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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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맛이 있다’는 것이지요. 맛이 없는 공기는 없잖습니까? 유기체든 무기체든 자신만의 맛을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지요. 정정해야겠군요. 공기는 맛이 있습니다. 공기는 단순히 호흡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씻을 수도, 맛볼 수도 있지요. 한번 힘껏 들이마셔 보십시오. 상큼하고도 달콤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지요? 후각도 빠뜨릴 수 없지요. 시원하고도 상쾌한 향기가 콧속 깊이 빨려 들어갑니다. 공기가 ‘제4원소’에 포함되어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 나도 알아. 공기는 맛이 없어. 뭐라고? 공기가 맛이 있다고, 누가 그러지?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렸을지 모르겠군. 왜곡된 사실에 쉽게 현혹되다니, 왠지 그답지 않은걸. 나도 들었어. 공기가 맛있다고 확고히 믿으면서 무작정 정의를 내려 자기주장까지 펼치고 있다는 거. (비교적)냉철한 지성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압도당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설득력 있는 가설일까?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걸. 어쩌면 굳건한 신념을 가진 나도 한순간에 휘둘려버릴지 모르지. 과연 내 신념과 통찰력, 안목과 시선은 얼마나 튼튼할까?

 

[공기가 맛이 있든 없든 나는 관심 없습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요. 있으면 보이지 않는 맛을 볼 수 있어 좋을 테고 없으면 아무 생각 없이 들이마실 수 있어 좋겠지요. 내가 보기에 그녀는 믿지 않는 것 같군요. 믿을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솟아나는 건 사실입니다.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선 공기가 맛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꼭꼭 숨기고 다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과연 그처럼 심취할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지나갈지 기대되는군요. 물론 나는 삼자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겁니다. 아무런 사심도 없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구경해보도록 하죠.]

 

‘이런, 꽤 늦었군. 뒤늦게 들어와 볼품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그래, 나 때문이야. 늦게 들어온 것은 내 잘못이고 나를 탓하는 것도 내 잘못이지. 물론 허위사실을 유포한 건 내가 아니야. 증거는 없지만, 내 주장이 곧 증거 아니겠어? 결국 두 가지밖에 없는 거지. 내가 퍼뜨렸거나, 다른 사람이 퍼뜨렸거나. 사실 데마고기 따위 내가 알 바 아냐.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기에도 부족하고 재미가 있거나 서사 구조가 탄탄하지도 않지. 하지만 하나의 드라마로 치환될 수는 있겠어. 노력하면 내 흥미를 끌 수 있겠는걸.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탄복할 만한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겠지. 어디 한번 공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고.’

 

(이때쯤이면 처음 그 사람이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여보? 그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첫 장면의 남자가(확실하진 않지만) 공기의 맛을 표현하고, 두 번째 여자(잘 모르겠지만)가 공기의 맛을 반대하고, 세 번째 사람(누군지 모르겠어)이 느긋하게 관조하고, 네 번째 존재(감이 안 잡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거지. 이런 유의 이야기는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해.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해둔 거지. 규율을 어기면 처벌받는다거나 형식을 깨뜨려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지만 주의를 주는 것들이 꽤 있단 말이야. 내 말은 모든 이야기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 자유롭지 않은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럴 바엔 다 집어치우는 게 나아. 당신도 읽어봐서 알지? 화자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방식.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 등에서 자세히 드러나지. 잘 모르겠으면 인터넷에 찾아봐. 다 나올 테니. 방금 전에 말했지만 앞서 나왔던 화자는 다시 돌아와야 해.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자연스러운 서술을 통해서 그래야만 해. 하지만 또 새로운 화자(바로 나야 나)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흔한 방식의 소설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이 네 사람, 아니 다섯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작가만 알겠지. 아 미안, 잊어버렸어. 당신도 있었군. 당신이 말을 하지 않으니 존재감도 사라지고 있잖아. 아무 말이나 해봐. 가령, 공기에 관한 말이라도 좋으니.)

 

이런 식으로 나가면 끝이 없을 텐데요. 줄표에 대괄호, 따옴표에 괄호라. 나는 기호가 없네요? 그렇다고 제가 맨 처음 그 사람일까요? 공기의 맛을 음미하고 예찬하는 그? 장편이면 모르지만 짧은 이야기에서 자꾸만 화자를 늘려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용서를 고려해보지요.

 

*그거 아니? 나를 그리는 사람이 이제 특수기호까지 쓰기 시작했단다! 웃기지 않니?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왜 한 사람마다 분량도 오락가락하는 걸까? 앞으로 또 무슨 기호를 사용할지 기대되지도 않아. 실컷 공기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으면 끝까지 책임져야할 거 아냐. 안 그래? 나도 참, 누구에게 말을 거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공기는 맛있습니다. 공기는 절대적으로 맛있습니다. 맛이 없다면 이런 맛들을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공기는 수없이 많고 다채로운 맛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향유하기만 하면 됩니다. 공기는 공기 중에 빈틈없이 날아다니고, 그 공기 중 일부분은 싫더라도 당신 콧속에 들어가겠지요. 내뱉지 마십시오.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세요.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게 순조로워질 테니까요. 상쾌한 공기는 결코 변색되지 않는답니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어! 위의 사람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니야! 여보, 내 예상대로라면 얼굴 기호 윗사람이야. 용서 어쩌고 한 사람 말야. 어째서 첫째 사람을 흉내 내지? 말투와 표현까지 차용해가면서 말이야. 모두 다른 기호(혹은 아무것도 없는)를 가지고 있지만 저 사람 혼자 첫 번째 사람처럼 기호가 없어! 작가가 기호 넣는 일을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소란스럽군요. 소괄호 씨는 그런 것에 일일이 상관하는 게 귀찮지도 않습니까. 다른 화자를 따라하든 말든 저는 어디까지나 삼자로서 지켜볼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가 공기에 관해서, 적어도 공기와 가까운 주제 안에서 토론해보자는 거지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공기를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글귀와 어휘 사이에서 헤매는 보잘것없는 화자일 뿐입니다.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마시고 있지 않은지 마실 수 있는지 마실 수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감히 공기에 대해, 위장과 속임수에 대해, 경계와 형식, 틀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깐, 그러니까 소괄호 속 화자가 말한 대로 저 윗사람이 맨 처음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뭐야? 이 엉망진창 지리멸렬한 상황을 알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줄줄이 화자를 늘어놓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앞으로 계속 쏟아내는 건 아니겠지? 이제 이쯤 되면 작가 본인도 지쳐서 그만둘 텐데 말이야. 벌써부터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관둔 게 틀림없어. 사실 더 나타난다 해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 알아서 하라지, 뭐.

 

-언제부터 주제가 공기가 아닌 우리가 되었지? 우리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가 아니었던가? 과연 우리는 서로를 기호로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누구나 기호를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두 번째 화자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누가 언제 어떻게 바꿀지 누가 알겠어? 이렇게 끊임없이 의문만 이어지다 결국 ‘공기’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화자는 무한한 것일지 몰라. 따옴표 속의 내가 단락들 위의 나인지 나는 알 수 없지. 이 화자가 나인 것을 믿을 뿐이야.’

 

[완전히 아수라장이군요. 슬슬 지치기 시작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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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드디어 만났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당신들한테서 정보를 캐내려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화자라는 것만 알지 우리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모르잖아. 이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뿐인데, 문제는 작가가 여기 모습을 드러낼지 끝까지 은둔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거지.

*그건 쓸데없는 걱정 같은데. 작가는 작품 속에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어. 우리가 누군지 스스로 깨달아야하는 거지.

(자, 모두 잠깐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얘기해봅시다. 첫 번째 화자는 어디로 간 걸까요? 여기 남아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화자가 그 화자를 흉내 내고 있는 걸까요? 여보, 당신도 이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무 말이나 해봐야 할 거 아냐?)

‘이봐, 실존하지도 않는 인물에게 말 걸지 말라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건 이 공간, 구조, 틀이야. 물론 등장인물인 우리도 포함되지. 줄표 씨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해. 이해되지?’

(훈계하지 마.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을 마치 자기 혼자 달통했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싸우지 맙시다, 여러분. 여기서 싸우면 이득 될 게 없어요. 첫 화자가 어째서 공기 얘기를 꺼냈는지 아리송하지만 그것가지고 다투면 좋을 게 없잖습니까. 물론 우리는 공기보다 우리 정체에 관해 관심이 더 많지만 말입니다.]

:뒤늦게 나타나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이런, 이제 끝났나 싶었더니 또 새 등장인물이 나오는구만.

-그래서 첫 화자가 숨은 거야 나타난 거야? 알 수가 있어야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어디로 도망간 거지?

글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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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은 고개를 들어 공기를 마신다.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허공에서 누군가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성현은 엉뚱한 생각을 품는다.

어쩌면, 원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을지 몰라.

 

-[(+%!@?=~*.</‘:,^우리는, 모두,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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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21 일 전
안녕하세요, 모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형식으로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신기함을 느꼈어요. 글 안에서 언급하신 이라는 책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글이 전개된다니 읽어보고픈 마음이 마구 드네요. 그와 별개로 이 글은, 으음…우선 이런 형식의 글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단 걸 알아주세요. 저에게 이 글은 상당히 난해했습니다. 처음에는 공기의 맛의 유무를 이야기하다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궁금증도 커져만 갔는데, 성현이 등장하는 부분을 보니 아무래도 앞의 화자들은 원소인가 보네요. 3번 정도 반복해서 읽었는데 존재에 대한 얘기가 주제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마지막 문장 때문에 흐트러지네요. 우리는 모두 하나가… Read more »
4 개월 19 일 전
20세기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소설들이 등장했죠. 작품 중간에 공간, 구조, 틀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처음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가 나왔을 때도 그렇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낯설게 하기'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을 때도 그렇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자는 쪽과 전통적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쪽은 팽팽하게 맞섰겠죠. 이처럼 지금은 익숙한 형식적 실험 혹은 명칭의 처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예술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볼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모로님의 이 작품 또한 당연한 것을 거부하고 당연하지 않은…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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