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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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반지

 

텔레비전에서 그 애가 나왔다. 엄마는 그 애가 예뻐졌다고 했다. 그 애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엄마는 어머, 하며 연신 박수를 쳤다. 쟤 좀 봐, 쟤 좀. 그 애는 비싸 보이는 가죽 공책을 들고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했다. 엄마는 그 애의 바뀐 겉모습을 봤지만 내게는 손이, 얇고 기다란 손가락이 먼저 보였다. 문득 그 애가 앙칼지게 쥔 주먹이 떠올랐다. 끊어질 듯 부풀어 올랐던 혈관이 생생히 보였다.

그 애는 손이 예쁜 여자아이였다. 잡으면 벌겋게 부어 손자국이 남을 것같이 하얬다. 특히 손가락이 길쭉하고 뼈대가 얄팍한 게 또래 여자 애들과는 달랐다. 마치 성인 여성의 그것과도 같아보였다. 그 애의 성숙한 손에는 항상 반지가 껴져있었다. 커다란 보석이 박힌 공주반지였다.

그 애는 항상 공주처럼 기다란 드레스는 아니어도 꼭 배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는 원피스를 입었다. 자신이 진짜 공주라도 된 것처럼 또래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복도를 자기 혼자 사뿐사뿐 걸었다. 몇몇의 아이들은 재수 없다는 듯이 우웩, 거렸지만 내 눈에는 기품 있어보였다.

나는 그 애와 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애는 나를 쳐다보는 적이 없었고 모든 게 지루하다는 듯이 수업을 듣다 창밖을 보기 일쑤였다. 나는 언제나 그 애를 쳐다봤다. 어느 때는 수업 내내, 어느 때는 무심히 한 번.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트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공주반지를 뚫어지게 보던 까무잡잡한 여자아이가 반짝이는 무언가를 가져왔다. 여자아이는 무언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친구들과 막 떠들고 있었다. 이거 진짜 은반지다? 정말 비싼 거야. 여자아이의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자리에서 힐끔거리며 여자아이의 은반지를 바라봤다. 여자아이는 으스대듯 손가락을 치켜들더니 반지를 꼈다. 반지는 멈추지 않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자아이는 당황한 듯 손은 감췄다. 나는 얇고 기다란 손가락을 떠올리며 그 애를 바라봤다. 그 애는 눈을 은반지처럼 반짝이며 연신 공주반지에 달려있는 보석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날 하교시간, 여자아이는 울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여자아이는 반지를 찾기 전에는 그 누구도 교실을 나갈 수 없다는 식으로 울고 있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선생님은 도무지 올라올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흑, 우리… 언니거란 말이야… 20만원도 넘는 건데, 으앙”

여자아이의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찾을 수 있을 거라면서 여자아이를 위로했다. 그 중 몇몇이 책상 안에 넣어둔 게 어떻게 사라질 수 있냐면서 구시렁거렸고 의심은 화살처럼 방아쇠를 당기듯 쭉 늘어났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아이의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몇몇은 여자아이의 책상 주변을 살폈으며 의심의 눈초리로 평소 행실이 좋지 않던 친구들의 책상을 훔쳐봤다. 여자아이의 전 남자친구를 추궁했고 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칠판 위도 확인하고 바닥에 뚫린 구멍도 파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반지는 나오지 않았다. 조급해진 여자아이는 다시 울상을 지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설렁설렁 교실을 돌아다니며 그 애를 쳐다봤다. 그 애는 꽤나 열심히 반지를 찾고 있었다. 손은 낙지처럼 끈적거렸고 그 애의 얼굴에서는 식은땀도 보였다.

그때, 선생님을 모시러갔던 아이가 뛰어올라와 선생님이 소지품검사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애를 쳐다봤다. 그 애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원피스 끝자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속주머니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꺼냈다. 그제야 나는 보석반지가 더 이상 그 애의 손에 끼어져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애는 천천히 앞으로 가더니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 애는 여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애의 입이 달싹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맴도는 듯했다. 그 애는 입을 열더니 딱 한마디 내뱉었다. 다행이다, 선생님 와서. 나는 무언가 긴장이 풀려 멍하니 그 애를 바라봤다. 그럼 그렇지 그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나는 그 애를 쳐다봤다. 그 애는 이미 여자아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 애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굳게 다물어진 손을 어떤 책상 속에 넣었다 뺐다. 그 자리는 방금 전에도 그 애가 조사하고 간 곳이었다. 그걸 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문제의 책상으로 다가가 손을 쑥 내밀었다. 뭔가가 잡혔다. 온기가 남아있는 딱딱하고 매끈한 것이었다. 나는 꺼내서 손바닥위에 올렸다. 은반지였다. 나는 분노인지 희열인지 모를 소리를 외쳤다.

“은반지 찾았다!”

아이들은 곧 모여들었고 여자아이는 빼앗듯 가져가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했다. 나를 둘러싼 아이들 중에는 그 애도 있었다. 그 애는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찾았는데?”

나는 그 애를 쳐다봤다. 그 애와 눈이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찾았던 자리를 가리키려다 곧 멈췄다. 그러면 그 자리 주인이 의심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내가 의심받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애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쟤, 쟤가 범인이야.”

나는 재빨리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고 이내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아니야, 아니라고, 진짠데……”

그때 가슴속에서 자라나던 무언가가 픽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애를 바라봤다. 그 애의 손은 꽉 움켜져 핏줄이 오돌토돌 튀어나와 징그러워 보였다. 그 애가 입은 원피스의 미키마우스는 구겨져 볼품없어 보였고 나는 그 애가 더 이상 공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일기에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쓴 거죠.”

텔레비전에서 가짜 공주가 나왔다. 일기장에는 그 흔한 손톱자국 하나가 없었다. 그 애의 손은 단단해 보이면서 물컹했고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손톱은 무언가를 가리키듯 뾰족했다. 문득 그 애의 손가락에 아무것도 끼어져있지 않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 애는 손이 예뻤던 여자아이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방에 들어가 모로 누웠다. 곧 텔레비전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애의 손가락이 생생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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