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소닉-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든 악동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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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대형 밴드 오아시스의 초기 3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1124일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상영관이 많지 않고 상영 일수도 길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감상 후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 원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먼 곳으로 지하철을 갈아타면서까지 이 영화를 보러 갈 정도로,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간절했고,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했다. <슈퍼소닉>을 보며 나는 그전까지는 몰랐던 오아시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3년 만에 신인에서 록계의 거인으로 거듭난 밴드죠.

 

<슈퍼소닉> 예고편의 첫 서두이다. 이를 보면 이 영화가 마치 오아시스의 성공담에 대해 찬양의 일색을 보낼 것만 같다. 그러나 실상 영화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슈퍼소닉>은 오히려 이들의 실패, 좌충우돌에 대해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결성된 후 3년 내내 전혀 얻지 못한 관심부터, 음원 녹음할 당시 라이브의 느낌을 살리지 못해 여러 번 녹음을 뒤엎으며 고심하는 순간까지. 마치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 같은 이 밴드의 이면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공식은 너무나도 유명해 식상할 지경이지만. 오아시스에 대해서는 노력 없이 한순간에 성공한 밴드라는 편견이 강했기 때문에, 겉모습 뒤에 숨겨진 그들의 땀방울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오아시스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갤러거 형제의 성향 차이에 대해서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엘 갤러거는, 자신과 자신의 동생인 리암 갤러거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개와 고양이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리암은 개 같고 나는 고양이 같아.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이야. 세상에 관심이 없지. 매정한 새끼들. 개는 반대야. “놀아줘 놀아줘” “제발 공 던져줘늘 상대가 필요해. 자기 천성은 못 바꾸는 거지

 

영화는 반복적으로 형제의 성향 차이를 강조하며 이 둘의 갈등과, 해체할 수밖에 없었던(오아시스는 2009년 노엘 갤러거의 탈퇴로 해체했다.)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술에 취해 카지노 판을 뒤엎고 경찰들을 뒤에 달고 다니며 뜀박질을 하는 리암 갤러거는, ‘락앤롤밴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락앤롤스러워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노엘 갤러거는 너는 배에서 사고나 치다가 쫓겨나는 게 락 앤 롤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며 이에 대해 비판한다. 이들의 음악이 듣고 싶어 해체를 원망스럽게 생각하다가도, 영화의 진행과 동시에 뼛속까지 달랐던 두 형제의 갈등은 불가피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히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어쩌면 이러한 성향 차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오아시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았지만, 내가 익숙했던, 기존의 모습 역시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영화 내내, 오아시스의 멤버들은 정말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 특히 마약에 대해서는 거의 영화 내용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는 것 같았다. 처음 <슈퍼소닉>의 개봉이 확정됐을 때 나는 부제로 달린 ‘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든 악동 밴드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악동이라는 단어가 마치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 속의 그들이 낄낄거리며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철없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그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없는 단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익숙한 노래들 역시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오아시스를 모르고 영화를 보게 된 사람이라도, 음악이 나오는 순간만큼은 그들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단정지어버릴 정도로 좋았다. 휴대폰에 다운 받아 이어폰을 낀 채 거리를 걸을 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영화관의 생생한 음향효과는 내게 간접적으로 90년대 라이브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영화관에서 음원을 틀었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벅찬데, 실제로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역시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관 전체를 가득 채우는 드럼과 기타 소리, 그리고 리암 갤러거의 시원한 보컬은 매우 훌륭했다. 그중에서도 <rock n roll star>라는 곡이 나오는 도중 다른 악기들이 연주를 멈추고 리암 갤러거의 거칠고 생생한 보컬이 단독으로 흘러나오는 부분과, 원테이크로 <champagne supernova>라는 곡의 음원 녹음을 마치는 부분은 전성기 시절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슈퍼소닉>이 단지 기존의 오아시스의 팬들만을 위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슈퍼소닉>은 오아시스의 음악과 삶을 통해 강렬하고 분명한 몇 가지 교훈을 전달한다. 이는 오아시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아

 

<슈퍼소닉>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이다. 이들은 인생이 단 한 번 밖에 없다는 것과,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머리로만 알뿐 실제로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오아시스의 사건사고는, 단순히 철없는 행동으로만 치부될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즐겼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단순히 술과 마약을 하며 깽판을 치는 것만이 아니라, 갤러거 형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불화로 인한 잦은 멤버 교체 등, 안 좋은 일들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역시 동일하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일뿐이고,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거침없는 음악과 삶, 오아시스는 <슈퍼소닉>을 통해 제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영화는 말미로 갈수록, 그러니까 이들이 무명시절을 거쳐 점점 명성을 얻어 갈수록 겪게 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음악이 점점 상업화되고 비즈니스로 변질되는 것이다. 순수하게 음악이 즐거워 시작했던 밴드는, 서류더미에 파묻혀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소한 일에도 언성을 높이며 싸움이 끊이지 않다가도 음악을 위해서는 일심동체가 되었던 그들은, 이제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시스템 때문에 더 이상 즐겁게 노래하는 밴드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지쳐 오아시스를 떠나버리는 사람들 역시 여럿 등장한다. 이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처음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웸블리 공연은 무려 영국 인구의 4퍼센트가 티켓팅을 시도한 엄청난 공연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인터넷 세대 이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은 오아시스가 마지막 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확실히, 오아시스는 인터넷 세대 이전의, 그러니까 90년대의 마지막 대형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감성과 파급력을 가진 밴드가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조금은 씁쓸해졌다. <슈퍼소닉>은 무명이었던 작은 밴드의 성공을 다룰 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종말, 그러니까 90년대라는 하나의 시대의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후회는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90년대 라이브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슈퍼소닉>이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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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30 일 전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아시스'라는 록 밴드도 알게 되었고요. 그런데 앞부분의 '이 영화는 11월 24일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상영관이 많지 않고 상영 일수도 길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감상 후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라는 문장은 '여러 번 감상 후에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를 의미하는 것인지, '여러 번 감상 후에야 글을 쓸 수가 있었다'를 의미하는 것인지 헷갈리네요. 그리고 글의 목적이 밴드 멤버들의 갈등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음악이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사회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 것인지 불분명한 것 같기도 하고요. 또 갤러거 형제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갤러거 형제가 밴드의 보컬인지 리더인지 독자는 잘 모르니까요. 투또우님이 이 영화에 대해서… Read more »
4 개월 18 일 전
투또우님의 글은 친절합니다. ‘슈퍼소닉’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글을 이해할 수 있게 줄거리를 설명해주고, 이 영화에 대한 애정도 듬뿍 묻어나니까요. 이런 태도는 글 쓰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글 쓰는 ‘나’만 알게 비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비평을 쓰는 것이 요즘 시대에 특히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몇 가지 조언을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글의 제목 : 아쉽게도 이 글은 영화 제목을 그대로 갖다 쓰고 있습니다. “처음 ‘슈퍼소닉’의 개봉이 확정됐을 때 나는 부제로 달린 ‘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든 악동 밴드’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고 투또우님도 썼지요. 제목은 본인이 쓰는 글의 얼굴입니다.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제목을 달아주세요.…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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