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 괴상함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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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3

 

며칠 전에 장정일 장편소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를 손에서 놓았다. 이 작가 작품이 으레 그렇듯 등장인물은 대부분 엉뚱하고 괴상망측한데다, 배경은 하나같이 만화적인 기괴함을 풍긴다. 남성 성기가 점점 커져 우주로 날아가 행성을 폭파한다는 이야기가 어지간히 재미있는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썼던 말을 그대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약간의 실험적 특성을 띠고 있는데 앞 대목을 여러 차례 인용한다는 점에서, 작가 후기에서 나온 것처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루한 고문'처럼 느껴지지만 진행될수록 흥미를 유발해 눈여겨볼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전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보다 흥미로웠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곳곳에 삽입된 지식의 흔적이 거슬렸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대체 주인공의 의중을 알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주인공과 또 다르다. 주인공 '그'의 소원은 하나밖에 없다. 처제를 사랑하는 것, 처제와 함께 하는 것. 애당초 아내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고, 그녀와 결혼한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한 가족(처제)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그는 처제가 상경한다는 소식을 듣고 침대에 올라가 '양쪽에 언니와 여동생을 눕혀놓고, 한 번은 아내의 젖을 빨고 또 한 번은 처제의 젖을 빨면서, 그리고…… 돌아가며…… 그 짓을 한 번씩 끝내고'(49쪽)싶어 한다. 주인공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처제는 오지 않고 그는 점점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간다. 그 이상한 사건은 도가 넘어 후반부에 이르면 현실의 경계를 벗어나 '페니스 우주여행'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작품의 실험적 방식대로 주인공의 삶은 무한 반복되듯 순환한다. 주인공은 집, 회사, 도시와 같은 영속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파멸에 치닫아 죽는 것도 아니다. 끝내 사랑하는 처제를 안아보지 못한 채 끊임없이 회귀하며 살아갈 뿐이다.

 

주인공은 초반부터 상식을 벗어난 비윤리적 행동을 밥 먹듯 하지만, 그럼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하는 건 주인공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작품 속 무미건조한 회사원의 삶, 부부간의 불화, 무분별한 외도 등 사회의 슬픈 이면들은 어쩌면 현대인의 부정적 측면만 추출해낸 농축액일지 모른다. 20세기, 혹은 21세기 30대 성인 남성의 자화상을 어떻게 비추느냐가 작가의 결정적 목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작품은 1994년에 발표되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와 견주어도 전혀 이질적인 부분이 없다. 비록 후반부의 갑작스런 재즈 카페 등장은 불가해하고, 중요 인물들이 한곳으로 쏠리며 재즈 카페로 귀결된다는 점이 의아하지만 그 나름의 독창성은 있다고 본다.

 

오늘 우연히 한국일보에 실린 '장정일 칼럼'을 보게 되었는데, 제목은 '이 땅의 재즈 역사'였고 제목 그대로 재즈의 역사를 조명하는 내용의 기사였다. 작가는 작품을 집필한 것이 막 재즈에 입문할 때였다고 후기에서 언급했는데, 내가 보기에 작가는 아직까지 재즈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하긴 재즈도 가요와 같은 장르의 하나이니, 20년 50년이 지나도 재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영원불멸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즈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로 인해 재즈에 대한 기이함은 배가되었다. 장정일 작가의 몇몇 단편을 별로라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의 작품을 읽게 되는 이유는,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처럼 괴상함의 매력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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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월 25 일 전
모로님 반갑습니다. 장정일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고 쓴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모쪼록 모로님이 더 나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 ‘장정일’이라는 문제적 작가와 ‘1990년대’에 대해 더 공부해보기 장정일은 한국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문인입니다. 그것과 관련해서는 심진경 선생이 쓴 글을 참조해볼 수 있습니다. 링크를 걸어 둘게요.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84745&code=13150000&cp=nv)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장정일 작가는 원래 시를 쓰던 시인이었습니다. 정치적 문학관이 대세이던 1980년대에 그는 문화적인 것을 경유한 일상성의 전복을 시로 시도했지요. 장정일 작가의 소설 쓰기는 그 연장선에 놓여있다고 봐도 됩니다. 그런 점에서 모로님이 포착한 장정일 작품의 ‘괴상함’은 여전히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1990년대 초반 풍조에 동조하지 않으려는 그의 독자적 문학관의…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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