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충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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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것은 내 취미가 아니야.” 그녀가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는 것처럼 작은 입으로 밥을 삼키며 내게 한 말이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붉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다니던 그 모습, 구릿빛 피부와 나풀나풀 걸을 때마다 살며시 보이는 허벅지와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날개뼈,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 정말 순수하게 그녀를 좋아 해서 설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감정, 그 자체, 그러니까 내 또래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나도 느끼고 있다는 동질감에 설레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헷갈린다. 결론은 그것이 지금 나와 그녀 둘에게 위태롭게 연결된 수많은 선 사이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그녀에 대한 그 때의 설레임만이 내 안에 남아있었으면 지금 보다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더 이상 그녀의 구릿빛 피부가 새롭지 않고 날개뼈는 내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그녀가 내 모든 것을 지배 했을 때 꿈 속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별이 되는 기분을 아냐고 내게 물었다. 난 별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그 기분을 항상 느낀다고 답했다. 그 땐 그랬다.

 

가게를 나서 별과 해와 달이 없는 어두컴컴하고 텅 빈 하늘 아래서 가로수와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산책로를 걷는다. 가게 음식에 대해, 서빙하던 알바생에 대해, 어제 학교에서 일에 대해 그리고 뭐였더라? 하여튼 그녀는 나에게 여러 가지를 말하고 난 그래그래 하면서 그녀의 말들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그녀는 뜬금없이 매미 이야기를 꺼낸다.

 

“매미는 7년을 빛도 보지 못하면서 땅속에서 세상에 나와 노래 부르는 상상만 한데. 성충이 된 그 주에는 매미는 신나서 노래도 하고 여러 나무를 둘러보지만 그 뒤에 시간이 갈수록 세상에 싫증이 나서 의미 없이 소리만 지르다가 결국 죽어 버린데.”

 

“그래”

 

나름 재밌는 이야기지만 그녀와 대화하기엔 피곤해서 나는 말을 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대답하기도 귀찮아져서 그냥 그녀의 말을 들으며 걷는다. 공원에서 동쪽으로 5 걸음, 왼쪽으로 꺽은 뒤에 87걸음을 걸으면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다. 그녀는 자동응답기처럼 헤어질 때면 항상 내게 같은 말을 한다.

 

“넌 나쁜 놈이야”

 

“그래”

 

“넌 나쁜 놈이야”

 

“그래”

 

“개새끼…”

 

“…”

 

나도 그녀처럼 항상 같은 말을 한다. 그녀가 주저 않아 운다. 그녀는 나를 만나는 날이면 항상 눈물을 흘린다. 그럼 내 반응은 한결같다, 난 주저 앉은 그녀를 일으켜 안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죽어버린 단어만 반복한다.

 

 

 

 

“나 그만 갈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는 뒷모습만 보여주며 가버린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기도 전에 등을 돌려 내 갈 길을 간다. 항상 같은 레파토리이다. 누군가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나에게는 지루하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온 욕설 또한 익숙해져서 크게 충격을 주지 않는다. 난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그녀를 대려다주는 건 항상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이 관계를 유지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참고 그녀를 집까지 대려다 주는 수밖에 없다. 처음엔 이것도 재밌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난 그녀가 해준 매미이야기를 떠올리며 집으로 간다.

 

사방이 벽으로 막히고 시계조차 없어 시간의 개념이 없는 방에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눈을 뜨지 않는다. 그녀를 만난 뒤부터 쉬는 날이면 침대에 시체처럼 아무생각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잠은 죽음의 예행연습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난 그 누구보다 죽음을 내 하루 일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비우고 누워있으면 당연하게 잠에 빠진다. 그와 만나는 시간이다. 텅 빈 하얀 방, 누런 내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는 장소이다.

 

“별이 되어 본적 있어?”

 

어느 순간 내 앞에 나타난 그가 의자에 앉아 나와 마주보며 말을 꺼냈다.

 

“아니. 하지만 그 기분은 지금도 느끼고 있어.”

 

“거짓말 하지마. 난 누구보다 너를 잘 아는걸.”

 

“그래 니가 맞을 지도, 난 이미 별일지도 몰라. 별의 기분을 잊었거든”

 

오늘도 어김없이 난 침대 속에 잠에 들었다가 그녀의 문자 소리에 일어난다. 문자 내용은 늘 비슷하다. ‘오늘 만나자’ 평소와 같다면 난 약속시간 30분전까지 이불 속에 있다가 바닥에 널린 옷을 대충 주서 입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평소였으면 10분 이내로 끝냈을 샤워를 평소에 신경 쓰지도 않았던 부위까지 깨끗이 샤워하고 너저분한 수염도 말끔히 정리한다. 평소 그녀를 만날 때와는 다르게 사람처럼 꾸미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추적추적 시원하게 내리는 비, 하늘을 거의 덮은 먹구름은 햇빛을 가리고 작은 틈에서만 선선한 푸른 빛이 내린다. 난 기분 좋게 길을 나선다. 마치 내가 시시가미가 된 것처럼 생명력을 억제하지 못하고 내가 발자국이 닿은 보도블럭에 하나하나에 이름 모를 수많은 새싹들이 돋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두꺼운 시멘트로 세워진 건물로 들어가 그녀의 문 앞에 서서 익숙하게 도어락의 비밀번호 4자리를 입력한다.

 

“왔어?”

 

침대 옆에 베란다에서 푸른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방에서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차림의 그녀가 나를 맞이한다. 습도의 끈적함 잊은 채 그녀에게 안긴다.

 

우리는 그 어떠한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바로 입을 맞추고 몸을 섞는다. 그녀가 내 위에 올라와 허리를 흔든다. 이 행위에 대해서 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의 위대함, 애인과의 정신적 교감 같은 의미 있는 뜻을 품은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번개가 순간 내 머리로 떨어지는 듯한 찰나의 쾌락, 그것이 목적이고 전부이다. 내가 그녀를 채울 수 록 나도 채워진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투명한 물에 강렬한 붉은 물감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난 매미의 유충처럼 그녀와 밥을 먹거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그 어떤 지루한 과정을 참아 낼 수 있었다. 처음 그녀를 사랑했을 때는 나에게도 이건 사랑의 과정 속에서 성장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점검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이 순간이 모든 귀찮은 연애의 과정들의 목적되었다. 관계를 맺을 때 보이던 그녀의 얼굴과 날개뼈, 허리에서 골반까지 이어지는 곡선, 몸짓하나하나가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한다. 내 몸의 감각만은 몇 배로 증폭되어 청색의 방에서 이 ‘행위’ 자체에만 집중한다. 욕망을 채운 나는 황홀함에 젖어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잠시 침대에 눕는다.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아직도 방을 차갑고 낯설게 만든다. 숨을 고른 뒤에 번데기 껍질 같이 널브러진 옷을 입는다.

 

“가지마.”

 

그녀가 내 뒤에서 나를 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입고 문을 나선다. 건물의 복도를 걷고 있던 나를 이불을 돌돌 말아 몸을 대충 가린 그녀가 나를 불러 세운다.

 

“착,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내게 다가온 그녀는 내 오른쪽 뺨을 힘껏 때리고 왔던 길을 따라 가버린다. 얼얼한 뺨을 어루만진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만나고 바다에 못간지 꽤 오래된 거 같다. 어릴 때부터 난 집 앞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는 하늘과 비교해도 전혀 작지 않았었다. 난 그런 바다가 좋았다. 나를 깨워 주던 알람이기도 하고 학교가 끝난 뒤 나와 친구들을 놀아주던 동네 형이기도 했으며, 항상 신선한 재료들을 밥상에 올려주던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근데 그녀가 바다 비린내를 싫어한다는 그 사소한 이유와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다를 포기했었다. 이참에 바다에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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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 18 시 전
* "그녀가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는 것처럼 작은 입으로 밥을 삼키며 내게 한 말이다." – "그녀가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의 입처럼 작은 입으로 밥을 삼키며 내게 한 말이다," :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특히 조사)를 연거푸 쓰는 것보다는 어떻게하면 그렇게 쓰지 않을지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 "나풀나풀 걸을 때마다 살며시 보이는 허벅지와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날개뼈" – "걸을 때마다 나풀거리는 치마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와 팔을 저으면 함께 움직이는 날개뼈" * "지금 나와 그녀 둘에게 위태롭게 연결된 수많은 선 사이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지금 나와 그녀, 우리 사이에 위태롭게 연결된 수많은 선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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