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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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두고 떠나왔다고 해서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너희는 결국 나를 곧 잊을 테고, 나 또한 너흴 곧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자는 성립되었을 지 몰라도, 후자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끝끝내 성립되지 못했다.

 

나는 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

너희들은 모두 그곳에 진학한다고 들었다. 혹은 그 옆의, 아니면 그 옆옆의.

그 무렵의 나는 어떠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조금이라도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대학 또한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별 수 없이 많이 멀더라도 약간이라도 수준이 높은 학교에 진학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와서 생각하면 둘 다 도긴개긴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낯선 그곳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그럭저럭 적응했으며 평범한 학생으로 지낼 수 있었다.

힘겨운 1학기를 마치고 잠시 소통이 끊겼던 너희들 중 한명과 연락이 닿았다. 연락이 닿았던 J는 나를 위해 그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어떤지, 내가 아는 아이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활기찼던 아이들은 여전히 활기있게 보였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여전히 내성적이었다. J는 평소 그와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에 배정받아서 다행이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아, 나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 그리고 다시금 나를 감싸는 조금의 우울감.

그러나 나는 너희들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투정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의 여름방학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희들에게는 내가 완벽하게 그곳에 적응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할 일종의 버팀목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나는 내면에 자리한 나의 우울을 그곳으로 조금씩 표출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이미 처음의 목표를 상실한 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내 자신을 억지로 위무하면서 1학년은 그렇게 금세 지나갔다.

나는 그무렵 모아왔던 돈으로 내 개인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새로 이사할 집은 공간이 부족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둘만한 여유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 내 컴퓨터를 설치했다.

너희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웠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기는 똑같이 껄끄럽지만 나는 몇년 전 내가 평생을 나고 자랐던 아파트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사정이 있어 1년간 잠시 상가 건물에서 기거했었다.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약간 가슴이 저리지만, 너희에게는 행복하게 보여야 했으므로 나는 내가 이미 떠나온 그 집에 여전히 사는 것처럼 나를 위장했다.

너희는 다행히 알지 못했다.

 

겨울방학에는 새로 장만한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너희들과는 대부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너희들의 소식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 중 한명이 자퇴를 했다는 소식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자퇴한 친구 H를 만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정말 궁금했지만 나는 그에게 굳이 왜냐고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냥 내가 살던 아파트의 주변을 걸었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의 음식점에 들어가 같이 식사를 했으며, 후에 그를 집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가 자퇴한 이유는 후에 알 수 있었지만, 그때의 H는 행복해 보였기에 굳이 이유를 알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문,이과 중 하나의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학년이었다. 나는 이과였고, 너희들도 대부분 이과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때의 나는 소설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컴퓨터의 하드웨어에는 조금 관심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이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소설을 버리지는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 하나를 포기했어야 했고,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2학년 초에 내 담임은 나를 불러 개인 상담을 했다. (내가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고, 그 반의 모든 아이들이 상담을 받아야 했었다.) 상담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는데, 네가 1학년을 좋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어도 2학년때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1학년때 공부하지 않은 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안타깝게 나는 그때도 별로 공부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마음은 5월달에 주최되는 한 문학 공모전에 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상담에 별로 집중하지 못했다.

 

5월 무렵은 소설 구상에 집중했고, 공모전 전날 문학 선생님의 도움을 빌려 무사히 내 작품을 그곳에 투고할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갔고, 다시금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동안, 나는 내가 작품을 투고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곧 주최측에서 연락이 왔다. 예선을 통과했으니 몇가지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서류를 작성했고, 본선이 열릴 캠프에 참가했다.

 

그러나 캠프에 참가한 후 이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취미로 소설을 쓰는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로 진학하기 위하여 수상 실적을 쌓아가고 있었으며, 누군가 내게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이야기를 주제로 건네는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처럼 살고있는 학생은 없었다. 다들 너무도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의 친구들은 내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정말 즐거웠지만. 내 안에서 그곳에서의 나는 이방인이었고, 계속 그들을 겉돌았다.

본선은 3시간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내게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조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냥 배울 것이 많았다고만 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 후 몇개월간 소설을 쓰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대부분 그렇듯 얼마 있지 않아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놓아버렸던 공부를 다시 하기란 쉽지는 않았다. 우선 급한 불인 수학부터 다시 복습해야만 했다.

나의 댓가를 치루는 과정은 한없이 지루했고, 외로웠으며.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루는 너희들도 이 과정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쩐지 참을 수 없는 자괴감 또한 들기도 했다.

 

구경만 했던 1학년 때에 비해 준비할 사항이 많아 바빴던 2학년의 학교 축제가 끝나고, 나는 두번째 겨울방학을 맞았다.

1월달은 김영하의 책에 빠져, 그의 책 5권을 순식간에 읽어 해치웠다.

약간의 로맨스가 첨가된 "퀴즈쇼"를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새벽에는 몇달만에 너희들을 만나서 눈이 갓 덮힌 중학교의 운동장을 걸었다.

너희들 전부는 아니고, H, 그리고 K와 함께했다. 공이 있었기에 우리는 잠깐 축구를 했고, 몇분 후 금방 숨이 차버려 흰 운동장에 벌렁 누워버렸다.

헉헉대는 와중에, K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왜 고삼이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평소 잘 까불고 다녔던 K의 입에서 사뭇 진지한 말이 나오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러다 폭삭 늙어버리는 거 아니야? 응?"

"…"

"우리 스무살 넘어서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생각하다가, 말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등이 시려왔기 때문에, K와 나는 일어섰고 H에게 등에 묻은 눈을 털어주기를 부탁했다. H는 귀찮은 듯 우리의 등을 퍽퍽 때렸다.

곧 우리는 세명 분의 발자국을 남긴 채, 한때 우리가 있었던 중학교를 빠져나왔다.

 

이제 이 글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 나는 그동안 나의 어스름 덮힌 시절로부터 너희를 조금씩 속여왔고, 설사 너희들이 이 글을 읽는다 하여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혹시라도 누구인지 의심이 간다면 마음속에만 담아두길 바란다. 이건 너희에게 쓰는 편지지만 너희가 이 글을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K에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간에.

그리고 너희들을 다시 만나는 날에는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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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월 5 일 전

우와 노래 짱짱 좋아요ㅎㅎ

1 개월 30 일 전
안녕하세요. 트수님. 음악이 좋네요. 잘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중학교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담았네요. 힘든 동안 소설을 쓰며 친구들의 소식을 위안삼아 지냈다는 이야기에 많은 글틴 분들이 공감했을 것 같습니다. 글이 처음부터 무겁게 전개되고 있네요. 사용하신 단어들조차 무거워요. 예를 들면 원망, 불안, 자괴감 등이요. 아무래도 작가가 지금의 상황을 진중하고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겠죠? 고등학교 진학과 더불어 소원해진 친구들, 관심사와 다른 학업 전공 선택, 공모전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괴리감. 어느새 돌아보니 수험생이 되어버린 현실 등이 버겁게 느껴질 거예요. 의견 드릴게요. 글을 읽고 고등학교 시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거운 현실이 계속될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친구들과의…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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