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은 만 19세가 되면 졸업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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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간이 남았었다니…

그렇게 난리를 떨었는데 뭔가 부끄럽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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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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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은 황량하고 힘든 시기입니다. 바람이 가져온 매서운 추위가 감돌 때 몸은 절로 움츠러들고 상냥한 햇빛이 가져다준 약간의 온기만이 주위에 감돌 뿐입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운 없게도 저는 여태껏 저를 학교로 데려다주던 통학버스를 더 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수능이 끝나서 운동을 해볼까 생각했으므로 호기 좋게 걸어 다니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부모님과 의견을 조율하여서 해가 나는 낮에만 학교에서 걸어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걸어서 하교하고는 했는데, 추운 날 하굣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편한 버스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걸어 다니다 보니 버스에서는 몰랐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풀어볼 이야기는 그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새 중 하나인 참새의 이야기입니다.

 

참새, 참새라는 이름답게도 어디 특이한 점도 없는, 우리가 생각하는 새 하면 아마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색도 화려하지 않고 이 나무 저 나무 숨기 좋게 등이 갈색이고 배가 흰색인 이유는 아마 날아다닐 때 작은 구름 같이 보이려 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크기는 가지 사이사이로 돌아다니기 좋도록 아담하고 어른 손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항상 부산스러워 보이는 모습은 약간 정신사납기도 하지만 활기차 보여서 귀엽습니다.

 

어른들은 요즘은 참새가 없다 참새가 없다 하는데, 아직도 저희 동네에서는 수가 많습니다. 물론 학교 근처에서 걸어 다닐 때에는 한 두 마리 정도나 볼 수 있어서 이것이 줄어든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 동네나 시골의 참새들은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면서 아주 시끄러우니 그 풍경을 기억하던 어른들에게는 요즘엔 참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될 만도 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어릴 때와는 달리 너무 바빠져서 참새라는 작은 새를 신경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봅니다.

 

제가 길거리에서 본 이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몸은 한껏 둥글둥글해집니다. 그런 참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수풀 속이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마치 성처럼 흙을 비스듬하게 높여 쌓고 그 위에 철판으로 둘러친 곳이 있는데, 그 언덕에는 억새풀과 키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위를 덩굴이 살짝 덮고 있습니다. 물론 때는 겨울이라 셋 다 말라붙어서는 갈색 옷을 입고 얽혀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사각사각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데, 대부분은 그 옆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 묻혀버리지만, 이따금 조용할 때 들으면 분위기가 꽤 좋습니다. 이 소리를 덮어서는 또 다른 소리가 참새 소리입니다.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많은 수가 째잭짹짹 거리며 수풀 속에서 울고 있습니다. 제가 지나다니면 동요하는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약간 움직이는데, 가끔 한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가 다시 수풀 속으로 들어가고는 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서 그렇게 숨어있는 참새들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참새들을 더 많이 만나는 곳은 의외로 강가에 커다랗게 서 있는 나무입니다. 저희 동네에 들어가려면 대로변에서 작은 천을 넘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 다리를 접하는 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려 돌다 보면 옆쪽에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지나가다 잘 보면 나무에 둥그런 열매들이 몇십 개씩 재잘거리며 열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가지 저가지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앞쪽의 키 작은 나무들을 좀 빼면 네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대로 쪽에서 첫 번째 나무를 지나면 그곳에 앉아있던 새들이 두세 번째 나무로 날아갑니다. 제가 또 두세 번째를 지날 때면 네다섯째로 이동했다가 제가 또 그곳으로 가면 다시 저를 피해 첫 번째 나무로 날아갑니다. 일부는 하천을 건너 반대쪽에 있는 작은 나무로 날아가 버리지만 제가 그곳에 가면 다시 저 반대편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지저귑니다. 이 광경을 함께 보는 건 다리 위 전깃줄의 비둘기나 까치인데, 아무 말도 않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까치를 보자면 저쪽도 이 광경이 재미있는가 봅니다.

 

물론 수풀이나 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으로 가다가 주차장 근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주워 먹고 있는 참새 떼를 본적이 있습니다. 열 마리가 안 되는 무리였는데, 바닥을 연신 쪼다가 제가 오는 걸 알았는지 바로 옆에 있는 자동차 밑바닥으로 폴짝폴짝 뛰어서 들어가 버립니다. 가까이 있던 참새는 몇 걸음 안가지만 차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참새는 풀쩍하고 빨리 날아올라서는 어서 착지해서 차 아래로 들어가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동차 아래에서 짹짹 지저귀다가 제가 그 앞을 지나가서 좀 간 후 뒤를 돌아보자 다시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는 다시 무언가를 주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고 귀엽습니다.

 

이들은 저를 마치 같은 극끼리 만나는 자석인 양 취급하며 일정 거리를 항상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울음소리를 쫓아가다 보면 곧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입니다. 부지런히 주위를 돌아다니고, 자기 몸을 손질하고, 무엇인가를 먹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겨울날에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익숙한 짹짹 소리를 들으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소리를 따라가 보십시오. 물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새가 반겨줄 수도 있지만, 만약 그 새가 당신이 아는 참새라면, 비록 몸이 떨리긴 하겠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그들을 바라보아주세요. 그들이 아직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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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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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앞에 섰다
홍살문 살은 뒤틀려 있고
하마비는 보이지 않는다
반질한 검정 새 비석들에는
OO광역시장… OO시교육감…
외삼문 누에는 오를 수도 들수도 없고
콘크리트 담장은 차갑기만 하다
명륜당에는 글 읽는 소리 멈추었고
성전에는 향내와 축문 소리 가신지 오래다.

 

루 처마 밑에서 거미 한마리가 또르르 내려온다.
둥그렇고 빛나는 그 등딱지가
왜이리 구슬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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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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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는 「야생조류 필드 가이드」라는 책을 본 일이 있습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두꺼운 그 책은 수백 장이 넘는 조류 사진을 통해 ‘필드’에서의 종 동정을 용이하게 해주는 사전이었습니다. 비록 조류를 채집하거나 만지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책 속 새의 모습들을 보고 있는 것도 소일거리로 삼을만한 일이었기에 한동안은 시간이 남으면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책을 보면 으레 익숙한 이름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런 이름들이 나오면 반가워서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하는데, 참새, 비둘기, 까치 같은 흔한 새들부터 나무발바리, 할미새사촌 같은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 보았으나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새들이 그렇습니다. 이중 이번에 이야기할 것은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시는 까마귀입니다.

까마귀에 대한 설명을 펴본 저는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로 까마귀 개체 수가 아주 적어졌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따금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모습도 꽤 자주 보이는 듯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책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잘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비슷한 전체보다 특이한 부분을 더 잘 기억하고는 합니다.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잘하다가 한번 실수를 하게 되면 그것이 제일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까마귀를 보자면, 까마귀는 시체를 먹는 청소부의 습성 때문에 흉조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어쩌다가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면 재수 없다고 말하면서 뇌리에 남겨놓은 것입니다. 반면 길조인 까치나 흔한 텃새인(수가 줄었다고도 하지만) 참새의 울음소리는 익숙하게 듣던 것이기 때문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아무런 감흥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뇌리에 박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실제로 까마귀의 개체 수가 생각 보다 많지 않더라도 우리가 흔한 새라고 여길 수 있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또 까마귀가 흔한 새라는 우리의 생각도 한 몫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까마귀에게 붙여버린 오해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바뀌어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저는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에서 본 이런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유전물질이 핵산(일반적으로 DNA와 RNA)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 거의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4가지 종류의 핵산은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보다는 훨씬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는 단백질이 유전물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수의 실험이 핵산이 유전물질이라는 객관적 증거를 보였음에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 박혀있는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이일하 교수는 90년대 까지도 사실은 단백질이 유전인자라고 주장하는 노교수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과학에서의 고정관념이 창의성에 주는 악영향을 역설하였습니다.

과학계 뿐에서 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이런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까치랑 까마귀의 관계를 다들 아실 겁니다. 길조인 까치는 아주 친숙한 새이고, 손님이 오면 알려주는 새로도 유명합니다. 이 손님에 대한 이야기는 까치의 영역 행동인데, 과거에는 이사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좋은 까치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까치가 경계하며 울던 것을 사람들은 손님이 온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까치는 영역을 지키려는 행동이 강해서 가끔은 포악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전에 한적한 도로를 걷고 있는데 까치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깍깍깍하고 높게 내는 목소리인데,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까치 두 마리가 까마귀 한 마리를 쫓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까치는 집요하게 까마귀를 쫓으며 발로도 치고 몸으로도 치고 한참을 공중에서 돌더니 공격을 버티지 못한 까마귀는 건물 저편으로 날아가 사라졌습니다. 그랬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까치들은 울면서 공중을 돌다가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계속해서 울어대었습니다.

사람들은 까치가 이렇게 공격적인 걸 잘 모릅니다. 자신들에겐 달려들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단독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떼로 몰려다니기도 하니 더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만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쩌면 까치도 그것을 아는 걸까요. 인간이 점점 자연을 잠식해나가는 동안, 살아남는 방법은 인간이 없는 곳으로 쓸쓸히 사라지거나 인간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하면서 인간이 내보내는 자원들을 야금야금 이용하는 것 일테입니다. 까치는 그것을 알았던 것이고, 거기에 특유의 공격성까지 더해져 경쟁자들까지 배척해버리고는 자신이 인간에게 이 도시에 살아도 된다는 완장이라도 받았는지 으스대는 듯 합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생각이 더해져서 자연에서 까치와 비슷한 위치를 가지던 까마귀는 점점 수세에 몰려가고, 사라져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까마귀의 오명(烏鳴)이 들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언젠가 까마귀 소리가 영원히 들리지 않을 날.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사람들은 기뻐할까요, 슬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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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안에서 일렁이는 저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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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천 건너편에 있는데 두개의 다리가 대로와 우리 동네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 다리 위에 서서 슬러지와 다양한 오염원들로 상처입은 물 아래에서 떼로 모여서 돌고 있는 물고기떼를 본 이후로 나는 그곳을 지날때마다 햇빛이 가려버린 물속을 보려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 아래 은빛으로 일렁이는 것을 보면 저것이 물고기 몸통인가 물위의 파문을 보면 저것이 물고기가 무엇을 주워먹은 것인가 하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상처입은 강에서 발견한 무언가 였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내 볼을 빨갛게 물들여도 오래간 다리 위에서 천을 바라보다가 물 아래 비쳐있는 내 모습만을 보게 되고는 그대로 쓸쓸하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다음에도 그곳에 내가 서 있을 것을 물고기들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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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烏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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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흔하다고는 하지만
왠지 까마귀 소리 듣기는 쉽지 않다.

 

까마귀의 깍깍소리 보다는
까치의 깍깍소리가 더 잘 들린다.

 

까치는 위협적인 깍깍 소리와 함께
까마귀 한마리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떼로 몰려가 두들겨 패고는 말한다.

 

나는 길조고 반은 하얀데
너는 흉조고 모두 까마니
내가 너보다 선함은 물론이고
내가 여기서 사는게 당연하다.

 

그렇게 몰려나간 까마귀는
서글프고 기다란 울음소리만 근근히 내뱉는다.
까악- 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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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불 속 참새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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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덩굴 덤불 가지들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얽혀 있는 속에서

 

찌리르륵 째르륵 짹짹 째르륵 하고 참새 떼가 숨어 있는지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끓어오르듯이 참새들은 안에서 이가지 저가지 옮겨다니면서 부산스럽다.

 

이때 나는 왜인지 푸르고 구름 한점 없이 높은 저 하늘로
저들이 후드더덕 하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싶어지었다.

 

포장된 도로 위에는 돌덩어리는 없고 작은 돌조각만 흩어져 있다.
돌조각을 하나 집어 수풀로 던지지만 깊고 얽히고 닫힌 수풀에 막혀버리고
아직도 참새들은 끓고만 있다.

 

언젠가 참새들이 넓고 뻥 뚫린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십마리 참새들이 까맣게 하늘 위서 퍼지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로 시원할 것 같다.

 

내 마음 속에도 참새 수십, 수백 수천마리가 쌓여있다.

 

차이라면 내 참새들은 마땅히 날아오를 하늘도 없고
이 포장 도시엔 돌을 던져줄 사람도 하나 없다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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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풀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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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풀내음이 가득 차오른다
도시의 거리 위에선 낮선 냄새다.

 

허리 잘린 잡초들이 화단에 가득 누워있고
그들의 향긋한 비명이 퍼진다.

 

우리가 모두 덮어버리고는 남긴
약간의 땅 사이에서 피어난 그들이다.

 

지금 이렇게 허리 잘려 죽어가도
다음해에 또 억척스레 살아날 그들

 

그들이 내년에도 당할 수모를 알기에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소리는
비명인가… 예초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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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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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건물 나무 사이사이로 힘차게 울리는
저 까치의 목소리 같이
힘찬 목청으로 맘껏 소리치고 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나뭇가지 위에서 위아래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 까치의 꼬리깃 같이
냐도 사지를 마음껏 휘둘러 보고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저 아파트 위에서 두리번거리는
저 까치의 두 눈 처럼
나도 저 위에서 뻥 뚫린 세상을 내려다 보고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옥상에서 떨어지고는 곧 다시 치달아 오르는
저 까치의 날개처럼
나도 우울한 기분에서 날아오르고 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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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거미,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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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부쩍 거미가 많이 보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나 풀밭 근처에 자리 잡으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고 학교 창문 앞이라던가, 차양 아래, 철제 울타리 사이같이 자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쪽들이 눈에 잘 띕니다. 이는 생각해보면 하나는 인공물과 거미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과 제가 이 인공물 사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거미들 이야기를 해보자면 흔하게 보이는 거미는 세 종류입니다. 무당거미, 호랑거미, 새똥거미가 그 셋이지요. 무당거미는 몸통이 굽은 손가락같이 살짝 휘어있고 형광색, 검은색, 붉은색의 무늬가 있습니다. 다리는 몸에 비교해 얇고 길며 큰놈은 다리 길이까지가 새끼손가락만 하게도 큽니다. 호랑거미는 무당거미와 색깔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몸통이 더 두껍고 둥글어서 콩알이나 무슨 나무의 열매 같은 모습입니다. 다리조차 여리여리한 무당거미와 다르게 호랑거미는 다리가 좀 더 두껍습니다. 또한, 크기도 대부분이 커서 대부분이 다리 길이까지 검지 만 합니다. 왕거미는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하는 거미에 가깝습니다. 몸통은 갈색 완두콩 두 개를 붙여놓은 것 같고 다리는 앞의 두 거미만큼 길지 않습니다. 크기도 보통 엄지손톱만 합니다.

셋 중에서 이번에 말해볼 거미는 무당거미입니다. 호랑거미는 시골이나 자연에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이 보이고, 왕거미는 생긴 것은 귀엽지만 아직 특이한 행동은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무당거미는 복도의 창밖이나 튀어나온 지붕 아래 자주 신기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할 것이고, 지금부터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제가 말하는 거미는 으레 무당거미라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거미집-

 

거미에게 집은 휴식처이자 사냥터입니다. 사실 사냥터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촘촘하게 엉켜진 거미줄은 거미의 유전자에 각인된 최고의 재산일 것입니다. 이 거미줄의 위치 선정은 아주 중요한데, 어디에 거미줄을 치느냐에 따라 자신의 배로 들어가는 먹이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면서 생각해본바, 가장 이상적인 곳은 바람이 통하는 곳입니다. 곤충들이 바람길을 따라 날다가 거미줄에 걸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 보통 그런 바람길은 무언가 튼튼한 물체의 사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짓기 좋은 장소이겠지요. 반면 안 좋은 곳은 외지고 막힌 곳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로 운이 좋지 않은 이상 곤충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곳들이지요. 창틀에 집을 거미도 있습니다. 이들은 요즘 곤충들이 사람의 불빛에 현혹되어 몰려드는 것을 아는 영리한 거미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거미들은 집을 짓고 삽니다.

그렇게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면 거미집의 전적을 알 수 있습니다. 꽤 오래 집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거미줄도 있고, 뭔가 이것저것 걸려있는 거미줄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붙어있는 거미줄의 거미는 허물도 벗어놓고 커다래져 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붙어있는 거미줄은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그럼 저는 으레 자리를 잘 잡은 거미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거미집이 저렇게 눈에 잘 띄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입니다. 거미줄은 얇고 튼튼하여 쉽게 알아챌 수 없기에 먹잇감들이 걸려듭니다. 하지만 벌레의 사체와 거대한 거미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곤충들로 하여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몸집이 커진 거미는 오히려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눈에 잘 띄는 거미줄에서 왜 인지 오지 않는 먹이를 기다리며 배를 주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흔한 사자성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거미는 가만히 굶어 죽지 않고 집을 버리고 새집을 지으러 떠납니다. 지난날의 영광에 기대어,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떠나가는 거미는 참으로 현명합니다.

 

– 한 거미줄 위에 –

 

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여러 한해살이 동물들이 삶을 끝내곤 합니다. 자연은 영생이란 있을 순 없다는 걸 알지만, 영생의 꿈을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곧장 자신과 꼭 닮은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생을 이어나가도록 했지요. ‘가시고기’에서, 또 여러 사람이 그러듯 자손을 남기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미도 물론 자손을 남깁니다. 수백, 수천 마리를 남기지만 무사히 살아나가는 건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이 가을은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은 그 전의 단계가 일어납니다. 인간 남녀 간의 이야기라면 가을날의 로맨스를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자연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거미로 돌아와서, 이맘때쯤 이면 한 거미줄 안에 큰 거미와 작은 거미가 함께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맘씨 좋은 거미가 세를 준 것인지 염치없게 남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인지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주인 거미의 입장에서 이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거미는 오직 암컷만이 집을 짓습니다. 수컷은 평소에는 길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암컷의 집을 찾아가 스리슬쩍 자리 잡습니다. 가끔은 한 거미줄 위에 작은 거미가 두 마리, 세 마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컷들의 영생을 향한 치열한 경쟁일 테지요.

그렇다면 다른 경쟁자 거미도 있는데 어서 달려가 암컷을 차지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생의 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집주인인 암컷에게 이 작은 신랑들은 한낮 점심거리로 보뿐입니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간 그대로 암컷의 독니에 찍혀 살이 녹아버리고 맙니다. 어떤 거미줄 위에서 본 모습은 동글동글한 검은색 공 한쪽으로 긴 다리 여럿이 빼쭉 나와 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마치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을 닮은 듯했습니다. 비록 그는 어떤 신호도 남기지 못한 채로 추락해 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거미는 치열한 눈싸움을 합니다. 암컷 거미가 정신이 언제쯤 빠질까…. 그 모습은 두 왕복선의 랑데부 같습니다. 그런 눈치싸움은 하루, 이틀, 수컷이 자신의 씨를 밀어 넣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서만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심이 가는 거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으레 암컷이 움직일 때만 따라 움직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컷 거미들의 전략 중 하나는 암컷이 딴생각을 할 때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이런 경우일듯싶습니다. 이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암컷이 둥글게 만 경단에 앞니를 꿈틀대는 동안, 수컷은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에 쫓겨서 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서 짝짓기에 성공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직후에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는 암컷에게는 방금의 신랑도 그저 먹이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씨를 남겼으므로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비극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희생정신으로 보아야 할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듯합니다.

수컷 거미가 그렇듯, 우리도 한 번쯤은 목표에 눈멀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만 그 후에 다른 시련을 맞으며 어떤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누구는 실패자이고 누구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누기보다는, 가끔은 그 열정을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들의 의도는 어떠했든, 그들의 행동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무언가 그렇게 원해보지 않았던 저에게는 그 거미들을 바라볼 때마다 언젠가 그런 열정을 찾을 때, 나도 내 모든 걸 바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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