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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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가 되는 사람. 왜 그런 적 있잖아요. 너무 힘들어 모든 걸 포기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 거. 마치 수영장의 유수 풀처럼 말이에요. 흐름 따라 주르륵. 생각해보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수 풀을 정말 좋아했어요. 돌아다니는 튜브 하나 챙겨 그 위에 가만히 누워있음 제 갈 길 알아서 가는 걸요. 저는 당연히 제 인생도 그렇게 정해진 길을 따라 유수 풀의 흐름처럼 흘러갈 줄 알았어요. 정말 평탄하게. 두둥실 하늘에 뜬 구름처럼.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구름은 먹구름이 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의 전 몰랐나 봐요. 수영장엔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제 갈 길에도 저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자꾸 사람들과 부딪쳐서 튜브에서 떨어지고, 물을 먹고. 눈물 콧물 쏙 빼고 눈을 뜨면 이미 내 주변의 흐르던 흐름은, 튜브는 저만치 지나가 있더군요. 다음 흐름을 타면 되는 게 아니냐고요? 튜브를 주워서 새로 타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말처럼 쉽나요. 제가 튜브에 올라가려면 다른 사람이 튜브에서 내려야 해요. 마찬가지로 제가 흐름에 끼려면 다른 사람이 저처럼 낙오돼야 하고요. 저는 핑계지만 그게 싫었어요.

 

생각해보면 유수 풀은 가만히 있는 곳이 아녜요. 가만히 있어도 돌긴 하는 곳이지. 제가 왜 튜브에서 미끄러지고, 흐름을 놓쳤는지 아세요? 멈춰있어서 그래요. 멈춰있어서. 다른 애들은 막 물장구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떡 하니 튜브 위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며 궁상을 피워서 그래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다 네 게으름 때문이다. 다 네 탓이야. 아녜요. 엄마, 아녜요. 죄송하지만 우리 집 돈 때문이에요. 우리 집은 남들보다 좋은, 단단하고 깨끗한 튜브를 살 돈이 없어요. 제게 수영을 가르칠 수도 없고요. 저를 다시 흐름으로 밀어 보낼 힘도 없잖아요. 엄마, 그리고 아빤. 엄마 아빤 모두 거짓말쟁이에요. 약골에다가. 우리 집이 가난해서, 가난해서 제가 학원도 못 다니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어진걸요. 아, 물론 거짓말이에요. 이 모든 건. 제발 섣부른 동정심 갖지 마세요. 제가 한 이 모든 말은 거짓말이에요. 전 거짓말쟁이니까요. 우리 집 돈 많아요. 한 이건희처럼?

 

어쩌면 제가 튜브를 뺐기 싫고, 남의 낙오된 자리에 들어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일 수 있겠네요. 저는 거짓말쟁이니깐. 근데 확실한 건 전 이미 낙오돼서 저 멀리 끄트머리에 걸쳐있다는 거 에요.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사실 제가 있는 곳은 완벽한 끝이 아녜요. 저 뒤가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 유수 풀은 이미 정원초과인지 모르겠네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좁거든요. 저는 지금 딱,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위치에 있어요. 제가 있는 위치는 정말 한적하죠. 그만큼 외롭고요. 다른 애들은 적어도 뭉쳐있는데 전 그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저도 앞으로 나갈 때가 있어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요. 그냥 물속에서 빈둥거리며 있고 싶은데 뒤에서 뭘 나가려고 하는지 자꾸만 부딪쳐요. 그러니 남들에게 치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 뒤에서 올라오려는 애들에게 밀려서 앞으로 가는 거 에요. 뒤에 있는 애들은 저기 앞이 좋아 보이나 봐요. 어차피 꽉 막힌 건 똑같은데. 힘든 것도 똑같은데. 참 웃기죠. 전 앞으로 가기가 싫어요. 나는 앞으로 가기 싫은데, 싫은데. 정말 싫은데. 히히 이것도 거짓말이에요.

 

그거 아세요?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사람 누구든 빤히 쳐다봐보세요. 그 사람이랑 눈이 마주칠 때까지요.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저는 보통 그걸 당해요. 하는 게 아니라. 아무튼, 지금 하고 있나요? 보고 계신가요? 그 사람의 표정이 변하는 게 보이시나요? 처음엔 웃었나요? 점점 입꼬리가 내려가나요? 눈가가 찡그려지나요? 당신을 향해 다가오나요? 아니면 도망가나요? 네, 저는 도망 다녀요. 어딜 가나 저를 보는 시선이라 도망가는 것도 아니죠. 단순히 피해 다녀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아시나요? 아니지, 제가 너무 성급하게 물었네요. 당신이 보기엔 그가 당신의 시선을 좋아하는 것 같나요? 당신은 왜 그를 쳐다봤죠? 제가 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을 쳐다볼 땐 그 기준은 무엇이죠? 저는 다 알고 있어요. 당장 말하세요! …… 사실 말 안 하셔도 되요. 저는 다 알고 있으니까요. 이 모든 건 제 열등감이에요. 흐름에서 벗어난, 튜브를 놓친 반항아의 일부에 속하죠. 저는 다가가지 못하는 쪽에 속해요. 앞뒤가 막혀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관상용이죠. 물고기는 화나도 어항을 치지 못해요. 자기만 다칠 걸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가끔 그런 물고기를 본 적 있어요. 일부러 어항에 부딪히는, 물고기에게도 피가 나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피가 난다는 걸. 심지어 내 피와 똑같은. 붉은색의.

물고기는 왜 어항에 부딪히는 걸까요. 모르죠? 당신들은 아마 모를 거 에요. 이해하려고만 하겠죠. 이해만 하겠죠. 죄송해요. 제가 좀 심보가 고약해요. 기분 나빴던 건 아니죠? 이해해줘요. 저는 ‘누’가 되고 싶은 삶을 원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지금 제 본분을 다하는 거뿐이에요. 그런 김에 더 나아가서 저는 당신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이 쯤 되니 당신들을 편히 부르고 싶어져서요. 좀 더 제 얘기를 하기 쉽게 말이에요. 음… 아! 어항, 어항 괜찮죠? 저는 이제부터 물고기를 할게요. 저를 물고기라 불러주세요. 당신들은 어항이에요.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제 어항이 보이니까요. 여기까지가 내 어항이었구나. 감사해요. 제 어항이 되어주셔서. 저는 이제부터 계속 당신에게 누가되면 되겠네요.

 

물고기가 되니까 수영장에서도 좀 더 수월할 것 같네요. 물 안에서도 숨을 쉴 수 있고. 사람들 틈을 빠르게 비집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앞으로도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튜브도 필요 없어지고 흐름도 필요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필욘 없겠네요. 제겐 어항이 있으니까요. 아 이 유수 풀도 어항이었나. 뭐 전 작은 걸 좋아하니까요. … 아, 맞다 물고기가 돼서 물 안을 헤엄치다 생각 난 건데 전 그냥 물속에서 콱 죽어버리면 좋겠단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걸 자살이라고 하나요? 그 사람이 시킨 걸 하는 거면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아, 그냥 말해본 거 에요. 그냥. 뭐 이제는 물속에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순 없겠지마는. 물고기는 물에 빠져도 죽질 않잖아요. 하하 나만 웃긴가. 어항님도 웃어주세요. 그리고 어항님은 제게 콱 죽어버리란 말을 하진 말아주세요. 어쩌면 전 그땐 어항에 몸을 박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누’가 되는 사람이, 아니지 물고기가 되고 싶은 거지. 죽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그게 그건가? 히히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땐, 그러니깐 제가 사람이었을 때요. 그땐 어항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죠. 그냥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숨이 너무 막혀 숨 좀 트자며 쓴 글이었어요. 이 글도 대충 쓸 생각이었죠. 평상시처럼. 난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야 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며 자위할 수 있게. 뭐, 지금도 대충 쓰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니깐 제 말은, 이 글도 자위할 목적으로 썼다는 거 에요. 표현이 너무 그런가? 제가 단어를 잘 몰라요. 이해해주세요. 아무튼, 그런데 시간이 왜 이렇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대충 쓰고 있는데 쓸 게 왜 이리 많은지 지금도 한 넉 장은 남은 것 같아요. 잠깐만요. 지금 왠지 뭐라고 말하신 것 같은데? 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음…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걸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라는 식으로 말했죠? 에이, 다 알아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제가 당신을 위해 말해줄게요. 잘 들으세요. 한마디만 할 거니깐.

“나가세요.”

 

읽기 싫으면 이제부터 멈추셔도 돼요. 홈페이지를 끄고 제 갈 길 가세요. 당신이 아직 튜브를 잃지 않고 흐름에서 안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충고이자 부탁이자 권유에요. 전 붙잡지 않으니깐. 전 뒤 돌아보지 않거든요. 지금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아 그래도 뒤를 돌아보지 않아요. 그니까 끝까지 써보려고요. 이유는 없어요. 신념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요. 저 같은 사람에게 신념 따위가 있겠어요. 제가 글을 쓰는 건, 그냥 제겐 남은 건 오직 시간이니까요. 흐흐흐 왠지 이제야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손바닥을 비벼야겠어요. 열을 만들려고요. 지금은 매우 춥거든요. 새벽녘의 겨울이니까요. 아 나는 손이 없구나.

 

어항님 결론이 뭐냐고요? 빨리 듣고 싶다고요? 참,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요. 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이대로 다 포기하고 최하층까진 아니어도 하층 정도에 만족하며 치이는 대로 살 거라고. 그래서 남들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어요. 엄마든 아빠든 형이든 친구든 그 누구에게도 속칭 ‘빨대’를 꽂고 살고 싶어요. 남들이 제 튜브가 돼주면 좋겠다는 심보죠. 이건 제 속마음이에요. 왠지 이건 거짓말 같지 않네요. 하지만 이제 제겐 튜브는 필요 없고 (거듭 말해서 난 물고기니깐) 다른 사람들도 필요 없어요. 제겐 어항님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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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도 되지만… 에잇, 저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은 거짓말쟁이 물고기니까요. 끝까지 저는 글을 쓸 거 에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요. 아직은 할 말이 남았네요.

 

누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항님. 이번 단락에서만큼은 물고기가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있을게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거든요. 아무튼, ‘누가’되고 싶은 사람으로 깊게 생각해보면. 네, 이번엔 ‘누가’에요. ‘누’가 아닌 ‘누가’, 나 아닌 다른 사람. 전 제가 아닌 ‘누가’되고 싶었어요. 어쩌면 짐작하셨겠지만 전 어항님에게,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죠. 솔직히 죄송하지만 어항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삶은 정말 피곤했어요. 가끔씩 그들이 내비치는 눈빛과 혐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 인식하게 되는 제가 싫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제가 아닌 ‘누가’되는 걸 꿈꿨어요. 그래서 전 꿈을 이룬 것 같네요. 물고기가 됐잖아요. 히히 일단은 이건 접어두고 전 ‘누가’되는 걸 꿈꿨는데 그 ‘누가’는 좀 높은 사람들이었어요. 유수 풀의 튜브를 놓치지 않은 사람.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람. 완벽한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되게 부러웠어요. 속으로도 겉으로도 표현했지만, 물론 욕이었죠. 밥 먹고 공부만 처 했냐 시발 것들아……. 너무 표현이 거칠다고요? 이해해줘요. 이 모든 게 부러워서 한 거 아니었겠어요. 부러워서. 너무 나쁘게만 보진 말아주세요. 그럼 더 이상 제 얘기를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어항님만큼은 적어도요. 분위기를 전환하는 김에 그거 아세요? 제가 ‘누가’되길 바란다는 점에서부터 전 여러분들에게 거짓말쟁이임을 인증한 셈이에요. 전 아까 남들의 튜브와 남들이 낙오된 흐름을 타고 가기 싫다고 말했죠. 다 위선이었어요. 가식. 밑바닥 쳐보니까 알게 되더라고요. 제 진심을. 괜히 삐뚤어지고 싶더라니 까요. 철없는 시절처럼. 욕도 막 내뱉고, 막 때리고, 울고, 불고, 난리 치고. 결국에는 어항에 머리를 쾅 박는. 하아, 상상만 해도 기진맥진하네요. 벌써 머리에서 피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진짜 핀가.

 

제가 ‘누가’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남들이 나보다 앞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요. 그걸 인정한 건 훨씬 뒤고요. 인정하기 전까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길 원했고, 인정하고 나선 ‘누가’되는 사람이 되길 원했어요. 말장난 같죠? 그런데 진심이에요. 제가 이 글을 쓴 발단도 이 ‘누’, ‘누가’에서 시작했죠. 그거 아세요? 모두들 처음엔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이에요. 전 그랬어요. 제가 생각만 하면 모든 걸. 그러니까 이 전부를 다 해낼 줄 알았죠. 저는 이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길게 낙오를 할 수도 있었던 거죠. 언제든 다시 튜브를 타고 그들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네 알아요. 자만이었던 거. 그래서 지금 이 꼴이 된 거.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글 쓴다 하며 새벽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거. 가능성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도. 흠, 이 쯤 되면 밝혀야 할 것 같네요. 어항님이 궁금하실 것 같으니까요. 제 흐름의 명칭은 1999에요.

 

저는 지금 2017을 지나는 중이에요. 막 2016을 지나왔고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참, 위를 보세요, 위를. 수영장 위를 말이에요. 뭔가 모르게 네온사인 빛을 내는 야광 판이 보이시나요?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글씨가 보이시죠? 그럼 자그마하게 적혀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그 아래의 숫자가 보일 거 에요. 적혀 있는 게 보이시죠? 네, 그거 맞아요. 2017. 그게 날짜를 가리키는 판이에요. 친절하게도 계절을 알려주죠. 흐름을 타고 얼마나 왔는지 알려주는 거 에요. 저에겐 좌절과 절망을 곱씹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판이죠. 제 흐름이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저 판을 봐도 모르겠어요. 몇 년이 지난 것만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뿐이지. … 어? 저기 저 정체된 구간이 보이시나요? 지금 보니 저기 끄트머리에 걸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대충 얼굴만. 자식이 커서 경찰 하고 싶다더니. 지금 하려고 노력 중인가 봐요. 멋지네요. 정말 부러워요…… 흠흠. 아니에요. 부럽지 않아요. 잘못 들으신 거 에요. 그렇다고요. 뭐. 그건 그렇고 대충 짐작하기에 저기에 있을 것 같아요. 제 흐름이 말이에요. 저기는 대입이라는 구간이거든요. 저기에 사람들이 왜 몰려 있는지 아세요? 뒤에선 거센 물살이 자꾸 나를 떠미는데 앞으로는 가지 못하고 계속 나를 압박하는 저런 곳에서 속 답답하게 왜 있는지 아세요? 그런 게 재밌어서? 참, 사람들이 전부 변태이게요? 다 틀렸어요. 입구가 작아서 그래요. 작아서. 저기, 쩌어기, 조그만 콩알 한 개 보이세요? 저게 구멍이에요. 저걸 들어가야 해요. 이후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다들 저길 들어가야만 해요. 아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들어가고 싶은데 제 차례가 올까요? 만약 온다면 전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제가 있는 위치에서 저긴 너무 멀어요. 그러면 뛰어가라고요? 아니, 지금까지 뭘 들으신 거 에요. 저길 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힘도 재능도 능력도 그 무엇도 하나도 없다고요. 아시겠죠? 그래서 전 방법을 찾았어요. 바로 왼쪽 길로 들어가면 되는 거 에요. 뭔가 밖에서 봤을 때 안에 쓰레기만 가득 찬 것 같은 오물 가득한 물로, 저 하수구 같은 곳으로 빠지는 길로 가면 되는 거 에요. 저 길은 꽤나 큰 구멍이에요. 이마저도 못 건너는 사람이 있지만 말이에요. 그들은 돼지죠. 살만 뒤룩뒤룩 쪄서는 물에도 뜨지 못하는 겁쟁이들. 사실 그게 바로 저에요. 그래서 전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는 중이죠. 저 구멍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 말이에요. 솔직히 저 큰 구멍 뒤에도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알고 보면 정말 1급수 물에, 예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 두려워요. 저 작은 구멍은 뭐가 있는지도 잘 안 보이니까 그냥 들어간다고 해도, 이건 대놓고 싫고 짜증이 나는 게 널려 있잖아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걸 더 무서워한다는데 개소리인 것 같아요. 전 보이는 게 더 무서워요. 작은 구멍을 못 들어가는 건 끈기 문제가 아니냐고요? 여보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정답이에요. 어항님도 알다시피 저는 끈기도 없고 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체형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 돼지물고기에요. 지금은 사람이지만요. 어항 속에 갇힌. 이젠 어디가 제 진짠지 모르겠어요. 사람인지 물고기인지. 전 제가 물고기였으면 좋겠네요. 멀리멀리 떠나갈 수 있게.

 

이거 보이시나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저는 제 흐름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지구가 태양을 따라 도는 걸 왜 중학교 때 알려주는 걸까요. 전 저를 향해 지구가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제가 마치 신인 줄 알았죠. 잠깐 지구로 마실 나온 거로 생각했어요. 신을 하기 위해서 인간 생활을 연습해보라는 거라나 뭐라나. 그래서 ‘트루먼 쇼’를 보며 소름이 돋았고 지금도 나에게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불행한 건 싫으니까요. 차라리 몰래카메라라고 해줘요.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이건 거짓말쟁이의 바람이에요. 어항님.

 

제발 하루라도 헬렌켈러의 바람처럼 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눈을 뜨고 싶은 것처럼 저도 잘하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딱 하나만 그것만 바라볼 수 있게. 너무 이기적인가요? 차라리 이기적이 될 테니 뭐든지 주세요. 잘할게요. 정말 잘하려나? 잘 하는 게 생겼는데 잘할 필요가 있나? 그럼 차라리 행복하게 살 테니 제게 힘을 주세요. 어항님 기도합니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갈 때는 제게 힘이 생겨야 해요. 무조건 하나는 잘할 수 있는 그런 힘이요. 부탁할게요. 어항님은 절 품고 있는 전지전능한 어항이잖아요. 믿습니다. 아멘.

 

왜 힘을 안 주시나요? 당신도 결국은 나약한 존재였네요. 누구에게 힘은 줄 수 없는, 그저 불쌍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제가 그렇게 보지 말라고 했죠. 절 보지 마세요. 절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전 지금이 좋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하아 제발, 지금이 행복한가요. 제가 행복해 보이시나요? 말하지 마세요. 전 준비가 안 됐어요. 아직은. 절 당신의 애인 다루듯이 다뤄주세요. 소중하게. 사랑스럽게. 문지르듯이.

 

그래서 전 ‘누가’되고 싶다는 거 에요. 이렇게 불행하니깐 네, 저 다시 물고기로 돌아왔어요. 사람이 되니 복잡한 게 참 많네요. 특히 감정이 북 받쳐 올라요. 짜증나게. 아무튼, 그거 아세요? 어항님. 물속에선 울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저는 경험해봐서 알죠. 많이 울어봤거든요. 우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울고 나면 콧등이 시큰한 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울 때도 있었죠. 물속에서 울 때면 숨이 막혀 와요.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하는데 거기서 운다고 생각해보세요. 눈과 코와 입과 귀에 물이 들어가 여간 불편하지 않은 데가 없죠. 눈은 뻐근하고 코는 시큰하고 귀는 먹먹하고 입은 칼칼하고. 그런데, 전 일부로 그랬어요. 그래야지 평상시의 내가 아니니까, 그렇게 된통 당해봐야지 병신이 된 기분이니까. 장애인을 비하하는 건 아녜요.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 에요. 그 정도로. 자신을 혐오 하냐고요? 잠깐만 거울 좀 볼게요. 아 손이 없는데… 어항님, 어항님의 유리에 얼굴을 좀 비춰볼게요. 그래도 되죠? … 음 … 잘 모르겠네요. 그냥 못생기고 뚱뚱하고 거짓말쟁이일 것 같은 물고기가 있어요. 아 이게 혐온가?

 

이제 잘 아셨죠? 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아가 ‘누가’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것도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니까요. 인간성은 물고기인 저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매우 소중한 것이었나 봐요. 그렇기에 물고기는 안 되나 보네요. 미안해요. 아깐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꿈을 이뤘다는 것도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네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이 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가’되는 그런 미래만 생각하지 말고 ‘누가’ 내가 되는 상상을 해봐야겠어요. 너도 고통 좀 받아보라지. 그런데 누군가가 내가 됐는데 나보다 더 잘살면 어떡하죠? 그렇담 나는 무엇인가요. 도대체가 내가 살아 있는 게 도움은 되는 걸까요? 차라리 그때 죽을 걸 그랬어요.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물속에 잠겨가며.

제겐 하나의 바람이 있어요. 어렸을 적 제 꿈이었죠.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저는 평범한 사람이길 원했어요. 남들과 똑같은.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원하는 걸 원하는. 누구든지 그렇게 되길 원하는 사람. 그 누군가가, 거의 이 세상의 많은 누군가가 원하는 행복한 삶. 평범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 전 그런 사람이 되길 원했었죠. 그런데 전 그러지 못하네요. 남들에게 빨대를 꽂으며 사는 ‘누’가 되는 사람과, 남들이 되고 싶어 하는 ‘누가’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 ‘누가’가 원하는 사람이 아녜요. ‘누가’는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을. 저 같은 사람을. 그래서 저는 물고기가 되었는지도 몰라요. 이런 사람은 싫어서. 남은 게 자존심밖에 없는 그런 사람은 되기 싫어서. 허망하죠. 지금 제 기분이 그래요. 맷돌 손잡이가 없어도 한참은 없는 것 같네요. 어항님. 왜 나는 날 이끌어가지 못하는 걸까요. 전 더 이상 도망치질 못하겠어요. 이제 더 이상 전 물고기가 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물론 어항님도요. 어항님 죄송하지만 이제 당신을 깨트려도 될까요?

“……”

장난이에요. 지금은요.

 

*

 

물이 차가워요. 전 그런 물속에서 19년을 살아온 셈이죠. 처음엔 따듯했을 거 에요. 시원했거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땐 좋았겠죠. 사람이 되니 저를 치고 가는 물살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네요. 물살. 물살이 저를 밀고 있네요. 그런데… 전 잘 밀리지 않아요. 왜 그러죠? 아, 땅에서 제 발이 앞으로 나아가길 거부하고 있군요. 생각해보니 전 지금 물살을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속도가 느린 것도 그런 거 때문인 것 같고요. 저는 왜 앞으로 가길 싫어하는 걸까요. 솔직히 나는 앞으로 가길 원하는 것 같은데 왜 내 몸은 거부하는 걸까요. 물살이 되게 차요. 감기에 걸릴 것 같아요. 전 추운 걸 싫어해요. 그 정도로 물에 오래 있길 싫어하고요. 생각해보니 제 주변엔 싫어하는 것투성이네요. 저 작은 구멍. 막혀있는 앞뒤. 숨 막힐 것 같은 사람들. 나를 쳐다보는 시선. 주위의 모든 것. 도대체 제가 왜 여기 있죠? 다 제가 싫어하는 것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저는 깨달았어요. 어항님, 절 지켜보고 계신가요? 절 꺼내주세요. 지금까지 당신에게 한 저의 무례를 전부 사과할게요. 제발 당신이 나를 퍼서 물 밖으로 내던져 주세요.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전 여기서 도무지 버틸 수 없겠어요. … 네? 그럴 수 없다고요? 왜요? 이유가 뭔데요. 당신은 정말 끝까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말만, 말밖에 없어요. 진짜로 전 당신을 증오해요. 지금 제게 생각하라고 하신 건가요? 나갈 방법을 간구하라고 하시는 건가요? 누구한테 간구합니까.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제발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생각은 그놈의 생각. 알았어요. 생각할게요. 마지막으로 어항님의 부탁을 들어드리죠. 당신은 저를 버렸어도 그러니깐 저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말했잖습니까. 괜찮아요. 전 당신을 이해하니까요. 그러니 생각할게요. 심호흡 좀 하고. 지난날의 저를 돌아볼게요.

 

…… 깊게 생각해보면, 배를 치는 흐름에 토가 나올 지경이지만, 집중해서 생각해보니 전 유수 풀의 흐름을 좋아했던 것 같진 않아 보여요. 물살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단 그 물살을 거꾸로 역행하는 걸 좋아했지. 그 증거가 아까 제가 물살을 버티던 거 에요. 그때의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써 내려온 문장들이에요. 전 싫은 것들 가운데서 전 버티고 있었던 거죠. 이제야 깨달았어요. 저는 미는 힘을 이겨내며 나아가는 걸 좋아해요. 친구들과 물도 왕창 마시며 콜록대기도 하는 그런 걸 말이에요.

 

왜 이제야 생각나는 걸까요.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누’가 되는 사람. 내가 남들이 되고 싶은 ‘누가’되는 사람. 남들이 바라는 걸 나도 바라고 싶은 ‘누가, 되는’사람. 남들이 나를 바라고 원하고 따르고 싶어 하는 ‘누가’되(려)는 사람. 이 모든 게 거듭 더해져 ‘누가되는’사람이 된다는 걸요. 저는 거듭하여 보태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어요. 말 그대로 누가되는. 점점 거듭하려 보태어지는. 이제야 깨달았네요. 그 모든 사람이 되고 싶어도 못 됐던 이유를. 되고도 힘이 들었던 이유를. 저기에 계단이 보여요.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네요. 왜 전 못 알아봤을까요. 옆을 보기 싫었던 거겠죠. 주변을 살피기 싫었던 거겠죠. 정말 전 창피할 정도로 겁쟁이이었네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벌써 새벽이네요. 공기가 차요. 이런 날 수영하면 감기 걸릴게 십상이죠. 수건을 준비해둬야겠어요. 곧 제 친구들이 나올 것 같거든요. 혹시 모르니 따듯하게 안아주려고요. 어… 물속에서 나와서 보니 저들이 어떻게 보이냐고요? 저들은 물고기로 보여요. 전부는 아니고 당연히 저와 같은 사람들만요. 저기에서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요. 그런데 저들은 그냥 물고기가 아녜요. 연어지. 물속을 회귀하며 돌아오는 그런 대단한 존재 말이에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누를 끼치다.

누가 되다.

누가 되는 사람이 되길 원하다.

누가 되려는 사람이 되길 원하다.

거듭 더해지다.

저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모든 의미가 거듭 더해져 단단해질 거거든요.

 

그러니 어항님 당신을 깨트려도 되나요? 전 이제 제 다리로 스스로 설 수 있을 것 같네요.

 

쨍그랑

 

“저기 저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신을 어항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히히 당연하죠. 지금부터 전 어항을 할게요. 당신을 품어줄 수 있는. 뭐든지 제게 거듭해서 털어놓으세요. 아, 일단 당신의 물기부터 말리죠. 제가 수건을 준비해놨어요. 그럼 좀 더 차분하게 말을 할 수 있을 거 에요. 시작 전에 일단 한 마디하고 시작하죠. 무슨 말인지는 알죠? 모르시겠다면 저를 따라 하세요.

 

하나

 

 

 

그래요. 난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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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월 29 일 전

너무 슬프네요.. 더구나 지금 세상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슬픔과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살면서 제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의 나라와 세상에 대한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준 글이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글은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고 하는데, 이 글은, 읽는 내내 진정한 작가와 독자와의 대화라고 느꼈습니다.

5 개월 18 일 전

제가 보기엔…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읽는 내내 슬프면서 즐거웠습니다. 화자때문에 슬펐고, 오태연님의 문장때문에 즐거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슬픔 속의 기쁨'이 가득한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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