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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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번 겨울 우리 시(市)에는 유달리 눈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1월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면 선생님께서는 5년 동안 국어 교사로서 교편을 잡으시며 저와 동생을 연이어 가르치셨던 중학교를 떠나십니다.

 

선생님께서 꽤 오래도록 K시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먼 지역의 학교로 전근하게 되실 것이라는 것을 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반쯤 농담조로 ‘그런데 너희 누나는 왜 2년 전 스승의 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학교에 찾아오지 않는 거니,’ 라고 물으셨다는 것도요. 집에서 도보로 삼 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인데. 고등학교 생활이 아무리 바쁘다지만 일찍 마치는 날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분명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오래도록 찾아가지 않았을까 하고 저 또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마 그건 제가 아직 자랑스러운 낯으로 선생님을 찾아가기에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하나 뚜렷하게 성취한 것이 없는 저는 차마 선생님을 마주할 수 없어 때때로 중학교 뒷편 산책길의 변두리에 홀로 서 선생님이 계실 3층 교무실을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3년 전 이맘때, 제가 지금 재학 중인 고등학교의 예비소집이 있었지요. 그 해 저희 집의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저는 5년 동안 준비해온 학교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준비 기간 중 절반 이상을 함께 하신 선생님께선 그 무렵 저의 절망을 함께 느끼셨을 겁니다. 제 생활기록부의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과 행동발달사항을 꼼꼼하게 챙기느라 종종 늦게까지 학교에 계시곤 하셨으니까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죄송함으로 쭈뼛거리던 제게 인생은 새옹지마이니,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을 건네셨지요.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몇 주 동안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에 상담 전화를 돌린 끝에 한 고등학교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이 학교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학교이고, 진학실적도 꽤 좋아. 내가 네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었고. 그리고 수석 입학생에겐 3년 동안 장학 혜택을 준다더구나.”

몇 달 간 공부를 손에서 놓았던 저는 선생님의 수고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전교생 대표로 선서를 하고 장학 증서를 받았을 때는 선생님의 기뻐하실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저는 2년을 보냈고, 이제 ‘고 3’이 되었습니다.

 

 

선배들의 수능 성적이 나오고 수시 결과가 속속 발표되자, 학교의 관심은 자연스레 저희 학년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으로 진로상담실에서 3학년 부장 선생님과 독대하던 날을 기억합니다. 20여 년 전까지 방송실로 쓰였다는 그곳은 높고 넓었으며 위압적일만큼 근사했습니다. 그 공간의 화려함과 적막함은 수년 간 학교의 입시를 진두지휘해 오신 부장선생님의 아우라가 더 크게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지금 졸업하는 너희 선배들은 뛰어났던 위 기수와, 그보다 더 뛰어난 너희 기수 사이에서 늘 비교당하는 학년이었지. 그치만 보렴, 이번에 그 아이들이 우리 시에서 가장 많이 서울대를 갔지 않니. 의대도 많이 갔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너희 학년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가장 뛰어난 너희 기수 중에서 가장 우수한 너와 P에겐 더더욱.”

저는 계면쩍게 하핫 하고 웃는 것으로 답했고 선생님은 말을 이으셨습니다.

“너와 P는 둘 다 의대를 지망하는구나. 너는 어느 과 전공의가 되고 싶니? 아마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싶겠지?”

선생님은 아마 제가 중학교 때 소설을 쓰고 토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A의학에 대해 아실 겁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저는 줄곧 A의학자로의 미래를 꿈꿔 왔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A의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지난 2년 동안 거기 맞춰서 비교과 활동도 했고요.”

“A의학?”

반문하시는 부장 선생님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고등학교의 선생님들께선 줄곧 제가 A의학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을 염려하시곤 하셨습니다. 2년 동안 저를 가르치신 S 선생님은 요즘 제 얼굴만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니까요.

“곧아, 그보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뇌 과학자가 되겠다고 해라. 요새 이국종 교수가 언론에 자주 나오니까, 외과 전문의가 되어서 외상센터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도 좋고. 아니면 차라리 P처럼 ‘임상의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떤 과를 전공할지는 대학에서 공부한 후에 정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던지.”

뇌 과학자와 외과 전문의는 근래에 의과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자기소개서에 적은 희망 직업이었습니다.

“저와 선배들은 다르잖아요. 저는 외과의도 뇌 과학자도 그리 되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그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과 비교되었을 때 그들보다 우세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A의학은 전공자가 적지만, 의대를 졸업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학문이고요. 또 제가 확실한 꿈이 있는 상황에서 P처럼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네가 대학을 가서 A의학을 하든, 검사가 되던, 학교 앞에 문방구를 차리든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의대에 합격하는 것이 문제잖니… P는 영리한 선택을 한 거야.”

 

제 생활기록부에 꼼꼼히 밑줄을 치며 읽으시던 3학년 부장 선생님의 첫마디는 다른 분들의 것과는 사뭇 달라, 제게 희망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곧아. 네가 A의학과 관련되어서 한 활동은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되어 있어서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과생은 흔치 않으니까.”

“네…”

“그런데… 네가 하고자 하는 A의학은 변두리의 학문이잖니. S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국종 교수의 활약은 의사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동경할 수 있는 거야. 자연스럽다고. 그런데, 변두리의 의학인 A의학을 하고 싶다는 너의 말을 교수들이 믿어줄까?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대학은 학교를 빛내 줄 아이를 원해. 넌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어.”

‘변두리의 의학.’  물론 선생님께서 저를 위하는 좋은 마음과, 퇴근 후에도 저와 관련된 서류를 읽어보시는 정성으로 하신 말씀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두리’라는 단어는 마치 여름철의 반쯤 녹은 아스팔트 도로와 같은 감각으로 저를 휘감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반에서 대청소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교실을 비워주기 위해서였겠지요. 한 아이가 교실 뒤편 칠판에서 떼어낸 환경미화용 장식을 한 움큼씩 복도의 쓰레기통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희망 대학과 학과를 적어 코팅한 색지였습니다. 무심코 그 옆을 지나가던 저는 언뜻 본 두 단어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그 꿈의 주인은 저도 알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저희는 소설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습니다. 여름 즈음에는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말도 언뜻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의 꿈이 잠시 부러워졌습니다.

 

문집부원 모두가 어두워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중학교 2학년의 여름이 떠오릅니다. 학생들이 투고한 글을 세련되게 다듬는 것은 저와 선생님의 몫이었지요. 글을 고치며 우리가 한강과 김영하와 김훈에 대해, 그리고 톨스토이와 오웰에 대해 오래도록 나눈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 때의 어리고 철없던 제가 꾸었던 꿈도요. 멀지 않은 미래에, 그러니까 한 스무 살쯤에 화려하게 등단해 굉장한 베스트셀러를 써내어 위대한 대문호로 역사에 오래도록 남는 꿈이요. 초등학생 때부터 저는 선배들보다도, 선생님들보다도 글을 잘 쓰는 아이였으니까요. 글쓰기 대회에서는 꼬박꼬박 상을 받았었습니다. 아, 두어 번 떨어지기도 했었군요. 그러나 그럴 때에는 어김없이 심사평에 제 글이 초등학생의 글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조숙해 어른들의 손길이 닿았거나 남의 글을 베낀 것으로 의심되어 심사에서 제외했다는 말이 있었지요. 그것을 보며 저는 어린아이의 자만과 허영으로 심사위원들의 단편성과 어리석음을 비웃고 우쭐해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저는 제가 누군가를 비웃을 만큼의 문학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게 글을 잘 쓰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회의 일부가 된 후부터였습니다. 주변의 여러 분들이 제게 원한 건 오히려 로봇처럼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과학이론에 통달한 이과 우등생의 모습이었습니다. 문예창작과 혹은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고 싶은 친구들은 백일장이나 문학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종종 결석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출전한 대회 중에는 제가 중학생 때 고등학생이 되면 한번쯤 가보겠노라고 생각한 곳도 있었지만, 저에게 그러한 결석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문학적 교류와 체험이 그들의 업이었다면, 저의 업은 책상에 붙박인 듯 앉아 연습장 빼곡히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아이들은 저보다 더 오랜 시간 필사와 습작을 했고, 창작 과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곧 진학할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아마 비슷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감화시키고, 제가 접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함께 배우겠지요. 그들과 비교해 제 글이 인상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종종 불안해지곤 했습니다.

 

한번은 국어 선생님께서 어느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어 학생들이 그 분의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평소였더라면 문과 친구들의 비교과 스펙을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였겠지만, 문과 아이들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저는 그 문학기행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국어 선생님께서는 제 지원서를 다시 돌려주시곤 말씀하셨습니다.

“곧아. 네가 지금까지 해 온 비교과 활동 중엔 ‘문과’스러운 것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래서 자칫 네 생기부가 너무 난잡하게 보일 수도 있어. 이 애가 문과를 희망하는 앤지, 이과를 희망하는 앤지 헷갈릴 정도로… 확실한 건, P는 전체 내신은 너보다 낮지만 수학과 과학만 놓고 보았을 땐 너보다 훨씬 내신이 높다는 거야. 활동도 너보다 적지만 이과에 집중되어 있고. 넌 어중간해. 사정관들이 보았을 때, 과연 누구를 더 좋게 평가할까?”

어중간하다, 라는 다섯 음절의 말이 제 2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내려진 평가였습니다. 저는 감히 의학의 변두리를 꿈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과의 변두리이자, 문학의 변두리였고, 어느 쪽에도 확실히 소속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는 저의 모습이 선생님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무서워 지금까지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어쩌다가 저는 ‘변두리’에 불과한 어중간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를. 모든 것은 제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원하는 것을 잠시 물릴 줄 몰라 아무것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제 미련에서 말이지요. 아마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더랬지요.

‘욕망으로부터 슬픔이 생기고, 욕망으로부터 고통이 생기니. 욕망하지 않는 자에게는 슬픔도 고통도 없으리라.’

욕망하지 않는 것. 그것은 A의학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면접관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을 의미할 터입니다. 또한 그것은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연습과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할 터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어떤 것도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두리와 변두리, 그리고 변두리를 이으면 하나의 교점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교점이 바로 제 삶의 중심입니다. 다른 모든 것의 변두리에 있어도 삶에 있어서는 언제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제 ‘욕망’을 버린다면, 전 제 인생에서조차 변두리에 머무를 뿐일 테니까요. 물론 그에 상응하는 ‘슬픔과 고통’이 무엇일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을 설득할 수 있도록 A의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수시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정시 준비를 열심히 해야겠지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그리고 그로 인해 수학 등급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지요. 쉽고 곧은길을 두고 험한 길을 선택한 저를 바보스럽다고 여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구불구불한 길만이 제 삶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이 끝나면 꼭 선생님을 다시 만나러 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아무리 먼 곳으로 전근가시더라도, 저도 일 년만 있으면 성인이니까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때까지 부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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