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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곳은. 허기가 졌지만 상을 차리는 과정을 생각하니 귀찮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밥을 걸러도, 외출복 그대로 이부자리에 누워도 내게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금세 때탄 이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서리에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전 집에 비하면 안방만도 못한 크기의 집이었으나 나는 그나마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지 않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누울 자리마저도 아쉬워했겠지. 생각하며 나는 피로함에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혹시 드라이버 있어요?”
옆집이 한동안 시끄럽더니 새로 이사를 들어왔나 보다. 전이라고 교류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으나 면식은 있는 사이였는데, 그 사람은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이웃, 아마도 내 또래의 그는 첫 만남에 다짜고짜 내게서 공구를 구했다. 나는 사정이 급해 보이는 그에게 공구를 빌려주었고 그는 내친김에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해왔다. 평소 같으면 거절했겠지만 끝나고 술을 사겠다는 그의 말에 홀려 흔쾌히 승낙했다. 일은 쉽다 못해 짐정리 수준에 이르러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그의 약속대로 우리는 안주와 술을 마셨고 그 와중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느낀 건데, 그와 나는 생각보다 닮아있었다. 서로의 과거얘기는 묻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니 그도 나처럼 젊은 나이에 어떠한 사정으로 얽힌 청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나는 그에게 유대감을 느꼈다. 그날 이후 그의 친화력 덕분에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나는 생활고로, 그는 고독으로 시달리던 차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술친구가 되었다.

그날은 예고 없이 내린 비가 그치지 않던 하루였다. 늦잠을 잔 나는, 허둥지둥 움직여 바로 일터로 나갔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오후 느지막이 돌아와보니 그가 보였다. 그는 문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두려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뻗어 내 집 문턱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이른 곳에선 탁한 물이 방 안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미처 닫지 못한 창문으로부터 쏟아진 빗물이 바닥을 채운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묵직하니 잘 열리지 않던 문을 잡아당기자 문을 막고 있던 빗물이 쏟아졌다. 그 빗물은 우리의 발을 흠뻑 적시고 복도 바닥으로 퍼져나갔다. 욕설을 내뱉었다.
방에 들어섰다. 나는 젖은 물건을 하나씩 정리했다. 펴놓은 이불도 물을 먹어 축축했다. 한동안 맨바닥에서 자야겠네, 생각했다. 내가 이불을 걷을 동안 그는 문 밖에 멀뚱멀뚱 서서 내 집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의 집을 들른 적은 있어도 그가 내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집은 그의 집보다 훨씬 누추했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질려버린 눈으로 방을 둘러보는 그에게 말했다.
“뭐해? 얼른 와서 도와주지 않고.”
그제야 그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내 방에 발을 들였다.
한창 내 집을 치우다가 말고 그는 자리에 퍼더앉았다. 나 또한 온종일 일하고 온 나머지 기력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마대를 집어던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힘들 때마다 내쉰 한숨의 양을 재보면 이 집을 채우고도 남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보다.”
넋을 놓고있다가 그가 스치듯 내뱉은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식간에 많은 의문이 머리를 스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가족들 뭐하는데?”
“정육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나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고기 자르고 나면 손에 남는 비릿한 피냄새가 그렇게 싫더라.”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위로하거나 편을 들어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어서 이 청소가 끝나고 난 뒤 그를 돌려보낼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마간 잡담을 늘어놓다간 도무지 피곤해서 안 되겠다며 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어느 정도 정리된 집 안을 바라보다가 맨바닥에 베개 삼아 사전을 깔고 누웠다. 찬기가 올라서인지 도무지 졸리지 않았다. 눈을 끔벅거리다 모서리의 곰팡이를 바라보았다. 그새 번식한 곰팡이는 내 집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천장을 꺼멓게 물들여가고 있었다. 그날, 나는 결국 잠을 설쳤다.

그날부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밤중에도 여러 번 내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나는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열어주지않았다. 그도 내가 대놓고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고 난 뒤부터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거나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나는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새벽에 일을 나가 밤에 돌아와서 곧장 잠자리에 들고 다시 일어나 일을 나가는. 더 이상의 술값 걱정은 없었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의 문앞에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그가 이사를 나가는 것인지 이미 나가고 새사람이 들어오는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우연히 라도 그와는 마주치고싶지않아 재빨리 집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텅 빈 밥솥을 보니 밥맛이 사라졌다. 나는 대충 세면을 마치고 이불 위에 몸을 누였다. 유난히 일찍 잠에 빠져들 무렵이었다. 벽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웃 여성이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방음이 되지 않아 나의 집에 그녀의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 퍼졌다. 나는 익숙하게 베개로 귀를 막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만일 그녀가 나의 집 문을 두드리면 없는 척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육개월 뒤면 저도 글틴에 더이상 글을 올리지 못하게 되네요. 뭔가 아쉽고 슬프다… 늘 정성스러운 첨삭 감사합니다…!! 여름 감기랑 모기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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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월 24 일 전

헉 중복 댓글이 안 지워지네요..

2 개월 24 일 전
애기애타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짧지만 마음에 여운이 남는 글이었어요. 화자인 '나'가 정말정말 안쓰러웠거든요.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 보다' 하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그를 멀리했죠. 처음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정이 있는 줄 알고 동질감을 느꼈지만, 알고 보니 돌아갈 집이 있는. 이 곳보다 더 나은 곳이. 그리고 어쩌면 가족과의 연을 끊어버린 듯한 '나'와는 달리 가족이 있는. 그런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느껴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에 한때 그의 집이었던 곳에 한 여자가 이사를 오고, 우는 소리가 절절하게 들림에도 '만일 그녀가 나의 집 문을 두드리면 없는 척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건 또 그런 느낌을 받기 싫어서였을까요. 돌아갈 집이 있고, 현재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안식처가… Read more »
2 개월 21 일 전
* "집이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곳은. 허기가 졌지만 상을 차리는 과정을 생각하니 귀찮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밥을 걸러도, 외출복 그대로 이부자리에 누워도 내게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금세 때탄 이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 "집이었다. 종일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온 나는 허기가 졌지만 상을 차릴 생각을 하니 귀찮아졌다. 때가 묻은 이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밥을 걸러도, 외출복을 입은 채 이부자리 위에 누워도 이제 내게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 문장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 첫문단에서 드러내고 싶은 의미는 '혼자'라는 것과 '남루함, 누추함' 정도일 것 같은데요 마지막 문장인 '금세 때탄 이불'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굳이…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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