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이 겨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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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추위를 피해서 온

여기는 태국

 

오기 전 친구들한테

반말할 수 있을 때 많이 하라 했다

 

태국 왕자 꼬셔서 왕실로 들어가면

나한테 절해야 한다며

 

당찬 포부와 함께

갈아 입은 하얀 원피스

 

오랜만에 맡아보는 에어컨 냄새에

겨털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한국은 한겨울이니

당연히 내새끼들 양육중이였지

 

제모를 하려하자

겨털 한가닥이 삐죽대며

 

남자에겐 자존심인데

여자에겐 왜 수치심이냐며

논리정연하게 살려달라 주장을 펼쳤다

 

망설인 걸 눈치채곤

얄팍한 주인 땀냄새 맡아가며 기생하느니

차라리 죽으면 죽으리이다

협박까지 해댔다

 

마음이 약해져

단두대 처형은 여름으로

생을 연장시켜줬다

 

내새끼들 고마운지

눈물흘리며 축축하게 적셔대길래

에라 모르겠다

힘차게 만세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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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 9 일 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즐거운 여행 되세요

6 개월 9 일 전
겨털을 시의 소재로 하다니 재밌어요. 인류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제가 가장 높이 사고 싶은 것은 화자가 부끄러울 수 있는 소재를 가감 없이 시적으로 드러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시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유쾌하고 발랄한 정서가 느껴져서 재밌어요. 페미니즘을 떠나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각자 원하는 바를 충실히 표현하는 것만큼 건강한 사회가 또 어디 있을까요. 짧은 머리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시선, 치마를 입고 다니는 남자들에게 향하는 시선도 다를 게 없다는 봐야죠. 앞서 말했듯 우리가 겨털을 부끄러하는 문화는 그리 길지 않아요. TV의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희화화하지만 선택은 개인의 몫이니까요. 남자라서 자존심이 되고 여자라서 수치심이냐, 라며 '논리정연하게 살려달라 주장을 펼'치는 부분에서도 이 시는 의미가 있을…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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