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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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엄청난 어둠이었다. 37년 동안 이런 어둠은 단 한번도 보지못했다. 모든것이 사라져 버릴듯한, 다른 의미로는 너무 깨끗해서 깨져버릴듯한 어둠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내 몸을 겨우 눕힐 수 있을정도의 공간 뿐이었다.

눈을 처음 떴을 때에는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지만 더욱 놀랐던건 내가 입고있는 옷이었다. 까칠까칠한 (손가락을 뻗어 허벅지 밖에 만질 수 없었지만) 옷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 였다.

"나는 지금 죽은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감각이 너무나도 또렷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삼베의 촉감도 정확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나는 죽지 않았다.'라는 현실을 수긍하면서도 왜 내가 죽어있는지에 대한 모순된 생각을 반복했다.

내 기억은 어느 지점에서 끊겨있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심장이 좋지 않았다. 혹시 심정지 상태의 나를 죽었다고 생각한건가? 장례절차가 끝날때까지 일어나지 못한건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뭔가 영양분은 섭취했나? 이러다가 며칠 지나지않고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2일차

어쩌다보니 잠들었다. 어쩌다보니 일어났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다. 아직 겨울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지 않고도 잠에 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관 벽면에는 물방울이 생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겨우 옆으로 움직여 물방울을 햝아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생기는 갈증은 나를 아득히 먼, 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리는 느낌이었다.

온 힘을 다해 소리치기로 했다. 나는 공동묘지에 묻혀있고, 우연히 다른사람 묘지에 온 사람이 내 소리를 듣고 구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살아있는데, 여기에 묻혀있어요!"

같은 외침을 30분동안 반복하고나서야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나갈 방법은 그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수 십번, 수 백번을 반복해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러다 온 몸의 힘이 다해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차라리 죽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무엇에 희열을 느낄까. 죽었지만 죽지않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쩌면 내 죽음은 누군가의 계획된 범죄가 아닐까?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뭐가 좋은걸까. 의문은 의문을 가져오고 그 의문은 결론을 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위의 목적은 알 수 없고, 그 행위의 결과조차 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는 그저 눈물이 났다. 이 현실에서 나를 위로해주는건 없다. 혼자서, 좁은 공간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눈물이 난다.

 

 

 

3일차

오늘도 소리친다. 먹은거라고는 작은 물방울 뿐이라 힘이 부족하다.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리지르는데 사용한다.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 기대가 커져서, 이렇게 소리쳐도 들은 사람 하나 없다는 현실에 몇배로 실망했다.

'죽을 운명인것 같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서 소리치거나, 신을 원망하는 일뿐. 모두 신의 자식이라고 소리치던 교회 목사의 얼굴을 한대 때리고 싶어졌다. 모두 신의 자식이라더니 나는 버려졌네.  참 못난 사생아다.

무의미한 행동을 그만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좁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나 혼자 생존해야한다. 몸에서 나오는 아직 따뜻한 이 온기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각인 시켜준다. 이 온기가 작은 물방울을 생기게 하는 희망이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희망이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누워서 힘이 닳아 없어지기를 기다려 죽을 것인가, 스스로 생존방안을 모색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추악한 죽음을 싫어한다. 시도조차 않고 죽는 삶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나를 격려하고 노력했다. 살아있는 나로 돌아가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더 힘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관 뚜껑을 칠 생각이었는데, 손을 사용해서는 도저히 강하게 칠 수 없다. (팔을 뒤로 당길 공간이 없다.) 바로 작전을 바꾸었다. 온 힘을 다해 이마를 관 뚜껑에 들이받는다. 그러나 미동조차 생기지 않았고,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제일 고통스러운건 생리현상이었다. 해결 할 방법이 없다. 결국 누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행위는 나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주었다. 엉덩이에 질펀하게 쌓이는 분비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 냄새와 질감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관에는 십자가가 같이 들어있다. 씨발, 신은 무슨. 십자가를 들고 관 뚜껑을 때렸다. 약간의 흠집이 생겨 나무 부스러기가 내 몸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번이었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4일차

 

점점 몸에 힘이 사라지는게 느껴진다. 몸은 말라가고 체력은 확실히 사라졌다. 절망적인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를 책망했다. 좀더 머리를 써보란 말이야. 나는 이정도가 한계인가?

결론은 나왔다. 나는 괜한 힘만 사용했고, 남은 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 사실은 내 온기라는 희망 마저도 꺼버릴만큼 강렬해서 내 몸이 서늘하게 차가워졌다.

가슴팍에 올라와있는 십자가를 들고 신을 원망했다. 왜 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희망은 아예 없어졌는지. 나는 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미련과 실망만을 가득 남긴 채 떠나가는지. 결론은 단 하나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십자가를 손에 쥐고 정자세로 누웠다. 얼마남지 않은 결론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나는 사생아.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아이. 행복한 사람들이 있으면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해. 알고는 있는데 그게 왜 나인지 원망하게 되는 나는 사생아. 불행한 아이. 불운한 아이. 사랑해요 어머님.

 

 

 

 

 

 

5일차

 

"아 씨발, 진짜 이거 해야하냐?"

"입 닫고 빨리 삽질해라. 좋은거 하나만 걸리면, 우리 이제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어둠속에서 삽질을 반복한다. 묘지를 파는건 좋은 취미가 아니지만,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팔 수 밖에 없다.

가끔 사람이 죽으면 묻을 때 그 사람의 물건을 같이 넣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요즈음은 금품도 많이 넣는다고 하니 하나만 잘 걸리면 떼돈을 벌 수 있다. 묘지를 파헤쳐볼 생각은 아무도 안할테고, 가족과 친척들도 중요한 시기가 아니면 자주 오지 않을테니 완벽 범죄를 성공할 수 있다.

"아 진짜 깊게 묻어놨네. 이건 뭐 생매장 시킨거도 아니고."

"야, 생매장 시켰으면 묘지를 만들어 놓았겠냐? 좀 깊게 묻었을 뿐이겠지. 열심히 좀 파봐 좀."

2시간이 넘도록 삽질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딱딱한 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 드디어 나왔네 제발 대박이기를…"

뚜껑에 묻은 흙을 모두 제거하고 관에 박힌 못도 전부 뺀 뒤,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관속의 내용물을 본 우리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를 든 채 눈을 뜨고 입으로는 어떤 단어를 반복하며 말하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너무 작게 말해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는데, 뚜껑을 연 후 들은 그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

연속해서 말하는 '사생아'라는 단어. 우리는 대박도, 중박도, 평범한 쪽박도 아닌. 최악의 쪽박을 맛본 뒤에 삽과 관을 그자리에 두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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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8 일 전
정 훈님은 굉장히 소설을 자주 올려주시는 것 같아요. 꾸준히 창작하시는 것 같아서 부러워요. '사생아'는 소재 자체가 독특해요. 인물이 시간을 거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자세히 표현 해 주신 것 같고요. 또 뭔가의 답답함, 괴로움이 잘 나타난 것 같아요. 조금, 아주 조금 아쉬운 점은 첫 번째, 1일차 2일차 등으로 직접적인 숫자를 제시하는 것 보다 차라리 이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더 괜찮았을 것 같아요. 직접적 숫자 제시로 인해 형식이 조금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 사생아라는 단어의 반복적인 등장과 강조가 조금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해설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목이 사생아인 이유를 파악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지막 단락의 "사생아사생아사생아…" 의… Read more »
3 개월 26 일 전
* 잘 읽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주인공의 내력은 1. 산 채로 땅에 묻히기 전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2. 대략 37살 쯤 된, 종교를 가진 사람이다. 3. 기혼의 여성이다(평범한 주부였다는 진술이 나오므로). 정도입니다. 저는 읽는 내내 왜 하필 37살 쯤 되는 평범한 주부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정 훈님 또래가 아닌 위와 같은 설정의 인물이어야 했을까요. 그런 궁금증을 갖는 이유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굳이 평범한 주부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을 거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직 캐릭터화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대면한 상황은 앞서 말한대로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인간인 우리가…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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