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목록

이방인

 

 

아득하다. 물 밖의 소음들이 귓가에서 유영하다 사라진다. 중력이 나를 가져가려 한다. 몸을 최대한 웅크린다. 무릎이 내 수경(물안경)을 건드린다. 눈을 뜨면 앞이 수초처럼 하늘거린다. 무릎을 말아 올려서 그런지 머리가 바닥 쪽으로 향하고 등이 수면 위로 올라간다. 등만 물밖에 있다는 게 느껴진다. 무엇이 더 따듯한지 모르지만, 어렸을 적 엄마의 배에 손대고 있으면 뱃속에 있는 동생이 발장구를 치는 걸 느꼈을 때 같다. 새롭고 이 밖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숨이 점점 가빠진다. 소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고요하다. 내 심장 박동만 내 안에서 크게 울린다. 쿵,쿵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물 밖으로 나온다. 왁스냄새가 훅, 끼쳐온다. 몇 천 년 만에 발견된 동굴에 더께 진 어둠이 플래시와 함께 사라진다면 이 순간 같을 것이다. 유영하던 소음이 귓가를 때린다. 웅,웅, 거리는 소음이 날카롭게 들린다. 점점 의식이 또렷해진다.

 

내 몸이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몸이 무거워 진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잠수를 했다. 내가 오늘 잠수한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엄마가 죽어버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알려준 건 동생이었다. 동생은 적당히 하고 돌아오라는 말투로 말끝마다 한숨을 쉬며 내게 전화로 말했다. 나는 일단 엄마를 진정시키라고 말하려 했지만 동생은 얼른 끊어버렸다. 내가 가출하는 이유는 엄마의 재혼 때문이었다. 엄마가 데려 온 사람은 외국인이다. 그것도 내게 어떤 통보도 없이 집에 느닷없이 데려왔던 것이다. 그 남자는 잘 익은 통 돼지의 피부색이었다. 얼굴은 번질거렸고, 코가 컸다. 입은 양복도 옷이 그 사람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보였다. 나를 보고 반갑습니다 하는 어눌한 말투와 되지 않는 발음을 억지로 내려 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가출할 것이라며 집을 뛰쳐나왔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협박이 동생을 통해 전해 왔던 것이다. 너무나 막막했다. 순진한 엄마가 저런 놈을 만나서 사기 당할 것 만 같았다. 비타 오백에 가장 많이 들어간 성분은? 하고 객관식으로 묻는 광고가 있었는데, 엄만 그걸 비타민이라 맞추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조금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태어나기 두 달 전에 돌아가셔서 재혼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너무도 일렀지만 외국인이라니! 내게는 미칠 나름이었다. 나는 일단 집으로 향했다. 수영장에서 방금 막 나와서 온 몸이 시렸다. 감노랗게 한숨처럼 번진 노을이 아무도 없는 거리에 맺히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 갔다.

 

 

집 문을 열자 엄마와 동생은 어딜 간 듯 안보였고 그 남자는 마이를 입은 채 앉아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 온 걸 눈치 못 챈 듯 했다. 나는 몰래 다가가 헛기침을 하고 정면돌파 한다는 마음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당장 나가요! “왜? 우리나라 시민권이라도 얻어서 가족 데려오려고?”
나는 ‘우리나라’ 라는 말에 힘주어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의 태도에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홧홧해졌다. 내게 아빠 없다고 놀리는 애들이랑 같아졌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아니에요 그런 거……. 저 고아입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엄마를 사랑해요”
남자는 ‘다’와 ‘요’ 섞어가며 어눌하게 말했다. ‘사랑해요’라고 할 땐 조금 쑥스러운 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남자는 양복 속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휴대폰하나를 내게 건넨다.
“오늘 생일이라고 들었어요”
남자가 투박한 손으로 내게 건넨 휴대폰은 폴더 폰이었다. 정말이지 가지가지 했다. 나는 생일도 아닐뿐더러 폴더 폰은 개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쓰지 않았다. 나는 그냥 쓰는 척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남자는 빙긋 웃었다. 정말 빙긋 잇몸과 하얀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었다. 피부색과 대비 돼서 그런지 정말 하얗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쿵,쿵 엄마가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도 뒤 따라 올라오는지 쿵 ,통 쿵 ,통 하고 엄마와 같이 계단 오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현관문에서 내 신발을 발견한 엄마는 내 방문을 작게 몇 번 두드렸다. 그 두드림이 엄마는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드리다 말고 엄마는 밥 다 하면 나오라고 했다. 엄마도 민망한지 점점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지, 봉지들이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양이 꽤 많은 듯 했다. 좀 지나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카레냄새와 된장냄새가 섞인 코끝을 찌르는 냄새였다. 엄마는 그 남자 나라 음식을 해주는 듯 했다. 배가 고팠지만 그 냄새가 집안에 퍼지는 게 너무 싫었다. 냄새는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그 남자가 우리 집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냄새도 그랬다. 동생은 내 방문을 두드리더니 밥을 먹으라고 했다. 작게 이렇게 말했다.
“철없게 그러지 말자.”

 

 

나는 마지못해 끌려 나가는 척 밥상으로 갔다. 그 남자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앉아 있었다. 어색한 것 하나 없이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가족이라 했을 정도였다. 한 통속이구나 라고 할 정도였는데, 나는 거기서 배신감을 느껴버렸다. 내가 밥상에 앉자 꽃피우던 대화는 찬물을 끼얹은 듯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카레만 내 시야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민망해서 그냥 숟가락으로 카레를 펐다. 남자도 푸고, 동생과 엄마도 숟가락으로 펐다. 내가 한 번 더 푸려고 하는 순간 남자도 카레에 숟가락을 넣는 바람에 숟가락들이 서로 부딪혔다. 남자는 베시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더니 그 숟가락으로 내 그릇에 퍼주었다. 나는 그 웃음에 응답하지 않은 채 김치에 카레를 먹었다. 꽤 맛있었다. 그 남자 마을 비법으로 만든 것이어서 처음 보는 맛이었다. 나는 모르고 방구를 꼈고 그 침묵들은 유리창 깨지듯 깨졌다. 웃음으로.
나는 밥 다 먹었다고, 싱크대에 그릇을 놓고 뛰쳐나왔다. 부끄럽기보다는, 왠지 모르는 감정이 복차 올랐다. 나쁘지 않은 묘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잠수를 했다.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살고 싶었다.

목록

첫번째 댓글을 올려주세요!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