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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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기억

 

 

숨을 쉴 수 없을 때 머리를 처박는 법을 배웠다.

 

─너 도서관 안 가?

─거기 자리 맡기 힘들잖아.

─그래도 더 집중은 잘 되잖아.

─으음, 그냥 기숙사에서 할래. 귀찮아.

 

기숙사는 조용했다. 으레 방문을 뚫고 복도에서 들리던 수다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들은 모두 실어증을 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의적으로 입을 다물고 책상 앞에 몸을 붙인 채 펜을 놀리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망가져가는 오른손에 고무줄을 감았다. 프로그래밍 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처럼 반복되는 세계는 시계와 닮아있었다. 문득문득 치솟는 생각이 있었다. 시계초침을 부러뜨리고 싶다. 언제나 같은 리듬의 삶에서 벗어나 죽음의 문을 두드리고 싶다.

다섯 명이 함께 지내는 호실에는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열댓 권의 책들을 의자 밑에 쌓아두고, 그 책들이 한 번씩 손을 거치고 나서야 자신의 호실로 잠시 돌아가 책을 바꾸어 올 뿐이었다. 수학과 과학 책을 잔뜩 가져와 무리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던 시절이었다. 언어를 머릿속에 C언어처럼 입력하고 올바른 답을 도출하기 위해 잠을 줄였다. 비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되풀이되었다. 언제나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었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교재를 잡았다. 책을 바꾸기 위해 호실로 들어가던 찰나, 숨이 들이켜지지 않았던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출력값이었다.

내뱉은 단어들이 없어 들어올 것도 없었다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쓸모없는 몸뚱이가 연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느 쪽이든, 공기의 유입을 폐가 거부하는 중이었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숨을 들이켜기 위해 하늘을 보고 막힌 공깃구멍을 뚫기 위해 애썼다.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이 끌어내려지고, 삶을 갈구하는 몸짓만을 반복했다. 목을 쭉 빼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처절했다. 죽음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무렵들과 삶의 밧줄을 추악히 그러쥐는 몸뚱이가 겹쳐보였다. 역겨웠다. 그렇게 생의 중단을 꿈꿔왔으면서. 나는 발버둥치기를 멈추고 무릎 사이로 머리를 처박았다. 숨구멍이 트여 죽음의 수갑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든 날이 있다. 할 일들은 자습실 책상 위에 형체를 갖추고 쌓여 있는데, 마치 아지랑이처럼 금세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 버리는 날. 몸을 웅크린 채 심장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찰나들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몸이 떨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제어하면 발끝부터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는 것들이 있다. 마치 환청처럼, 아른아른. 세상의 아름다운 인식과 상반되는 추악한 섬뜩함.

밖으로부터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문 쪽을 바라보았다. 룸메이트가 슬리퍼를 끌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애는 자신의 노트북을 침대 위에 던져두고 여러 색깔의 책을 챙겼다. 방 안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시간은 단 일 분이 되지 않았다. 오직 따뜻한 공기뿐이 남은 기숙사 방 안에서 나는 도망가는 나를 보았다. 고장 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망가진 팔로 귀를 막아버린. 내가 도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처럼 밀려왔다. 알고 있었던, 그러나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다분히 의도적이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직시하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아감구멍을 막아버린 기분이었다. 해부 직전의 개구리처럼 축 늘어져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무방비함. 스멀스멀 올라오는 무력감은 놓아두면 무기력으로 부피를 불린다. 죽음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주위에서 몸을 숨기고 낚아채 갈 희생양들을 기다리고 있다. 목각인형의 관절부에 매달린 실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죽음은 다가온다. 너는 지금 도피를 하고 있어, 그럼 죽음으로의 도피는 어떨까? 자각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영원한 도피 말이야. 죽음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맴돌고 있는 상념 중 어느 것을 잡아채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배운 대로 머리를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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