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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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요일에도 문 여시나요?”

찾고자했던 책이 매진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주인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문은 여는데 책은 안 들어올 것이여.”

학교에서 수업 때 필요하다며 꼭 사두라고 했던 책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 근처가 사람이 많이 사는 번화가이기 때문인지 책이 있길 바라는 기대감은 거의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다. 나는 서점을 나와 곧장 주변의 시장으로 향했다. 숨을 쉴 때마다 김이 서렸다. 배가 고파왔다. 아침과 점심을 자주 굶는 나로서는 점심도 저녁때도 아닌 2~3시 사이, 그 어중간한 시간에 군것질을 하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작은 골목을 두고 양옆으로 여러 가게들이 줄을 지어있다. 입구에서 오른쪽 호떡집을 제외하고 세 번째,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따라서 장을 보고 나면 짐을 들어드리는 대신 항상 그곳에 가서 오천원 정도의 순대를 시켜먹곤 했다. 가게 이름은 ‘오이소’,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는 몰랐으나 어느 샌가 이 가게를 지나치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사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설하고, 나는 가게 앞에 줄지어 놓여져 있는 의자 중 한 곳에 걸터앉았다. 그 곳에는 나 외에는 입구 주변에 서서 어묵을 먹고 있는 건장한 청년 뿐이었다. 내 앞에 나열되어있는 먹음직한 음식들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오징어와 깻잎 등 여러 가지에 튀김옷을 묻히고 있었다. 나를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예~!”

내가 건네는 인사를 마침으로 아주머니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재빠르게 선반에 걸쳐져있는 행주에 손을 닦고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전체적인 외모는 변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늘어나버린 얼굴의 주름, 밀가루가 묻은 듯이 허연 머리카락 등 여러 가지로 말이다.

“아이고, 이게 누구여”

다행히도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쁜 듯이 웃음을 지으며 아주머니를 바라보았고, 아주머니는 말 그대로 나를 반갑다는 듯이 쳐다보셨다. 나는 의자에 자세를 고쳐 앉고 앞에 놓여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먹을까’ 라며 나름 행복한 고민을 해보았다. 사실 무엇을 먹을지는 이미 정해져있는 사항이었고 정확히는 ‘얼마나 먹을까’ 였던 것 같다. 지갑을 확인해보고 내겐 대충 오천원의 여유가 있음을 알고 주문을 하려는 순간 사내가 오른쪽 손에 두 개의 어묵 꼬챙이를 들고 그녀를 불러서 계산을 했다. 그는 왼손으로 철판 위에 올려져있는 세 개의 꼬챙이를 가르켰다. 총 다섯 개를 먹었다는 의미였다. 사내는 그녀에게 삼천원을 건네주었다.

“오늘은 왜 이리 즉게 묵어?”

“아, 요새 불경기라 돈 많이 아껴야해서 말이죠.”

“허이구, 세상 돌아가는 꼴하곤 참…”

“하하하, 안 그랬던 적 있나요 뭐.”

그들은 그렇게 대화를 끝냈고 사내는 한 손에 어묵국물이 든 컵을 들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도 나처럼 나름 단골손님이었으리라. 나는 사내가 떠난 후 곧장 순대 삼천원어치를 주문했다.

“순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모든 손님에게 하는 질문이었을 테지만 뭔가 모르게 마냥 기분이 좋았다.

“아뇨, 섞어 주세요.”

대답을 하면서 나는 옛적 순대를 먹던 내가 떠올랐다. 곱창, 간 등을 거의 안 먹고 순대만 주구장창 먹었던 나를 보니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동생하구, 엄마는 안 온지 오래됐네.”

“아, 예. 그렇네요..”

“동생은 몇 살이여?”

“아, 이제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그래?”

“동생 덩치는….”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찜통에서 순대, 곱창, 간, 허파를 순서대로 꺼내어 썰었고 그릇에 담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순대의 양은 눈에 띄게 적었다. 올해 초 여길 찾아왔을 때에는 배에 기별만 가도록하는 정도였지만 그걸 먹는 내 마음도 그런 정도로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아쉽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주머니는 내게 쌈장을 꺼내주시고 어묵 국물을 퍼주시고는 곧장 다시 튀김을 만들러 가스레인지 쪽으로 걸어가셨다. 한 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릇에는 고기쪼가리 하나 없었다. 배가 차지 않았던 것이 불만이었던 것인지, 오랜만의 이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웠던 것인지 의자에서 엉덩이를 때는 것이 쉽지 않았다.

“떡볶이는 얼마부터 파시나요?”

“이천원.”

“딱 이네요.”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계란을 하나 얹어서 먹기 시작했다. 이천원어치라 당연하긴 하지만 순대보다 적은 양에 나는 조금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불경기였다. 내 뱃속 상황도, 반도 채 차지 않은 그릇도 불경기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떡과 어묵을 동시에 찔러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어묵국물을 다시 채우고 자리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게는 조용했다. 타닥거리는 튀김소리들 뿐 이었다. 내 등 뒤로의 시끌벅적한 시장들과 이 가게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침묵이라는 어두운 단어보단 고요함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고요한 분식집, 오이소. 떡볶이를 우물거리면서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간판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

어느 샌가 텅 비어있는 그릇을 긁고있었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삐죽삐죽 흘러나왔지만 집에서도 가족과 따뜻한 지붕아래에서의 식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않고 일어났다. 지갑에서 구겨진 오천원을 꺼내고 아주머니를 불렀다.

“계산해주세요.”

“응, 오천원이여.”

아주머니는 돈을 받으셨다. 나는 가방을 메고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러는 동안 아주머니는 어디도 가지 않으셨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셨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는 무슨 메뉴가 나를 배를 채울지 기대하고 있었다. 첫 발을 때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날 불렀다.

“아, 잠시만 기다려배.”

그러고서는 튀김집게로 만두하나를 집어 휴지로 싼 다음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만두를 받아들고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얼굴을 들어보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씨익하고 웃어보였다. 마치 양이 부족해서 섭섭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읽어버린 것 같다. 나도 입꼬리가 스윽하고 올라갔다.

“많이 파세요~”

“그려, 담에두 와~”

추운 겨울 연말이 끝나고 연초까지 이틀이 남았다. 매년 이 맘 때면 나는 우울해져 있는 상태로 많은 날을 보냈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일까. 혼자 길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 싫었으면서도 누구와도 같이 있고 싶지않았다. 그러던 중 오늘 이십분 거리를 걸어와서 매진되어서 있지도 않은 책을 찾고, 허탕을 내고, 괜스레 귀찮아서 외투하나 걸치지 않고 나온 탓에 벌거스름해진 손과 터져버린 콧물샘은 그런 나를 더욱 서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왤까 그런 일이 일어난 지 삼십여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이 모든 우울함을 오른손에 들린 서비스 만두 하나와 반대 손의 어묵국물이 따뜻하게 녹여버린 것이다.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지금 나를 달래주는 이 작은 마음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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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러 나간다는 아들이 외투하나 챙겨입지 않고 나가서 구겨진 종이컵 하나만 들고 돌아왔다. 볼에는 고추장을 묻힌 채 돌아왔다. 나갈 때만해도 세상의 짐을 다 진 것 같은 어두운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평소보다도 밝은 얼굴빛을 띄고 있다.

 

“어머니, 오늘 저녁 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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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 16 시 전
* "학교에서 수업 때 필요하다며 꼭 사두라고 했던 책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 근처가 사람이 많이 사는 번화가이기 때문인지 책이 있길 바라는 기대감은 거의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다." – "수업 때 필요한 책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곳이 번화가이기 때문이었는지 찾는 책이 있길 바라는 기대는 없었다." : 비문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장은 간결할 수록 분명해집니다. '책이 있길 바라는 기대감은 거의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다'라는 구절에서 '기대감(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과 '마음'을 반복해서 쓰고 게다가 '품다'라는 동사까지 보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 "숨을 쉴 때마다 김이 서렸다." – 목적어가 없습니다. 서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안개나 김 따위가 어디에)수증기가 찬 기운을 받아 엉기다'의…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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