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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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상가들이 20세기의 때를 벗기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다른 나라의 수많은 현대인들은 익히 해본 찬사의 솜씨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분명 방금 전에 그 대목을 보았지만 몇 초가 더 흐를수록 믿음직스럽지 못한 정보이다. 왜 정보를 의혹한다고 나는 말해야 했을까?

 

그러니 아마도, 내 편협한 기억은 정보를 포옹하지 못했다. 도데체 왜? 왜? 왜 그래야만 했지? 수많은 인류는? 남자는 타임즈 지를 내려놓으며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했다. 퇴보와 성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많은 이들이 했던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답은 나왔더라도 분석적인 결과가 될 수 없는 종합적 판단일 뿐이다. 혹은 그는 현시점 이 거리를 걷기도 숨이 딸리고 벅찼다. 그러나 확장 적 판단밖에 나오지 않는 문제는 종말로 가는 열차다. (과연 그럴까?) 그 문제에 대한 어떠한 말을 해도 우리는 부정당할 확률이 있다. 결국 아무런 답이 없는 학문은 지식인에게까지도 훼손당하며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어떠한 학문이 완전히 소멸되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는 걸어가려는 발에 몸을 맡겼다. 몸이 저절로 휘청거렸고 바람의 살결은 뜨거웠다. 숨결들로 겹쳐진 블루즈와 같은 것이었다. 병든 피부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블루즈를 닮은 인간의 목소리는 역병과도 같았다. 병균을 숨긴 무책임한 혀였다. 각자가 가진 불행의 소멸을 위해 사랑을 쟁취했다. 타인의 혀에 내 혀를 뭉개면 그대로 환청 속에 비틀대다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남자는 키스하는 다른 인종의 연인들을 보며 그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보라를 상상했다. 포도주색 짠물. 그의 취한 바다는 울고 있었다. 다윗의 별이 그 안에 시체로써 둥둥 떠다녔다. 그 모습을 목도한 그는 자신이 사랑을 못할 것이라 굳건히 생각했다. 붉은 혓바닥과 그와 같은 색을 띈 입술, 낯바닥이 비극적이다. 정열적으로 키스하는 그들의 겹겹이 접힌 눈꺼풀. 그들은 서로를 보고 있는가? 다르게 말해 나는 그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불필요한 생각을 접었다. 사실 불필요한지 필요가 불필요한 건지 가만히 두면 저절로 몸을 꼬는 자해의 언어를 화형 할 불이 필요한 건지 알 수가 도저히 없었다.

 

되도록 고결 하거라. 타락은 가능한 것이지만 너의 처음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예전 아를의 시골집에서 어떤 형이 나한테 그랬었다. 남자는 신호등의 불이 바뀌자 천천히 걷다가 갑작스레 뛰었다. 귀를 향해 바람이 벌처럼 윙윙대었다. 그는 이대로 벌에게 쏘이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은 자신을 쏠 수가 없어서 슬퍼졌다. 남자는 미간을 우울하게 찌푸리며 거리를 다시 걸었다. 아까와 비슷하지만 다른 풍경이 하늘에서부터 흐르고 있었다. 구름이 머리칼이라면 별은 눈동자이고 세계의 풍경은 별의 눈물이다. 문득 그는 이 거대한 홍수 속에서 그것을 거세하는 빛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콧속으로 온갖 재료와 잡다하게 뒤섞인 사프란 냄새가 퍼졌다. 바랜 노란빛 비웃는 은판사진의 괴로움이었다. 이 모든 상가와 건물, 그 치켜세워진 것들을 떠받든 대지와 지나가는 이들의 가죽들은 철저히 구속적으로 아름답다. 남자는 허기를 느끼며 식당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광지이자 낭만의 이데아 파리.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처럼 세공된 루브르의 앙상한 뼈는 고문되고 약탈된 것이다. 프랑스의 중점은 주목받고 있었기에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쉬파리 같은 인간의 수많은 눈동자는 부활인 동시에 파멸이다. 새로운 이의 눈을 가진 나는 홀로 검은색의 결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프랑스인이었다면 푸른색의 우울함이라고 말했을 테지만, 이런 세세함이 무슨 소용이지. 다만 쉬파리 같은 나의 눈동자를 그들과 분리하고 싶었을 뿐. 남자는 어딘가에 도착한 후 문을 연채 그대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비튼 채 그를 경미한 기색으로 신기하게 쳐다보는 여직원이 있었다. 이곳은 골동품 카페였다. 굽은 천장에 걸려 있는 비단 코르셋과 알프스 소녀의 머리에나 등장할 코이프. 자리에 앉으면 노동자들의 초췌한 모습이 길거리에서 언뜻 보였다. 대개 남자에게 노동자란 화가나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으로, 진부했다. 동시에 뇌가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동질감을 느꼈다. 차가운 것이란 그 맛은 마치 피처럼 진하고, 혀 끝 세포에 닿으면 세포가 혀를 뚫고 곤두박질치며 꽃을 피워 올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 저주받은 땅 혀 위에서 단 한번도 꽃은 자라나지 못했지만. 남자는 어떤 여자를 보며 그러한 느낌을 온몸으로 깨우치며 속으로 낭독하고 있었다.

 

“메뉴판이에요. 추천메뉴는 아이슬란드식 샌드위치입니다.”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멍하니 해안가를 보고 있을 만큼 남자는 여자에게 빠져 있었다. 결국 한참 뒤에야 문득 제 앞에 놓여있는 하얀 인쇄지를 본 남자는 직원을 불러 간단한 요리를 시켰다. 아이슬란드 식 샌드위치였다. 주인은 방긋 웃으며 동양인들이 흔히 그렇듯 어려 보이는 남자에게 친절한 말투로 식전 빵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다시 유리로 된 벽을 통해 바깥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망울의 초점이 맹하니 일렁였다.

 

우리의 굴레는 결국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소년은 사랑 때문에 망해버린 수많은 인간들의 역사를 닫힌 입 속으로 헤집고 떠진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누구나가 처음에는 그렇듯 최초로 고동치는 창백한 눈이 온통 여자의 형체로 막혀 있었다. 여자는 선탠을 하는 여자들의 등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있었다. 시계를 찬 팔 둑 아래에서 굽이치는 흰 손가락은 거품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잠시 스친 시선이 목줄처럼 틀어박혔다. 소년은 마치 시계처럼 그녀의 팔에 오감을 곤두세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졌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치겠다는 듯 그는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그새 몸을 일으킨 여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웃었다. 꼽추의 등처럼 굽은 미소가 여유롭고 찬란하고 그래서 남자가 떠올린 모노톤의 수식어를 비웃었다. 그 여자는 한동안 금방이라도 남자의 눈을 가리는 벽으로 변할 것 같이 굳건히 서 있었다.

 

아름다운 구가 날 향해 이따금씩 감광하며 반짝일 때면 꿈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곳에 있었으니까. 해가 숨결마다 내뿜는 요오드 증기와 함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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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진
3 일 8 시 전

상황묘사와 비유가 굉장히 재미있네요.

많은 생각이 들게합니다.

1 일 2 시 전
* "낡은 상가들이 20세기의 때를 벗기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 19세기도, 18세기도 아닌 20세기의 때란 어떤 것인가요? 또한 '벗기다'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낡은 상가들은 추레했다." 혹은 "추레한 상가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정도가 훨씬 분명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 편협한 기억은 정보를 포옹하지 못했다." – 문맥의 의미는 짐작할 수 있지만 엄연히 말해 '기억이 정보를 포옹'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포용인가요? * 도데체 – 도대체 * "현시점 이 거리를 걷기도 숨이 딸리고 벅찼다" – "현재 이 거리를 걷기에도 숨이 딸리고 벅찼다" * "그는 걸어가려는 발에 몸을 맡겼다." – "그는 걸음을 옮겼다." : 내 발이 개별적인 의지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 문장대로라면 발은 나와…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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