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 / 윤이형 "쿤의 여행"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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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을 뜯어냈다. 말 그대로, 뜯어냈다. 길고 힘든 수술이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내게 붙은 쿤은 내가 자랄 모습으로 자라났다.”

 

윤이형 작가의 단편 '쿤의 여행' 의 첫 문장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쿤이 대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쿤은 뭘까? 도대체 뭐길래 길고 힘든 수술까지 하며 떼어내야만 하는 걸까?

 

이 쿤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단순한 종양 비스무리 한 것은 아니다. 쿤은 작품 내에서 곤약같은 회백색 덩어리에서 다 자라자 마흔살 여자의 모습으로 굳었다고 묘사되는데, 제거수술을 받기 전 발버둥치며 저항하고, 슬퍼하며, 제 머리를 쥐어뜯는다. 사람과 비슷하나 사람은 아닌, 그런 종류의 무언가이다.

 

서술자는 말한다. “나는 팔로 쿤의 목을 감고, 두 다리를 쿤의 옆구리에 바싹 붙여 업힌 자세로 그녀와 한 몸이 되어 살아왔다.” 고.

 

결국 쿤은 서술자의 몸에서 분리된다. 쿤 없이 혼자 분리되어 남은 그녀는 처음 쿤을 만난 모습이었던 열다섯의 그녀로 돌아간다. 쿤은 그녀 대신 먹고, 걷고, 추해지며 자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쿤 없이 행동하려니 모든 것이 어색하다. 수술과 재활 치료가 끝난 후 쿤의 모습 대신 열다섯의 모습으로 마주한 그녀의 딸은 그녀를 보고 당혹스러워 한다. 어떻게 해줄 방도가 없어, 그녀는 딸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딸, 미안해. 엄마가 자랄게, 얼른 자랄게.”

 

쿤을 떼어낸 후 실수 투성이인 집안일, 낯선 딸아이의 눈길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잡고 달라지기 위해, 자라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어쩌면 제목에서 암시했던, 여행의 시작이다.

 

서술자는 먼저 그녀의 어머니가 안치된 납골당을 찾는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였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러나 쿤이 챙겼던 엄마의 생일. 쿤이 보았던 엄마의 유해가 수습되는 모습. 그 어디에서도 그녀가 주체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쿤의 등 뒤에서 안부를 전하는 말 몇마디를 건넬 뿐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자신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몇번 찍고서는, 제일 잘 나온 사진을 테이프로 붙이고선 작별 인사를 한다.

 

“엄마 안녕. 곧 다시 올게요.”

 

그녀는 분식집에 가서 중학생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한때 그녀와 다름없이 쿤을 가진 연인이었던 C와 재회하기도 한다. C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면서, 그녀의 쿤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녀는 쿤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말하면서, 넌지시 그에게 너도 쿤을 떼어낸 것이냐고 묻는다. C는 그것을 부정하며, 그냥 하고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몇해 전 그의 몸과 쿤이 자연스럽게 너덜너덜해지며 떼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라나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지만 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내가 어른이 돼야 하는거야? 그런데 그 뒤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이 쑥쑥 커지기 시작했어. 난 정말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저 하고싶은 일을 했다던 C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한때 다녔던 대학을 찾아가 당시 바쁨을 이유로 입회하지 못했던 연극 동아리에 찾아가서 연기를 배운다. 연극부에 있던 학생은 그녀에게 무엇이든 되고싶은 것이 되어보라고 말 하지만,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해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런 그녀에게 학생은 말한다.

 

“그런 곳을 상상해.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을. 그리고 거기서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해. 내 자신이 죽도록 싫어지면 난 그렇개 해. 달리다 보면 반대편의 장소가 떠올라. 내가 되고싶었던 내가,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져.”

 

그녀는 학생의 말을 듣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녀는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 어린 시절 평생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때리고, 욕지기를 내 뱉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어선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덩치가 커다란 쿤이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강연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정신적인 지주, 스승이었지만 모녀를 폭행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쿤에 눌려서 힘겨운 숨을 내쉬고 있었으며, 곧 쿤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동시에 사망한다.

 

“쿤을 뜯어냈다. 길고 힘든 수술이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버지의 쿤은 그가 자랄 모습으로 자랐고, 이제 그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 그녀는 흙속에 묻힌 아버지에게 가만히 읊조리며 서사는 마무리된다.

 

“괜찮아요, 자라지 않아도.”

 

그래서, 도대체 쿤은 무엇인가?

 

작품 내에서 쿤을 정의하자면, 사람의 몸에 기생해 그 사람 대신 자라나는 회백색의 물체. 정도다.

 

그러나 쿤은 모두에게 기생하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의 이면 사이에서 견딜 수 없었던 서술자. 밖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던 서술자의 아버지. 또한 쿤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간 C에게는 오히려 쿤이 떨어져 나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나는 항상 집 밖의 나와 집 안의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나, 밖에서 무언갈 할 때에는 굉장히 활기찬 편인데, 뭐랄까. 집에만 들어오면 항상 축 늘어지고 사람이 매우 감성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쿤 또한 마찬가지다. 쿤은 SF의 한 종류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소설 내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질병 또는 생명체 그 자체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결국 쿤이라는 것은 낯설고 어색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나의 두번째 자아, 내가 되고싶지 않았던 모습의 나, 결론적으로 진정한 내가 아닌 나 가 아닐까 싶다.

 

C는 커가면서 진정한 자신의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보여야 하는 자신의 자아가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쿤이 자연스럽게 떼어졌고, 서술자는 정신차리고 보니 너무도 달라진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부정하며 쿤을 억지로 수술하여 떼어낸 후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했다. 그렇다면 서술자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보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갇혀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내내 펼쳐지는 것은 쿤이 떼어지고 난 뒤의 서술자의 여행이었는데, 제목은 왜 쿤의 여행일까. 쿤의 여행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서술자는 자신이 삶의 주체가 아니었던, 그동안 쿤으로 살아온 여행을 마치고, 진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이는 그녀의 여행이 아니다. 그녀의 현실이자 그녀의 진정한 삶인 것이다. 여행은 이미 끝났다. 쿤과 함께한 세월들, 쿤 속에 감추어 살았던 그 때가 그녀의, 쿤의 여행이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서술자는 잠시 도서관에 있는 꿈을 꾸는데, 그곳에는 쿤을 떼어내는 방법이 적힌 책이 있다. 그 방법은, 이렇다.

 

“거울을 볼 것.”

 

모든 것을 웃는 얼굴로 응대해야 하는 상담원, 상사의 부조리에 화 한번 내지 못하고 가만히 일해야 하는 회사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군인, 내가 아닌 나. 사회속의 나.

 

우리의 쿤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쿤이 나였는지, 내가 쿤이였는지는 정확히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내 자신을 확인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삶은 내가 주체가 되는가. 현실의 압박 때문에 그것이 나를 좀먹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방황하는 정체성의 사이에서 자라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안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요, 자라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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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 17 시 전
트수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 저도 무척 좋아하는데, 이렇게 트수님의 감상‧비평으로 만나게 되니 더 기쁘네요. 그럼 퇴고 시 참고할 두 가지 정도의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1) 단어 사용 및 문장 서술에 많이 신경 쓰기 트수님의 글은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몇몇 단어와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지는데요. 예를 조금 들어보겠습니다. ○ “이 쿤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단순한 종양 비스무리 한 것은 아니다.” → ‘비스무리’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표준어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 “그녀는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 어린 시절 평생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때리고, 욕지기를 내 뱉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어선다.” →…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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