 있는 날이 늘었고 저는 자주 세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찬 물을 얼굴에 끼얹고 나면 조금은 당신 생각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거울 안의 저는 흉흉하고 서글픈 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이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당신이 있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속절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목록

첫번째 댓글을 올려주세요!


7 일 14 시 전
* "이 감정의 출처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이 감정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 과거에 제가 써 내린 글은 모두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뚜렷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이 문장에 눈길이 잠시 머물렀습니다. 소설 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아서요. 소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뚜렷한 내면을 통해 '사랑'을 써내려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명멸님이 쓰신 것처럼 형상이 없고 추상적인, 이성과 상관 없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그런 사랑을 논리적인 과정과 내용과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랑이라는 추상명사가 고유 명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글은 감정적이고 사적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Read more »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