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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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벽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던 아내 곁으로 남편이 다가왔다. 남편은 아내의 손에 들린 커피를 보고 말했다.
“또 부장이야? 그만 마셔.”
“이번 달 출장만 세 번째야.”
같이 이야기 나누며 인도를 걷던 중, 남편은 지나가던 파란 옷 검은 모자의 경비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비원은 그런 남편을 보고 미소 지으며 모자를 한번 벗어보였다. 아내도 그에 덩달아 뒤늦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들은 얼마 걷지 않아 주차장에 다다랐다. 아내는 차에 올라탈 때까지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남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 좌석의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차가 출발하자 아내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차라리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창밖을 바라보던 아내가 무심코 건넨 말에 남편은 급격히 속도를 줄이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곤한 표정으로 묵묵히 커피를 들이켤 뿐이었다. 남편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시 앞 유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신호에 걸린 모든 차들이 일제히 자리에 멈춰선 채 보행자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랬다가 정말 죽으면 어쩔래.”
그의 말에 아내가 픽 웃더니 커피를 집어 들었다. 한 모금 마시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가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가 죽은 적이 있어.”
아내가 조금 커진 눈으로 남편을 돌아보았다. 신호가 바뀌었다. 남편이 입을 열며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였다. 도로변에서 노란색 공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추고 부부의 몸이 급격하게 앞으로 쏠렸다 돌아왔다. 노란 공은 남편의 자동차 보닛에 튕겨 반대편 인도에 떨어졌다. 뒤따라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공을 쫓아 달려왔다. 신호는 신경 쓰지 않고 횡단하는 바람에 달리던 차들이 하나같이 급정거를 했다. 아내가 창문을 열고 아이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아이의 할아버지로 뵈는 자가 나타났다. 그는 제일 도로변에 가깝게 운전 중이던 부부의 차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부부는 황당했지만 그들의 뒤차가 클랙슨을 울려대는 바람에 서둘러 출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출발 전 아내 쪽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할아버지에게 목례를 건넨 뒤 엑셀을 밟았다. 차가 다시 움직이는 동안 아내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
“애잖아.”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이 순간에도 평온한 남편의 얼굴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내의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녀의 화도 조금 누그러져있었다.
“그래. 그래도 부장 덕에 눈치 안보고 연차도 쓸 수 있고.”
남편은 그녀의 말에 사이드 미러를 흘끔거리며 대답했다.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니까.”
빨대를 통해 올라오던 커피대신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만 들렸다. 아내는 컵을 내려놓고 미소지은 표정으로 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집에 거의 다다른 남편이 백미러를 쳐다보며 주차구간에 차를 밀어넣던 중이었다. 순간 방지턱 구간도 아닌데 자동차 바퀴에 무언가 걸려 무겁게 굴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놀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기어를 변경했다.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긴. 지금 뭐가 밟혔는데.”
계속되는 아내의 의심에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주차를 마친 뒤 아내는 서둘러 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뒤를 남편이 천천히 따라나섰다. 바퀴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아내는 오른쪽 앞바퀴에서 들리는 미세한 신음소리에 몸을 웅크려 확인했다. 그들이 앞바퀴로 뭉개고 지나친 것은 다름 아닌 검은색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드러누운 채 피를 흘리며 가냘프게 울고 있었다. 아내는 화들짝 놀라 손을 벌벌 떨며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남편은 조금 인상을 구긴 채 그녀와 고양이를 번갈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들어가. 내가 처리할게.”
아내는 머뭇거리다 차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아내가 놀란 감정을 추스를 겸 차 안에서 그를 기다릴 동안 그녀는 의도치 않게 앞 유리로 남편의 동세를 주시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상대와 무슨 말을 하는가 싶더니 쪼그려 앉아 고양이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전화를 끊고 고양이를 내려다보던 그는 발끝을 세워 차 아래로부터 피 흘리는 고양이를 꺼내왔다. 그리곤 제 신발에 묻은 피와 고양이를 역겨운 듯 쳐다보았다. 바닥에 신발을 질질 끌어 피를 닦고 고양이의 꼬리를 밟아 구석지에 밀어 넣는 행동을 취했다. 남편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던 아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힘겹게 숨을 쉬는 고양이의 곁에서 남편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가 자동차 쪽을 흘끔거리자 아내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담뱃대를 다 태운 남편은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침을 뱉었다. 자동차로 돌아와 예의 상냥한 목소리로 아내를 달랬다.
“구청에서 곧 나온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히 자동차에서 나섰다. 남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도중 그녀는 고양이 곁을 지나치던 남편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별 재수가 없으려니.”
그녀는 문득 커피가 고팠다.


안녕하세요! 글을 올리는 건 오랜만인 것같아요ㅠㅠ 그때 글틴문학당에서 합평수업듣고 소설가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그동안 정말 저는 제 글만 읽을 줄 알고 그에 달린 조언들만 읽을 줄 알았지 남의 글에는 너무나도 무관심했구나를 깨달았어요. 이후론 간간이 들어와서 올라온 글들을 읽곤 하는데 아무래도 수시 실기때문에…ㅠㅠ 끝나고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찬찬히 읽고 댓글까지 달아보려고 생각중입니당!! 그때, 글틴문학당에서 해주신 조언들, 그리고 이제까지 제 글에 댓글로 남겨주신 조언들은 깊이 새겨두고있습니다. 그 조언을 참고해 글을 다듬어가는 것은 오로지 제 몫이겠죠…!!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아 더는 글틴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요…ㅠㅠ 그래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주 들어와 활발하게 활동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닷!!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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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 11 시 전
* "담뱃대를 다 태운 남편은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침을 뱉었다." – "담배를 다 태운(피운) 남편은 꽁초를 바닥에 던치고 침을 뱉었다." * "남편이 입을 열며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였다." – "남편이 입을 열며 차를 출발시키려던 찰나였다." * "그는 제일 도로변에 가깝게 운전 중이던 부부의 차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 "그는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차선에 정차해 있던 부부의 차에 대고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 "아내는 이 순간에도 평온한 남편의 얼굴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 "아내는 이 순간에도 평온한 표정을 짓는 남편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 얼굴이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다른 부분은 3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이 부분만 관찰자 시점인 것…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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