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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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가 걷고 있는 곳은 하얀 눈이 잔뜩 쌓여있는 숲.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여있던 눈의 알갱이들이 빛처럼 흩날렸다. 소녀는 숲에 나있는 철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기 위해 만든 철로였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소녀 때문이었다.

 

소녀는 ‘순백의 마녀’라고 불렸다. 소녀는 자신이 사는 숲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막았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대부분 겁탈이나 살인 같은 일이었고 가해자를 제압하고 피해자를 돌려보냈을 뿐이었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그런 소녀가 방금까지 자신을 토벌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던 마을을 말살시켰다. 그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

 

소녀는 언제나처럼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눈처럼 하얀 머리칼과 피부, 때타지 않은 순백의 옷까지. 눈밭에 누우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얬다.

 

소녀는 철로가 나있는 곳을 지나가다가 눈 속에 파묻힌 작은 소년을 보았다. 소녀는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피부가 전부 새파랬고 소녀의 손이 차가워질 만큼 소년의 몸이 차가웠다. 눈이 가득 쌓일 정도의 온도를 가진 숲에서 무언가 얼어 죽는 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었다. 소녀가 지나치려하자 소년이 소녀의 발목을 잡았다.

 

“살…려주세요…”

 

소녀는 숲의 주인, 부탁을 받았으면 거부할 수 없었다. 소녀는 소년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자신이 지내던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통나무집 안에는 흔들의자와 서랍밖에 없었다. 소녀는 서랍 안에서 담요를 꺼내 소년의 위에 덮어주었다. 소년이 아직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소녀는 소년의 손을 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마녀라고 불리는 만큼 마술적인 지식이 있었기에 소녀는 소년의 몸에 있는 차가움이라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왔다. 소년의 몸이 점점 따뜻해지고 피부도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담요를 제대로 덮어주고는 통나무집을 나섰다.

 

소녀가 차가움을 끌어왔던 손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숲을 걸어 다녔다. 멀리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향했다. 소녀의 앞에 있는 동물은 늑대였다. 아마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남게 된 듯했다. 소녀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늑대는 소녀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발톱으로 자신의 목을 깊게 그었다.

 

소녀는 늑대의 피가 튀어도 상관하지 않고 다가갔다. 늑대의 숨이 완전히 끊긴 걸 확인하고 소녀는 늑대의 시체를 끌고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통나무 집 안에는 소년이 막 깨어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에 잡혀있는 늑대의 시체를 소년에게 내밀었다. 살려면 먹어야한다는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소년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울고만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어려서 자기 혼자 못 먹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늑대의 이빨을 뽑아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소녀는 배가 고프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더욱 서둘렀다.

 

손질을 끝마치고 소녀는 핏물이 떨어지는 고기를 들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이미 실신하여 쓰러져있었다. 소녀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기를 자신의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새하얀 소녀의 입에서 붉은 혈액이 흘러나오며 이미 붉게 물든 원피스를 더욱 붉은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소녀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고기를 입에서 꺼내고는 소년의 입에 쑤셔 넣자 소년은 의식이 없는 중에도 고기를 삼켰다. 소녀는 소년이 제대로 삼킨 것을 확인하고 늑대의 시체를 들고 통나무집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새하얀 손으로 눈을 파헤쳤다. 차갑게 얼어붙은 흙을 파헤치고 딱딱한 돌을 땅 위로 끌어내고 늑대의 시체를 그 안에 넣고는 다시 메꿨다. 소녀의 손은 딱딱하게 굳은 피와 흙, 부러진 손톱으로 기괴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소년을 마을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없었다. 소녀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다시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달이 떴다. 하늘에는 쥐에게 파 먹힌 생김새의 달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별들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듯 모여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숲에 횃불을 든 남자들이 걷고 있었다. 그들은 소년이 돌아갔던 마을의 남자들이었다. 처참한 몰골을 한 채로 돌아온 소년의 몫을 갚아주려는 생각이었다.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앞을 걸어갔다.

 

“저기 있다!”

 

“죽어라, 마녀!”

 

남자들은 앞 다투어 마녀에게로 달려들었다. 마녀는 순순히 남자들의 손에 잡혀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소녀는 의문과 차가움을 담은 눈으로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몰라서 묻는 거냐!”

 

남자들은 소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바닥에 처박았다. 손을 뒤로 묶고 눈에 천을 씌우고 재갈을 물렸다. 소녀는 남자들 중 제일 건장한 남자의 어깨에 들려 마을로 옮겨졌다.

 

소녀의 재갈이 풀린 곳은 마을의 광장이었다. 소녀에게 제일 처음 보인 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칼날이었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자신을 바닥에 처박았던 남자의 얼굴이었고 그 다음은 자신이 돌봐주었던 소년의 얼굴이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소녀에게 분노하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소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소년을 돌봐주었을 뿐이었는데 모두가 두려움과 분노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말하였다.

 

“이 사악한 마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소녀는 순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중 몇몇은 떨어져있던 돌멩이를 던지는가 하면 가지고 온 농기구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소녀가 머리에 맞자 찢어진 머리 가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입술에 맞자 입술은 붉은 피를 허공에 퍼뜨렸다. 소녀의 하얬던 원피스는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구제 불능이군. 내가 이 마녀의 목을 치겠다!”

 

남자는 그렇게 외치고는 칼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고 소녀의 목으로 내리쳤다. 소녀의 목은 깔끔하게 잘리지 못했다. 목의 반만이 남아서 상처에서 피가 흩뿌렸다. 남자는 다시 칼을 휘둘러 소녀의 목을 완전히 잘라내었다. 목이 없는 몸에서는 하늘로 폭죽을 터뜨리듯 피를 뿜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함성을 지르고 남자는 뿌듯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소녀는 죽지 않았다. 소녀의 몸에서부터 차가움이 퍼져나갔다. 소녀의 몸을 묶고 있던 줄은 순식간에 얼어붙고는 산산이 깨져버렸다. 소녀의 몸은 자기 혼자 일어섰다.

 

“무, 무슨…”

 

남자는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은 방금과 다른 두려움 섞인 비명을 질렀다. 소녀의 몸은 자신의 머리를 집어 들어 원래 위치에 두었다. 소녀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차가움만이 느껴지는 무표정. 마을사람들과 남자는 감히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희는 아무런 죄가 없는 나의 목을 잘랐다.”

 

소녀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의 목을 자른 너희를, 더욱 심한 꼴로 만들어도 상관없겠지?”

 

소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녀의 몸에서 눈보라가 휘몰아 쳐나갔다. 제일 먼저 얼어붙은 건 남자였다. 그 다음은 소녀에게 보살핌을 받은 소년, 그리고 다른 마을사람들. 소녀가 천천히 걸어가서 얼어붙은 남자를 가볍게 건들이자 남자는 천천히 금이 가더니 부서져버렸다.

 

소녀가 걸어간 곳은 소년의 앞이었다.

 

“너는 나에게 살려달라고 했다. 결과가 이렇지만 약속을 깰 수는 없겠지.”

 

소녀는 소년을 내버려두고 마을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무지(無知)하다. 누군가에게 선동당하여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바라보기만 했다.”

 

소녀는 한명, 한명 자신의 손으로 부숴나갔다. 소년의 주변에는 붉은색 얼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소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을을 떠났다. 철로를 따라 숲에 도착했다. 소녀는 다시 숲을 돌아다녔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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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월 3 일 전
글 잘 봤습니다! 제목에 이끌려 들어왔는데 소녀의 행동이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게 됐어요. 목을 다시 붙인 것도 그렇고, 숲의 주인이라는 묘사도 그렇고 일단 소녀는 인간이 아니네요. 그런데 읽고 나서도 계속 남아있는 의문점 한 개가 있어요. 왜 소녀는 순백의 마녀라고 불리는 건가요? 순백이라는 건 후에 머리카락도 옷도 하얗다고 나왔으니, 조금 늦게 설명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괜찮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왜 마녀인가요? '소녀는 자신이 사는 숲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막았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대부분 겁탈이나 살인 같은 일이었고 가해자를 제압하고 피해자를 돌려보냈을 뿐이었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범죄 행위를 막았는데, 가해자에게서 피해자를 구해주었는데 어째서 마녀인지 모르겠어요. 소녀의 행동이 아무래도… Read more »
6 개월 10 일 전
* 잘 읽었습니다. 아름답고 서늘한, 잔혹동화 같은 느낌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하신 계기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한 듯 합니다. "너희는 무지(無知)하다. 누군가에게 선동당하여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의 배경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숲 속 마을인가요? 소녀는 왜 하필 마녀인 걸까요? 그녀가 마녀인 까닭은 초인적인 힘을 통해 무지한 자들을 응징하기 위한 장치인가요? 저는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환상 소설이나 sf, 로맨스, 무협 등등의 소설들도 얼마든지 미학적일 수 있다고, 그래서 문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러 분 또래에 글을 쓰시는 분들은 그런 장르 소설이 더 익숙할 수도 있고요. 작품을 통해…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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