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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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난 교실은 시끄러웠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핸드폰을 하고 나는 책을 읽었다. 문제가 될 만한 상항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문제가 되었다.

 

나는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울컥하며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에서 소리 없이 넘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끅끅대며 울어버리고 싶은 걸 참으려 갖은 애를 다 썼다. 당황스러웠다. 이유가 뭐지? 나는 끊임없이 눈을 깜빡이며 진정하려 애썼다. 교실은 평화로웠다. 숨이 막혔다.

 

침착해, 지금 울면 미친놈 취급받을 거야, 그러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하며 어떻게 해야 진정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뜨거운 홍차, 혼자 있기, 책 읽기(구체적으로 상황에 맞는 책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젠장, 집에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고, 오늘은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오후 4시는 돼야 끝난단 말이야! 절망감에 빠지려는 찰나 그제야 학교에 가기 전 아무렇게나 집어 든 책이 두 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로써는 유일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에게 잘못한 인물에게 맹목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역겨웠다. 모두가 사과를 요구하기만 한다면, 도대체 사과는 누가 하냔 말이야. 아무도 자신을 선량한 피해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결백한 약자고 타인은 악랄한 강자이다. 나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 이러한 생각만을 품고 있을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혐오스러웠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장소이동과 점심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장소이동방법과 점심 메뉴를 친구들과 상의하며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낄낄거리면서도, 나는 기침하는 척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배가 아팠다.

 

체험학습으로 간 곳에서 들은 강의의 내용은 간단했다. 꿈을 캐스팅 당해야 한다는 것과, 남들에게 져주며 함께 가라는 것. 나는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예시로 설명하는 그 사람에게 캐스팅은 수천만의 사람이 경쟁, 즉,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 사람의 요지는 결국 얼렁뚱땅 말을 한 뒤, 어쨌든 청년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고, 강의를 듣는 맨 앞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무시, 나는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심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혼자 남았다는 해방감은 들지 않았다. 눈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요한 집안에서조차 울 수 없었다. 벗어놓은 옷을 정리하고 티비를 봤다.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나는 울 수도, 홍차를 마실 수도 없었다.

 

그다음 날, 나는 먹었던 모든 것을 게워냈다. 점심 약속으로 고기 뷔페에 가기로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처박혀 토하고 또 토했다. 마치 그렇게 구역질을 계속하다 보면, 시험이 끝나고 거의 매일 같이했던 수많은 외식을 다 지워버릴 수 있을 것처럼. 머리가 아팠고, 반사적으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여전히 펑펑 울어버릴 수는 없었다. 왜 울고 싶은지, 왜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도서관에 가서 카프카의 책을 빌렸다. 집에 오는 내내 꺽꺽거리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제가 출구란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는지 똑바로 이해받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나는 헐떡거리며 책을 읽었다. 그제야 내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다만 출구 찾은 것뿐이었다. 12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통해 나는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유가 아니라 출구를 찾기 위해 교화됐을 뿐이었다. 나는 조련 된 원숭이 패터처럼 원숭이 시절, 그러니까 자유롭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제대로 기억조차 할 수 없다. 내가 학교를 떠난다 한들, 자유 따위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나가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모순적으로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출구를 향해 좁은 구멍에 몸을 욱여넣으며, 나는 변해버린 것이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뿐이다. 나는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아 버린 것이다. 속이 쓰렸다.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리하여 저는 배웠습니다, 여러분, 아, 배워야 한다면 배우는 법, 출구를 원한다면 배웁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배우는 법입니다. 회초리로 스스로를 감독하고, 지극히 조그만 저항만 있어도 제 살을 짓찧었습니다. 원숭이 본성은 둘둘 뭉쳐져 데굴데굴 쏜살같이 제게서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첫 스승 자신이 그것으로 하여 거의 원숭이처럼 되어버려, 곧 수업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져야 했습니다.

 

나는 무서웠다. 누군가를 미치게 할 만한 어떤 본성이 내게도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며 나는 계속 구역질을 했다. 모든 것이 역겨웠다. 나는 반쯤 조련 된 동물의 어리둥절해진 미혹(迷惑)을 눈길에 담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메스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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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9 시 전

투또우 님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쓰신 글들 왜 지우셨나요ㅠㅠ 굉장히 최근에 지우신 것 같은데, 물론 글을 올리고 지우는 건 본인 마음이겠지마는..투또우님의 글들을 굉장히 재밌게, 공감하면서 읽었어서 아쉬운 마음에 댓글 남겨요. 기회가 되면 투또우님이랑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아무튼 보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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