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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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폐건물 안. 있는 거라고는 허름한 탁자와 너덜너덜한 태극기가 전부인 곳에서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한 사내가 탁자 위에 사진 한 장을 던지듯이 내려 놓았다.

 

“이놈이 바로 수천명의 조선인을 일본으로 데려가 잔인하게 고문해 죽인 바로 그놈이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에서 사진을 향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에게 사진 속의 남자는 똑같은 방법으로 고문해 죽여도 시원찮을 악마 같은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원성이 점점 커지자 그 사내는 조용히 하라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쪽 조직 세력이 그들에게 노출되었다. 이놈이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이 땅을 밟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는 이놈을 지켜보면서 최후에 죽일 것이다.”

 

그리고 사내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 보다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그래, 장유한. 네가 그 사내의 감시를 맡아라”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많아봐야 17살 정도밖에 안 보이는 앳된 소년이었다. 어린 나이라면 두려울 법도 하건만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소년은 당당히 제 일을 맡겠다고 나섰다.

 

 

내 이름은 미치코. 일본 경찰인 아빠가 조선으로 발령이 나서 아빠를 따라 온 가족이 조선으로 왔다. 아빠 말로는 지금 대일본제국의 도움으로 조선이 발전되어 간다고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럼 그 조선인들은 그냥 놔두면 안 돼요? 왜 굳이 아빠가 조선에 와서까지 수고를 해야 하죠?”

 

“미치코, 너 같으면 길거리에 불쌍한 거지를 보면 동전을 넣어주고 싶지 않겠니? 우리 대일본제국의 문명으로 조선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킨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겠지”

 

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 않아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도대체 이 나라는 왜 발전을 거부하는지…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또한 빈곤하고 지쳐 보였다. 일본의 도움을 정말 하나도 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제가 다닐 학교는 어떤 곳이죠?”

 

“조선에서 설립된 학교라고는 하는데…그곳에서도 일단 일본 사상을 가르치고 있으니 너와의 의사소통에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다. 선생들이야 일본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니 너에게 일본어로 얘기해 줄 것이고, 아이들이 일본어를 잘 못한다면 네가 가르쳐 주렴.”

 

“하아…노력은 해볼게요”

 

아마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밖의 사람들만 봐도 교육이라고는 하나도 안 받았을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이라고 뭐 다르겠는가…아마 진화한 원숭이와 대화하는 느낌이 날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말한 것처럼 조선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완화 시키려면 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곳은 지옥처럼 바뀔 수 있으니까…

◆◆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공부하게 될 미치코라고 한다.”

 

아빠 말로는 선생은 일본어를 쓸 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 또한 이 아이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일본어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

 

“왜 그러니?”

 

“아이들 앞에서도 일본어로 얘기해 주시죠. 이래서야 아이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겠어요?”

 

순간 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도대체 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에게 일본어를 쓰라고 한 게 그렇게 짜증나? 도대체 이곳의 정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짜증이 나 그대로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 나를 보고는 선생은 문제아로 낙인 찍었는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조선인 선생. 선생이면 제발 해야 할 의무라도 제대로 하지? 일본어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내가 뭐라고 한 것에 대해 싫은 표정을 내비치는 꼴이라니…게다가 날 문제아로 낙인 찍었나 본데, 당신이 틀렸어. 내가 문제아가 아니라 당신이 문제인 거야’

 

결국 그날 하루는 정말 엉망이었다. 선생을 따르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날 투명인간 취급했고, 선생조차 날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내 충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조선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게다가 몇몇 아이들은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째려 보았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섞인 그 시선을 끝까지 받아 낼 수 없었기에 일부러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 했다.

 

“잘 왔니? 미치코? 오늘 학교는 어땠어?”

 

“하아…정말 엉망이었어요. 선생은 계속해서 조선어를 쓰고, 아이들은 계속 날 벌레 보듯이 쳐다봤어요. 조선인은 다 이런 건가요? 난 이 곳이 정말 싫어요”

 

그러자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서든 잘 적응하고 당당했던 아이가 그런 일을 겪었다니…엄마는 날 꼭 안아줬다.

 

“미안해 미치코….엄마가 좀 더 잘 알아 봤어야 했는데…”

 

엄마의 음성에 울음기가 묻어났다. 순간 아차 싶었던 나는 얼른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엄마. 제가 이 학교를 바꿔놓으면 되죠. 일본어를 가르쳐 주면 다들 좋아할 거에요”

 

“그러니?”

 

그렇게 씩씩하게 말하고는 내 방으로 올라왔다. 기운이 없어서 침대 위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엄마한테 말한 것처럼 일본어를 가르쳐 준다 해도 일단 아이들과의 교우 관계를 어느 정도 형성해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작정 일본어로 얘기하면 그 속에서 나는 완전한 이방인밖에 되지 않는다.

 

‘뭐가 문제였을까? 선생도 아이들도…내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오늘 한 일 중에 잘못한 것은 단 한 부분도 없었다.

 

‘설마….’

 

조선에 처음 왔을 때 내가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빈부격차’였다. 그 단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아마 내가 너무 부유해 보였나 보다.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내 옷과는 다르게 선생과 아이들의 옷은 여기저기 해지고 꿰멘 자국 또한 많이 나 있었다.

 

 

게다가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아빠가 매일 차로 학교를 데려가 주신다. 그게 더 아이들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나는 아빠께 더 이상 차로 학교를 데려다 주지 말라고 부탁 드렸다. 아빠는 아직 너무 위험하다며 나를 만류했지만 내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최대한 허름한 옷을 골랐다. 모양새는 빠지지만 아이들과의 괴리감을 조금이나마 좁혀줄 것이었다.

 

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잠이 들었다.

 

◆◆◆

 

내 옷차림은 소용이 없었다. 오늘도 분위기는 똑같았고, 나는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학교가 끝나고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 누군가에게 뒷덜미를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보니 아까 반에서 나를 계속해서 째려보던 아이들이었다.

 

“선생에게 일본어를 쓰라고 얘기 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일본어를 썼다. 하지만 그 말을 안 듣는 편이 나았다. 나를 욕하는 말이었으니까….

 

“네가…네가 뭘 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여!”

 

“네가 절망이라는 걸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너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분이 넌 어떤지 모르지?”

 

듣자하니 짜증이 나서 바로 그 말을 받아쳤다.

 

“왜 이래? 우리는 미개한 너네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미련하게 도움을 거부하고 있는 건 바로 너희고!”

 

짜악-

 

한 여자아이의 손바닥이 내 뺨으로 날아왔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 일 정도로 세게 맞았다. 그리고는 내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 붙였다.

 

“지금 도움이라고 했냐?”

 

“이, 이거 놔!”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지. 강화도 조약을 맺어 너네 일본에게 유리하게 조항을 쓰고, 우리나라의 쌀을 헐값에 팔아 넘기고, 우리나라의 남자들을 강제로 노동에 끌려가게 하고, 우리나라 여자들을 강제로 데려가…너네 즐거움을 채우는….그런 짐승 같은 짓이 너네가 준 도움이야?”

 

할 말이 없었다. 왜 이러지? 그게 아니잖아…왜 잘못 알고 있어? 분명히 우리는 도움을 줬단 말이야

 

“너네 아버지가 경찰이라고? 그럼 이것도 얘기해주지. 너네 아버지가 하는 일이 뭔지 알아? 바로 우리들을 잡아다 고문하는 거야. 생살을 찢어 갈기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고, 손발톱을 뽑고, 가죽을 생으로 벗겨내는!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작자가 바로 네 아비라고! 존경해 마다않는 아버지가 이런 건 말 안 해 주디?”

 

“…….”

 

“퇴근할 때는 아마 가끔씩 네 선물 사주겠지. 근데 그거 알아? 선물을 건네주던 손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어있다는 걸!”

 

말을 내뱉을 때마다 그 여자아이의 표정은 점점 아프게 변해갔다. 마치 억압된 노예여서 서러운….서럽고 아픈 감정이 얼굴 곳곳에 녹아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네 아비는 도움이라 칭하는가 보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 안 해줬나? 아~딸한테는 이런 야만적인 걸 얘기 안 하겠지. 왜냐고? 자기 자신조차 이게 야만적인 짓이라는 걸 아니까!”

 

“내 아빠를 욕하지 마!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니셔!”

 

그러자 그 여자아이는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서 내게 조소 어린 말 한 마디를 날렸다.

 

“그럼 네가 직접 물어 봐. 아빠가 진정으로 하는 일이 도대체 뭔지! 뭔데 내게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지! 내가 직접 봐야겠다고! 그렇게 말해 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는 듯 확신이 차 있었다. 이상하게 납득이 갈 정도로…..

 

“아마 너네 아버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실 거야. 너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겠지 설마 딸한테 그 야만적인 짓을 생생하게 얘기해 주겠어?”

 

확신에 찬 그 얼굴을 망가트려 주고 싶었는데….내가 겪는 상황과 똑같았다. 언제나 아빠가 하는 일을 물어보면 부모님 둘 다 대명사로 둘러대기 바쁠 뿐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 아이의 표정이 희열에 가득 찼다. 어떻게…어떻게 그런 표정을 짓지? 나는 지금 가치관이 무너져 혼란스러운데 너는 왜 그런 사람 앞에서 희열감을 느껴? 아이들이 둘러싸면서 내게 조소를 날렸다. 할 수만 있다면 저 표정들을 바꿔놓고 싶었다. 틀렸다는 걸 증명해서…저 얼굴들이 틀렸다는 충격으로 일그러지게…

 

그렇게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조소를 다 받아내던 참이었다.

 

“그만 둬.”

 

차분한 음성 하나가 무리 사이로 끼어 들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남자아이 한 명이었다. 별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은데 말 한 마디에 모두 다 내게서 물러났다.

 

“….많이 다쳤네”

 

조선어를 쓰고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를 옹호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아이들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

 

“야, 너 미쳤어?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애를 불쌍히 여길 수가 있어?”

 

“지금 얘 꼴을 봐. 국적을 떠나서 누가 봐도 처량하잖아”

 

“하, 너 지금 처량하다는 말을 이 아이에게 쓴 거야? 지금 네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처량한 건 얘가 아니라 우리나라야! 알아?”

 

“알고 있어. 독립을 원하는 데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얘를 동정해?”

 

“너희들. 일본이 저지르는 무력을 싫어하잖아”

 

“……..”

 

한참을 핑퐁처럼 주고받던 대화가 말 한 마디에 뚝 끊겨 버렸다. 조선어라서 모를 뿐이니 답답할 뿐이었다.

 

“일본이 저지르는 무력이나, 너네가 얘한테 저지르는 무력이 다른 점이 뭔데? 적어도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어야지 되지 않겠어?”

 

“…알았어. 얘는 네가 데려가서 치료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대화가 끝나자마자 그 남자아이는 내 손목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이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는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고, 몸은 피곤했다.

 

“괜찮아? 집에 가서 볼에 연고 바르면 나아질 거야”

 

이상한 아이였다. 보통은 일본인을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나를 잘 대해준다. 도대체 왜지?

 

“저기….고마워”

 

“고마워 할 것 없어. 그저 폭력이 싫어서 도와준 것 뿐이니까…”

 

뭐지? 평화 주의자인가? 그렇다면 내겐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그나마 얘만은 내게 폭력을 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까는 정말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무력 또한 거침없이 행해져서 더 이상 어떤 짓을 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에….

 

“아까 그 아이들 말은 흘려듣고 싶어도 꼭 새겨 듣도록 해. 그리고 아빠한테 물어 봐. 도대체 조선에 와서 뭘 하시는지…”

 

“그런데…..”

 

말을 하려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불안해졌다.

 

만약에 아빠가 정말 그런 사람이면 어떡해?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해?

 

아빠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해?

 

과연….행복했던 내 가족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들이 내 심장에 너무 아프게 박혀 들었다. 그 물음들은 전부 다 끝이 안 좋은 것들이었고, 그 물음들이 정말 사실이라면…..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다.

 

제아무리 잔인한 인간일지라도 가족에게는 따뜻한 법이랬다.

 

아마 아빠는 내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어쩔 수 없이 그 일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빠를 태연히 웃으며 품을 수 없었다. 가족의 잘못을 덮을 만큼 내 정신은 강하지 않았다.

 

만약 태연하게 아빠를 대한다 해도, 그건 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아빠를 향한 경멸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겠지…

 

“만약에….너네 아버지가 정말 그런 사람이면 어떡할 거야?”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그저 모든 게 다 서러웠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데 그 질문은 내가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도….나도 모르겠어 흐윽….만약에 아빠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아빠를 대해야 하지?”

 

그러자 그 아이는 바로 정답을 내놓았다.

 

“사람마다 극복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어, 그런데 나는 네가 그런 아버지를 더 이상 엇나가지 않게 바로 잡아주기를 바래. 그래야지 더 고통 받지 않을 테니까….”

 

“뭐?”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사람은…..과연 마음이 편할까? 겉으로는 잔인한 사람이라고 묘사 되지만 하루 종일 피와 뜯긴 살점, 사람들의 고통어린 비명소리가 생각나서 잠도 편히 못 잘 거야. 아마 악몽도 자주 꾸겠지. 고문 받는 사람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빠가 침대에서 편히 늘어져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늘 불안한 사람처럼 왔다갔다 거리면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다녔다. 또한 엄마가 내게 침대에 늘어져 있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빠는 이런 게 좋은 거라고, 마음이 편한 증세라며 엄마를 말렸다.

 

그때 왜 나는 아빠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거였는데….

 

“그러니까…..너네 아버지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네가 바로 잡아줘야 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괴물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그 말 한 마디가 멍한 내 정신을 깨우는 기분이었다. 괴물이라니….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도 계속 받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거든, 아마 나중에 그는 남의 고통에 무관심할 지도 몰라.”

 

사실이었다. 옛날에 아빠께서 잔인하게 생긴 그림을 한 점 구해오신 적이 있었다. 어릴 때는 그게 뭔가 흉물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져갔다. 아빠도 그랬을까?

 

복잡한 생각을 하던 어느새 나는 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집 문을 연 나를 보고 부모님은 뭐라고 얘기하실까? 여기저기 긁힌 생채기들이 가득 나 있는 딸을 보고 가만히 안아 주실까? 아니면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으실까?

 

“그럼….잘 들어가”

 

“저, 저기”

 

내 말에 그 남자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너무 외로워서 그랬을까?

 

“내가 만약 아빠를 설득하지 못하더라도….그래서 아이들에게 일본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해도”

 

내 곁에 있어줄래?”

 

그러자 그 남자아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뒷모습이 기운 없어 보였던 건 왜일까?

 

◆◆◆◆

 

“…..다녀 왔습니다”

 

“어서 오….미치코!”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나를 구석구석 살폈다. 나를 살피는 그 눈길에는 온갖 걱정들이 어려 있었다. 신문을 읽던 아빠는 토끼눈으로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어 버렸다.

 

“엄마….나 괜찮아요. 그냥….그냥 긁힌 것 뿐이에요”

 

“긁힌 것 뿐이긴! 누가 봐도 때린 거잖니! 여기 멍도 있네!”

 

“괜찮다니까요….방에 들어가서 쉬면 나아질 거에요”

 

방에 들어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쓰러졌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심하게 꼬여버려 아무리 꼬인 걸 풀어보려고 해도 또 새롭게 꼬여 버리는 그런 실타래를 만난 기분이었다.

 

“미치코가 대체 어디서 다쳤을까?”

 

“멍청하긴! 당신 정말 몰라서 그래요?”

 

“당신은 알고 있어서 그래?”

 

“여기 조선인들 분위기만 봐도 그렇죠, 우리를 완전 싫어하잖아요. 일본이이라는 이유로!”

 

“그럼….”

 

“맞아요! 미치코라고 그런 분위기를 피해갈 줄 알았나요? 아마 조선인들이 때렸을걸? 데리러 오는 차도 없겠다! 보호막이 걷어졌으니 이때다 싶어서 끌고 갔겠죠! 애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저항을 하겠어요?”

 

“이런….조선인 놈들….”

 

“난 모르겠어요. 어차피 미치코의 전학 문제는 당신의 발령 유무에 따라 결론이 날 테니까…..당신이 미치코를 설득 해 봐요. 발령일을 얘기 하면서”

 

나를 주제로 한 대화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오갔다. 급기야는 조선인을 욕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순간 두 귀를 꼭 틀어막았다. 악몽을 현실화 시키고 싶지 않아서….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아빠는 누워 있는 내 옆에 와서 물었다.

 

“미치코….아빠한테 말해보렴. 조선인들이 널 때렸니?”

 

“……”

 

아빠. 제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문제의 원인에 대해 물어봐 주세요. 그 아이들이 절 왜 때렸을까요? 무엇이 그 아이들을 그렇게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했을까요?

 

내가 대답이 없자 아빠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내게 물었다.

 

“미치코….널 때린 놈들을 어떻게 해줄까? 말해보렴. 아빠가 처리해 줄테니”

 

하지만 질문을 바꿔도 여전히 원인과는 동떨어진 질문이었다.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해보면 ‘그 아이들이 널 왜 때렸니?’라는 질문이 손쉽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아빠는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게 당한 것처럼 똑같이 해줄까? 아니면 아빠가 그 아이들을 괴롭게 만들어 줄까?”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건 아빠의 그 행동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내 질문에 아빠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당황한 아빠는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최대한 언어를 순화해서 말했지만 결국은 고문하겠다는 소리잖아요….”

 

나는 아빠에게 은근슬쩍 그물을 쳐 놓았다. 곤란한 질문으로 살짝 떠봄으로써 맞는지 아닌지 확신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미개한 놈들을 그냥 놔둘 수 있겠니?”

 

아빠의 대답은 악몽 같은 상상을 기어이 현실로 끄집어 내고야 말았다.

 

“미치코….네가 알고 싶어했지? 아빠가 정말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순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 아이들의 말이 맞았다. 아빠는 괴물이었던 거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아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는….그런 사람들을 고문한 것이다.

 

단지 그들이 우리보다 미개하다는 이유로…

 

대일본제국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어를 못 쓴다는 이유로…

 

도움이라는 단어 아래서 온갖 잔인한 짓을 저질러 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도움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렀던 행위기 때문에…

 

“아빠는 대일본제국의 도움을 방해하는 놈들을 잡아서 고통을 주는 일을 해. 왜냐고? 그래야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는 길이니까”

 

아니에요 아빠……진정으로 위대한 대일본제국이라면 이런 잔인한 짓을 정당화 시키지 않고 진짜 도움을 주려고 했을 거에요. 우리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짓밟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줬을 거라구요.

 

“우리의 도움을 거부하고 짓밟는 그놈들에게 아빠가 어떤 응징을 해야 할까? 답은 고문밖에 없어 알아?”

 

 

“크큭”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빠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까? 자신이 그저 허울 좋은 소리를 내뱉는다는 걸….자각하고 있을까?

 

“아빠…그 아이들이 날 왜 때렸을 것 같아요?”

 

“뭐?”

 

“아빠가 말하는 건 그거잖아요. 도움을 거절해서 그것에 분노한 나머지 고문을 한다”

 

“미치….”

 

“아빠, 아이들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야만적인 행위를 우리 일본은 도움이라 청하는 모양이녜요”

 

“뭐?”

 

“이들이 도움 받기를 거부하면 도움을 안 줘도 되잖아요. 왜 굳이 도움을 거절 당하고 화풀이해서 악순환을 낳는 거죠?”

 

아빠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마 나처럼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아빠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일을 그만 두세요. 제발”

 

아빠는 듣기 싫다며 결국 화를 냈고, 내 방을 나가려 했다. 아빠가 나가려 하는 직전에 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함을 담아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아빠 그렇게 살아가는 거….스스로도 힘들지 않아요?”

 

아빠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방문을 거칠게 열어 젖히고 나가 버렸다. 내 말이 아빠에게 설득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

 

그날이 지난 후. 아빠와 나는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날이 더운 8월인지라 서로 신경이 더 예민해져서 한번 툭 하고 건드리면 바로 깨져버릴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우리 집안에서 맴돌았다.

 

“미치코! 아빠랑 사이가 왜 그래?”

 

보다못한 엄마가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엄마가 한 번 더 소리치려고 하자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있잖아요….나는 아빠가 너무 무서워요

 

언제는 나를 고문하는 악몽도 꿨어요

 

물론 알죠. 아빠는 저를 사랑하시고,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택하신 거라는 걸.

 

하지만 옛날에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지금도 어쩔 수가 없나요?

 

과연 지금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요?

 

만약에….그렇다면 엄마가 아빠를 말려 주세요

 

아빠가 정말 괴물이 되어 버리기 전에

 

더 이상 아빠가 악몽을 꾸는 안쓰러운 사람으로 머무르지 못하도록

 

엄마가 제발 도와 주세요

 

그날 저녁. 아빠가 돌아 오시고 엄마는 살얼음 같은 분위기를 견뎌낼 수 없다며 둘이 같이 나가서 대화로 풀라고 했다. 나랑 아빠는 저녁 노을을 보며 걸었다.

 

“아빠….내 말 잘 생각해 봤어요?”

 

“생각은 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네? 왜요?”

 

“미치코, 대일본제국에서 내린 명령이고, 그 명령은 언제나 옳은 것이라고 여겨왔다. 오로지 규율과 철칙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고, 나는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완수했다. 이런 내가 나는 자랑스러운데 왜 너는 아빠를 그저 잔인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니?”

 

“그렇지만….”

 

“긍지를 가지렴. 미치코. 대일본제국의 명은 언제나 옳으며, 그것에 대한 잘못은 전혀 없다”

 

전혀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내가 곁에 남아 달라고 부탁했던 남자아이가 보였다. 비록 약간 먼 거리였지만 저녁이라서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눈에 띄기 쉬웠고, 내 기억에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우리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약간 먼 거리였긴 했지만 아빠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 없었다.

 

탕-!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일까?

 

나는 총소리가 울리자마자 아빠를 밀쳐냈다. 곧이어 내 몸 안에 무언가가 파고 드는 게 느껴졌다. 하필 갈비뼈 쪽으로 맞아서 숨을 쉬는 게 아팠다.

 

그 남자아이는 이미 도망가 버리고 없었다. 내 죽음을 보는 게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내가 아빠를 밀쳐낸 걸 보고는 아빠를 죽일 마음이 없었는지 고맙게 사라져 주었다.

 

“미….미치코!”

 

“아빠….”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때문에 아빠한테 하고싶은 말도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늦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전해본다.

 

아빠, 주어진 임무만을 수행하며 삶을 사는 게 행복했나요?

 

혹시 너무 견디기 버겁지는 않았나요?

 

너무 두려워서 숨고 싶진 않았나요?

 

아빠가 맨날 그랬잖아요…위대한 대일본제국이라고

 

지금 제 눈에는 위대하지 않고 오히려 초라해 보여요.

 

그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움’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숨으려는….그런 초라한 제국 말이에요

 

아빠.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그렇게 잘못을 숨기지 않고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더 이상 그렇게 초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아빠도….더 이상 힘겨운 삶은 버텨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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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22 시 전
* "조선어라서 모를 뿐이니 답답할 뿐이었다." – "조선어를 모르니 답답할 뿐이었다." * "내 말이 아빠에게 설득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 "내 말에 아빠가 설득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 잘 읽었습니다. 삼월에 어울리는 소설이네요.^^ 이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이 중요한 소설 같아요.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견고한 세계가 미치코의 내면에서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소설이 3인칭 소설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미치코의 내면을 그리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를테면 "말을 하려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불안해졌다."와 같은 문장을 "미치코는 뭔가 말하려다가 입술을…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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