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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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콧잔등에 달라붙었다. 손을 들어 쫓아냈지만 콧등 위의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한두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구더기 몇 마리가 발견되기까지 한다. 집안 사방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토악질이 나올 듯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구더기를 밟아 미끄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 전체를 세탁비누로 씻어내도 파리가 나타난다. 소변을 보려고 변기뚜껑을 열면 안에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다. 그 모습을 처음 보고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매일 밤 귓가에 파리 날갯짓 소리가 윙윙거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으면 집채만 한 파리가 날개를 비벼 방해하기 마련이다. 분명 창문을 꼭 닫아놓았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어김없이 파리가 나타나 방해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잽싸게 도망가고 만다. 파리채로 수십 마리 때려죽이긴 했지만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날 뿐이다.

파리들을 내쫓으려 창문을 열려 했지만 손잡이에 파리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시커먼 파리가 우글우글 모여 날갯소리를 냈다. 파리 떼를 죽이려 해도 수가 군대만큼 많아 내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손님을 집에 초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애수가 밀려온다. 아니, 더 이상 찾아올 손님도 없다. 몇 년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이후로 손님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 집에는 파리만 득실거릴 뿐이다. 쓰레기를 제때제때 치워도, 약을 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이 빌어먹을 파리들을 어떻게 하면 다 없앨 수 있을까?

 

 

#1

 

어쩌면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몇 주 전부터 머리가 아프다, 배가 터질 것 같다 하면서 낑낑 앓는 소리만 늘어놓더니 결국엔 몸 져 눕고 말았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의 죽음보다 파리를 죽이려는 욕구가 더 가득했다.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말이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모든 게 다 빌어먹을 파리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은 뒤로 미뤄놓고 해충 스프레이를 사들이기에 바빴다. 그렇게라도 하면 귀찮은 파리새끼들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수술비를 마련할 돈이 없는 나는 아직까지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하고만 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숨소리는 작아지고, 가늘어지고, 가냘파진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작아졌다 싶으면 커지고, 커졌다 싶으면 다시 작아진다. 의사는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다. 갈수록 위급해질 것이라고, 그놈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든 직업을 구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녀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 학력은 한심할 정도였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집과 집안의 파리 떼뿐, 돈도 명예도 희망도 물거품이 된 채 심연에서 떠돌 뿐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기운이 조금 났는지, 나를 불러다놓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입원한 후로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아버지: 아들아.

나: 네 아버지.

아버지: 피곤하구나. 물 좀 갖다 주거라.

나: 네, 아버지. 여기 있어요.

아버지: (물을 마시고는) 이 애비 꼴 많이 흉하지?

나: …….

아버지: 미안하구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골치를 썩이고 있는 파리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긴 싫었다. 몇 십 년 전부터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어 유산을 나눠가지라느니 나 혼자 다 가지라느니 등의 유언도 남기지 못한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이렇게 돼서)미안하구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가난한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 비극적인 아버지? 내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이 사회에서 한낱 파리 한 마리에 불과할 뿐인가.

아버지는 지금도 병실 한구석에서 끙끙 앓고만 있다.

 

 

#2

 

파리가 들끓는다. 이제 수십 마리를 넘어서 수백, 수천 마리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닌다. 사방에 지독한 파리 냄새, 구릿한 구더기 냄새가 진동하고 초파리까지 나타나 천장에 달라붙는다. 하늘을 쳐다보면 푸른색이 아닌 갈색과 까만색만 어른거린다. 파리 떼는 이제 침대까지 침범해 그 위에서 다리를 비비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스프레이를 칙 뿌려보지만 소용없다. 비강(鼻腔)에만 안 좋을 뿐이다. 파리 한 마리가 내 가슴 위에 들러붙어 날개를 비빈다. 배앵, 배애앵.

잠을 잘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잤을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쩐지 이 파리는 아버지를 닮았다. 생김새가, 얼굴 모양이 아버지의 것과 흡사하다. 기분 탓인가, 중얼거렸지만 파리의 배앵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파리의 소리는 날갯짓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를 우물거리는 듯한 목소리다. 털이 부숭숭 돋아난 파리가 시커먼 기운을 띠는 붉은 눈으로 나에게 말한다.

破{미안하구나.}罹

 

 

#3

 

악몽을 꿨다. 나는 잠에서 벌떡 일어나 흐르는 땀을 훔친다. 그러다 이마 위의 파리를 건드리고 만다. 화장실에 가 손을 씻는다. 손잡이를 만지다 파리 엉덩이를 만져버렸다. 물도 나오지 않는다. 파리들이 다 마셨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젯밤 일은 모두 악몽이었겠지.

파리는 여전히 침대 위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고, 구더기들은 변기 속 오물을 섭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각자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번성하고 있다. 파리들은 계속해서 자라나 내 집을 붕괴하고 그 위에 군림할 것이다. 내 집이 아닌 파리의 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기 전에 이 때려죽일 파리들을 모조리 해치워야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잘 있을까. 문득 섬뜩한 기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파리가 달라붙은 바지를 털어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젯밤 악몽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없다. 그저 달려갈 뿐이다.

 

 

#4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전보다 더 수척해지고 쇠약해진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빠져 퀭한 아버지의 몰골은 처참했다. 아버지의 입김은 이제 나비의 날갯짓만큼 가늘다. 맥박 수가 불안정한걸 보니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나: 간호사 불러드릴까요?

아버지: (겨우 입을 열며)아니,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 괜찮으세요?

아버지: 그래, 괜찮아, 괜찮아…….

나: 제가 어떻게든 노력해볼게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직업도 구하고 있으니까…….

아버지: 아냐, 괜찮아. 안 그래도 돼.

나: 아버지, 제가 해드릴 게 없을까요?

아버지: 괜찮아, 괜찮아. 병 옮을라. 이제 가도 돼.

나: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나는 해골처럼 삐쩍 마른 아버지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 서둘러 병원 밖을 뛰쳐나왔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입안이 바싹 말라 괴로웠다. 목구멍 속에서 파리 똥냄새가 풀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제 정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태세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아버지는 죽을지도 몰랐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 한, 내가 어떻게든 수술비를 마련하지 않는 한.

집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의 죽어가는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5

 

집안은 파리 천지다. 이제 이곳은 파리의 세상이 되어 파리들이 집권하고 파리들이 다스린다. 나는 잡고 죽이는 일에도 지쳐 파리 찌꺼기가 묻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허공만 응시한다. 아버지를 만나러가기가 싫었다. 아니, 싫었다기보다는 두려운 게 사실이리라.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 나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주 전 형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죽은 지 오래고, 친척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인들조차 연락을 끊었다. 결국 나 혼자 남았다. 나 홀로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다니, 너무나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망할 파리새끼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라이터로 집을 태워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파리들이 공중에서 윙윙거린다. 한 마리의 날갯짓 소리가 여러 마리의 소리와 하나가 되니 귀가 쟁쟁 울릴 정도로 시끄럽다. 아버지를 닮은 파리 한 마리가 내려와 나를 보며 말한다.

 

爸{아들아.}離

 

 

#6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나는 끝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시신을 정리할 예정이니 와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장례식을 치렀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을 짜내려 애썼지만 눈물샘이 따라주지 않았다. 수술비로 쓰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장례식에 쏟아 부었다. 친척들은 예상대로 오지 않았다. 나 혼자 장례식에서 하루를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았다. 나는 내 눈을 싹싹 비벼댔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수술비를 대주지 않은 당신의 아들을 증오하지는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던 아버지를 우리는 증오한 게 아닐까.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사주지 못하고 맛있는 군것질거리도 사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증오한 게 아닐까. 그러나 때는 늦었다. 아버지의 소원은 저승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돌아오기는 글렀다. 아버지는 가고 아버지의 혈육인 나만 남았다.

 

집이 가까 오자 아버지를 닮은 파리가 생각났다. 그 파리는, 너무나 기이하게도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기력 없는 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순간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어쩌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문을 열면 파리가 쏟아져 나올까. 문을 열면 파리가 나에게 달려들까.

모르겠다. 모든 것을 내 손에 맡기는 수밖에.

 

 

EPILOGUE

 

나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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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월 12 일 전

방 안에 가득 들어찬 파리의 소리라던지 구더기의 모습이라던지가 굉장히 암울하고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결국 주인공은
마음 속으로 아버지와 파리를 동일시 하던 거겠죠?

2 개월 1 일 전

글의 흡인력이 좋네요.. 굉장히 잘쓰시는듯

1 개월 29 일 전
* "이제 손님을 집에 초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애수가 밀려온다." : 이 문장에서 쓰인 '애수'가 적절치 않은 단어는 아니지만 문맥상 굳이 한자로 쓸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 "이제 손님을 집에 초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었다." 가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 " 몇 년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이후로 손님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 "몇 년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이후로 손님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 이 문장은 '아무도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진술문의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이 더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겠죠. *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숨소리는 작아지고,…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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