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 속에서], [감정이 있는 심연]에서 나타난 해방과 사랑
목록

한무숙(韓戊淑, 1918~1993)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소설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부분 작품에서 드러난 것처럼 여성차별에 대한 반대의식이 강하지만, 한무숙의 모든 소설이 여성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무숙 작품집>에 실려 있는 해설은 ‘성적 불평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해석하지만, 필자는 한무숙의 세계관이 단순히 성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사랑의 본질과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고는 작품집에 실린 <대열 속에서>와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두 작품이 함유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논하고자 한다.

<대열 속에서>는 전쟁으로 빚어진 갈등과 분열이 주인공 ‘명서’와 친구 ‘창수’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다. ‘명서’는 어렸을 적 전쟁으로 인해 ‘창수’와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뒤틀린 마음을 품고 살아가다 성인이 된 명서는 어느 날 시위대 속에서 성장한 창수를 발견한다. 명서는 창수가 총에 맞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함께 도로 위에 쓰러지고 만다.

작중 몇몇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년의 명서와 창수는 사상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이것은 명서가 애인 ‘애희’에게 꽃을 꺾어주려 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그때였다.

“누구얏.”

우웅 울리는 굵다란 소리가 들리더니, 숲 속에서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나무에 올라간 놈이 누구얏! 빨리 내려왓!”

굵은 소리는 다시 우웅- 울렸다.

명서는 가지에서 떨어질 번하도록 놀랐다. 거기, 역시 자기와 같은 해, 어느 사립대학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은 채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창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명서는 어름같이 냉정해 있었다.

“내려오라구? 누구에게 명령을 허는 거야.”

“국가 재산인 임업시험장의 나무를 다치려는 자에게 국민의 한 사람이 명령하는 거다!”

“무슨 권리로-”

“국민된 권리로-”

“난, 이 꽃을 꺾기 전엔 못 내려가겠다.”

“꺾진 못할 거다.”

“꺾고 말 테다.”

 

  • <대열 속에서>, 63~64쪽 中

 

단순히 꽃을 꺾으려는 자와 꽃을 꺾지 말라는 자의 의견이 부딪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명서는 같은 중학교를 나오고 같은 집에 살았던 창수가 ‘국민의 권리’를 언급하며 평등을 말하자 그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남을 느낀다. 명서는 ‘창수가 너무 옳았(66쪽)’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서 억압되었던 민주적 사고방식을 되새기게 된다.

작중 명서는 애희를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건이 있은 뒤 그녀의 이야기는 소개되지 않고 현재의 명서와 창수만 남게 된다.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절정에 치닫게 되면서, 표면적 사랑은 애희지만 실질적 사랑은 창수와 창수의 마음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감정이 있는 심연>도 <대열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핵심 주제는 ‘사랑’이다. 한무숙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은 주인공이 어릴 적 사랑한 여자 ‘전아(典娥)’를 정신병원에서 만나기 전에 회상되는 이야기로, 전아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화자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주인공이 사랑하고 주인공을 사랑한 전아는 엄격한 큰고모 아래서 위압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종교적 부조리도 뒤얽혀 환기되는데, 큰고모의 뒤틀린 종교적 관습 탓에 전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으며 자란다. 초반의 ‘창백한 청년’과 결말부의 ‘충청도 사투리의 여인’이 중첩되며 훗날 화자는 정신병원에 갇혀 그림을 그리는 전아를 만나러 가지만, '딱더 · 김'의 충고와 몇 가지 사항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소설은 화자가 ‘어떤 일본의 악덕 상인(惡德商人)’ 이야기를 상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감정이 있는 심연>은 속박된 전아의 삶과 화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대열 속에서>는 전후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두 작품의 상호관계는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

전자와 후자는 겉보기에 현격히 달라 보인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감정이 있는 심연>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대열 속에서>는 남녀, 또는 남남의 사랑이야기로 해석되겠지만 본질적으로 인물들의 공통된 행동은 다르지 않다. <대열 속에서>의 명서와 창수의 사이는 자칫 우애로 보일 수 있지만, 명서가 민주주의, 창수의 민주주의와 자신의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넓게 해석한다면 사회적 사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있는 심연>은 개인의 애정으로 국한돼 세계관이 한정되어있다고 결론내리면 오산이다. 앞서 말했듯이 성차별적 문제가 도드라져 있으면서 답습되는 종교적 · 유교적 오류도 함유되어 어떤 면에서 보면 <대열 속에서>보다 더 큰 사회적 인식이 내재해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한무숙은 많은 작품을 남기며 여성작가가 드물었던 당시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은 결코 성 평등에만 한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가부장제에 억압된 여성의 이야기뿐 아니라 육이오 전쟁과 여러 가지 사회적 양상을 심도 있게 표현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 중심에서 빛을 발하는 민주주의와 평화적 삶이 말하는 ‘사랑’을 찾아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슬픔과 비애를 이해하고 감싸 안을 때 비로소 작가 한무숙이 말하는 ‘사랑’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록

첫번째 댓글을 올려주세요!


2 개월 17 일 전
모로님, 안녕하세요? 『한무숙 작품집』 다룬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이 글을 고칠 때, 고려했으면 하는 점을 두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신비평을 넘어서는 비평 써보기 모로님은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하는, 신비평의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존 문학사 안에 포함된 『한무숙 작품집』은 신비평을 넘어서는 시각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로님이 다룬 두 작품 「대열 속에서」(1961)·「감정이 있는 심연」(1957)은 1950~1960년대의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으면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대열 속에서」는 4·19혁명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논하는 평론이 4·19혁명과 (제각기 전유한) 민주주의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 분석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이 있는 심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에 화자가 떠올리는 ‘어떤… Read more »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