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의 이중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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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안개 속에서 눈을 뜬 기분이었다. 방 창문에 어스름한 푸른빛이 돌았다. 여름 중순이라 새벽4~5시쯤이라는 걸 자각했다. 문득 목이 말랐다. 냉장고를 열어 뭐라도 마시고 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거실로 나왔다.

채련이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저편에 여동생, 알퐁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퐁은 커튼을 쫙 친 베란다 창가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알퐁은 베란다 창가를 배경으로 삼고, 그 앞에 간이탁자 위의 램프를 그림의 모델로 두었다. 그리고 두 개의 화판을 두고 각각 두 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미술 작업은 언제나 채련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베란다 창문에 비친 풍경은 여느 때와 같았다. 산에서 막 나온 주황빛을 품은 해가 보였다. 산 아래로는 줄지어 모여 있는 주택가가 있었다. 사는 곳이 높은 층이고, 베란다 창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 항상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이 몽환적인 시공간에서 고등학교 2학년인 알퐁은 매일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시간별에 따라 빛을 달리 받는 시계를 한 그림 안에 압축해 표현한 그림도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를 뜯어 온 채 마우스 줄로 칭칭 묶은 것을 모델로 그린 적도 있었다.

채련은 고개를 돌려 탁자를 손으로 훑으며 냉장고를 향해 갔다. 냉장고 문을 여니 반 쯤 남아 있는 1.5리터짜리 포도 주스가 있었다. 평소에는 입 안 대고 그대로 들고 마시지만, 오늘은 컵을 꺼내 따랐다. 그리고 컵을 들고 천천히 알퐁의 뒤로 갔다. 알퐁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언니가 다가오는 것을 힐끔 봤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채련이 알퐁의 두 그림을 보았다. 두 그림 다, 산에 해가 걸친 풍경에 램프가 있었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왼쪽 그림은, 막 해가 산 위로 조금 얼굴을 드러낼 때였다. 주황빛이 강렬했고 어둑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또, 램프의 불도 켜져 있었다. 오른쪽 그림은 어느 정도 산 위로 해가 나온 풍경으로 어느 정도 밝아져 램프의 불이 꺼졌을 때를 담고 있었다.

“제목이 뭐야?”
갑자기 들려온 언니의 목소리에, 알퐁이 조금 머뭇거리다 답했다.

“이중 사고”
채련은 그 제목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예상외로 딱딱한 제목이었다.

“오……왜? 태양을 본 램프의 잠은 어때?”

“사람들은 우리 베란다 창문이 서쪽을 향해 있는지, 동쪽을 향해 있는지 모르잖아.”
채련은 그 말을 듣고 단순히 알퐁이 시간 순서대로 그린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치. 이 두 그림 순서에 따라 해가 지는 건지 뜨는 건지 달라지겠지. 그걸 정하는 건 사람들 맘이고 근데 그래서, 이걸로 ‘이중사고’를 어떻게 표현하게?”
채련이 포도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알퐁의 붓놀림은 느려졌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쉬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골몰하는 표정이었다.

“음 그니까, 일단. 어떤 장치가 필요해. 이 두 작품을 좌우로 움직여서 순서를 배열할 수 있는 장치. 언니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해가 지거나 뜨도록 느끼기 위해서 말이야.”

“오, 뭐, 아무튼 그런데 넣어서, 사람들이 직접 그 두 그림을 움직여 순서를 맞춰보면서 어떤 느낌을 준다는 건데, 그런 거라면 굳이 그림 그릴 필요 없잖아. 그냥 사진을 찍어도 되는 거 아냐?”

“응, 근데 그리고 싶었어.”

“음, 그래.”

“아무튼 그 아래에 이런 문구를 두는 거야. 해가 지는 것과 뜨는 것을 동시에 느껴보라, 당신은 앞으로 어느 한 그림의 램프의 상태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흠, 잠만. 대충 뭔 말인지는 알 거 같아. 그니까, 막 사람들이 좌우로 이리저리 순서를 맞춰보면서 막 해가 지고 뜸을 동시에 느끼려다가, 정작 혼란스러워져서 어느 그림이 램프가 켜져 있든 말든 그걸 못 바꾼다?”

“응, 원래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있어야 하는 두 장면이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면서 헷갈리는 거야. 그러면서 앞으로 어느 무엇도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을 주는 거지.”

‘서로 다른 시공간?’
그 말에 채련이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한 거야?”
그 말에 알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뭔가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글쎄, 의식적으로는 별 생각 없었는데.”

채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만든 이유는 뭐야?”

“글쎄 모르겠어. 이 그림을 이용하려고 영감에 따라 만든 것 같아.”

“그럼 이 작품 만들면서 어땠어?”

“솔직히 헷갈렸어. 이 작품을 구상하는 생각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말까 하다가 방해될까봐, 컵을 씻으려 부엌에 갔다. 컵을 가볍게 씻고,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알퐁에게 말했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시공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여러 이차원적 이미지들의 생각에 혼동될 때, 너무 곤란해 하지 마. 저 ‘이중사고’란 작품처럼 사람의 이미지적인 생각은 삼차원 같은 이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삼차원에서만 일어나니까. 중요한 건 삶에서의 행동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차원에 시간을 더한 사차원이니까. 헷갈릴 때는 그냥 행동을 해봐."

알퐁이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이리저리 지구가 고개를 젓는걸 모르고 한 사람이 그 지구 위에서 해를 바라보아 일출과 일몰이 반복된다면, 그러면 직접 지구를 공전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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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3 일 전
* 오랜만입니다. 댱군님^^ " 사람의 이미지적인 생각은 삼차원 같은 이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삼차원에서만 일어나니까. 중요한 건 삶에서의 행동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차원에 시간을 더한 사차원이니까. 헷갈릴 때는 그냥 행동을 해"보라는 이 작품 속 화자의 말에 소설의 정의가 다 드러나 있네요. 사람은 삼차원을 삽니다. 그 삼차원을 살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죠. 그리고 소설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플롯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헷갈릴 때는 그냥 써 보면 됩니다. 그리고 또 쓰고 고치고, 고치하다 생각하고, 다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게 창작입니다. 소설은 무한의 無 위에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움직이는 과정을 이야기로 옮기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존재의 의미에 대한… Read more »
댱군
3 개월 22 일 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설은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냥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가며 우주의 원리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요즘 미술관에 자주 다닙니다. 문득 글로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고 그걸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서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이 무에서 인물을 그리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는다는 비유입니다.
무를 땅에 비유하신 것인지? 말씀하신 무의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유에서 유가 창조되고,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두 입장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너무 무목적인 것처럼 보여서 맛이 맹했던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3 개월 22 일 전
저는 소설이라는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뭔가를 쓰기 위해 창을 열면 커서만 깜박거릴 뿐이죠. 아무 것도 없는 그 백지를 채우는 것은 오롯이 쓰는 자의 몫입니다. 그 백지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총 동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창작입니다. 예술은 자신 앞에 있는 빈 캔버스를 자신의 기억과 시선과 자신이 가진 단어와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문학도 마찬가지이고요. 그 중 소설은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필요하다는 말이고요. 소설은 시와 달리 일정 정도의 구성 요소가 필요합니다. '자아의 발견'은 근대에 탄생하고 그 자아의 발견의 예술적 산물이 바로 소설입니다. 소설은 결국 사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Read more »
댱군
3 개월 21 일 전

그런 의도셨군요. 질문해결되었습니다.
시가 구성요소가 없고, 자아의 발견이 근대에 생겨났군요. 둘 다 처음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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