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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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새와 같이 날기 위해선 지금보다 가슴근육이 일곱 배가량 발달되어야 한다고 한다. 날개만 가졌다고 끝이 아니라 그 날개를 버틸 힘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에게 돌아오는 모진 말은 유독 많았다. 자신들은 달지 못 했던 날개를 우리에게 억지로 짊어지운 어른들은 어서 날아오르라며 재촉했다.

다른 걸로 날개를 달만한 애들은 벌써 저 하늘 위에 있었다. 이도저도 아닌 우리들은 불안정한 날개를 달고 연신 진흙탕에 무릎을 처박았다. 여름엔 더운 대로, 겨울엔 추운 대로, 네모난 방에 틀어박혀 머릿속에 글이나 욱여넣을 수밖에 없었다.

끄집어내는 것 없이 집어넣기만 한 것들은 뇌에서 자기들끼리 엉켜 부글부글 끓어댔다. 우린 그 열기에 허덕이면서도 새로운 먹이를 집어넣고 휘젓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그 끈적끈적한 것들을 유일하게 치워버릴 수 있는 기회는 시험밖에 없었다. 소화가 안 돼 불편했던 것들을 시험지에 마구 뱉어놓고 나면 한동안은 머리가 깨끗했다. 허무할망정 허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며칠 안 되어 새로운 것들이 또 줄을 서고 있으리란 걸 알았다.

시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리고 싶던 것들이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는 놈이 문제였다. 시험 뒤의 시험. 우리의 날개 크기를 가늠하고, 하늘에 띄웠을 때 무게에 못 이겨 뒤집어지진 않을까 가슴을 콕콕 찔러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빈도는 더 잦아지고 날갯죽지를 잡아 비트는 힘 또한 강해졌다. 날개엔 등급이 매겨지고 우린 또 가슴근육을 단련해야 했다. 채 여물지 못한 내 날개는 영 시원찮았다. 조금 나는 듯싶다가도 어김없이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난 이도 저도 아닌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더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렸다.

 

퍼스널 트레이닝이 유행인 만큼 트레이너는 참 많았다.

“공부를 하긴 하니?”

가장 극성인 트레이너는 엄마였다.

“어떻게 그 비싼 과외를 줄줄이 붙여놨는데 오른 과목이 없어?”

약하다, 약하다. 근육은 원래 안일하기 짝이 없어서 잔뜩 헤집어놓지 않고서는 몸집을 불리지 않는다. 내 지조 높은 가슴은 매일같이 듣는 말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어휴…….”

엄마는 말을 줄인다. 머리를 짚으며 팔을 휘휘 내젓는다. 가슴이 조금 찌릿했다. 우리집 개새끼 군밤이가 몇 년째 배변을 못 가려도 저런 제스쳐는 안 취한다. 엄마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캔맥주를 딴다. 어쨌거나 미리 알고는 있었던 것 같아 트레이닝의 효과가 조금 줄어든다. 엄마가 티비를 틀자 나는 그제야 현관에서 벗어난다. 거실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나는 조용히 독서실로 향한다.

좁은 칸들 사이로 불빛이 드문드문 보인다. 다들 웨이트 트레이닝을 일찍 마친 모양이다. 하나같이 고개를 푹 처박고 있는 꼴이 양계장 닭 같다고 비웃지만 나도 곧 할당된 내 자리에 가만히 둥지를 튼다. 그래도 닭보다야 낫지 않을까. 아까부터 욕지거리를 짓씹던 내 뇌는 공부와 상관없는 생각이 튀어나오자 지독하게 물고 늘어진다. 닭은 평생 알만 낳잖아. 나는 올해, 아니 어쩌면 내년까지. 사실 더 갈 수도 있지만, 여하튼 끝은 있잖아. 인간의 아침거리밖에 안 되는 알을 낳는 것보다는 우리가 훨씬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비상하기 위해 열심히 날개를 만들고, 붙이잖아. 아, 닭도 나름 샌데. 그러고 보니 날개는 이미 달렸네. 그런데 못 날잖아. 그러니까, 나는 건 날개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 젠장. 어쩌면 독서실이 양계장보다 나은 건 문명이 화장실을 분리했다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날개를 동경했고 새는 이미 날개가 달려 있다. 이것만 봐도 새가 인간보다 한 수 위다.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다는 말은 내가 보기엔 순 거짓말이다. 우리집 개새끼 군밤이만 봐도 나보다 지위가 높다. 개는 자유롭게 떠돌 수도 있고 귀찮으면 멍청해 보이는 주인 하나 물 수도 있고 수틀리면 정말 물 수도 있고……. 인간은 자신들이 무어라고 감히 건방지게 먹이사슬을 운운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원래 근육은 쉬어야 붙는다. 복잡한 생각은 가는 대로 보내버리고 팔을 베고 엎드렸다.

 

“사는 만들기로 했잖아.”

그러게요. 할 말이 없어 대답은 안 했다.

“내신은 이 꼴 났고,”

“일 학기 것만 들어가지 않아요?”

“내년 수시 생각하면 이 학기도 챙겨야지.”

아, 내년……. 나는 닥치고 고개만 끄덕였다.

“……보니까 생기부는 버린 것 같네. 모의고사 성적은 어때?”

버린 적 없는 생활기록부지만 난 착실히 모의고사 성적을 얘기했다. ……칠? 믿지 않는 눈치여서 조금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팔? 더 솔직해졌다. 내년도 나온 판에 뭐가 문제겠어.

“사실 구도 나와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쉰다. 다시 말하지만 저건 군밤이한테도 안 하는 거다.

“수시 진짜 아무데도 안 넣을 거야? 다음주까지 시간 있어.”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요.”

어깨를 으쓱였다. 선생님은 난데없이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들었다.

“어디를 가고 싶니?”

가려고는 하니? 어제 엄마의 말과 비슷하게 몽타주 되어 들렸다. 나는 말없이 우리나라 중간 어딘가를 짚었다. 눈치를 봤다.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은 더, 더 내려갔다.

“선생님, 이제 바단데요?”

선생님은 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무언가를 고민했다. 내가 보기엔 쓸모없는 고민이었지만 9등급 제자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시는 선생님이 감사해 얌전히 기다렸다.

“독재는 힘들어. 학원을 가자.”

흠. 나는 아까의 선생님과 똑같이 헛기침을 했다.

 

근육은 몰라도 굳은살은 꽤 배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도 바다는 좀 감당하기 힘든 스케일이었다. 똑같은 걸 해도 유독 못 따라가는 놈이 있는 법이다. 그게 나라는 건 인정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잠은 푹 자고. 이것도 좀 보고 그래.”

1차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성적이 나왔고 성적으로 아무 희망 없는 상담을 나눈 다음날 모의고사라. 빡빡한 일정에 엄마의 태도는 회유책, 이를 테면 단백질 보충제 같은 거였다. 엄마는 한동안 보지도 못 했던 ‘내’ 화분을 내 품에 안겼다. 아니, 밀어 넣었다. 언젠가 “요즘은 감성시대래.”라며 엄마가 내 손에 무작정 들렸던 화분이었다. 책상 위에 가만히 놔두고 보기만 하던 걸 엄마가 성격에 못 이겨 내놓으라며 일주일 만에 데려간 놈이기도 했다. 엄마 성격에 화분을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식물은 잎끝이 누렇게 변해 딱 봐도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렇게 쳐져있는 잎을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엄마는 민망했는지 “맨날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했는데도 그렇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나는 아아, 하며 수긍했다. 가만히 놔두지 않아서 저렇게 된 모양이다. 상추와 깻잎 그 사이 어딘가처럼 모호하게 생긴 이파리에 이름을 물어보려는데 엄마는 “그래도 오늘 무당벌레도 잡아서 얹어놨어!”라며 화를 내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아는 식물이라곤 상추와 깻잎밖에 없어서 종류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화분이 몇 달 전 짧게 머물러 있던 곳에 그대로 놔뒀다. 양계장도 익숙한 곳이 낫다는 체감에서 온 일종의 배려였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화분만 보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진드기도 없는데 왜 무당벌레지? 무당벌레는 자기가 알겠냐는 듯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날개, 날개. 쟤도 날개가 있네. 나는 아예 코를 처박았다. 인간은 미물이란 단어를 사용할 자격도 없다…….

 

여느 때와 같이 책을 챙기려 책상을 짚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손 밑이, 그러니까……. 손바닥을 뒤집어보자 빨갛고 검은 무언가가 으스러져 있었다. 무당벌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이렇게 참담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리와 배가 원체 한 몸이었던 것처럼 뭉개졌지만 딱히 미안하진 않았다. 무당벌레 잔해를 손으로 살살 긁어서 책상 위로 탈탈 털었다. 수직으로 눌려서 그런지 압화 마냥 날개는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그런 날개가 신기해 손톱 끝을 세워 들어 올리자 찌그러지지 않았다고 감탄한 게 무색하게 뚝, 끊어져버린다. 아……. 날개가 이렇게 약할 줄은 몰라 작은 탄식이 일었다. 손톱으로 날개를 쿡쿡 누르자 손톱 모양 그대로 날개는 조각조각 찢어진다.

 

정말이지 바다를 포용할 용기는 없는데 국어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이게 과연 한글은 맞는 건지 글자가 뱅글뱅글 돌면서 희롱하는데 속이 울렁거려 글자를 노려보는 것밖에 못했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내내 멀미를 앓았다. 답안지에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마킹을 새기는데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분홍색 바탕에 검은색 얼룩점이라, 꼭 무당벌레 같지 않은가. 나는 감독관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까지 쿡쿡대는 소리를 삼키며 웃었다. 아, 우습다, 우스워. OMR답안지를 가로로 세워 그 끝을 매만졌다. 답안지는 너무 얇아 회의가 들었다. 아침에 무당벌레 날개를 잡았던 것처럼, 조심스레 손끝을 세워 답안지를 잡고는 주욱, 반대쪽으로 비틀었다. 소름끼치도록 조용한 반에 종이가 찢어지며 내는 괴성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린다. 모두의 시선을 무시하고 찢어진 답안지를 겹쳐서, 또 찢었다. 약하다, 약해. 우리는 이러한 날개가 무엇이라고 가슴에 굳은살만 박아 넣었나. 애당초 이런 날개로 날 수는 있나. 웃음을 더는 참지 않았다. 이런 날개라면 달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짧은 단편소설 쓰는 걸 좋아하지만 정말 혼자 쓰는 거라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알 수 없어 첨삭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글틴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쓰는 입장이라 여기에 적힌 글들 외의 추가적인 이야기(혼자 구상했던 것이나 교정하며 뺐던 부분들)을 알고 있어 제 글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제가 몰랐던 사실이나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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