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갓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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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입고 있는 프록코트는 실들의 교합이 다분히 엉성한 모양새라서, 한 눈에 보아도 솜씨 나쁜 양복쟁이에게 최대한 싼 가격에 급히 맡긴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곤죽이 된 남자의 혈흔이나 살덩이 따위가 눌러 붙어서 딱히 팔 수 있을 만한 품질도 아니었지만요. 대충 살펴보기만 해도 남자가 굳이 고급 비단으로 옷을 맞춰 입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주머니 사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박살나고 으스러진 시체의 뒷주머니를 쑤시는 일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니까요.

다만 걸리는 것은 그의 사정이 아니라 내 뒷주머니 사정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높으신 분들의 행차 빈도가 줄다보니 워낙에 갓길에서 시체를 보기란 힘든 일이었습니다. 가끔 갓길에 사람의 흔적이 닿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높으신 분들의 행차를 구경하려 드는 선량한 사람들을 마차로 밟아 죽이고 나선 그대로 갓길에 던져버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간혹 살인이나 교통사고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면 시체를 은폐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이 경우엔 나 같이 갓길의 사람들이 시체를 처리해 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요.

차라리 후자라면 확실한 처리를 위해 시체 뒷주머니에 뒷돈을 넣어놓아 나름 수익이 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시체들은 전자의 사례를 통해 던져져 오기 때문에 시체들에겐 어떠한 귀중품도 들려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평범한 마을 주민 내지는 걸인이고, 높으신 분들이 발끝에 핏방울 묻히는 정도야 시간이 닦아내주기 마련이니까요. 때문에 나 같은 갓길의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건 후자에 해당되는 시체입니다.

그러나 지금, 머리통이 바퀴에 짓눌려 피범벅이 된 채로 부패가 진행된 남자의 시체는 어떻게 보아도 살인을 당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고 뒷주머니를 살펴볼 필요도 없을 정도의 궁색함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구역질을 참으면서 썩은 살덩이에 달라붙은 주머니를 때내어 보는 건 옛일이었습니다. 가치가 없다고 확인된 시체를 수레에 싣고 가기 전 나는 최소한의 장례를 치릅니다. 흙 한 줌을 퍼내어 시체의 가슴팍에 끼얹는 일이 그것입니다. 나는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흙을 허공에 바스러뜨리며 중얼거립니다. 실격.

 

갓길은 말발굽 소리를 내며 흙 한 줌 밑창에도 닿지 않으려 하는 높으신 이들에 의해 쫓겨난 것들의 자리. 희망이니 꿈이니 사랑이니 하던 그런 긍정적인 단어들을 내려놓아야만 간신히 박살난 두 다리로 기어올 수 있는 자리.

마을로 오는 도로는 하나뿐이고, 가파른 바위들의 나열 위에 지어진 도로의 양옆은 제법 까마득한 낭떠러지입니다. 실제로는 1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가끔씩 산등허리에 안개가 밀려오는 참이면 마치 하늘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는 그 자리. 사람들은 허공을 걷는 듯 신성함을 몰고 오는 그 다리를 ‘천공의 내리막’이라고 이름 붙이곤 귀이 여겼지만, 굳이 안개 아래의 무간지옥엔 이름을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 아래 들어찬 세상을 최소한의 가장자리지만 엄연히 길, 갓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위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충 아래의 세상에 짐작을 건네고는 하는데 대략 사람이 그 아래로 사라지면 다시는 못 올라온다더라 하는 이야기랄지, 아래엔 사람고기를 즐기는 도깨비들이 우글거린달지 그런 이야기뿐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집어삼켜 척수를 빨곤 하지만, 우리에게 모이를 주는 것은 위의 사람들뿐인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것마저 외면하였지요.

어쨌거나 욕망과 죄악이 끊이지 않는 이상 이곳에 사람들의 최후가 굴러 떨어지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종전되고 십년 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마주해 익숙한 모양새니까요.

 

드르륵, 땅 파는 소리가 습기를 머금은 나무들 틈새로 낮게 깔리어 흩어집니다.

무덤들이 즐비하고, 그 아래에는 썩어 들어가는 성하지 못한 몸뚱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누구나 이곳에 오는 걸 내키는 건 아니지만, 당장에 썩어 들어가는 부패한 시신을 처리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일은 없습니다. 이 무덤은 사실상 마을 하나를 이루는 구성원의 수만큼이나 즐비해 있지만, 개 중에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이름을 써놓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성질머리를 앓은 사람들이 가끔씩 시체를 아무데나 방치해 놓은 꼴을 보면, 어쩌면 무덤 안의 사람들은 그나마 안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갓길은 사방이 안개로 자욱하기 마련이지만 어째서인지 오늘만은 달빛이 선연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합니다. 나는 옆구리를 파 먹힌 초승달로부터 흥미 잃은 시선을 돌려, 평소에도 잘 구경할 길이 없던 무덤가를 바라봅니다. 흔히 갓길의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칠 기회가 워낙에 없지만, 매우 드물게 시체를 털다가 시선이 맞고 나면 이 무덤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합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예전에 만났던 누군가의 비유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위의 길이 천공의 내리막이라는 거창한 이름이라면 무덤가는 내리막에 달라붙은 이끼일 거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위쪽의 치부는 곧잘 안개가 가리곤 하니까요. 칭송되는 존재는 꼭 허황된 깨끗함을 가져야만 한다는 듯.

씁쓸한 생각에만 잠겼던 나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한기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초승달이 구름에 가려진지 오래, 아마 밤이 깊어 어둠에 숨은 모양입니다. 쓸 데 없는 일에 정신을 팔고 있었더니 아직도 시체의 흙을 모두 덮어놓지 못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어둠이 밤에 익은 내 눈마저 좀먹기 전에는 마쳐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머리를 울리는 순간, 앞서 내 고막에 강한 진동이 전달되는데 무언가가 길의 비탈길을 타고 굴러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이 늦은 시각 갓길에 발걸음을 들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필히 어딘가 칼에 찔리거나 두부가 으깨진 상태로 길 위의 세상에서 버림받은 신세. 시체일 터였습니다.

 

2.

 

소녀가 갓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돌아오는 것은 없고 허무함만이 메아리치던 종전 이후, 황폐해진 도시와 부족한 식량에 사람들은 저마다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던 욕망의 행방. 최소한의 식량과 보금자리가 있다고 알려진 길 위의 마을에 가기 위해, 아직 천공의 내리막이라는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길의 보폭을 넘어선 인구 때문에 차마 중심부를 차지하지 못하고 힘없이 옆으로 밀려나는 몇몇의 사람들은 끝내 길 좌우에 나란히 가려진 안개 틈으로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에 굶주린 발걸음은 그런 한둘의 낙오자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낙오자들의 잔상과 한 줄기만 남은 비명을 들으며 사람들은 중심의 무리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으며, 당연히 개 중에서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은 낭떠러지로 내밀려야 했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소녀 역시 실패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소녀의 앙상한 몸은 애초에 성인 남성을 제치기는커녕 비슷한 또래의 꼬마들에게도 밀려나는 신세였기에, 마치 파도를 따르듯 소녀는 자연스레 가장자리로, 낭떠러지와 맞닿은 곳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혼란이 머리를 두드리는 통에 자신의 발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 소녀가 그 아래 한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만 것은 순간이었다.

다만 떨어지는 순간까지의 소녀도, 길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사람들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길 양 옆의 낭떠러지는 안개에 가려져 그 아래가 한없이 깊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10미터 안팎의 높이로, 불가사의한 행운만 있다면 떨어져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였다는 것이다.

소녀의 경우가 그러했다. 소녀는 눈을 떴을 때 물씬 코를 찌르는 비릿함에 몸서리를 치며 몸을 일으키다 자신이 깔아뭉개어 온몸이 박살난 거구의 남자를 목격한다. 소녀가 떨어진 위치는 그 아래에 쓰러져 있던 뚱뚱한 남자의 하복부였고 그의 내장을 다 들어내는 대신 소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행운보다도 소녀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구역질과 공포였다. 몇 차례의 구토와 헛구역질을 하던 소녀가 자신이 떨어진 곳이 진정 어디인가를 짐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는데, 황량하게 마른 나무들의 대열과 어디선가 울리는 까마귀의 지저귐이 귀에 익을 무렵 소녀의 눈엔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안개가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순간, 소녀의 동공이 먹먹하게 커졌다.

달빛과 맞물린 안개의 헝클어짐이, 밤을 자욱하게 가려 세상을 덮는 안개의 잿빛 색채가 유년의 눈망울 속에서 마치 꽃의 형상처럼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소녀는 일찍이 전쟁을 겪어 아름다움과 감동에 대해 배우지 못했으나, 그녀의 커진 두 눈망울은 가슴에 먹먹해지는 순간의 현상이 무엇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피 냄새와 거무튀튀한 흙들 속에 덮인 비명에서조차, 버려졌고 한없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색채를 가진 그 풍경은, 분명한 꽃이었다.

그 날, 달이 사라지도록 소녀는 하염없이 흐드러지는 형체 없는 꽃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만나, 자신들의 땅을 ‘갓길’이라고 칭하고 척박한 땅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3.

 

불만족스러운 손들은 애꿎은 손놀림을 멈추지 않습니다.

“집이 아담하고 좋구나.”

노인의 서글한 목소리가 귓가에 박힙니다. 나는 앉으라는 의미의 불친절한 손짓을 내비칩니다. 무언의 강요에도 노파는 잔주름이 박힌 미소를 띠며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댑니다.

나는 그녀가 의자를 당기고, 지팡이를 허공에 몇 번 휘적이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1분의 시간동안 불완전한 기억을 되살리며 황당하게 틀어진 방금 전 계획의 일부를 되감습니다.

그랬습니다. 시체라고 직감하고 달려간 소음의 근원지에서 쓰러져 있는 웬 노파를 발견한 나는 대충 그녀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그녀가 숨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습니다. 낭떠러지에서도 용케 상처 없이 살아남은 그녀는 내 기억에 갓길에 잔재하는 1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녀를 수레에 태워 집까지 걸어온 나는 그녀에게 방 한 켠의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방은 냉난방이 잘 안 될 것 같은데, 덥거나 춥지 않으냐?”

“아니요.”

“식사는 매번 하니?”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달리 노파는 일상에 관한 것들을 시작으로 하여 무엇이든 궁금한 걸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충 윗길과 이곳을 왕복하는 꼬마들이 있어요. 낭떠러지도 높지 않아서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오르는 건 충분하고요. 그 애들에게 돈을 내고 위에서 음식을 내려 보내게 하는 거예요.”

내 딴에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고 했으나 누가 들어도 건방짐에 가까운 말투였습니다. 약간의 정적 또한 그걸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황한 내 뺨 위로 식은땀의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구나. 워낙에 안 좋은 소문이야 많다지만, 결국엔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겠지. 사람의 체취를 맡고 행복이라는 말을 아는, 그런 곳이었겠지.”

이곳은 버려진 자리라고, 찢겨지고 밀려나 상처 입은 것들만 오는 자리라고 차마 대꾸할 수는 없었습니다. 언뜻 노파의 거친 눈주름에 흐린 빛이 스치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곳엔 너 혼자 사는 거니?”

대충 그렇다고, 하지만 이곳 ‘갓길’엔 보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년 전까지는 기르던 개가 한 마리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개는 갓길에 버려진 것들 중 하나로, 전쟁 통에 이곳에 떨어졌다가 내가 우연히 발견해 치료하고 같이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개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에 어렴풋이 그려진 주인의 사진은 나를 꼭 닮아있었습니다.

“그럼 그 개는 어떻게 된 거니?”

…… 먹었어요.

중얼거리는 듯 내뱉은 한 마디에 노파는 적절히 충격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차마 어쩔 수 없었다고, 기근 때문에 나 하나 풀칠할 입도 없었다고, 죽기 직전까지 내 품에 안겼더라는 뒷말을 덧붙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뼈들은 무덤가에 고이 묻어놓았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노파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였지만, 내 눈길을 피한 노파의 표정은 공포보단 측은지심에 가까워보였습니다. 그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정적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순간의 정적을 깬 건 노파의 한 마디였습니다.

“…많이 배고픈 것 같구나. 마침 내게 먹을 게 있는데, 구운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먹을 만은 할 게다.”

노파가 내민 것은 빵 한 덩어리였습니다. 노파가 들고 있던 보자기에 감싸 넣은 모양이었습니다. 절벽에 뒹구느라 묻은 약간의 흙먼지를 털어내며 노파의 자글자글한 손은 나에게 빵조각을 넘겼습니다.

무언가를 먹은 기억은 잊은 지 오래인 나는 미처 고맙다, 라는 인사말을 생략하고 빵조각을 집어 들었지만 노파는 별로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허겁지겁 식은 빵을 집어 드는 나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노파의 눈이 측은함을 띠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빵을 한 입 베어 물 뿐이었습니다. 식어 한기가 겉돌았지만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인지 여분의 바삭함이 씹혔습니다. 이스트와 밀가루, 마가린의 흔적이 코끝을 물씬 간질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밋밋하고 평범한 빵 한 덩어리에서 무언의 달콤함을 느꼈으나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주름 잡혀 마른 빵 조각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무릇 올라왔는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노파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특이점, 부드럽고 미적지근한, 안온한 냄새. 아마도 그것은 사람의 체취.

노파는 조금의 먹먹함이 올라오는 나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4.

 

밤눈이 어두운 노파의 발이 그만 허공을 디뎠다는 뒷사정은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주름이 얼굴을 뒤덮어 마치 양복 실들의 엉성한 교합 같은 모습을 한 노파는, 갓길로 떨어져 내린 이후 위의 세상에 올라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음식을 날라주는 소년들에게 삯을 더 얹어 노파를 올려 보내려고 했으나 번번이 거부한 것은 노파였습니다. 윗길에선 어차피 대화할 동무도 없다는 말은 항상 대화의 끝 무렵에 붙는 노파의 말버릇이었습니다.

내가 10년 동안 대화해본 것은 나와 같이 말이 서툴기 그지없는 갓길의 사람들 몇몇이 전부였고, 하나같이 모두 수레가 이끄는 방향이 겹친 것뿐 어느 인연도 아니었던 나에게 대화란 고문과도 같은 겉치레라고 노파에게 쏘아붙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주름 사이로 먹먹한 습기가 차있는 노파는 언제라도 툭 건드리면 눈물을 쏟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예의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던 나였어도 그런 그녀에게 함부로 말을 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의 침묵을 수용으로 받아들였던 것인지, 노파는 아예 작은 움막을 내 집 옆에 세워두고는 그곳에서 눈을 붙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밤마다는 내 집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불렀고, 지독한 잡담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과 그동안 자신의 삶들을 낱낱이 토로하는 노파의 입술은 갈라지고 뜯어져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동정이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노파가 들려준 이야기로는, 그녀는 전쟁이 났을 때 얼떨결에 윗마을로 쓸려나가듯 도망칠 수 있었지만, 덩치가 산만 했던 그녀의 아들은 끝내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코끝을 적시는 익숙한 피비린내를 맡아 흠칫 몸을 떨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에 걱정이 되었는지 노파는 내 어깨를 다독여주다가, 곧바로 나의 삶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형식적인 안부로부터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것들을 보았는지, 그리고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노파는 궁금한 것이 참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파의 호기심이 가장 크게 머무른 곳은 이곳, ‘갓길’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서로에게 껄끄러운 이물감을 남기긴 했으나 노파와 나는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출처 없는 감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착각이었으리라 싶지만, 무언가 노파의 주름들에 얽힌 기억들을 알 것 같았고, 그 주름살들이 흉터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흉터들에서, 내 모습이 언뜻 비치는 듯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기루는 눈앞을 긁고는 흩어져 버리듯, 모든 것은 환상일 뿐임을 나는 곧 깨닫고 말았습니다.

 

5.

 

그 날은 노파가 갓길에 떨어진 지 여드레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이 세상을 뒤덮은 밤, 모처럼 밖으로 걸음을 한 나는 우연찮게 숲 샛길에서 노파를 마주쳤습니다. 노파는 ‘시체털이’를 하러 가는 거냐며 눈길을 보냈지만, 노파가 온 뒤로 시체를 터는 일이 껄끄러웠던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늘은 산책일 뿐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노파와 나는 샛길의 그루터기 두 개에 나누어 앉아, 여느 때처럼 갓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파의 말은 까마귀의 지저귐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곳 갓길의 풍경과, 날씨와, 자신의 삶이 다분히 녹은 독백 같은 것들을. 하지만 신난 노파와는 다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대꾸는 여차 하지 않으며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노파의 이야기 속의 갓길은, 어둡고 삭막하지만 희망이 있는 자리. 하지만 갓길이라는 길에 꽃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내려온 뒤로 핏방울들이 퍼진 모양새나 눈송이들, 꽃의 모양새만 한 것들을 보았을 뿐 꽃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노파의 이야기는 허울뿐이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구토감처럼 솟아오르는 말들을 참으려고 무딘 애를 썼습니다. 이곳은 꽃이 피는 곳이 아니에요, 그저 상처 입은 것들만 홀로 숨어 사는 곳일 뿐이란 말이에요. 오늘따라 무엇이 나를 그렇게 옥죄는 것만 같은지, 노파의 휘황찬란한 말들은 나를 욱신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내가 섣불리 상처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흘리고는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속이 안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는 불만과 증오가 섞인 토사물을 뱉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노파는 낯빛이 어두워진 나를 보며 그 서글한 눈으로, ‘괜찮니?’ ‘무얼 먹고 체한 게 아닐까?’같은 실없고 다정한 그녀다운 말들을 건넸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집으로 발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찬바람이 달아오른 뺨을 긁었을 때, 혼자서 몇 마디 중얼거리던 노파의 말이, 순간 덩달아 실려 들려온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참 꿈이 많이 서린 곳이로구나.”

순간, 발이 멎었습니다.

심장부터 올라오는 욱신거림이, 불만과 분노가 서린 단어들이, 그동안 꿰매두었던 활자들이, 일순간 치솟아 목구멍까지.

나는 발을 멈추고 질린 낯빛으로 노파를 돌아보았습니다. 노파는 조용히 땅 끝으로 시선을 내리며 본인이 어떤 무게의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른 채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목구멍에서 혀까지, 이빨 끝까지, 쌓아두기만 했던 그 진실들이, 조용히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세상에선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위에서는 다툼과 증오가 판을 치지만, 이곳으로 오니 정말 모든 것이 평화롭구나. 나는, 이곳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단다. 사실…,”

“…할머니.”

입을 연 순간 직감했습니다. 이 순간 나는 그토록 참아내고 참아내던 토악질을 참을 수 없게 되겠구나. 그리하여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추악한 것들이, 이빨 사이로 빠져 나와, 아무런 악의 없는 저 사람을, 겨누어,

“이곳이, 왜 갓길이냐고 물으셨죠.”

낮고 시린 톤의 목소리에 놀란 듯 노파의 눈이 나를 쳐다본, 순간이었습니다.

“이곳은, …꽃의 자리에요.”

 

……하지만 꽃이 피어나는 성장의 과정 따위는 전혀 허락해주지 않는 곳이죠. 이곳에 오는 것들은 하염없이 상처입고 더러운 씨앗들 내지는 마차의 바퀴자국이 선연히 남은, 꽃의 흔적들뿐이고 결국 그것들은 이 길의 거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예요.

이곳에 대해 희망이 있다고 하셨나요. 삭막해도 꽃이 필거라고 하셨나요. 하지만 이곳은 꽃들에게 줄 물도 희망도 말라버린 지 오래예요. 꽃들은 물 대신 피를 마시고 죽은 꽃들의 흔적을 좀먹죠. 이게 아름다운 건가요? 희망이 서린 건가요? 할머니, 하나만 알아두세요. 갓길은 도로의 위에서 치이고 치인 것들의 도피처, 도망치고 눌러 붙은 흔적들만 잊히는 곳이라는 걸요.

 

떨리는 끝맺음과 함께 지독한 현실감이 무릇 콧잔등을 눌렀으나, 노파의 표정을 보지 않았음에도 읽을 수 있는 충격과 일그러짐이 부르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저 떨리는 발을 움직이며 그림자 사이를 되돌아 달려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몇 번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다다라서, 무심코 나는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가 젖어드는 소매를 보고 주춤,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몇 번이나 뱉었던 대로, 그동안은 죽어버린 것들에게만 내뱉던 그 말을 처음으로 살아있는 것에게 되뇌었습니다. ……실격.

 

6.

 

다음 날, 햇볕이 닿지 못한 움막엔 누구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노파의 주름살도, 기억들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가 떠났음을 직감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다가, 문득 숨겨놓았던 내 여윳돈을 확인하려 저금함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꺼냈음에도 먼지가 없었던 저금함엔 단 한 푼의 돈도 남아있지 않은 채 주름살 많은 손때가 타있었습니다.

 

7.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노라는, 그런 동화 같은 결말은 현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걸었던 한 오라기의 희망 또한 어리석기 그지없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빵 한 조각에서 느꼈던 사람의 체취는 허울과 거짓뿐이었고 노파가 머물다 간 자리들은 신기루들이 한 차례 눈을 스친 것뿐이었습니다. 하물며 꽃씨조차도 틔울 일 없이 메말라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꿈에게 내어줄 한켠의 자리조차도 없는 이 갓길에서 희망이란 오만이었고 죄스러웠을 뿐일 텐데요.

한 때 빛에 몸 담그려 했던 나는 다시 그림자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나는 다시 시체털이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잠시 동안 시체털이를 멈추었음의 가장 큰 이유였던 사람이 나의 돈들을 모조리 털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이니 굳이 원망을 두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무엇이든 먹고 살아가야만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죽은 이들의 주머니를 뒤져야만 했습니다.

썩어가고, 시취를 풍기고, 파리가 꼬여드는 몸뚱이들이 내던져지는 곳이 꿈이 서린 곳이라니. 언제나 현실감을 화소에 내걸고 시체들이 담긴 수레를 끄는 바큇자국 같은 삶이 아름답다니. 동화보다 칼날에 가까운, 핏자국만 더부룩한 이곳이, 꽃이 피는 자리라니. 나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날카로운 현실을 코끝에 붙인 채로 밤마다 울려 퍼지는 굉음을 쫓아 수레소리가 섞인 걸음을 옮겼습니다.

쿵, 물안개가 흐릿한 밤, 또다시 굉음이 하늘을 메웁니다. 시체였습니다.

 

8.

 

소녀는, 뒤이어 올라오는 구역질과 충격에 말을 잃는다. 소녀의 눈동자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현실을 왜곡하려 시도하지만, 눈앞의 장면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다. 소녀는 떨리는 두 다리와 그 사이를 타고 올라오는 무력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수레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앉는다.

소녀의 발치에서 세 뼘치 정도 앞에 놓인 것은 시체였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수레에 실려 흙속으로 파묻히는 그런 고깃덩이가 아님을, 마치 흉터 같이 주름진 두 팔과, 피범벅이 되어 형체조차 찾기 힘들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말해주고 있었다. 갓길로 추락해 한 덩이의 곤죽이 되어버린 그 시체는 이미 소녀를 한 차례 떠나버렸던 그 노파였다.

어째서, 왜, 이 사람이.

소녀의 떨리는 동공은 순간 노파의 머리를 으깨버린 반쯤 부서진 화분과, 그 주위에 떨어진 꽃잎들과, 피에 적셔진 박살난 화분들의 조각들을 찾는다. 그리고 소녀의 머리에선 밤눈이 어둡다던 노파의 말과, 사라졌던 여윳돈과, 이곳엔 꽃이 있을 거라며 애원에 가까운 주장을 늘어놓던 노파의 음성이 되감아지는 듯했다.

정말로 이 사람은, 이곳에 꽃을 심으려고 했구나.

그 어느 때보다 하얗게 질린 낯빛의 소녀는, 순간 올라오는 혐오에 가까운 구역질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으나, 이번에 그녀가 뱉어낸 것은 가시 같은 말들이 아니라 고통이 함유된 위액뿐이었다.

 

수레 끄는 소리가 난다. 올 때는 요란했던 수레 끄는 소리는 한 사람 분의 체중과 바스러진 꽃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묵직해진다. 수레를 끄는 소녀는 정말 한 포기의 들꽃도 돋아나지 못한 돌길을 묵묵히 걷다가, 이윽고 문득 올라오는 피비린내 섞인 슬픔에 밤하늘로 애써 시선을 던진다.

그리하여 소녀는 알지 못한다. 문득 화소 안에 들어온 달빛이 흐린 이유가 오늘따라 짙은 물안개 때문인지, 눈에 가득 고인 고통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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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11 일 전

잘 읽고 가요 🙂 다음 기회에는 좋은 결과가 있으시면 좋겠네요

4 개월 9 일 전
* "대충 살펴보기만 해도 남자가 굳이 고급 비단으로 옷을 맞춰 입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주머니 사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 "대충 살펴보기만 해도 남자가 고급 비단으로 옷을 맞추지 않은 이유는(가) 그의 주머니 사정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부사를 조금만 줄여도 문장은 한결 읽기 쉬워집니다. 또한 이유가 주머니 사정인 것은 아니지요. 이유가 주머니 사정 때문,이 더 정확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안정된 묘사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이런 묘사가 단번에 써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공들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갓길이라는 단어에 부여한 상징도 퍽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와 상관없이…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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