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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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사교성이 없는 해미에게 친구란 자기와는 영 동떨어진 종류의 세상이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내훈과 만날 때까지 기억 속에서 해미는 늘 혼자였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해미가 살던 작은 동네에는, 평범한 동네에 자주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 아니라 진짜 산이 있었다. 놀이터의 나무 기둥 뒤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만을 지켜 보았지만 산에서는 달랐다.

시원한 공기. 맨발 사이를 간질이는 푸른 잔디와 온갖 작은 동물들은 해미만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해미는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외진 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당연하게도 해미는 산속 지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 빠지기 쉬운 구덩이가 있는지, 어디로 가면 뱀 같이 위험한 동물들이 나오는지, 어느 길이 더 평평하고 걷기 좋은지, 어떤 곳에서 사슴 같은 산짐승들이 많이 몰려 있는지를, 어린 해미는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초반에는 무서웠던 산길도 무섭지 않았다. 유자는 자신이 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고, 더 이상 앞을 자세히 살피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니까.

 

“아…”

 

그러나 주의하지 않는 어린 아이에게, 산속은 그리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애초에 해미가 그렇게 조심성 많고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일어났을 것이다.

생각보다 깊은 구멍에 빠졌다. 코 안을 파고드는 흙냄새가 짙었다. 150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구덩이는 겨우 여섯 살 어린아이가 스스로 빠져 나오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아직 마르지 않은 땅 안쪽이 질척거리며 신발에 엉겨붙었다. 벽에 손을 짚어 보았지만 진흙만 묻어나올 뿐 지탱할 만한 돌이나 나무뿌리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산속은 수줍은 해미에게 좋은 놀이터였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줄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단 한 명도.

아직은 해가 떠 있었지만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숲의 밤은 평지보다 더 일찍 찾아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한 시간 후 즈음에는 완전히 깜깜해 질 것이다. 다가올 어둠에 해미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렸다.

 

‘설마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는 걸까?’

 

적어도 그러지 않을 확률보단 높았다. 원래부터 사람이 없는 산인데, 해미는 지금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조난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그 누가 저녁 시간에 여기로 오겠는가. 그리고 이 산은 조난당하기에는 턱없이 낮았다. -뭣보다 진짜 조난객이 오면 그것대로 큰 문제가 아닌가.

… 무섭다. 정말로, 너무 무서웠다. 만약 서너 살만 더 나이가 많았다면 발돋움으로 금세 빠져나갔을 구덩이에서, 해미는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흐려졌다.

 

“우와! 여기에도 내 또래가 있었구나!”

 

그때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는 정의의 용사나 다름없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안도감에 눈물이 비져나왔다.

 

“어, 어? 왜 울고 있는 거야? 혹시 어디 아파?”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 또래의 아주 어린 아이였다. 남자애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아이가 해미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에 크게 당황하며 허우적댔다.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워, 해미는 씩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실수로 구덩이에 빠져버렸어요. 혹시 끌어올려 줄 수 있나요?”

“응, 아! 물론이지!”

 

아이는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길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가지는 별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해미를 지탱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부분 하나 없이 미끄러운 구덩이의 벽면을 밟고 올라가기는 꽤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있는 힘껏 끌어당겨 준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에 온 거야?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 놀다가-“

 

해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는 이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 쌍안경을 매만지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디 살아? 데려다 줄게.”

“아… 저, 괜찮아요. 전…”

“안 돼. 방금 전처럼 또 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는 뱀도 나온단 말이야.”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해미는 우물쭈물하며 기억하는 집 주소를 읊었다. 아이는 그걸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미가 놀라지 않도록 부드럽게 한 쪽 손을 꼭 잡았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 또래 남자아이와 손을 잡아 본 적 없던 해미는 그에도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손을 놓고 싶었지만 아이는 기어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에 땀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가 진짜 너네 집이야?”

“네.”

“집 진짜 크다! 부러워!”

 

으리으리한 전통 가옥에 우와아 입을 벌리고 감탄하던 아이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미련이 뚝뚝 남은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잠시만요!”

 

불러놓고도 해미는 아차했다. 불러서 도대체 뭘 어쩌려고 부른 건지. 커다란 눈동자에 담긴 은근한 기대감에 살짝 주춤한 해미는 곧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저기… 나중에 놀러와 주지 않을래요?”

“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곧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내일 보자!”

 

그리고는 등을 돌려 이번에는 신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작은 등을 바라보던 해미는 슬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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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2 일 전
* "우미가 놀라지 않도록 부드럽게" : 해미가… 맞죠? * 발단 부분에 등장하는 "유자"라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 "적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내훈과 만날 때까지 기억 속에서 해미는 늘 혼자였다." – 이와 같은 진술이 등장하는데 뒷 부분에 나오는 "자신 또래의 어린아이"와 다른 인물인 건 가요? * 강시현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작품을 올려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 작품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해미, 유자, 내훈, 자신 또래의 어린아이. 그런데 그 여러 인물들 중 해미와 해미를 구해준 어린 아이를 제외하고는 왜 등장하는지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네요. 처음 구상했던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늘 얘기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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