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나의 짧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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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입하(立夏) ; 여름의 시작

 

나는 인생을 여름이라 생각한다. 모든 인생은 무더운 열정과 풋풋함이 녹아있기 마련이니까. 하잘 것 없는 내 인생 또한 여름이다. 내 여름의 시작을 알린 태몽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내게 태몽을 말씀해 주시던 엄마는 16년 전 그 꿈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듯 했다. 꿈속에서 엄마는 여느 시골의 낡은 담벼락이 나열 된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좁은 골목의 담벼락은 끝을 모를 것 같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 골목을 뛰듯이 빠르게 걸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담쟁이 가득한 담벼락의 끝이 보였다. 순간 시야가 환히 트였다. 가슴이 벅차도록 드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그림 같은 들판에는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코스모스들이 제철처럼 만개(滿開)했다. 끝없는 코스모스 들판의 향연.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이끌림이 엄마를 코스모스 들판의 한 가운데로 이끌었다. 보들보들한 코스모스 꽃잎들이 살갗에 닿아 스쳤다.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은 곧이어 멈췄다. 들판 중앙에 우뚝 선 엄마는 가을의 코스모스가 가득한 곳에 폭 파묻혔다. 분분한 꽃내음이 콧속으로 스몄다. 내 여름이 곧 오고 있음을 알리는 태몽은 마치 소설의 일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 태몽을 듣고는 기분이 묘했다. 꿈. 딱 꿈같았다. 신기롭고 이상한 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었다. 내 여름의 알림은 강렬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내가 설날 이후에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꼭 설날에 태어난다고 하셨다. 엄마는 직감 같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씀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내가 설날에 태어나면 손에 장을 지지고 곧바로 달려오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결국 나는 엄마의 말대로 설날에 태어났다. 엄마가 전을 부치다 말고 분만 통증이 와 온 가족이 설날에 병원엘 갔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니 가족들이 모두 우왕좌왕 했다고 한다. 내가 설에 태어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한 의사 선생님은 정말 병원에 달려오셨다. 나는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인 여러 시선을 받으며 태어났다. 그게 내 여름의 시작이었다. 이후 나는 강낭콩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여자아이 치고는 무척이나 명랑하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래서 인지 몸에 상처가 안 나는 날이 없었다. 만날 뛰놀기만 좋아하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시퍼런 멍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외할머니를 닮아 한 성깔 있었다. 어느 날은 같은 유치원 남자아이와 사슴벌레가 더 세느냐, 장수풍뎅이가 더 세느냐 말다툼을 했었다. 그 남자아이는 매일같이 나를 보고 ‘짱구 엄마’라며 놀려대기 바쁜 애였다. 그래서 나는 그 남자아이에게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다. 되레 싫어하는 마음이면 모를까. 그런 애가 나에게 꽥꽥 화를 내며 내 말이 틀리다고 하니 나도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그 얄밉고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한 대 콱 쥐어박아 주고 싶었지만 나는 주먹을 부들부들 쥐며 꾹 참았다. 친구와 때리고 싸우면 엄마한테 혼나는 게 안 봐도 비디오였으니까. 하지만 계속되는 남자아이의 깐족대는 목소리에 어린 내 인내심은 몇 분도 가질 못했다. 어떻게 때렸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그 남자아이가 빼액 울 정도로 때렸던 것 같다. 우는 소리를 들은 유치원 선생님은 한 달음에 달려오셨다. 나는 속이 후련함 반 두려움 반이였다. 선생님께 혼나고 엄마께 혼나는 것은 무서웠으니 나는 내가 먼저 때려놓고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우리 둘은 선생님 앞에서 애가 그랬느니, 재가 그랬느니 유치하게 옥신각신했다. 결국은 둘 다 혼나고 집에 와서는 엄마께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도 유치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날 놀리는 남자아이들과 매일같이 치고 박고 싸우기 바빴으니까. 나는 어느 남자 애에게는 얼굴에 시뻘건 손톱자국을, 또 다른 남자 애에게는 어쩌다 손톱으로 눈을 긁어 충혈 시켰다. 나는 흔히 말하는 왈가닥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초등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여자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니 그 학교의 여자 아이들은 전 학교와 다르게 나와 짝짜꿍이 맞았다. 다행인 일이였다. 왈가닥한 성격이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부모님 눈에는 난 여전히 말괄량이 인 것 같다.

 

 

  1. 소만(小滿) ; 본격적인 농사를 하는 시기

 

이런 말썽스런 성격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운동선수라도 될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 성격과 상반되게 난 얌전하게 그림그리기나 시 읽기,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했다. 못 말리는 말썽쟁이 여자아이가 얌전하게 앉아 하는 것을 좋아하다니, 참으로 이상했다. 어쨌거나 그 때문인지 나는 그림그리기에 소질깨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 교내 그림그리기 상은 물론이고 교외에서 따로 상을 타온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내가 화가라도 되는 줄 알았다. 중학교를 올라 와 보니 나 같은 아이들은 수 없이 쌓여있었다. 초등학교 때 매번 상을 탔던 교내 과학의 날 상상과학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놓쳤다. 난 약간의 절망감을 맛보았다. 내 그림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난 겉으로 겸손한 척 하며 속내는 자만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숨어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한번 제대로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날 못 따라와.’, ‘내가 재 보다 더 잘 그려.’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난무했다. 그리고 난 놀고먹기 바빴다.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 다니고 내 관심 밖인 공부는 학원 때문에 간간히 했다. 그 마저도 난 하기 싫어했다. 그러면서 난 겉으로 학생의 본문을 다하고 선생님들께는 예의바르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내 두꺼운 가면은 접착제로 붙인 듯 딱 붙어 떨어지질 못했다. 그렇게 자만과 오만이 가득하고 열정 없던 뜨뜻미지근한 내 중학교 1학년의 여름이 한 순간에 지나갔다.

2학년은 1학년 때 보다 긴장감이 더했다. 한 학년이 오르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른 세상에 있는 듯이 눈 깜빡 안하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 때부터 내 여름이 차갑게 식어가는 듯 했다. 2학년 1학기는 1학년 때와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의미 없는 하루하루에 나는 점점 내 자아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구나 다 겪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심오한 생각도 내게 변화를 선물 해 주지 않았다. 목적 없는 방탕한 여름의 연속. 내 가슴 속은 그 파르스름한 잡초하나 없고 생기 없어 공허했다. 나를 정면으로 마주보면 내 눈은 초점 없는 동태 눈깔이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중 나는 모 사이트에 무슨 생각으로 올렸을지 모를 글을 올렸다. ‘그림 평가 좀’ 단순한 제목에 내용은 길었다. 그 글에는 내가 그린 그림을 올리고 정말 냉정하게 평가를 해달라며 내가 미술 쪽으로 진학해도 되는 지 질문했다. 순식간에 여러 개의 댓글이 무더기 달렸다. 초반엔 다들 그림을 잘 그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댓글을 보고 만족 할 수가 없었다. 곧 기다란 장문의 댓글이 내 글에 달렸다. 그 댓글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답변을 해 주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 정도 그리는 애들은 널렸어. 그리고 미술 쪽으로 하려면 네 나이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대충 이런 내용의 댓글이었다. 나는 이 댓글을 보자 막혔던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시리기도 했다. 그런 댓글이 몇 개 더 올라왔다. 나는 그 글들을 끝가지 모두 다 봤다. 내가 원하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비집고 흘렀다. 산처럼 쌓여 있던 자만이 바람에 실린 듯 훌훌 흩어져가는 듯 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수록 내 자만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과거의 내 모습이 낯부끄러워졌다. 그 이후 내 속내를 둘러싸고 있던 가면이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가면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년 동안 나는 그 답답한 가면을 쓰고 살았으니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내 모습을 감추고 겸손한 척 속으론 오만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가면이 완전하게 내 여름에서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속마음을 감추고 있으니 나 또한 온전히 진솔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1. 망종(芒種) ; 씨를 뿌리는 시기

 

2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 내게 좋아하는 시가 생겼다. 도 종환 시인의 ‘단풍드는 날’ 이다. 그 시를 처음 접한 게 동생과 같이 서점을 갔었을 때였다. 나는 그 당시 감성에 젖어 시집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러 책들을 구경하다 표지가 참 예쁜 책을 발견했다. 그게 도 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다. 표지에는 벚꽃나무로 보이는 나무에 여린 봄 같은 분홍색 꽃이 펴 있었다. 나는 표지만 보고 무작정 그 시집을 샀다. 그 시집을 사들고 집에 오자마자 읽었다. 그 시들은 설명할 수 없는 몽글몽글한 기분이 내 가슴을 둘러싸게 했다. 그 중에서 단풍드는 날이 특히나 내 가슴에 울렸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읽었다. 그 시의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들었다. 그 중에 맨 처음 부분인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라는 구절이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나는 이 시를 읽고 생각했다. 내가 여름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나는 우선 이해하지 않는 것을 버릴 것이다. 정정하자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다. 마치 모든 것을 해탈한 석가모니처럼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 것은 내 여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하는 법을 반드시 배울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의 여름.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서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참 많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작은 소녀의 커다란 꿈이다. 말로는 참 쉬워 보이지만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내가 이기심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며 남을 이해하고 쉽게 갈라져버리지 않는 가슴을 갖고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여름의 끝이 보일 때 즈음이라도 괜찮으니, 언젠가 푸르른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가 작품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오로지 내가 그린 그림들만 있는 전시회. 생각만 해도 벅차고 뿌듯하다. 그림 전시회가 아니어도 좋다. 감성을 울리는 시집도 괜찮고 흥미진진한 소설책도 좋다. 그냥 무언가 완성을 하고 싶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는 도중에 포기하거나 이도저도 아니게 하다, 말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나에게도 완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의 나의 꿈인 전시회를 열거나 책을 내는 것으로 변했다. 이 두 개의 꿈은 내 일생에 꼭 이루리라 다짐한다. 이 두 가지를 못 이루면 내 여름이 끝날 때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아서다.

 

 

  1. 계속 되는 여름

 

이 짧은 글에 나의 불완전한 인생, 다짐, 꿈, 반성이 모두 제대로 전달 되였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글 솜씨도 없고 생각나는 것을 무작정 쓰고 보는 성격이니까. 거기에다가 난 아직까지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공손한 척을 하며 글을 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 온전한 나만 담으려 노력했다. 누가 보면 오글거리고 무색한 글일지 몰라도 이 글을 쓰면서 15년 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반성을 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여름은 뜨겁게. 혹은 푸르게 지나갈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여름마저 대서(大暑)가 될 때까지 열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여름이다. 숫저운 풋풋함과 무더운 열정이 공존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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