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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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3시 30분. 30분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일어나서 움직여야한다.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가운을 입고 병실로 발을 옮겼다.

'살려주세요.'

괴로워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 그녀를 처음보았던 어린시절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는 환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정도로 건강해보였으나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그녀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녀는 변했다.

사람은 매 순간 변한다. 누군가에 의해 변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변하기도 한다. 병에 의해서 겉모습이 바뀌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해가는 것은 가까이에서 보지않고서는 알아차릴 수 없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는 것을 원망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원망한다. 죽기위하여 태어난 사람이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과거에 보았던 그녀의 웃는 얼굴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 그녀를 변하게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의사의 책임을 느꼈다.

 

 

어렸을적의 나는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했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범죄자같은 사회악일지라도 나는 구하고자 하였다. 누군가를 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선이고, 정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공부는 언제나 상위권에 외모도 준수했다. 집안에 돈도 그럭저럭 있었으며 인간관계도 완벽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고싶은 것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의사가 되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가 어느 곳에 가든 잘 해낼거라고 하였다. 억지로 끌려가듯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묻고싶다. 가만히 잘 살던 내게 왜 용기를 줬는지. 왜 착각하게 만들었는지. 내가 원했던 정의는 이런게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이라 깨어있는 환자는 거의 없다. 아니, 사실 깨어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말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던 도중 한 할아버지가 나를 붙잡았다. 그의 상태는 이곳의 사람들 중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의사 선생님. 저는 구원받을 수 있는건가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까?"

죽은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구원자라고 생각한다. 고통에서 구해주고 죽음을 막아주는 방패. 그러나 나는 고통에서 구해줄 수도 없고 죽음을 막아줄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죽음이 빗겨가기를 기도하는 일 뿐이다.

나는 아까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중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로 살아온 수년간 그런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아왔다. 그러나 단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의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그의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한 일들은 모두 그들을 끝 없는 지옥에 빠뜨렸다는 것을.

 

 

 

 

내게 누군가를 죽일 용기가 있다면 이곳의 모두를 죽여주고 싶다. 그러나 그런 용기가 있을리 없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너는 미쳤다. 그게 의사가 할 짓이냐?"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의사가 할 짓이라는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그들의 구원자다. 이제 의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의사로서 살아간다.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깼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무언가를 믿는 것.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넘쳐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미친 사람이고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믿은 것은 이 세상 그 자체인데 내가 믿었던 세상은 원래 없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이 허구다.

그녀는 아직도 누워있다. 말은 물론 눈도 뜰 수 없다. 아직도 나의 눈에는 수 년전 그녀의 웃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신에게 기도한다. 모든건 운에 맡긴다. 무책임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나를 좋아한다.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죽어가는 환자.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저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답한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환자가 죽었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간단하게 돌연사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 환자이름도 모르는 의사라고 욕해도 좋다. 환자가 죽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활력을 찾았다.

옆자리를 쓰던 환자가 죽었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도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기적이다. 나는 날이 갈 수록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원래 저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녀는 말라 비틀어진 입으로 겨우 소리를 내 나에게 말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너무 괴로워요."

그래 이게 현실이다. 그들을 위하는 척 하며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누워있는 그녀를 안고서 말하였다.

"미안합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모두가 똑같다. 이곳의 사람들은 병드는것이 조금 빠를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는 모두 평범해진다. 이곳에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게 끝나간다. 무엇이 끝나가는지는 알 수 없다. 무언가가 끝나가는듯한 기분이다. 매일같이 신에게 기도한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일을 바꿀 힘이 없고, 의사가 할 일이라는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째서 나는 의사가 된 걸까. 누군가를 구하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의사가 되는 것은 이상하다. 누군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것 하나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해줄수 있는가.

그녀는 그날 이후로 다시 눈을 뜨지 않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그녀를 쫓고있다.

매일 눈을 뜨면 그녀의 침대로 간다. 그저 옆에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다. 처음에는 1분 다음은 10분 그러다가 점점 커져 이제는 시간조차 가먹고 계속 앉아서 바라본다. 하염없이, 계속.

"선생님 정신차리세요.'

간호사가 불렀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째서인지 그녀가 걱정되어서…"

간호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 뒤 말했다.

"다른 환자분들도 신경 쓰셔야죠. 의사잖아요."

나는 의사라는 단어에 유독 경멸감을 느꼈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직업에 의문이 넘쳐났다. 그러나 표현할 수는 없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가볼게요."

 

 

 

 

 

끝이 없는 지옥에서 끝을 찾고있다.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런것이다.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대로 살아가고, 죽어간다.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서로 반대인데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는걸까.

그녀의 상태는 갈수록 안좋아진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수년 전 보았던 미소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행복하게 만든다.

할동안 수많은 환자가 죽어간다. 그들을 구원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나는 매일같이 신에게 기도한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그곳에 존재한다.

신은 내 정성을 비웃듯 그녀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제 숨 쉬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 이제 끝을 내자. 모든것을 끝내자. 이 지옥에서 벗어나자.

그녀가 죽었다. 언제든지 이 날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고통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가 싫다. 내 삶 속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괴로워보인다. 나는 저주받았다. 평범한 내가 있는 이 세상은 없다. 신은 허구에 불과하다.

매일같이 절망에 빠져있다. 그녀가 떠나버리고 매일 이 모양이다. 매일같이 그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그저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었을까.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 기억속의 괴로운 사람들은 괴로운 운명 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괴롭게 만든걸까. 신을 원망한다. 이 지옥에 나를 놓아두고 가버렸으니.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하나가 시작된다. 끝이 끝이 아니다. 이세상은 원래 그렇다. 한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면, 어느 곳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인생이 시작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죽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그들을 괴롭게 만든 벌이다. 나는 벌이 필요하다. 내 몸속 장기는 없다. 무언가 사라져버린 기분. 무언가를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다. 이미 멀리 떠나버렸다.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이게 진실. 나머지는 허구.

죽으려고 마음먹으니 의사라는 직업이 참 편하다. 손만 내밀면 죽을 수 있다. 칼을 사용하던, 약을 사용하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틀렸다. 환자를 죽이는건 구원하는게 아니라 벌을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로 안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원망하는건 괴로운 일이다.

주사기를 들었다, 이걸로 찌르면 삶은 끝이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간단하게 돌연사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팔뚝에 주사기를 찔렀다.

약이 내 핏줄로 들어왔다. 끓는 물을 혈관에 직접 집어넣는 느낌이다. 아프고 뜨겁다. 약을 전부 핏줄로 흘려보내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아니 눈을 뜨지 못할거다.

사실 그녀도, 이름모를 환자도 내가 죽였다. 둘 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돌연사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주었다. 나는 지금 신이 된 기분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시체가 되어 썩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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