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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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 재학 중인 1940년에 쓴 것으로  그 당시는 일제의 탄압이 점차 가혹해지던 답답하고 암울한 때다. 지식인들은 마치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사실 윤동주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지만 일제의 탄압때문에 바뀌었다고 한다.  이 시가 원래 시집의 제목이 될 뻔 했다는 것은 윤동주 시인의 당시 내면세계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여 보게 되었는데,  이 시에서 '나'는 자신의 멍든 마음을 치료하고 싶어하는 것같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시적상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치료하고자 왔으나 치료할 수 없는, 어쩌면 모두가 병들어 있는 이 세상 전체가 거대한 병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병원에는 자신에게 병이 있는줄도 어떤 병이 있는지 모르는 환자들로 가득한 것같다.  모두가 병들었지만 고통에 익숙해져 아무도 아파하지 않고 있다. 아마 일제의 탄압이란 바이러스가 너무나 강력했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치료약이 너무 오랫동안 도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설정된 배경인 '병원'은 고독한 밀실의 심상과 통하는 것으로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등장 인물인 '여자'는 '나'와 동일시된 인물로 현실적 상황에 견디지 못하여 지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환자다. 의사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으나 그도 병의 원인을 모르고 '나'또한 그렇다.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또한 일제의 실험으로 인해 알지 못할 병으로 쓸쓸하게 죽어가게되는데 끝내 마음을 치료받지 못하고, 조선의 광복도 볼 수 없었던 그를 이 시에서 본 것같다.  시인은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아픔을 참으며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살피며 이 시를 썼고, 바로 이것이 이 시인의 치유방법이었던 것이 아닐까. 이 시에서 말하는 ‘나도 모를 아픔’이 비록 일제 말기라는 시대적 현실에서 온 것이라 해도, 그런 시대적 아픔을 뛰어 넘는 모든 근원적인 아픔을 포함한다. 그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안간힘, 그것이 이 시에서 일광욕을 하는 젊은 여자로, 그 여자가 꽃을 따 가슴에 꽂는 것으로, 그리고 ‘내’가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보는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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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8 일 전
안녕하세요? 김다해님.^^ 「윤동주 시인의 병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이 시로 원고를 쓴 적이 있는데요.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요. 김다해님이 쓴 글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1) 제목 달기 : 모든 글에는 자신의 핵심적 주장을 담은 제목을 달아야 합니다. (2) 반영론적 관점을 넘어서는 해석의 필요성 : 교과서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거의 모든 시를 반영론적 관점에 입각해 해석합니다.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요. 물론 그렇게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이 너무 단순한 독해인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일제의 탄압이란 바이러스가 너무나 강력했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치료약이 너무 오랫동안 도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라는 김다해님의 분석도 이런 지평에 놓여 있지요. 그러니까 저는 윤동주 시인을 수식하는 ‘저항…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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