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불 속 참새 떼
목록

수풀 덩굴 덤불 가지들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얽혀 있는 속에서

 

찌리르륵 째르륵 짹짹 째르륵 하고 참새 떼가 숨어 있는지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끓어오르듯이 참새들은 안에서 이가지 저가지 옮겨다니면서 부산스럽다.

 

이때 나는 왜인지 푸르고 구름 한점 없이 높은 저 하늘로
저들이 후드더덕 하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싶어지었다.

 

포장된 도로 위에는 돌덩어리는 없고 작은 돌조각만 흩어져 있다.
돌조각을 하나 집어 수풀로 던지지만 깊고 얽히고 닫힌 수풀에 막혀버리고
아직도 참새들은 끓고만 있다.

 

언젠가 참새들이 넓고 뻥 뚫린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십마리 참새들이 까맣게 하늘 위서 퍼지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로 시원할 것 같다.

 

내 마음 속에도 참새 수십, 수백 수천마리가 쌓여있다.

 

차이라면 내 참새들은 마땅히 날아오를 하늘도 없고
이 포장 도시엔 돌을 던져줄 사람도 하나 없다는 것 이다.

목록
거리의 풀내음
목록

거리에 풀내음이 가득 차오른다
도시의 거리 위에선 낮선 냄새다.

 

허리 잘린 잡초들이 화단에 가득 누워있고
그들의 향긋한 비명이 퍼진다.

 

우리가 모두 덮어버리고는 남긴
약간의 땅 사이에서 피어난 그들이다.

 

지금 이렇게 허리 잘려 죽어가도
다음해에 또 억척스레 살아날 그들

 

그들이 내년에도 당할 수모를 알기에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소리는
비명인가… 예초기인가…

목록
까치를 보고싶다.
목록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건물 나무 사이사이로 힘차게 울리는
저 까치의 목소리 같이
힘찬 목청으로 맘껏 소리치고 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나뭇가지 위에서 위아래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 까치의 꼬리깃 같이
냐도 사지를 마음껏 휘둘러 보고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저 아파트 위에서 두리번거리는
저 까치의 두 눈 처럼
나도 저 위에서 뻥 뚫린 세상을 내려다 보고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 싶다.

 

옥상에서 떨어지고는 곧 다시 치달아 오르는
저 까치의 날개처럼
나도 우울한 기분에서 날아오르고 싶다.

 

우울한 날에는
까치를 보고싶다.

목록
거미, 거미, 거미
목록

요 근래 부쩍 거미가 많이 보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나 풀밭 근처에 자리 잡으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고 학교 창문 앞이라던가, 차양 아래, 철제 울타리 사이같이 자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쪽들이 눈에 잘 띕니다. 이는 생각해보면 하나는 인공물과 거미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과 제가 이 인공물 사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거미들 이야기를 해보자면 흔하게 보이는 거미는 세 종류입니다. 무당거미, 호랑거미, 새똥거미가 그 셋이지요. 무당거미는 몸통이 굽은 손가락같이 살짝 휘어있고 형광색, 검은색, 붉은색의 무늬가 있습니다. 다리는 몸에 비교해 얇고 길며 큰놈은 다리 길이까지가 새끼손가락만 하게도 큽니다. 호랑거미는 무당거미와 색깔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몸통이 더 두껍고 둥글어서 콩알이나 무슨 나무의 열매 같은 모습입니다. 다리조차 여리여리한 무당거미와 다르게 호랑거미는 다리가 좀 더 두껍습니다. 또한, 크기도 대부분이 커서 대부분이 다리 길이까지 검지 만 합니다. 왕거미는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하는 거미에 가깝습니다. 몸통은 갈색 완두콩 두 개를 붙여놓은 것 같고 다리는 앞의 두 거미만큼 길지 않습니다. 크기도 보통 엄지손톱만 합니다.

셋 중에서 이번에 말해볼 거미는 무당거미입니다. 호랑거미는 시골이나 자연에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이 보이고, 왕거미는 생긴 것은 귀엽지만 아직 특이한 행동은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무당거미는 복도의 창밖이나 튀어나온 지붕 아래 자주 신기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할 것이고, 지금부터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제가 말하는 거미는 으레 무당거미라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거미집-

 

거미에게 집은 휴식처이자 사냥터입니다. 사실 사냥터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촘촘하게 엉켜진 거미줄은 거미의 유전자에 각인된 최고의 재산일 것입니다. 이 거미줄의 위치 선정은 아주 중요한데, 어디에 거미줄을 치느냐에 따라 자신의 배로 들어가는 먹이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면서 생각해본바, 가장 이상적인 곳은 바람이 통하는 곳입니다. 곤충들이 바람길을 따라 날다가 거미줄에 걸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 보통 그런 바람길은 무언가 튼튼한 물체의 사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짓기 좋은 장소이겠지요. 반면 안 좋은 곳은 외지고 막힌 곳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로 운이 좋지 않은 이상 곤충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곳들이지요. 창틀에 집을 거미도 있습니다. 이들은 요즘 곤충들이 사람의 불빛에 현혹되어 몰려드는 것을 아는 영리한 거미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거미들은 집을 짓고 삽니다.

그렇게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면 거미집의 전적을 알 수 있습니다. 꽤 오래 집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거미줄도 있고, 뭔가 이것저것 걸려있는 거미줄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붙어있는 거미줄의 거미는 허물도 벗어놓고 커다래져 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붙어있는 거미줄은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그럼 저는 으레 자리를 잘 잡은 거미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거미집이 저렇게 눈에 잘 띄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입니다. 거미줄은 얇고 튼튼하여 쉽게 알아챌 수 없기에 먹잇감들이 걸려듭니다. 하지만 벌레의 사체와 거대한 거미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곤충들로 하여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몸집이 커진 거미는 오히려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눈에 잘 띄는 거미줄에서 왜 인지 오지 않는 먹이를 기다리며 배를 주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흔한 사자성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거미는 가만히 굶어 죽지 않고 집을 버리고 새집을 지으러 떠납니다. 지난날의 영광에 기대어,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떠나가는 거미는 참으로 현명합니다.

 

– 한 거미줄 위에 –

 

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여러 한해살이 동물들이 삶을 끝내곤 합니다. 자연은 영생이란 있을 순 없다는 걸 알지만, 영생의 꿈을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곧장 자신과 꼭 닮은 자손을 남기는 것으로 생을 이어나가도록 했지요. ‘가시고기’에서, 또 여러 사람이 그러듯 자손을 남기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미도 물론 자손을 남깁니다. 수백, 수천 마리를 남기지만 무사히 살아나가는 건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이 가을은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은 그 전의 단계가 일어납니다. 인간 남녀 간의 이야기라면 가을날의 로맨스를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자연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거미로 돌아와서, 이맘때쯤 이면 한 거미줄 안에 큰 거미와 작은 거미가 함께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맘씨 좋은 거미가 세를 준 것인지 염치없게 남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인지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주인 거미의 입장에서 이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거미는 오직 암컷만이 집을 짓습니다. 수컷은 평소에는 길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암컷의 집을 찾아가 스리슬쩍 자리 잡습니다. 가끔은 한 거미줄 위에 작은 거미가 두 마리, 세 마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컷들의 영생을 향한 치열한 경쟁일 테지요.

그렇다면 다른 경쟁자 거미도 있는데 어서 달려가 암컷을 차지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생의 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집주인인 암컷에게 이 작은 신랑들은 한낮 점심거리로 보뿐입니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간 그대로 암컷의 독니에 찍혀 살이 녹아버리고 맙니다. 어떤 거미줄 위에서 본 모습은 동글동글한 검은색 공 한쪽으로 긴 다리 여럿이 빼쭉 나와 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마치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을 닮은 듯했습니다. 비록 그는 어떤 신호도 남기지 못한 채로 추락해 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거미는 치열한 눈싸움을 합니다. 암컷 거미가 정신이 언제쯤 빠질까…. 그 모습은 두 왕복선의 랑데부 같습니다. 그런 눈치싸움은 하루, 이틀, 수컷이 자신의 씨를 밀어 넣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서만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심이 가는 거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으레 암컷이 움직일 때만 따라 움직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컷 거미들의 전략 중 하나는 암컷이 딴생각을 할 때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이런 경우일듯싶습니다. 이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암컷이 둥글게 만 경단에 앞니를 꿈틀대는 동안, 수컷은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에 쫓겨서 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서 짝짓기에 성공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직후에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는 암컷에게는 방금의 신랑도 그저 먹이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씨를 남겼으므로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비극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희생정신으로 보아야 할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듯합니다.

수컷 거미가 그렇듯, 우리도 한 번쯤은 목표에 눈멀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만 그 후에 다른 시련을 맞으며 어떤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누구는 실패자이고 누구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누기보다는, 가끔은 그 열정을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들의 의도는 어떠했든, 그들의 행동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무언가 그렇게 원해보지 않았던 저에게는 그 거미들을 바라볼 때마다 언젠가 그런 열정을 찾을 때, 나도 내 모든 걸 바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목록
월 장원 상품의 배송에 관하여
목록

안녕하세요

8월 월장원으로 당선이 되어 이메일을 확인 후 답신을 회송하였는데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인가요?

목록
가로등과 밤하늘
목록

요새 동네 가로등이 부쩍 밝아졌다.

밤하늘은 깜깜해진걸 보니

별들을 떼어다가 박아놓았나 보다…

목록
밀회
목록

물 담는 정수기 옆 커다란 창에서
난 밤마다 거미와 밀회를 가졌다.

 

커다란 유리창을 사이로
동그란 몸통을 살살 흔들며
줄을 고치는 발은 섬세하게
내 가슴을 간지럽힌다

 

낮에는 감쪽같이 사라져서
혹여나 새가 채갔는가
마음을 졸게 하다가도
밤에는 태연히 나와서
궁둥이를 살살 흔든다.

 

매번 정수기로 발걸음을 옮긴다.
목이 타든 타지 않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하지만 만나는 이는 거미뿐이다.

 

거미야 너라도 있어서 기쁘구나.

목록
스카이라인
목록

 

囚囚                                 囚           囚囚

囚囚  囚囚      囚            囚囚   囚   囚囚

囚囚  囚囚      囚囚  囚  囚囚囚囚  囚囚

囚困囚困囚困囚困囚困囚困囚困囚困囚

 

人 –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목록
이상의 오감도 제 10호 – 나비 의 해석
목록

서문

  시인 이상(李箱)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가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그런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상의 대해서는 베일에 싸여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오감도(烏瞰圖)의 경우는 당시 사람들에게 크나큰 반발을 불러와 연재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가 해석을 시도하고 있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은 특유의 난해함과 신비로움은 필자에게는 이끌림의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미천한 지식과 견문이지만 감히 이 시에 대하여 지극히 피상(皮相)적인 추측을 해보고자 한다.

—–

해석

—–

찌저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幽界에絡繹되는秘密한通話口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鬚髥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通話口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안젓다일어서듯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決코밖으로새여나가지는안케한다.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그것은 유계에 낙역되는 비밀한 통화구다.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어서듯이 나비도 날아가리라.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

—–

  위 시는 1934년 8월 3일 개재된 「오감도 시제 제10호 나비」이다. 이 시를 관통하는 시어는 나비이다. 화자는 벽지에서도, 거울 가운데 수염에서도 나비를 본다. 주목해볼 만한 부분은 거울 가운데 수염에서 본 나비이다. 시인으로 활동하던 이상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화자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수염이 검고 긴 날개를 가진 나비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입을 꿈틀거릴 때 수염의 움직임에선 나비의 날갯짓을 보았다.

  하지만 화자가 처한 상황에서 그런 날갯짓을 보일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찢어진 벽지를 가진 방 안에서, 화자는 침묵한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단순히 대화를 원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잠깐 바로 전작인 9호의 일부를 보자.

—–

그리드니나는銃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앗헛드냐.

그러더니 나는 총을 쏘듯이 눈을 감으며 한 방 총탄 대신에 나는 참 나의 입으로 무엇을 내뱉었더냐.

—-.

  이 작품에서 화자는 입으로 무엇을 내뱉었는지 의문을 가지며 총을 쏘 듯하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하는 말이 총알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10호의 첫마디, 즉 벽지에서 본 나비가 유계(저승)로 가는 통화구인 이유이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근대화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사람 간에 말이 있어도 그 말이 날카롭게만 느껴지고 따스하게는 느끼지 못했던 화자는 자신조차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게 될까 봐 삼가고 있다.

  하지만 화자는 그런 관계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런 세상에 슬퍼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던 시절,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한 화자에게 변해가는 세상은 슬프기만 하다. 찢어진 벽지의 가난과 냉랭한 세상에서 소외된 데에 대한 한탄은 입김이 되고, 이슬 같은 눈물은 흘러내린다. 나비는 그 눈물을 먹고 있다. 그 외로움에서도 화자는 이런 속내를 내뱉고 싶지는 않아 한다. 죽음을 이 상황에서의 돌파구로 보기도 한다. 화자는 앉아있다 못해 수렁에 빠져있었다.

  그런데도 화자는 이를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아 한다. 돌파하고 싶은 의지는 있다. 화자의 나비는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주변에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드러낼 사람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일로 돌아올지 두려워하고 있다. 화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었을까.

—–

마치며

—–

  모든 사람이 어려워하고 필자보다 더 전문적인 연구인들이 아직까지도 해석에 매달려 있는 이상의 시를 감히 해석하여 보았다. 해석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지극히 피상적일 수 있다. 심지어 필자는 이상의 작품도 몇 작품 읽어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분의 시를 해석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리고 위 글에서는 화자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는데, 이 시에서 화자는 사실상 작가인 이상과 동일시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이상을 단순한 천재로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 또한 천재, 미치광이 이전에 인간이다. 그의 삶과 경력은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굴곡진 삶 속에서 의지할 사람도 몇 없다는 것. 자신의 배운 근대 문물과 전통과의 갈등.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 소외를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오던 그의 기괴해 보이는 작품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목록
애매미
목록

작은 애매미 한마리

커다란 나무에 가려

길길대며 소리를 내려한다.

 

그와중에 커다란 말매미는

부르지도 않은 반주를

묻으려는 듯 연주한다.

 

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찌요삑, 찌요삑, 찌요삑, 찌이이이이이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씨요옥 씨요옥 씨요옥 씨요옥 씨요옥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애매미는 오히려 말매미에 무심하다)

 

네가 원하던 암컷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애매미야 나는 들었단다.

목록