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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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책상은 더러웠다. 그리다 만 장난감 도안들과 부러진 연필심들이 미카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미카는 흑연이 묻어 거뭇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새하얀 비듬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미카는 새삼스레 짜증이 났다. 모든 것에 싫증을 느꼈다. 책상 한 켠에서 눈치를 보며 숨어있는 사탕 껍질들조차도 도무지 봐 줄 수가 없었다. 미카는 온갖 종이들을 다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지금 미카가 느끼는 이 증오스런 감정들은, 모두 오늘 아침의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카는 장난감 회사에 다녔다. 그 중에서도 그녀는 장난감을 구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같은 부서의 디자이너들은 이 주에 한 번 큰 회의를 가졌다. 그들 자신이 떠올린 장난감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미카는 십 이 년 차였지만 매일 그 회의에 발표자로서 참석했다. 그러나 아무리 연차가 쌓여도 그녀의 발표 공포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미카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많이 떨렸다. 그래서 미카는 오 분 만에 ‘빠꾸’당했다. 아침 시간의 그 회의 이후로 미카는 계속 우울했던 것이었다. 문득 심통이 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지만, 그건 그저 저 자신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나온 반쪽의 자기위로였다.

 

장난감 회사. 그 곳은 미카의 직장이었다. 장난감같은 회사라는 게 아니라, 또는 장난감으로 이루어진 회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회사였다. 컴퓨터 회사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과자 회사에서 과자를 만들 듯 장난감 회사에서도 장난감을 만들었다. 미카의 일인 장난감 구상은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지만, 미카는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껍데기는 꽤 그럴듯했다. 그녀는 손가락이 검게 물들만큼 많은 양의 도안을 그렸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생각을 해냈다. 거의 치사량의 생각을 해야 했다. 그래도, 생각이 없을 때 고질병처럼 밀려올 불안을 상상하면 차라리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일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미카의 손은 언제나 까맸다. 사람들은 미카에게 멋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아직도 열정을 잃지 않는다는 게 사람들의 눈에는 꽤 대단하게 보였던 듯 했다. 실제로 미카는 신입사원들보다 더 바쁘게 일했다. 그럼에도 미카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때마다 그들의 말을 잘근잘근 씹어넘겨야 했던 이유는 왠지 모를 혐오감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카의 앞에 선 거대한 벽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미카 앞의 두꺼운 벽은 장난감을 닮았다. 분홍색과 파랑색으로 뒤덮인 벽 앞에 서면, 미카는 장난감 나라 속의 인형이 되었다. 미카는 그 플라스틱 벽 안에 어떤 것이 들어차있는지 잘 알았다. 그 안에는 잔뜩 엉킨 검은색의 전선들이 있을 터였다. 누가 장난감 안에 그런 것들이 들어가게 허락했냐 물으면, 미카는 답할 말이 없었다. 장난감은 원래부터 그랬다. 구태여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이 장난감 안에는 전선이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번쩍번쩍하고 그럴듯한 겉모양을 위해서는 전선이 꼭 있어야 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굳이 그 안을 열어보지 않을 뿐이었다. 미카는 갑자기 토기가 밀려드는 것 같았다. 좀 역겨웠지만 괜찮았다.

 

 

 

회사가 끝나면, 미카는 아들을 데리러 갔다. 미카의 아들은 유치원 종일반에 다녔다. 아들은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렸고 운동을 했고 노래를 불렀다. 아들은 항상 밝았다. 미카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유치원으로 들어서면, 아들은 빠르게 뛰어와 미카를 안았다. 아들은 곧 자신의 서랍에서 스케치북을 꺼내어 그 날 그렸던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은 항상 선명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의 모습, 나무에 앉아있던 작은 참새의 모습, 높은 채도의 색채는 생기가 넘쳤다. 미카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작은 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을 것을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들을 칭찬했다. 아들은 아주 착하고 말도 잘 듣는다고 했다. 미카는 미소지었다. 그녀는 졸리다며 투정을 부리는 아들을 안아들고 차 안에 태웠다. 아들이 졸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후로부터 칠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갓난아기 때의 얼굴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아마 아들이 나이가 들어서 미카보다 키가 커지고 목소리가 굵어져도 그녀는 아들에게서 분유 냄새를 맡으려 할 것이었다. 아들의 몸에 묻은 초콜릿 자국을 찾으려 애쓸 것이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들이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카는 괜스레 미안함이 들어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 엄마가 일이 좀 있었어.”

 

아들도 미카가 일을 하고, 그 일 때문에 늦게 온다는 것쯤은 알았다. 아들이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들은 다시 질문했다.

 

“무슨 일인데? 난 엄마가 일찍 왔으면 좋겠어.”

 

미카는 멋쩍게 웃었다. 미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웃음을 터뜨리는 일 뿐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내일은 더 일찍 올게. 미카가 말했다. 아들은 여전히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아들의 목표는 그걸 알아내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일찍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미카의 약속을 듣고 다시 잠에 빠졌다.

 

 

 

미카와 그녀의 아들이 집에 도착하자, 미카의 딸은 치킨을 먹고 있었다. 미카가 언제 시켰냐고 물었다. 딸은 시큰둥한 얼굴로 미카가 오는 걸 보더니, 하도 안 오길래 치킨 시켜 먹고 있었어, 라고 말했다. 미카는 딸의 옆에 앉았다. 아들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저도 먹고 싶다는 눈치를 보냈다. 딸은 잠시 아들을 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제일 작은 치킨 조각을 손에 들려 주었다. 아들은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맛있게 치킨을 먹었다. 미카는 아이들의 옆에 앉아 두 아이가 치킨을 먹는 것을 보았다.

 

“엄마, 오늘 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어땠어? 잘 했어?”

“응. 잘 했어. 엄마가 우리 유정이랑 유준이 응원 받고 힘내서 잘 했어.”

“역시 우리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니까.”

 

그녀의 딸은 능청스런 표정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동요 부를 나이는 지났으니까, 엄마 사랑해요 뭐 그런 건 못 하지만, 우리가 엄마를 지켜줄 수 있잖아, 라고. 미카는 맞장구를 쳤다. 미카는 웃었다. 미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는 딸의 볼을 쓰다듬어주다가 딸의 볼에서 기름진 치킨 냄새가 아닌 싱그런 복숭아 냄새를 맡았다.

 

“그래도 엄마한텐 가끔씩 동요같은 거 불러줘. 엄마는 우리 딸이 노래불러줄 때가 제일 좋더라.”

“에이, 그래도 동요는 좀 그런데…….”

“동요가 좋잖아. 밝고 귀엽고. 너희들한테 딱 어울리는데.”

 

딸은 미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치킨 조각을 입에 넣었다. 미카는 딸의 컵에 콜라를 따라주었다. 콜라가 넘쳐 옆으로 흘렀다. 사실 그 컵에는 콜라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주변이 좀 더러워지긴 했지만 닦기만 하면 되었다. 아들이 휴지를 가져왔다. 끈적한 콜라의 자국이 바닥에 남았다.

 

 

 

“그러니까 어제 나왔던 아이디어들을 다 검토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미카 씨의 아이디어는 가장 상투적이고 오래된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에 토끼 인형 옷입히기 같은 걸 팔으라구요? 배를 누르면 기괴한 소리가 나는 거, 그거 말고 이 인형에 뭐 특별한 점이 더 있습니까? 뭐 그건 특별한 것도 아니죠. 아까 말했듯 상투적이기 짝이 없고 판에 박혔으니까요. 미카 씨가 나이가 좀 있는 건 맞지만, 그래요, 그건 저도 압니다만, 그에 맞춰서 더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자꾸 발전없는 모습만 보여주신다면…….”

 

모든 말이 듣기 싫었다. 그녀의 상사는 그녀가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동안, 미카는 자신의 얼굴이 진흙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무겁고 차가웠다. 미카는 그의 모든 말을 다 들은 후에야 제자리로 향할 수 있었다. 연필심이 가슴을 확 관통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제가 몇 번이고 부러뜨렸던 연필심이 이제는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미카는 낙서를 끄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미카는 더 잘해야 했다. 더 많이 생각해야 했다. 발전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시간을 때우는 일이 없어야 했다. 미카는 연필을 들었다. 그러나 연필은 유난히 묵직했다. 연필을 들자마자 손에 힘이 들어서, 미카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결국 미카는 회사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때의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회사는 공장 단지 주변에 위치했다. 제조업계의 회사이다 보니 공장 곁에 있는 것이 유리했다. 일을 하는 도중에 사무실 창밖을 쳐다보면, 공장의 굴뚝에서는 허여멀건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옥상에 올라오니 그 모습이 더 잘 보였다. 굴뚝은 번식하듯 연기를 뿜었고, 연기는 구름의 일부가 된 것 마냥 높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미카는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던 담배를 피워보고 싶어졌다. 제가 피운 담배 연기도 하늘로 올라갈 것 같았다. 그러나 제게는 담배가 없었다. 당연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미카는 텅 빈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그 안에서 연필을 찾아냈다. 담배 대신 연필로 손바닥을 찌르며, 미카는 드넓게 펼쳐진 공장 단지를 관찰했다. 공장 단지는 새까맣고 흐렸다. 요상스럽게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미카는 제 손을 멈추었다. 미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공장 단지의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에 든 연필을 꽉 쥐었다. 연필이 따뜻했다. 미카에게도 드디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공장. 공장이었다. 공장은 여태껏 한 번도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곳이었다. 소방서도, 사무실도, 병원도, 경찰서도, 카페도, 높은 성도, 편의점과 작은 승용차도 장난감이 된 적이 있었지만 공장은 없었다. 미카는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미카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미카가 연필을 들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안지를 가득 채워버릴 듯한 열기였다. 그녀는 단 몇 시간만에 도안을 그렸다. 장난감은 직사각형의 상자 모양이었고 그 안에는 컨베이어 벨트와 각종 절단기들과 기계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미카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미카의 그림은 온통 검은 흑연으로 그려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뚜렷하게 빛이 났다. 미카는 제가 그린 도안을 몇 번이고 다시 바라보았다. 미카는 행복했다. 자신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미카는 아들과 딸에게 따뜻한 저녁을 차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카는 깊은 자아도취에 빠진 채 퇴근할 때까지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미카는 그 날 일찍 퇴근했다. 아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했다. 커다란 눈망울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들이 생각나서, 미카는 더 급하게 악셀을 밟았다. 아들이 제게 무슨 그림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그냥 아들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들의 스케치북이 이상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엄마, 오늘 쓰레기장 뒤에 숨어있었던 쥐야.”

 

미카는 굳은 얼굴로 아들의 그림을 살펴봤다. 아들은 쓰레기장과 쥐를 그렸다. 그림은 무채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그림에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부분은 쓰레기통이었다. 쓰레기통의 색은 과하게 밝은 하늘색이었다. 그 옆에 작고 째진 눈을 하고 고개를 내민 쥐가 보였다. 어떤 쥐는 쓰레기통의 플라스틱 면을 뚫고 나와 고개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미카는 당황을 숨긴 얼굴로 그림 속 쥐의 눈을 가리켰다. 아들이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쥐야. 엄마, 나 진짜 잘 그렸지?”

“쥐를, 쥐를 어디서 본 거야?”

“놀이터 뒤 쓰레기장에서. 거기서 쥐가 숨어 있었어. 쥐 집인가 봐. 신기해서 보고 바로 그렸어.”

“쥐는 더러운 거야, 유준아. 손으로 만지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막 관찰하려고 다가가면 안 돼.”

“손으로 안 만졌어. 다가가지도 않았어. 그냥 멀리서 봤는데 신기해서……. 엄마,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그럼, 이게 아들의 잘못이 아니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소중한 아들의 앞에 벌떡 나타나버린 쥐의 잘못이란 말인가? 아니면 아들이 들고 있던 검정색 색연필이, 쥐의 아늑한 소굴이 되어주었던 쓰레기장이, 혹은 아들을 그 더러운 생물 옆에 있도록 놓아 둔 선생님이 잘못했단 말인가? 미카는 자신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했지만 답이 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것,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아들은 호기심에 쥐를 관찰했고, 처음 보는 그 생물체에 이끌려 그림을 그린 것뿐이었다. 그 행동 자체를 나쁘게 보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아이의 관찰력에 칭찬을 해 줄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미카는 그런 아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들의 그림 속 쥐는 유난히 혐오스러워 보였다. 미카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차 안의 분위기는 어제보다 훨씬 더 가라앉은 상태였다. 미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도 미카의 눈치만 살폈다. 차 안에서 아들이 흘린 땀의 냄새가 펄펄 흘렀다.

 

 

 

씨발, 씨발, 딸이 말했다. 엄마는 일찍 온다면서 매일 늦게 와. 엄마는 약속도 안 지켜. 봐봐, 벌써 여덟 시가 넘었잖아.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 딸이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미카도 화를 냈다. 유정아, 욕하지 말랬잖아! 딸은 더 크게 소리쳤다. 씨발, 엄마가 뭔데! 나도 이제 열 살이나 됐단 말이야! 나도 이제 십 대란 말이야! 미카는 기가 차서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넌 욕하면 안 돼! 누가 엄마 앞에서 욕을 하래! 어디서 배웠어, 그런 말, 어디서 배웠냐고! 딸이 악을 썼다. 어른들은 다 욕하잖아! 왜 나는 안 돼! 아직도 나를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 엄마! 메마른 딸의 등에서 텁텁한 흑연 냄새가 났다. 미카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다 구토를 했다. 엄마의 돌발 행동에 놀란 아들이 엄마에게 다가와 미카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었다. 엄마, 괜찮아? 이게 다 누나 때문이야! 누나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했어! 방 안에서 딸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왜 나한테만 그래! 엄마는 매일 날 어린 아이로 봐! 난 어린 아이가 아니란 말야! 난 초등학교 삼학년이고 내 아래에는 일학년과 이학년도 있단 말야! 난 혼자서 치킨도 시켜먹을 수 있단 말이야! 미카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까지 토사물을 뱉어 냈다. 징그러운 냄새가 제 입 안에서 풍겼다. 그러자 다시 토기가 밀려 왔다.

 

 

 

우울한 밤도 결국에는 지나간다. 수없이 우울한 밤이 지나갔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 장난감 세상이라면 하루 종일 밝은 낮이겠지만, 여기는 현실이라 밤과 낮이 있다. 그렇게 가차없이 밝아진 아침을 또 수없이 맞았다. 이 주만에 회의가 열렸다. 미카가 발표를 시작했다. 손이 떨렸고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공장이라는 소재는 장난감에서 단 한 번도 쓰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구상한 이 장난감은 그 공장을 주제로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더 넓은 공간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그녀의 상사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색이 너무 딱딱하고 아름답지 않군.”

 

미카가 변명했다.

 

“색은 바꾸면 됩니다. 스케치로만 그린 거라서, 정확히 색을 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녀의 상사 옆에 앉아있던, 안경을 쓴 여자가 말했다.

 

“모양이 너무 각져 있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부추기진 못할 것 같군요.”

 

미카는 또 변명했다.

 

“이 위에는 예쁜 모양도 달릴 겁니다. 무늬도 넣을 겁니다. 아직 스케치 단계라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그 여자의 옆에 있던 주걱턱의 남자가 말했다.

 

“왜 굳이 이곳이 ‘공장’이어야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 말은, 미카 씨가 만든 이 장난감이 요정들의 공작소라거나 왕자의 로봇 실험실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말입니다.”

 

미카가 짧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미카의 발표가 끝났다. 미카의 상사는 다시 한 번 더 엄숙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카 씨에게는 도무지 창의성이란 게 보이질 않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새로운 것, 창의성이라는 건 어쩌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껏 필요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카는 저를 침범하는 생각을 받아들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를 지켜보던 상사의 표정이 더 나빠졌다. 안 나갑니까? 미카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회의실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요정들의 쿠키 공작소.

 

미카는 제목을 적었다. 그 장난감의 제목은 제 이름의 유래를 떠올리게 했다. 미카. 미카는 본디 천사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했다. 왜 제가 천사의 이름을 갖게 됐는지는 몰랐다. 천사처럼 살으라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라고 미카는 짐작했다. 그녀는 천사의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그래서 그녀는, 천사가 됐었던가. 천사는 무슨 일을 하는가. 제가 어릴 적 읽은 동화에 나온 천사들은 전부 아이들을 지켜주고 악마와 싸우는 일을 했다. 그래서 미카는 천사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을 지켜주고 악마와 싸워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악마가 곁에 온 것을 알아차린 적은 있었던가. 미카의 버려진 뜻이 미카의 장난감 안으로 흡수된다. 나름 달콤했던 그 이야기를 미카의 장난감이 삼켜버린다. 물론 미카는 어른이라서, 단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카는 또 다시 자신에 대한 위로를 시작한다. 애초부터 나는 싫어했던 거니까. 내겐 필요가 없었던 거니까.

 

고소한 반죽 냄새가 공작소 안에 퍼집니다. 공작소의 한 켠에는 초콜릿과 체리와 색색깔의 스프링클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요정들은 작은 날개를 갖고 있어서, 공작소 안을 날아다니며 쿠키를 만듭니다. 하트 모양 뱃지를 단 요정들은 노릇하게 구워진 쿠키 위에 딸기 크림을 얹습니다. 새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퍼지면, 입 안에서 침도 꼴깍 넘어갑니다. 파란 모자를 쓴 요정들이 쿠키를 포장합니다. 흰 레이스가 달린 상자 안에 쿠키를 넣고 이 선물을 받을 착하고 예쁜 어린 아이를 위해 그들은 날아갑니다. 여러분도 곧 요정들이 만든 맛있는 쿠키를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만든 장난감의 짧은 설명을 쓰며, 미카는 한숨을 쉬었다. 미카는 도안을 그려 다른 부서로 보냈다. 그 부서에서는 장난감의 모형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일이 처리될 때까지 자신은 좀 쉴 수 있을 것이었다. 한층 더 가벼워진 몸으로, 미카는 잠에 들기로 했다. 아들의 쥐 그림도, 딸의 욕짓거리도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미카는 편안했다.

 

 

 

삼 일 쯤 지나 모형이 도착했다. 미카는 장난감 모형을 차 안에 실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미카는 아들을 차 안에 태우고, 집에 가서 그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아들에게 먼저 보여주면 아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누나에게 실없는 자랑을 시작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미카는 모형을 상자 채로 집까지 들고 왔다.

 

미카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미카는 한껏 익살스런 미소를 띄고선 상자를 열었다. 예쁘고 산뜻한 장난감 모형이 상자 안에서 나왔다. 아들은 큰 소리로 환호하며 장난감을 쓰다듬었고, 딸은 어정쩡한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미카는 장난감을 가리키며 딸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 이건 정말 멋지지만 내가 갖고 놀기에는 너무…… 작고 유치한 것 같아.”

 

미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유준아, 너는 어때? 미카는 힘없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예뻐! 근데 엄마, 여기 쓰레기통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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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 16 일 전
* "그리다 만 장난감 도안들과 부러진 연필심들이 미카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 "미카의 책상 위에는 온통 그리다 만 장난감 도안들과 부러진 연필심들로 가득했다." : '미카의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라 미카가 일하는 책상 위에 가득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합니다. * " 책상 한 켠에서 눈치를 보며 숨어있는 사탕 껍질들조차도 도무지 봐 줄 수가 없었다." – "책상 한 켠에서 사탕 껍질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게 보였다." : 사탕 껍질이 미카의 눈치를 보는 상황. 어딘지 어색합니다. 과유불급입니다. * "그래서 미카는 오 분 만에 ‘빠꾸’당했다." – "그래서 미카의 프리젠테이션은 오 분 만에 끝났다." : '빠꾸'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진술문에서는 되도록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Read more »
6 개월 12 일 전

좋아하는 가수 이름이 미카라(우연히도 본명이 미카엘이네요..)보게 됐는데 재밌네요…미카 노래 중에 toy boy라는 노래가 있는데 의도하고 쓰신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서도 장난감이 '그녀가 내 눈을 부두 핀으로 찔러버렸어요.' 뭐 이 비슷한 노래를 하는, 동심파괴 가사가 있거든요ㅋㅋ아무튼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글솜씨가 없어서 뭐라 말을 못하겠네욬ㅋ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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