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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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입니다.

날이 좋아요. 햇살이 환한데 오늘 나는 퍽 쓸쓸합니다. 내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피고, 지고, 흔적을 남기는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벗님들은 어떤가요?

3월의 월장원은 두 편입니다. 김지용1 님의 <이방인>과 오태연 님의 <쭉정이>. 축하드립니다.

모든 작품을 잘 읽었어요. 일상의 벅찬 행복에 대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내면의 열정에 대해, ‘나’라는 존재의 그늘에 대해,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제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해, 부족했던 나를 담담히 응시할 수 있는 내면의 성장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버티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의 마음을 나누어주어 고맙습니다.

 

우재영 님 <함께 할 때의 행복>

한참 지나버렸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멋진 파티였겠죠? 16년 만에 찾아온 선물 같은 친구들과의 우정. 얼마나 근사한지 읽는 나도 설레었어요. 우재영 님의 글을 통해 ‘함께’와 ‘혼자’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되는 것이란 걸 느꼈답니다. 나도 ‘혼자 하는 모든 것이 OK’인 사람이에요.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때로 그들과 만나 온기를 나누며 위로받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에서 사소한 버릇 한 가지를 덜어내면 좋겠어요. 이 글의 내용 때문인지, 강조를 위한 형용사를 넘치게 사용하고 있어요. ‘큰 행복이라는 걸 깊이 느꼈다.’는 말의 ‘큰 행복’, ‘깊이 느꼈다’를 들여다보세요. ‘큰 행복이라고 느낀다.’라고 써도 화자의 행복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전달됩니다. ‘많이 행복하다. 아주 많이’, ‘깊이 박혔고 참 고마웠다’, ‘깊은 의미를 느껴보는 말’ 등 강조를 위한 형용사를 빈번히 사용합니다. 이런 강조는 적당히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절약할수록 글 안에서 그 형용사의 가치가 커집니다.

 

 

속도 님 <견디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속도 님이 글을 쓰는 이유와, 속도 님이 글에 담는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글이 가진 힘에 대해, 글이 주는 위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상처를 입잖아요. 그 상처는 남들 눈에 별 것 아닌 걸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참기 어려운 통증이 되죠. 특히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가 그렇더라고요. 친할수록, 좋아할수록, 믿을수록 그가 주는 작은 상처에도 더 큰 아픔을 느껴요. 반대의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요. 나는 내 사소한 실수가 누군가에게 큰 아픔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고 당혹했어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가해자가 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역할만 할 수는 없단 걸 알았죠. 이 글에 속도 님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경험도 같이 들어가면 어떨까요? 상처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더 선명히 보일 겁니다.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내용은 의도치 않은 개인의 상처를 보여주는 일례로 조금 약합니다.

전개가 유려하고 문장이 명료해 전달력이 좋은 글입니다. 내밀한 생각도 잘 표현하고 있어요.

 

 

전하리 님 <묻어 둔 말들>

‘나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그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 참 피곤한 일인데, 알면서도 그만두기 어렵습니다.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 느낌,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변형하고 결국 껍데기만 남은 느낌, 마침내는 ‘내가 한 일들이 내가 되어,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내가 한 일의 흔적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상황이 잘 담겼어요. 마지막 문장에 담긴 비관적인 울림은 생각할 거리를 만듭니다. 화자가 말하는 ‘여기’는 화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로 그것인가, ‘밝은 미래’라는 외부의 기준이 만들어낸 허상인가. 화자는 나인가, ‘내가 아’닌 나인가.

전하리 님이 이 글에 자신의 생각을 더 견고히 담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쓸 때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주세요. 예로 ‘쓰라리는 말들 때문에 아파왔던 내가 조금이나마 강해 보이려 쓰고 있던 밝음의 탈을 벗고 돌아다녀도 당황하지 않아야 했다.’같은 문장은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윤별 님 <숨의 기억>

내 고등학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나도 학교생활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고될까. 마리오네트처럼 하루를 보내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매일을 버텨나가는 건 얼마나 고통스런 일일까. 글을 읽으며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윤별 님의 글을 읽으면 막연하게 ‘힘들겠구나.’ 짐작했던 것들이 구체화되어 다가옵니다. 윤별 님은 상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도록 바꿔놓거든요. 정교한 표현도 윤별 님의 글이 가진 매력입니다. 글은 노력을 배신하지 하지 않아요. 쓰는 만큼 쌓여 다음 글의 자양분이 됩니다. 윤별 님이 쓰는 글 한 편 한 편 어느 것 하나 스스로에게 귀하지 않은 글은 없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꾸준히 글을 써나가면 좋겠습니다.

 

 

김지용1 <이방인>

엄마가 데려온 이방인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장면으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아빠 없다고 놀렸던 애들 틈에서 이방인과 같았던 나와 이 나라의 이방인인 그 남자의 자리를 겹쳐보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화자, 담담하게 그 남자를 받아들이는 동생, 민망해 하면서도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그 남자, 큰 아들 앞에서 작아지는 당신을 추스르며 노력하는 어머니…….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어요. 관찰력과 묘사력이 상당합니다.

마무리는 다소 갑작스러워요. 카레와 김치, 서로에게 이국의 음식일 것들이 섞이고 화합하는 마무리가 소설이었다면 진부하게 보였을 겁니다. 그래도 김지용1님 자신의 경험일 터이기에 따뜻하고 기분 좋게 다가오네요.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잠수를 했다.’는 문장과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살고 싶었다.’는 문장이 한데 이어지며 느낌을 만듭니다.

이 글은 첫 문단의 묘사가 좋아요. 첫 문단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문단부터 문장이 흐트러집니다.

 

오태연 님  <쭉정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묵직해요. 쭉정이 같은 자신의 마음과, 그 마음을 여전히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담담히 쓰고 있어 매력적입니다.

형에 대한 얘기가 없다면 오태연 님이 왜 쭉정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을 겁니다. 잘난 형 때문에 형처럼 알맹이가 단단하게 보이는 그 녀석, 나비넥타이가 어울려 보이는 그 녀석이 더 마땅치 않아 보였다는 것이 지금보다 더 또렷이 드러나도 괜찮을 듯해요. 심리의 흐름을 더 풍부히 보여줘도 좋겠습니다.

내용이 조금 더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선 시간대가 더 분명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와 회상의 경계가 모호해서 읽을 때 헷갈립니다. 첫 문단은 현재죠? “태연아, 같이 가자.”라는 대화 위에 회상으로 들어가는 짧은 문장을 한줄 추가해주세요.

엄마에게 쭉정이를 걸러내는 법을 물은 뒤, 그에 대한 엄마의 말이 생생히 들어가도 좋겠습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쭉정이를 걸러내고, 쭉정이를 거르는 게 사실 아주 쉬운 일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라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이 얼마나 사소한 벽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쭉정이 같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걸러내고 그 녀석과 마주할 힘을 얻게 되는 모습이 조금 더 나오면 좋겠습니다.

 

타임머신 님 <현실 도피>

단문을 감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공격적인 말투로 툭툭 던져내는 문장에 한 번 더 눈이 갑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듯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삽입하고 계좌에서 3만원을 가져’가는 행위에 눈이 확 가며 집중하게 되는데, 막상 이렇게 뺀 돈으로 PC방에 가 현실의 도피처로 컴퓨터 개임에 몰입하게 된 원인이 내용에서 빠져 있어요. 이 내용이 없으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요. 사실 보다 근원적인 부분, 상처 입게 된 원인을 글로 쓰기는 쉽지 않아요. 상처를 마주보아야만 하니까요. ‘나’를 현실 도피로 몰아간 그 사건과 그로 인한 상처를 쓸 수 있을 때, 이 글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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