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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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게요. 도덕적인 사람 말고, 도덕적이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을 알아요?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을 습득은 했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삼가긴 하지만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 그것을 무시해버릴 수 있는 사람. 부모가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좋은 아들, 좋은 딸을 연기하지만 여건만 된다면 무표정으로 그들을 살해할 수도 있는 사람. ···아니, 비슷한데, 소시오패스랑은 달라요.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잖아요? 범죄를 저지른다든가 너무 잔인한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든가. 내가 말하는 사람은, 무엇이 사회에서 ‘나쁘다’라고 하는 행동인지 알고, 나아가 그것을 자신의 꼬리표로 달리게 두지 않아요. ···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소시오패스 쯤 되겠네요. 그런 비도덕적인 생각과 사상을 속으로 숨기고 겉으로는 일반인인 척 하지요.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선천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병’이라는 얘기지요. 나는 이 병을 ‘야누스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도덕적인 자아와 비도덕적인 자아가 대립하면서 서서히 도덕적인 자아가 사라지는 병이에요. 눈에 띄는 증상은 없습니다. 오로지 본인만 자각할 수 있어요. 규칙에 대한 반항심과는 달라요. 어떻게 보면 인간성이 차츰 사라지는 느낌이니까. ···네, 그런 병이 있다니까요. 야누스 증후군 환자들은 본인의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엄청난 자아 분열을 겪게 됩니다. 분명 한때는 인간이면 당연히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던 규칙인데, 어느 순간부턴가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요. ···아니지, 그게 아니라- 본인에게 불리한 상황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느낍니다. 쾌락과 고통을 못 느끼는 게 아니에요. 음.. 이렇게 보면 될까요. 이 사람들이 감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공감할 수 있는, 혹은 ‘아직까지는’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며 울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그 공감대가, 점점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거지요. 가장 대표적인 건 살육충동이에요. 야누스 증후군 환자들은 발병 초기에 대상을 가리지 않는 극심한 살해욕구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생각해 봐요, 어느 날 훈계 한 번 받았기로서니 직장 상사의 미간에 38구경짜리 총알을 박아 넣는 상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그래서 발병 초-중기에는 환자들이 이 변화에 놀란 나머지 자살 시도율이 급격히 치솟아요.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부분이지요.

 

어떻게 그 병을 그렇게도 잘 아냐고요··· 이봐요, 나는 정신과 의사에요. 나도 처음에는 환자랍시고 찾아온 허우대 멀쩡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그 존재를 믿지 않았어요. 야누스 증후군의 밝혀진 마지막 특징은, 주로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상위 계층인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는 거예요. 정신과 의사도 일종의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있었던 협회에서 나도 동료를 메스로 썰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 이후부터는··· 아까 내가 말한 것과 같은 현상의 반복이에요. 나는 하루하루 나를 잃어가고 있고, 동시에 새로운 내가 그 자리를 채워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빨리 이 병의 원인이 밝혀질 수 있도록, 일종의 투병기를 남기는 것뿐이에요. 물론 내가 내 인간성의 끝을 잡고 마지막까지 투병기를 남긴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자아로 완벽하게 대체된 내가 그 자료를 세상에 공개해 줄지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나는 아직까지 내 인간성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나도 인간을 인간답게 사랑하고, 존중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리고 비록 나를 치료할 수 없더라도 다른 환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해요.

 

···저기, 듣고 있나요? 지금 듣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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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8 일 전
* 반갑습니다, 白河弦님. ^^ 올려주신 작품 잘 읽었습니다. 일인칭 화자의 자기 고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일종의 '악'에 천착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인간에게는 이런 악의 모습도 깃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ㅠ 이 작품을 읽으며 제 내면에는 어떤 악들이 깃들어 있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분명 소설적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듯 합니다. 白河弦님이 이제 하셔야 할 일은 이런 내면을 갖고 있는 '나'가 구체적인 상황(사건)과 맞닥뜨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물론 그 상황(사건)을 통해 표면에 드러나는 이야기에 플롯을 더해야 하겠죠. 상황(사건)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지만…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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