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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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보내는 편지

 

 

그러니까, 당신을 만난 후 달력의 날짜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년 9월 말 모 백일장에서 당신을 만나 이후로, 매일 밤 꿈마다 당신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그저 몇 번의 카톡 따위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아직도 왜 꿈속에 당신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시가 뭔지도, 내가 왜 시를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저 시를 쓰고 싶었고, 그건 욕구와 상관없는 일이었지요. 노력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쓰고 싶었습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수시와 정시가 모두 끝나고, 저는 방황했습니다. 밥도 잘 먹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지냈는데, 항상 왜 시를 쓰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색깔 없는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사는 게 무뎌졌어요. 남은 삶에서 글을 쓰는 시간을 빼면 저는 달리지 않는 마라토너의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하루 세끼를 다 먹고, 잠자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수면장애가 있어서 하루에 꿈을 9번을 꿀 때도 있었죠. 주로 2~3번의 꿈을 꾸는 편입니다. 그래도 자고나면 어떤 꿈을 꿨는지도 모른 채,  모두 잊는 일들만 있었죠. 그러나 아직도 기억나는 꿈이 있습니다. 7살 때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놀이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가 운석에 맞아 죽는 꿈, 경비실에서 아저씨가 뛰쳐나와 유모차 속 아이를 업고 도망치는 꿈. 그건 사소한 악몽이었을 뿐인데요. 사실 가장 큰 악몽은 당신이 나온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나면 하루가 지난 기분입니다. 3개의 꿈을 꾼 날에는 3일이 지나 있죠. 아니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꿈일기를 쓰면 보다 확실한 하루가 지나 있겠죠. 중요한 건 내가 꿈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내 시가 되고 그 시에서 당신이 사랑했던(사랑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문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언젠가 내가 프로필에 그 문장을 올렸을 때,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저 문장이 좋았다는 말이죠. 그날은 당신이 나왔던 꿈을 꾼 날이었습니다. 저는 무슨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죠, 이래서 모태솔로는 연애를 실패 하는구나 생각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일이 꿈이 만들어 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물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그 후에도 당신은 꾸준히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꿈일기를 썼고, 어느새 시보다 꿈일기를 쓰는 날이 많아졌죠.

 

2월, 저는 다시 시를 쓰기로 했습니다. 입시에 지친 손목을 자르고, 새 손목을 가지기로 했죠. 3월, 동국대에서 한 어느 백일장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다시 시를 쓸 수 있었다, 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입실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해 당신을 찾고 있었는데 당신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는 분들과 학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입실 시간을 3분 앞두고 당신이 뛰어왔습니다. 그때 모습이 아직도 악몽에서 나옵니다만. 연갈색 원피스를 입고 전화를 받는 오른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를 하려 했지만, 많이 바빴나 봅니다. 저는 매일 꿈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는데, 그때도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이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저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인사를 마치고 당신은 입실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저는 시를 써야지 생각했습니다.

신청을 미리 한 터라 입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고지를 받고 시제는 ‘편지’가 나왔습니다. 그때 든 확신이라면, 당신을 시로 쓰고 싶다는 것. 당신이 좋아했던 문장을 첫 행으로 두고 문장은 행을 늘어뜨리며 새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4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각, 3번의 퇴고를 마치고 저는 시험실을 나섰습니다. 후에 지인들을 만나 밥을 먹으면서도 첫 문장은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날 저녁, 당신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제가 상을 받았다는 축하 문자였습니다. 시상식에 가지 않아 상을 받았는지도 몰랐는데, 그럼에도 저는 기쁘기보다 아쉬운 감정이 더 많았습니다. 그만큼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담아두기로만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4달이 흐르고, 어느 대학 백일장에서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꿈에서 만나는 당신으로만 마흔 편 가량의 시를 쓴 후였고요. 주위 사람들에게는 필력이 많이 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당신이 준 선물인 것도 모르면서, 저는 가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일장 당일, 당신이 꿈에 나왔습니다.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을 거면서, 나를 또 죽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언의 인사를 할 거면서. 그럼에도 저는 반가웠습니다. 대학 건물 옆 의자에서 당신이 있었고, 저는 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냐고, 당신은 말하지 않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당신이 손을 들어 화면을 보여줍니다. 안녕하다고. 이런 방식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후에는 핸드폰 없이 대화를 나눴는데, 목소리 없이도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건 꿈의 일이고, 백일장 당일 당신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이 단순한 짝사랑 얘기처럼만 들린다면, 저는 비극적 로맨스물의 처량한 주인공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이 글이 사후에 당신을 만나기 위한 유언장이나 생일이 없는 꿈속에서 쓰는 일기라는 것입니다. 몇 천 번 당신을 만나도 우리는 초면입니다. 당신은 아직 내가 익숙하지 않고, 그러나 가끔 내가 시를 보여줄 때면, 당신은 “정말로 시를 사랑하면 시가 보답을 하나 봐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만, 내 시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애증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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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월 17 일 전

정말..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로운 글입니다. 별환님 덕에 좋은 수필 잘 감상했습니다. 며칠 전에 이 글을 다 읽고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수많은 형용사로 치장된 댓글을 달 수도 있겠지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별환님 8월 월장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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