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녁을 허락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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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그것이 이번 주제이다.  마음건강, 하고 나직이 읊조릴 때, 언어는 쉽게 혀에 붙지 않았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나는 맥이 빠졌다. 하여 오래 헤아려 보았다. 마음 건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마음, 마음은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라고, 건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 라고 사전이 대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마음건강’이란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건강’. 그것은 내게 21세기의 현실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시대인가를 역설하는 슬픈 이름처럼 들린다.

공자에 이어 동양사상의 학문적 발전을 이룩한 맹자는 기원전 300년경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본디 선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어떤 인간이 악행을 하는 것은 그가 원래 가지고 태어난 선한 성질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선한 본래의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글에서의 맹자는 임금 앞에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날카로운 언변의 소유자요, 냉철한 사상가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자의적으로 몹쓸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정말 그렇게 믿었던지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지 간에 그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2300년이 지난 오늘날, 거리에는 인두겁을 뒤집어쓴 짐승들이 사냥감을 찾아 배회하고 있다. 성선설을 이야기하기 민망한 시대다. 사람이 사람을 밟고 올라서고,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이 무한경쟁의 지리멸렬한 틀 아래 마치 훈장처럼 추켜세워지고 당연시되고 부추겨지는,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니던가.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맹자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찾고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수단으로 꼽은 것은 전인격적인 교육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가 배우는 것은 배움인가. 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장 예쁜 것만 보고 듣고 배우며 자라야 할 이 땅의 아이들이 12시, 1시, 2시까지 계속되는 이 미친 ‘교육’에 시들어가고 있다. 이제 한두 명의 아이들이 자살하는 정도로는 뉴스에 실리지도 않는 세상이다. 나는 무서움을 느끼는 동시에 이 땅에서 오늘도 밤을 새면서, 코피를 쏟으면서 공부에 열중하는 모든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그래, ‘마음건강’ 말이다. 그것이 문제다. 다른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다. 마음을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휴식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속 적군을 총칼로 찌르고 쏴 죽이면서 그것을 스트레스 해소라고, 쉬는 중이라고, 휴식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이 나라에서 아이들의 휴식을 보장해주지 못했는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잠시 머리를 식히러 화창한 햇볕을 등지고 어두컴컴한 피시방에 들어간다.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쉬지 않는다. 아니, 쉬지 못한다. 모두들 일에 미쳐 있다. 누구를 위한 노동인가. 노동의 삯은 결국 돈, 돈, 돈이다. 봄날 가족과 소풍 한번 나가지 못하는 돈, 맘 놓고 마음껏 쉬는 데 쓰지 못하는 돈, 그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직장인들이 교수대 같은 넥타이를 매고 새벽녘부터 집을 나선다. 마음 같은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여기는 마음들의 신음소리로 얼룩진 땅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나는 힘이 없다. 사실 이 글 또한 글짓기 대회가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을 글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에 간직해온 글이고, 언젠가 써 보리라고 마음먹었던 글이었음은 분명하다. 어떤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어린 나는 무지하다. 다만 바라기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무의미한 경쟁 체제에서 탈피하여 생산보다 분배에 집중하고, 기업이 일회용 휴지 쓰듯 필요할 때마다 채용해 쓰다 버리는 비정규직 인력을 법에 따라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승급시켜서 상도에 맞는 경영을 하고, 개개인이 보다 더 지역사회, 아니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서 최소한 밥이 없어서 굶주리고 옷이 없어서 떠는 이웃이 내 주위에 없도록 한다면 이것이 저 옛날의 공자가 논했던 대동사회를 여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녁. 그것은 얼마나 그리운 이름인가. 별을 보며 집을 떠나서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에게 저녁이란 어느덧 사치품 같은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 저녁을 허해야 할 시간이다. 그것은 사치도, 허영도, 과욕도 아니고 다만 인간답게 사는 지극히 명료한 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아, 마음이 병든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무수한 아해들아, 이제는, 이제는, 이제는 너의 인생에 저녁을 허하라.

 

학교 글짓기 대회에 제출하려고 써두었던 글입니다. 토해내듯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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