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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2일에 감상&비평 게시판에 작성한 <책은 도끼다> 감상 글의 작성자가 탈퇴 회원으로 적용되어 있는데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홈페이지에서 탈퇴하거나 필명을 변경한 적이 없는데도 탈퇴 회원으로 처리되는지 여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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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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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서 활짝 핀 햇살이 바스락거리며 나뭇잎 틈으로 녹아내리고 장미도 발갛게 익어 가는 여름 막바지에 집에서 공부할 생각이 영 들지 않아 책상 위에 올려놓은 공책들을 가방 속에 털어 넣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날씨가 지중해처럼 좋았다.

 도서관서가 000번대의 첫 번째 책.  ‘책은 도끼다’  제목을 보는 순간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 떠올랐다. 책이란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가. 종이의 반 이상을 차지한 비스듬한 검은 면 뒤로 검은색과 대비되는 차분한 황백색이 깔린 표지가 마치 도끼 날 같았다.

페이지를 몇 장 넘겨 ‘책은 도끼다’의 저자의 말을 읽자, 아니나 다를까. 연한 색으로 카프카 『변신』의 저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 내가 읽은 책이 나의 도끼였다고 말하는 저자가 있었다. 여러 책을 읽고 늘어난 견문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예민해진 촉수로 보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문장이 좋았다. 저자는 자신이 느낀 울림을 공유하고 싶어 책을 엮었다고 말한다. 이 책이 내 안의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될 수 있길 바라며 글 속 책장(冊欌)을 펼쳤다.

 

 첫 장의 제목은 ‘시작은 울림이다’  본 내용을 시작하기 전에 저자에게 울림, 즉 감동을 주었던 책과 작품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장이었다. 전 문장에서 책장을 책장(冊張)이 아닌 책장(冊欌)으로 쓴 이유가 이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 저자의 마음속 책장(冊欌)을 구경하는 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 한권 한권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 책갈피처럼 매달린 감상을 들으며.

  이철수와 최인훈, 이오덕과 아이들의 작품이 소개된 면에서 그들의 글과 작품, 박웅현의 해설을 감상하던 도중 49쪽의 문장 하나가 손끝을 붙잡았다.

 –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문장을 읽는 순간 커다란 얼음조각이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볼 수 있는가?
 그동안 나는 수많은 풍경들을 흘려보냈다. 아름다운 작품 앞에 서서는 사진을 찍자마자 ‘다 보았다’며 넘겼고, 함박눈이 내린 날에는 아, 눈이 내렸구나. 기다림으로 꽃을 피워낸 나뭇가지 앞에서는 아, 꽃이 피었구나. 하며 단조로운 음을 내뱉었다. 좋은 친구를 만나 여러 가지를 배우고 글과 그림을 감상할 때 그 아름다움에 몸을 떨 줄 알게 되었지만 늘 보고 겪는 것들에 감탄하지는 못했다. 막 새싹을 틔운 씨앗이나 가을 하늘에서 줄지어 날아가는 새 무리 같은 것들. 저자는 시청(視聽) 대신 견문(見聞)을 하라 말했지만 나의 감각은 견문이 아닌 시청이었다. 책은 시청하는 삶을 살며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김훈을 소개한다. 첫 장에서 어떻게 하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면 이 장부터는 답의 시작이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세상을 현미경으로 보는 듯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연에게는 인문학적으로 말을 건다는 김훈의 문장들을 눈에 새길 듯 읽었다. 인용된 글을 보는 동안 몸이 먹먹해지고 귓가가 소리 없이 울렸다. 이것이 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서 손끝까지 퍼져 따뜻해졌다. 언제쯤 이런 눈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울음이 비질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의 글은 신문처럼 빠르게 읽으면 색이 바래버렸다. 천천히, 풀잎이 바람을 안을 때와 같은 호흡으로 읽어야 했다.

 –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책이 소개해준 김훈의 글은 도끼가 아니었다. 얼어붙은 바다 속에서 영글어 얼음의 안쪽부터 녹이는 햇살이었다. 산수유가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 오글오글 모여 들끓는 빛이라는데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장이 끝났을 때는 결국 눈물이 돋아났다. 그처럼 세상을 보고 싶고, 표현하고 싶어서. 만일 저자의 목적이 소개한 책을 판매하는 것이었다면 성공한 셈이다. 돋아난 눈물이 서점으로 뛰어가고 있었으니. 

 

 3장에서는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이라는 제목으로 알랭 드 보통과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해 주는 작품들이라고 하였다. 사랑에 대한 많은 인용문이 소개되고 해석이 붙여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같은 장에 나온 다른 인용문이 마음에 들었다.

 –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문장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진정 삶이 풍요로운 사람, 마음이 부유한 사람은 별 아래 서서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또 이 인용문도 좋았다.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에서 인용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 쓴 구절이다.

– 언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공격하는 것뿐입니다

무슨 뜻일까? 보호해야 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그 대상을 공격하는 것뿐이라니. 딱딱한 책상,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간다, 밤하늘처럼 검은 눈동자. 아름답지만 울림을 주지 못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이다. 상투적인 표현만 쓰다가 다른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표현에 갇힌다. 생각도 그 표현 이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한 언어를 쓰는 모든 사람이 같은 표현을 쓰게 된다면 언어는 사라지고, 표현은 죽게 될 것이다.

 인용문을 읽고 표현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았다. 달을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옥쟁반 같다고 한다, 감격에 겨워 아, 아 소리만 내는 사람도 있다. 그 각자의 표현은 달이 보낸 울림을 각자의 언어로 해석해 내뱉은 게 아닐까? 무척 아름다운 작품을 보았을 때 그 느낌을 표현하기가 막막한 것도 같은 이치일지 모른다. 작품의 울림을 느꼈지만 각자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말이 상투적인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닐지.

 

저자는 책을 소개하는 동안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어떠셨나요? 어땠긴요. 당신의 울림이 제게 이어져 마음의 방을 울리고 있어요. 장마다 잘 벼린 문장도끼를 숨겨두시고선 모른 척, 다른 책 사이에 숨으시다니. 인용문들도 은하수처럼 아름다웠지만 그 사이의 단정한 해석들이 좋았다. 해석 아래 스며있던 저자 박웅현의 기억의 책갈피들도.

 책을 덮자 ‘파하’ 소리를 내며 입술 사이로 숨이 터져 나왔다. 아쉬움일까. 많은 인용문들을 다정한 문장으로 해석해 들려주는 저자의 글을 꼭꼭 씹으며 읽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달음박질치며 읽었던 몇몇 책들이 떠올라, 급히 읽어야 하는 책일 줄 알았다. 달랐다. 서늘한 느낌의 제목과 달리 내용은 가을 단풍 사이로 내리는 저녁놀처럼 따뜻했다. 인문학 강독회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 그런지 문체는 꼭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저자는 인문학과 여러 책, 작품들로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법을 알려준다. 보는 법. 평범한 일상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법. 일상이 지루하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그것이 도서관 서가 000-100번대의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새로운 시각이 선물처럼 도착한다는 것.

오랫동안 밑줄을 그었다. 꼭 세 번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서야 책을 완전히 덮을 수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주로 내용을 살폈고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책의 인용문을 중심으로 읽었다. 세 번째에는 저자가 책에 대해 쓴 감상들에 집중했고 마지막에는 책이 소개한 책과 함께 읽었다.

  책을 읽고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의 저자 이현우(필명 로쟈)의 말이 떠올랐다. 인용하자면,

  – 서평집에 대한 서평은 잘해야 군말이기 십상이다. 무얼 더 보태겠는가. 음식의 맛을 아무리 잘 표현한다고 해도 직접 맛보는 것만 못하다. 그저 일독해보시길.

 비록 이 책은 서평집이 아니고, 이 글은 서평보다 감상에 가깝지만 이 말만큼 어울리는 문장이 없어 보탠다.

 

 
참고 인용문

이현우, 현암사, 2012,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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