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차창 밖, 그리고 복도.
목록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비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 어릴 때 만 해도 아침에 비가 오면 저녁때도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챙겨가고는 했지요. 하지만 요즘 비는 다릅니다. 태양이 하늘에서 작열하다가도 어느새 구름 뒤로 숨어버리고 세찬 비가 볕을 대신하는 듯 내립니다. 그러다가 태양이 또 나타나 작렬하구요. 옛날 비가 낯 안 가리는 어린아이가 재잘대거나 아주머니가 옆에서 수다를 떠는 것 같았다면, 요즘 비는 사춘기 소녀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이 가끔은 투덜대거나 하다가도 순해지거나 갑자기 멀리 떠나기도 하니까요.

  비는 한번 내리면 씨알 굵게도 내립니다. 몇 대만 맞아도 금세 옷은 푹 젖어 들고 멀리서 아득하게 보이던 산하며 아파트도 보이지 않게 되지요. 마치 폭포가 구름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멀리서 다가오는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약간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마치 영화나 TV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창 안에 있습니다. 화면에서 뭐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겠지요. 에어컨이 틀어진 학교 안에서는 바깥의 내리쬐는 태양과 그 세찬 비들도 풍경이라는 창틀에 갇혀버립니다. 그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생명은 또 다른 풍경에 불과해지지요.

  하루는 학교 벽에 붙어있는 매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뜨거운 6교시의 태양 아래서 느릿느릿, 벽돌로 된 고목을 기어가던 매미는 물도 나오지 않는 나무선 더 버티지 못하겠는지 곧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저는 채널을 돌리듯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창밖은 저에게 구경거리. 그 이상은 못되었나 봅니다.

  비가 세차게 올 때는 암컷 밀잠자리 한 마리가 비를 피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날개를 다소곳이 한 것인지 위기감을 느끼는지 착 접고는 창틀 비가 안 들어오는 반 뼘도 안 되는 공간 아래 매달려있었습니다. 이따금 세찬 물방울이 옆을 스칠 때, 저는 마치 예능에서 물벼락 벌칙을 받는 출연진을 보는 듯 물끄러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업에 집중하는 동안 해가 났고 잠자리는 어느새 팽하고 날아가 있었습니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분리된 안과 밖, 위에서도 말했듯 지금 바깥은 그저 무심하게 틀어져 있는 TV입니다. 하지만 이런데도 공연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 교실이 있는 동과 남자 동을 잇는 복도가 그곳입니다. 건물 자체로 분리된 그 공간의 바닥은 갈색 칠을 한 나무이고 중앙에는 동그랗게 솟아난 공간 안에 스페이드 모양의 침엽수가 심겨 있습니다. 그리고 초록색 플라스틱 지붕이 용접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철강 위에 얹혀서 양쪽 동의 유리문을 이어주었습니다.

  그 공간은 지나가는 공간의 성격이 강합니다. 특히나 이렇게 변덕스러운 여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흐르는 교실에 밀려버린 이 공간. 아이들은 그저 짜증 내며 피해버리는 공간에 지나지 않았고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차양이 무색하게도 항상 이 공간은 햇볕이 내리쬐면 덥고 센 비가 내리면 바닥에 물이 고여 철벅거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당거미 한 마리가 철기둥과 나무 사이 한 뼘 되는 공간에 집을 지었습니다. 손가락만 한 몸으로 재주 좋게 짜낸 집은 근래 본 거미집중에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끈끈한 가로줄에 연필 뒤축을 살짝 가져가서 당기자 띵하고 탄력 있게 퉁겨집니다. 무당거미는 그저 멈춰있습니다. 아름다운 방사형의 집을 분주하게 만들었을 모습이 선해집니다.

  그 후로 근근이 멈춰서 그 모습을 챙겨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거미줄이 온대 간데 없어졌습니다. 심술궂은 어떤 이가 보기 싫다 뭉개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뭔가 하나를 잃은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쓰였습니다.

  신기한 일은, 그 바로 다음 날에 거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다시 그 자리에 매달려있었습니다. 모기의 머리를 앞니로 으기면서 말이지요. 집은 틀어진 구석 없이 탄탄하기만 했습니다. 하룻밤 새 다시 실을 짜내고 이렇게 멋진 집을 지어낸 걸 보면 이 자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요. 그날 이후로도 이따금 태양 아래에서 거미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며칠 후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그 위치는 차양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빗방울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굵었는데, 거미가 한 대만 맞으면 바로 물이 고인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괜스레 발이 바빠지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떠밀리는 터라서 편하게 보기는 그른 것만 같았습니다.

  지나가던 차에 바라보니, 한껏 굵어진 빗방울 아래에서 그저 흔들릴 뿐 의연한 거미는 오히려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당장에 옆 울창한 나무속으로 숨어들어도 모자랄 비였지만 거미는 그저 비를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은 거미는 자신의 집에 자신감이 있었을까요. 얼마 보지는 못했지만 보고 있는 동안 다리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 보니 또 거미줄이 사라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집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짝 숙연해졌습니다. 어느새 거미의 팬이라도 된 양. 말없이 은퇴한 탤런트를 그리워하는 팬처럼 지금은 그 거미가 무얼 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수많은 방송이 아무리 화려하게 TV 너머 펼쳐졌어도. 작은 콘서트 한번이 나를 팬으로 만든 것입니다.

목록

첫번째 댓글을 올려주세요!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