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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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에서부터 푸른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밤의 끝과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의 신호였다. 마시던 코코아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매서운 겨울의 추위를 생각해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방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안개 낀 날의 유리창처럼 탁한 색이었다.

새벽 공기는 맑았다. 숨을 들이마시니 몸속으로 시원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이른 시간인 탓인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 근처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시간에도 비둘기는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들을 쪼아 먹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새벽이 끝나가는 듯 태양의 따스한 빛이 건물 사이로 비춰졌다.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낡아 부서질 듯했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듯 자신들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제각각 층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다. 겉모습이 다른 점이나, 자존심이 강한 점이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순간 네가 떠올랐다. 흐리멍텅한 눈에 납작한 코, 작은 입을 가진 너.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너.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하얀 연기가 되어 천천히 희미해졌다. 일어나려 손으로 벤치를 짚으니 부스럭 소리가 났다.

소리의 정체는 신문이었다. 누군가 읽고 버린 모양이었다. 누가 읽은 것일까 생각했다. 취업난에 휩쓸린 청년일까. 자만에 빠져 잘난 체를 하는 늙은이일까. 집도 없이 바닥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신문지를 몸에 덮은 노숙자일까.

알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만든 것은 종이비행기 3개였다. 첫 번째로 던진 종이비행기는 얼마못가 떨어졌다. 첫사랑이 떠올랐다. 다시 던졌다. 첫 번째 것보다 멀리 날아갔지만 차이는 별로 없었다. 차인 기억이 떠올랐다. 세 번째의 종이비행기. 멀리 날아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어 날아가지도 못하고 내 앞에 떨어졌다.

어느 곳으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나쁜 예감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정되질 않았다. 네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네가 보고 싶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너의 집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정도의 거리지만 너와 만날 수 있다면 멀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너와 무슨 얘기를 할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더니 어느새 너의 집 앞이었다. 10평이 될까 말까한 원룸. 흰색의 철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와 눈꼽 낀 눈. 좋지 못한 얼굴을 한 너는 내가 온 걸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좋았다. 특별하진 않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까.

“이런 시간에 무슨 일로 온 거야?”

너는 다그치지도 않고 상냥하게 물어봐주었다.

“그냥 보고 싶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너의 가슴팍에 안겼다. 듬직하고 따뜻했다. 너는 놀란 탓인지 어정쩡하게 나를 안아주고는 여전히 서툰 솜씨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런 서툴음이, 순수함이 나는 좋았다.

“코코아 마실래?”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너에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집이었지만 아늑했다. 집 어디서든 너의 향기가 났다.

“잠깐만 기다려줘.”

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작게 달려있는 창문 밖을 보았다. 새벽의 몽환적인 푸른빛은 이제는 없었다. 대신 아침의 온화한 하얀빛이 대신하여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지각색이었다.

너는 쟁반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쟁반 위에는 분홍색 컵과 파란색 컵이 올리어져 있었다. 함께 가게에서 샀던 커플 컵이었다. 너는 분홍색 컵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코에 가져다대지도 않았는데도 코코아의 달콤한 향이 맡아졌다. 나는 웃으며 컵을 받아 들었다.

한 모금을 마시고 두 모금을 마시고, 달콤한 코코아 덕분에 내 입 꼬리는 귀에 닿을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너는 이런 내 얼굴을 보고 싱긋 웃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너는 손을 내 입가로 가져다대어 묻어있던 코코아 거품을 떼어주고는 혀로 핥아 먹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내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자 너는 귀엽다고 말하며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이런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웃으며 너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코코아를 홀짝였다. 네가 마시고 있는 건 믹스커피였다. 네가 더 어른스러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질투심이 들었다. 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파란색 컵을 내려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다른 일은 없고?”

“응. 그냥 보고 싶어서.”

내 대답에 너는 멋쩍게 웃었다.

“보러 오는 건 좋지만 연락은 하고 와줘. 세수라도 해야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금 일어난 너도 좋으니까 상관없어.”

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었다. 우웅, 하고 너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너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 미안.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야.”

너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구나, 잘 갔다 와.”

“너도 돌아가야지.”

너는 그렇게 말하고 비워진 컵들을 쟁반에 올려놓고 싱크대로 옮겼다. 그렇겠지. 네가 없는 곳은 쓸쓸하니까.

나는 너를 따라 건물을 나섰다.

“택시 잡아 줄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차를 사기는커녕, 택시 한번 타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걸 난 알고 있었다. 너는 알겠다고 말하고선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그런 너의 뒷모습을 나는 몇 분 동안이나 바라봤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까지고 입을 맞추고 싶고 같이 자고 싶어. 나를 마주보고 웃으며 좋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하지만 너는 해주지 않아. 네가 나를 책임질 능력이 없어서, 그만큼 나를 소중히 해서 그런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는 눈부신 태양이 비춰지고 있는 하늘. 우는 게 싫어서 웃었다. 활짝 웃었다. 처량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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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2 일 전
* "좋지 못한 얼굴을 한 너는 내가 온 걸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잠이 덜 깬 상태였던 너는 나를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부스스한 머리와 눈꼽이 낀 눈,이 좋은 상태인 것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게 좋지 못한 상태는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일 뿐이죠. *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이런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 이런 느낌은 어떤 느낌이죠?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가 좀더 분명한 표현인 듯 합니다. * " 차를 사기는커녕, 택시 한번 타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걸 난 알고 있었다." : 차를 사기는커녕,이라는 진술 앞에는 "차를 산다, 차를 살까, 차를 살… Read more »
3 개월 19 일 전

첫문단을 읽고 나서 묘사가 참 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늘에 대한 묘사가 특히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글의 서사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하네요. 감성적이라서 그 점은 좋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세번째 종이비행기가 툭 떨어져버린 때에 저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면서, '나'처럼 불안에 빠졌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가 '너'의 집으로 가는 동안 가슴을 졸였어요. 그런데 의외로 그냥 평범하게 흘러가서 안심했지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순이네요.)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불안을 현실로 만들어줄 사건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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